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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제국
원제 : The Rise and Fall of the Third Reich
시리즈 :
KODEF 안보총서
[61]
크리스 비숍, 데이비드 조든 저 | 박수민 역 | 플래닛미디어 | 2012년 05월
ISBN : 9788997094127 / 536쪽 251 x 17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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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제3제국의 융성
아돌프 히틀러Adolf Hitler는 정권을 잡자마자 독일군의 재무장과 기계화를 추진했다. 군사 기술에 매료당한 히틀러는 기갑부대 옹호자들이 군내 보수파를 압도할 수 있게 도왔고, 1930년대 말 독일군은 세계 어떤 군대에도 뒤지지 않을 만한 기갑 공격 전력과 군용기를 보유하게 되었다. 그동안 영국과 프랑스를 비롯한 서구 열강은 우유부단한 태도로 일관했다. 독일 국방군Wehrmacht은 1939년 9월 폴란드 침공을 시작으로 1941년 말까지 파죽지세로 승리를 이어갔다. 군 수뇌부의 우려에도 히틀러는 대담한 공격을 주문했고, 특히 1940년 5월에는 만슈타인Manstein 장군의 대담한 공격 계획에 따라 독일군 기갑부대가 벨기에 동부와 룩셈부르크에 걸친 아르덴Ardennes 숲을 통과했다. 이 지역은 기갑부대가 통과할 수 없다고 여기던 곳이었다. 과거 제1차 세계대전 때 프랑스에 몰려간 독일군은 첫 공세에 파리 근처까지 진격했지만, 프랑스군의 반격으로 4년 동안 피비린내 나는 참호전을 치러야 했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군이 보여준 전격전Blitzkrieg은 확실히 전과는 다른 결과를 가져왔다. 기습에 성공한 독일군은 연합군 전방부대에 치명타를 날리고 영국 해협까지 진격했다. 영국-프랑스 연합군은 장비를 놓아둔 채 간신히 바다를 건너 철수했다. 예비역 상병에 불과한 히틀러가 독일군 역사상 가장 눈부신 군사적 승리를 거머쥔 것이다. 이어 히틀러는 전광석화로 발칸Balkan 반도를 장악하고 소련으로 시선을 돌렸다.
“신에게 엄숙하게 간청하거나 국제연맹에 희망을 건다고 잃어버린 땅을 되찾을 수는 없습니
다. 이는 오직 군사력으로만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 아돌프 히틀러 (7쪽)
서구 열강이 피로 얼룩진 에스파냐 내전에 관여하지 않고 독일과 이탈리아 군대의 에스파냐 내전 관여를 묵인하자, 히틀러는 영국・프랑스・미국의 군사력이 별 볼일 없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독일이 공격적이고 팽창적인 외교정책을 밀어붙여도 다른 유럽 열강들이 기껏해야 비난하고 불만을 표하는데 그칠 것이라고 결론 내린 것이다. 이런 판단은 결과적으로 틀리지 않았다.
- 본문 중에서 (23쪽)
“세계 최강 프랑스 육군은 기껏해야 26개도 되지 않는 독일군 사단과 머리를 맞대고 있었다. 이들은 용맹스러운 동맹국이 괴멸하는 동안 뒷짐을 진 채 쇳덩어리와 콘크리트 뒤에 숨어 있었다.”
- J.F.C. 풀러Fuller (49쪽)
제3제국의 몰락
1942년이 끝나가면서 제3제국은 전성기를 지나 쇠퇴의 길을 걷게 되었다. 독일군은 전쟁 첫해에 눈부신 승리를 만끽했지만, 차츰 진격 속도가 느려지면서 결국 후퇴하기 시작했다. 그해 연합군은 전력을 크게 증강했는데, 특히 미국의 참전으로 파시즘과의 싸움에 미국의 산업력을 동원할 수 있었다.
1942년 히틀러는 러시아 남부를 가로질러 공격하는 ‘청색Blau 작전’을 감행했다. 독일 제6군은 전략적으로 중요한 스탈린그라드Stalingrad를 정면에서 공격했는데, 소모전에 휘말린 독일군은 소련군의 치명적인 반격에 노출되었다. 히틀러의 전략 실패는 스탈린그라드에서 재앙으로 이어졌고 몇 달 뒤 북아프리카에서도 비슷한 규모로 반복되었다. 1943년 초부터 독일군의 약점은 점점 더 뚜렷해졌다. 독일군은 신들린 듯 끝까지 싸움을 이어나갔지만 막강한 군사력과 용맹함을 엉뚱한 곳에 쏟아부었다. 게다가 히틀러는 작전에 관한 사소한 것 하나까지 통제하려 해서, 전방의 지휘관들은 히틀러의 허락 없이 소규모 부대 이동조차 할 수 없었다. 또한 방어가 불가능한 진지를 무조건 사수하라는 지시를 내려 수천 명에 달하는 병력을 근시안적인 방어 활동에 투입해 헛되이 목숨을 잃게 했다. 한편 소련은 독일에 비해 생산력에서 앞서 있었고, 남녀 모두 전선에 투입해서 생산된 장비를 최대한 이용할 수 있었다. 전면전에서 국가 생산력의 상대적인 우위는 아주 중요한 요인이며 특히 전선에 투입할 병력이 풍부하다면 효과를 배가할 수 있다.
연합군은 1944년 6월, 오랫동안 기다려온 프랑스 침공을 개시했다. 히틀러의 허락 없이 움직일 수 없는 독일군 야전 지휘관들은 디데이D-Day 때 연합군의 상륙에도 신속하게 대응하지 못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그해 12월에는 서부전선에서 ‘모 아니면 도’식의 공격을 감행했다. ‘아르덴 공세’라고 불린 이 작전에서 독일군은 마지막 남은 전력을 헛되이 사용하여 결국 제3제국의 붕괴를 앞당겼다.
“(히틀러는) 기술에 대한 관심 때문에 무기의 효과를 과장스럽게 인식했다. 예컨대, 이길 가능성이 전혀 없는 다수 사단의 교전 상황에서 자신이 자주포나 티거 전차 대대를 몇 개 지원해 주면 역전할 수 있다고 보았다.”
- 에리히 폰 만슈타인Erich von Manstein (346쪽)
“아르덴에서 패배한 뒤, 히틀러는 상병처럼 전쟁을 치르기 시작했다. 큰 전략 없이 단편적인 싸움만 벌이기 바빴다.”
- 핫소 폰 만토이펠Hasso von Manteuffel (460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