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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94079653 / 419쪽 153 x 2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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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서평 소금, 그 짭짤한 역사문화의 진미! ―우리나라 최초, ‘소금의 눈’으로 본 한국 문화사 “염분 과다 땐 칼슘 고갈 … 골다공증 · 신장결석 유발”, “짜게 먹으면 ‘위암’ 발병 위험 높아”…… 우?리는 소금이 과잉될 뿐만 아니라 만병의 원인으로 천대받는 세상에 살고 있다. 그래서인지 소금이 주었던 그 짭짤한 역사문화의 진미까지 잊어버렸다. 하지만 고대로 거슬러 올라가면 국가를 지탱했던 경제 원동력은 소금과 철이 아니던가. 고대의 제염업은 현대의 IT산업보다도 훨씬 유망한 업종이었다. 소금은 절대자의 권위와 힘까지 상징했다. 소... 소금, 그 짭짤한 역사문화의 진미! ―우리나라 최초, ‘소금의 눈’으로 본 한국 문화사 “염분 과다 땐 칼슘 고갈 … 골다공증 · 신장결석 유발”, “짜게 먹으면 ‘위암’ 발병 위험 높아”…… 우리는 소금이 과잉될 뿐만 아니라 만병의 원인으로 천대받는 세상에 살고 있다. 그래서인지 소금이 주었던 그 짭짤한 역사문화의 진미까지 잊어버렸다. 하지만 고대로 거슬러 올라가면 국가를 지탱했던 경제 원동력은 소금과 철이 아니던가. 고대의 제염업은 현대의 IT산업보다도 훨씬 유망한 업종이었다. 소금은 절대자의 권위와 힘까지 상징했다. 소금 염鹽 자를 풀어헤치면, 신하臣가 소금 결정[鹵]을 소금그릇[皿]에 두고 지키는 뜻이라 한다. 서양도 동양과 다르지 않다. 잘 알려졌듯이 샐러리salary의 어원은 소금salt이며, 로마 병사는 월급으로 소금을 받았다. 중세 이후에도 소금 그릇은 금으로 칠했고, 근대의 사람들도 소금을 구하지 못해 아우성을 치던 그런 때가 있었다. 역사는 물론 민속학과 문화사 전반을 사유하는 저자 유승훈(부산박물관 학예연구사)이 이 천덕꾸러기 신세가 된 ‘한국 소금의 역사문화사’를 담은 책 ≪작지만 큰 한국사, 소금≫을 세상에 내놓았다. 저자는 짠 기氣가 그리워질 때면 여장을 꾸려서 바닷가로 훌쩍 떠나는 역사민속학자다. 서울에서 태어나 영광 댁인 외할머니가 가져다 준 짭짤한 굴비를 먹으면서 자라나 젓갈장사를 했던 어머니 품에서 나는 ‘짠 향기’를 맡으면서 세상의 쓴맛과 단맛을 함께 깨달았다고 한다. 소금에 대한 화두가 커질 무렵 다산 정약용이 ‘소금 이득이 나라 안에서 제일’이라고 했던 낙동강 하구의 염전을 조사하여 고려대 대학원에서 문학 박사학위를 받아, 저자는 스스로를 ‘소금박사’라 부른다. 소금이 내게 어떤 존재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모성母性이라 답한다. 소금은 내게 어머니이고 외할머니였다. 나는 외할머니가 선사해 준 짭짤하면서 따뜻한 맛을 잊지 못해 지금도 절임 생선을 좋아한다. 굴비의 고장에서 태어나 ‘영광댁’이라 불리는 외할머니는 항상 우리 집에 굴비와 박대 등의 건어물을 가지고 오셨다. 방금 구운 그 따뜻한 영광 굴비를 게걸스럽게 해치우면서 어느새 나는 밥도둑이 되었다. 이제, 굴비 속에 고르게 녹아든 그 오묘한 소금 맛은 십여 년 전 돌아가신 외할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되어버렸다. ―“머리말” 중에서 소금과 묶여진 질긴 인연에 대하여 의문을 품고 10년 이상을 소금의 역사문화와 동고동락했다. 소금과 제염업에 대한 천착의 결과로서 수많은 논문을 발표하고, 학술서를 썼지만 누구 말처럼 여전히 배가 고팠다. 사람들의 기억 속에 잊혀진 소금의 역사, 소금의 문화가 너무 많아서일까. 그는 이를 올곧이 복원하여 세상에 내놓아야 ‘소금 박사’의 임무를 다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렇게 오랜 시간 차곡차곡 쌓은 성과가 ≪작지만 큰 한국사, 소금≫에 녹아들어 있다. ‘짜게 본 역사, 간을 친 문화’라는 책의 부제처럼, 이 책은 소금을 통해 본 한국의 역사와 문화의 흐름을 다채롭고 풍성하게 담아냈다. 소금에 절인 한국사, 그 짜디짠 맛 이 책은 소금의 눈으로 바라본 ‘우리나라 최초의 소금 문화사’로 1부는 ‘짜게 본 역사’, 2부는 ‘간을 친 문화’로 구성되어 있다. 1부는 ‘짜게 본 역사’ 우리나라의 소금사를 통시대적으로 살펴보면서 특히 중요하게 결정된 역사의 테마를 고무래로 거두어보았다. 이렇게 해서 길어 올린 결정체가 ‘최고의 소금 교통로였던 강, 최초의 소금 전매제인 고려의 각염법, 세종이 혁파한 의염색, 임진왜란 시 류성룡이 주장한 염철사 제도, 다산 정약용의 백성을 위한 염법, 구한말 이완용의 인천 방문, 일제 강점기 서대문 소금 사기단, 해방과 한국전쟁기의 소금 생산 장려’ 등이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들은 소금이 우리나라의 한국사와 상호작용한 결과였다. 소금의 알갱이는 비록 작지만 역사에 미친 영향력은 결코 작지 않아 결국은 ‘작지만 큰 한국사’를 결정시켰다. 역사를 짜게 본다는 것은 무엇일까? 이것은 소금을 둘러싼 역사를 살펴보고, 소금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다. 국가의 입장에서 소금은 세수를 늘리고 재원을 확보할 수 있는 상품이었다. 그리하여 국가는 항상 소금을 두고 ‘짜게’ 대응한 것이다. 시대별로 수위는 달랐지만 국가는 언제나 소금세를 통해서 재정을 확보하려고 했고, 이에 따라 염민鹽民에 대한 착취가 동반되었다. 염업사를 보건대, 백성이야말로 국가의 ‘짜디짠 소금 정책’으로 고통을 받는 존재였다. 조선 정부의 소금 정책은 중앙과 지방의 갈등 사이에서, 권세가와 아전들의 침탈 속에서 언제나 본질이 흐려졌다. 이에, 다산 정약용은 백성을 위한 염법, 즉 평미레 개혁안과 ‘소금세를 줄여서 소금세’를 늘이는 역발상을 내놓았다. 그러나 그의 혜안은 조선 후기 내내 실현되지 못했고, 열강의 힘에 의한 개항과 일제의 침략을 맞게 되었다. 영악한 일제는 천일염을 화두로 식민지 조선의 염업을 재편했고, 전통적인 소금인 자염은 쇠멸의 운명을 맞이했다. 일제강점기 북한지역에 천일염전을 많이 건설한 탓에 해방 이후의 남한은 혹독한 ‘소금 빈곤’을 감내해야 했다. ‘민족 분단’ 만큼이나 고통스러웠던(?) ‘염전과 소금의 분단’을 타개하기 위하여 한국정부는 대대적인 천일염전의 증설에 나섰다. 하지만 곧 ‘소금 과잉’이라는 후폭풍을 맞게 되었고, 이제는 늘렸던 염전을 대규모로 줄여야 하는 모순적 상황이 되었다. 이처럼 우연과 필연이 버무려진 ‘짠 역사’의 파고에 적절히 대응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염세규정이 제정된 그 해부터 염민들의 대규모 항거가 일어났다. 1907년 함경남도 함경에서 일어난 일이다. 이곳에 파견된 세무관 김귀현은 탁지부 장정章程(조목으로 나눈 규정)보다 더 많은 소금세를 걷으려 하였다. 지방의 아전들과 다름없이 소금세를 중간 착복하려 한 것이다. 염민들이 반발하고 세금을 내지 않자 김귀현은 당장 일본 순사를 보냈다. 일본 순사가 염민 몇 명을 잡으려 하자 염민들이 크게 분개하여 일제히 달려들었다. 이에 놀란 일본 순사들이 다시 칼과 총을 무장한 채로 떼 지어 몰려왔다. 순사들의 총칼 앞에서 많은 염민들이 죽고 다쳤다. 하지만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다음 날에는 일본 병사 오륙십 명이 들이닥쳐 총질을 하였다. 염민들은 사방으로 도망쳤고, 35명의 백성들이 감옥에 갇혔다. ―“구한말 이완용이 인천의 주안을 찾은 까닭은” 중에서 자연과 염부가 빚어낸 ‘소금’, 한국 소금 문화의 모든 것! 소금은 역사의 결정체이자 문화의 알맹이였다. 이 책의 2부에서는 ‘간을 친 문화’를 살펴보는데 흥미진진하고 재미있는 내용들이 펼쳐진다. 우리나라에서는 짠맛의 시대성과 지역성에 따라서 다양한 문화가 창출되었다. 이것이 바로 ‘간을 친 문화’이다. 문화에 간을 친다는 것은 무엇일까? 짜게 먹기는 쉬워도 간을 적당히 치기는 어려운 법이다. 간은 음식의 맛을 결정할 뿐더러 사람과 가풍, 지역에 따라서 천차만별이기 때문이다. 2부 ‘간을 친 문화’에서는 소금을 쳐서 탄생한 우리 문화를 간보자는 것이니 문화의 다양성이 전제된 분야다. 2부에서는 소금이 창출한 다양한 문화들의 짭짤한 맛을 볼 수 있다. ‘프롤로그인 짠맛에 대한 명상, 흉측한 정력가인 설화 속 소금장수, 우리나라의 전통적 소금인 자염의 생산비법, 뿌리는 소금의 주술적 힘, 친환경의 바람을 탄 천일염, 소금 생산자인 염부’ 등 소금으로 간을 쳐 탄생한 문화의 진미들을 맛볼 수 있다. 소금은 먹는 조미료이자, 문화의 상징이었다. 뿌리는 소금은 귀신을 잡는 주물이며, 아울러 성욕을 강화시키고, 다산을 불
목차
머리말
1부 짜게 본 역사
프롤로그 강은 최고의 소금 교통로였다
고려 말의 각염법은 원나라의 소금 제도를 받아들인 것일까?
ㆍ답사기 1 검단 선사가 소금 제조법을 가르쳐 준 전북 곰소만
1년도 안된? 의염색을 혁파한 세종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류성룡은 염철사를 주장했다
ㆍ답사기 2 나라의 경비를 마련할 수 있는 태안 소금
다산 정약용, 백성을 위한 염법을 말하다
ㆍ답사기 3 \"소금 이득이 나라 안에서 제일\" 낙동강 하구 염전
구한말 이완용이 인천의 주안을 찾은 까닭은
1920년대, 서대문 소금 사기단의 출현
해방과 전쟁의 격동기, 소금 생산의 장려만이 살길이다
2부 간을 친 문화
프롤로그 짠맛에 대한 명상
설화속 소금장수는 과연 흉측한 정력가일까?
전통적 자염은 연료가 필요해
자염의 생산 비법 : 쇠가마와 횟가마에 대한 변
'뿌리는 소금'의 주술적 힘
친환경의 바람을 타고 천일염이 뜨고 있다
ㆍ답사기 4 인천은 짠물이다
상노동을 하는 염부는 누구인가?
ㆍ답사기 5 최대의 소금 산지, 천사의 신안군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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