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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33706237 / 360쪽 158 x 23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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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서평 화북교통주식회사는 중일전쟁 당시 중국 화북지역을 차지한 일본이 철도망 중심의 인프라를 운영하고 구축하기 위해 1939년에 설립한 회사이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까지 수송전을 전개한 화북교통은 중?국의 주요 산업 산물과 물자를 일본으로 송출하는 한편 군수물자와 민수물자 그리고 여객을 대륙 전역으로 수송했다. 중국의 철도는 일본 군부에게는 아시아에서 세력권을 확대해가는 기반이었고, 중국인들에게는 통일국가 수립과 국민경제 건설에 필요한 물적 기반이었다. 이 책은 화북교통이 화북지역에서 전개한 전시수송의 실태와 자원 동원 그리고 파탄 과정,... 화북교통주식회사는 중일전쟁 당시 중국 화북지역을 차지한 일본이 철도망 중심의 인프라를 운영하고 구축하기 위해 1939년에 설립한 회사이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까지 수송전을 전개한 화북교통은 중국의 주요 산업 산물과 물자를 일본으로 송출하는 한편 군수물자와 민수물자 그리고 여객을 대륙 전역으로 수송했다. 중국의 철도는 일본 군부에게는 아시아에서 세력권을 확대해가는 기반이었고, 중국인들에게는 통일국가 수립과 국민경제 건설에 필요한 물적 기반이었다. 이 책은 화북교통이 화북지역에서 전개한 전시수송의 실태와 자원 동원 그리고 파탄 과정,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중국에서 차지하는 의미를 방대한 자료를 동원하여 생생히 파헤치고 있다. 일본제국의 철도는 어떻게 중국 인민의 철도가 되었는가! 일본제국의 전쟁 인프라, 화북교통 화북교통주식회사는 중일전쟁을 통해 중국 화북지역을 점령한 일본이 철도를 포함한 교통 전반을 관할하기 위해 1939년에 설립한 회사이다. 단순한 회사가 아니라 일본의 아시아 침략 인프라를 구축하기 위해 설립된 사실상의 정부기관이었던 화북교통은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날 때까지 철도를 중심으로 광범위한 분야에 걸쳐 사업을 전개했다. 베이징에 본사를 둔 화북교통은 화북의 주요 산업 산물과 물자를 일본으로 송출하는 한편 군수물자와 민수물자 그리고 여객을 대륙 전역으로 수송하며 일본 전시경제를 뒷받침했다. 자연히 화북교통의 철도는 중국인들에게 대항과 파괴의 대상으로 떠올랐고, 수많은 노선이 항일 게릴라들의 항전에 의해 파괴와 복구를 반복했다. 철도는 제국과 제국의 점령지 양쪽 모두의 대동맥이었다. 방대한 자료를 통해 드러난 화북교통의 철도 운영과 전시수송의 실태 신해혁명 이후 청나라가 무너진 중국은 군벌이 경합하는 군웅할거의 시대를 맞이했다. 중국에 근대국가가 등장하면 기득권을 잃을 것을 염려한 일본은 중일전쟁을 일으켜 중국과 전면전을 벌이게 된다. 그 과정에서 화북의 철도를 점령한 일본은 화북교통주식회사를 세워 전시수송을 담당하게 하고 일본의 방식대로 운영했다. 화북교통의 중국철도 운영은 해당 지역의 경계를 넘어 당시 만주와 조선에서의 정책 전개와 밀접하게 연동하며 대륙의 철도 시스템 전체의 재편을 가져왔다. 일본이 10만 명 이상의 중국인을 채용하여 교통시설들을 운영한 부분은 어떤 식으로든 전후의 중국철도 운영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수 없었다. 중국의 철도는 일본 군부에게는 아시아에서 세력권을 확대해가는 기반이었고, 중국인들에게는 통일국가 수립과 국민경제 건설에 필요한 물적 기반이었다. 화북교통이 운영한 중국의 철도는 중국인들을 수탈하는 기구였지만, 전쟁 이후에는 신중국 건설을 위한 기반이 되었다. 2차 국공내전 당시 공산당은 중국 철도망의 절반을 얻음으로써 군사수송과 병참을 감행할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공산당은 철도를 일원적으로 관리했고, 내전 승리를 달성했다. 이후 중국의 철도는 새로운 국가와 계획경제의 물적 기반이 되었고, 나아가 한반도에서 일어난 전쟁을 북에서 뒷받침하는 요소가 되었다. 지은이 임채성은 그간의 연구 과정에서 발굴한 수많은 자료를 동원하여, 일본이 어떻게 점령철도 운영을 개시하여 새로운 교통회사를 만들고 결국 한계에 달하였는가를 중일전쟁 발발 이전부터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중국 철도 정책에 걸쳐 제시하는 동시에 일본의 침략과 지배가 중국의 철도에 미치는 과정을 밝힌다. 청나라가 쇠퇴하고 여러 군벌이 득세하는 가운데 제국 열강의 차관으로 철도가 건설되는 과정에서부터 2차 세계대전 종전 후 중화인민공화국 성립 이후까지 중국대륙에서 여러 주체들이 전개한 철도 운영의 실태를 실증 자료들을 통하여 철저히 분석했다. 전쟁 이전과 전쟁 이후의 중국, 그리고 화북교통 일본의 전시철도 운영은 중국 국민당정부와 중화인민공화국의 철도 운영에도 영향을 미치지 않을 수 없었다. 지은이 임채성은 중일전쟁 이전 국민당의 국유철도 정책과,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국공내전기와 중화인민공화국 성립 이후의 국유철도 정책이라는 역사적 단면 사이에 놓인 화북교통의 철도 운영을 복안적 시각으로 검토했다. 이를 통해 일본의 패전 이후 국민당정부가 화북교통을 접수하고 미국의 지원을 받아 철도 운영을 개시했지만, 화북의 정세가 국공내전과 얽혀 복잡했던 만큼 철도 운영에서 통일성을 상실했다는 점을 지적한다. 그리고 이후 중국의 철도는 국공내전이 깊어지면서 다시 전시동원되었지만, 공산당이 승리함에 따라 신국가 건설과 계획경제의 물적 기반이 되었다는 점을 제시하였다. 이를 통해 지은이는 화북교통이 중일전쟁 당시 일본의 전시수송에서 차지한 특징뿐만 아니라 전후 중국 내부의 철도 운용에서 차지하는 의미도 밝혀내고 있다. 그리하여 화북교통이 중국 화북에서 전개한 전시수송의 실태와 자원 동원 그리고 파탄 과정,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중국에서 차지하는 의미를 총체적으로 파헤치고 있다. 이 책의 구성 1장에서는 일본의 점령 이전, 중국에 철도가 세워진 과정을 분석하고, 열강의 차관철도로 건설된 중국 철도의 실태를 고찰한다. 또한 국민당정부의 철도 정책도 검토한다. 2장에서는 중일전쟁이 발발한 이후 점령한 철도를 운영하기 위해 일본 측이 설치한 북지사무국이 어떻게 외부에서 경영자원을 조달하고 전시수송을 전개했는지를 밝혔다. 이후 화북 정세가 안정됨에 따라 점령지 운영에 대한 일본의 정책이 구체화되는 가운데 화북교통이 설립되는 과정이 서술된다. 3장에서는 화북 개발이 추진되어 수송 수요가 급증하자 화북교통이 수송력 증강 계획을 수립했지만, 자재 조달과 사원 채용이 계획대로 추진되지 못하고 개량 위주의 철도 투자가 불가피해진 상황을 검토한다. 화북교통이 이러한 자원 제약을 극복하기 위해 어떤 자재 조달 시스템과 인적 운용 시스템을 구축하여 수송을 계획적이고 효율적으로 달성하였는가를 분석했다. 4장에서는 아시아태평양전쟁 개전 이후 해상 수송력이 급감하자 취해진 육운전가수송이 화북교통의 철도 운영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밝힌다. 즉 자원 제약이 심각해진 상태에서 대일對日 물자를 수송하기 위해 화북교통이 취한 조치들을 검토한다. 5장에서는 1944년 2분기부터 현실로 다가온 수송 위기를 검토한다. 경영자원 운용력 저하, 항일 게릴라의 공세, 미군기의 공습 등 여러 요인 때문에 나타난 수송력 감퇴를 분석하고, 화북교통이 어떤 수송력 확보 대책을 취했는가를 고찰하며 그 실태를 평가한다. 6장에서는 일본의 패전 이후 화북교통의 철도가 중국의 철도로 재편되는 과정을 밝힌다. 국민당정부가 화북교통을 접수하고 미국의 지원을 받으며 철도 운영을 개시했지만, 운영의 통일성을 상실하였다는 것을 지적한다. 또한 중국철도는 국공내전이 격화하면서 다시 전시동원되었지만, 공산당이 승리함에 따라 신국가 건설과 계획경제의 물적 기반이 되었다는 점을 제시한다. 인사제도의 모델이 된 만철과 마찬가지로 화북교통에서도 민족별로 임금 격차가 뚜렷했다. 기본급을 기준으로 살펴보면 일본인이 받는 액수는 중국인의 세 배에 이르렀고, 여기에 각종 수당과 상여 등이 지급되었기 때문에 그 격차는 더욱 컸다. -164쪽 선로 보수의 경우도 점령 초기에는 피해 시설 응급 복구와 증강 공사가 그나마 원활했지만, 5년 정도가 경과하자 현지 조달이 어려운 침목과 강재가 부족해져 유지 보수가 제대로 되지 못했고, 그 결과 침목 노후와 마모, 레일 파손 등이 적지 않게 발생했다. (……) 그 영향으로 열차 운행 속도가 낮아지는 현상은 어쩔 수 없었고, 당연히 운전 사고도 1941년의 78건에서 1942년 179건, 1943
화북철도는 열강 자본이 경쟁을 벌인 시기에 건설되었기 때문에 각 철도가 독립적인 경영체로서 운영되었고 서로 연락조차 제대로 되지 않았다. 철도의 규격 역시 차관을 제공한 해당 국가들의 기준에 따라 건설되었기 때문에 아무런 통일성이 없었다. 철도의 기본이 되는 궤도를 봐도, 정타이철도와 퉁푸철도는 간선망이라고는 하지만 게이지(궤간)가 1미터였기 때문에 다른 노선과의 직통이 불가능했다.
-47쪽
국민당을 중심으로 신중국이 건설되는 노정에서 최대의 교란 요인은 국민당 내부의 반反장제스 전쟁이나 외부의 공산당이라기보다는 대륙 진출을 꿈꾸는 일본이었다. 일찍이 장제스의 북벌군이 만주에 영향력을 미치는 것을 막으려 했던 일본은 산둥에 군사를 보내고, 중화민국 초기 군벌정치가로 북양 군벌北洋軍閥의 흐름을 이은 펑톈파奉天派의 총수인 장쭤린張作霖을 폭살하여 러일전쟁 이후의 기득권을 유지, 확대하려 했다. 이후 만주사변을 일으켜 청나라의 ‘마지막 황제’ 아이신줴뤄 푸이愛新覚羅溥儀를 수장으로 하는 괴뢰 만주국을 수립한 일본은 영·미와의 협조 노선을 포기하면서까지 중국을 분할 점령하기 시작했다.
-22쪽
중국과 일본 사이에 쌓여 있던 긴장의 에너지는 루거우차오 사건을 발단으로 중일전쟁 발발을 야기하였고, 그 결과 일본은 화북, 화중, 화남이라는 광활한 점령지를 확보할 수 있었다. 이곳의 점령 철도는 중국 대륙의 점령지를 유지하고 장제스의 충칭정부에 대한 군사작전을 가능하게 하는 병참logistics 기반으로 작용하였고, 나아가 일본 전시경제의 재생산에 필요한 석탄 광물 등의 주요 물자를 중국 대륙에서 일본으로 공급하는 선행 조건이 되었다. 이러한 철도는 일본에는 새로운 네트워크의 확장이었기 때문에 그 운영을 위해 외부에서 대규모 물적·인적자원을 조달하고 새로운 철도 운영 주체를 만들어내지 않으면 안 되었다. 또한 회사 체제를 정비하며 경영자원의 공급원인 기존 철도와의 관계를 새롭게 정립하는 것이 요청되었다. 실제로 만철, 일본 철도성, 조선 철도국의 대규모 인원과 철도차량이 화북으로 조달되었고, 이를 기반으로 화북교통주식회사라는 새로운 교통 주체가 창출되었다.
-24쪽
당시 ‘비해匪害’라고 불린 게릴라들의 활동으로 입은 피해를 주목해보면, 일본의 점령 초기에는 발생 정도가 산발적이고 소규모였다. 그러나 1938년 2월 10일에 발발한 징한 선의 바오딩保定과 둥창서우東長壽 간의 습격을 계기로 표 2-9와 같이 게릴라들이 전선에 폭넓게 걸쳐 준동했다. 규모와 수법 또한 점차 커지고 교묘해져서 수 킬로미터의 선로 궤도 반전, 소와 말을 이용한 궤도 파괴, 폭약과 지뢰를 이용한 열차 탈선, 교량 파괴, 발전소·신호소·역사 습격, 전신주 파괴, 통신선로 절단 등 모든 수단이 동원되었다.
-95~96쪽
1939년 물자동원계획 할당 총수에 비해 입수된 양은 52퍼센트에 불과하였다. 레일은 지선과 측선을 철거하고 유용하여 임시변통했지만, 다른 공사들은 약 50퍼센트의 지연을 피할 수 없었다. 구리의 경우도 1939년 물자동원계획 할당 1,400톤이었지만 9월 말까지의 입수 실적은 13퍼센트인 180톤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전기 자재가 대단히 부족했다. 침목의 경우도 같은 현상이 발생했기 때문에 노후가 심각하여 안전한 열차 운행이 어려웠다. 따라서 증강 계획을 실시하기는커녕 일상적인 보수도 힘들었고, 게릴라의 공격으로 인한 피해를 복구하는 데도 큰 곤란을 겪어야 했다.
-134~135쪽
표 3-16에 의하면, 직장별 점유율에서는 일본인이 본사와 철로국 본부에 집중 배치되어 있고, 신분별 점유율에서는 직원 층에 집중되어 있다. 나아가 현업 부문에서도 표 3-17에서 보이듯 기무단의 사례와 같이 단장과 주임, 부단장 등의 간부진을 일본인들이 차지하여 현장의 주도권을 장악했다. 물론 중국인도 간부로 활용되기는 했지만 그 같은 사례는 일부였고, 1940년 9월과 1942년 3월을 비교해보면 알 수 있듯이 중국인 간부진은 오히려 감소했다. 이와 같이 화북교통은 상대적으로 적은 일본인을 현장 상층부와 관리통제 분야에 배치하여, 노동력이 격심하게 유동하는 가운데서도 운영 능력을 유지하려 했다. 이러한 요원 배치 구조, 즉 계층 구조hierarchy는 다른 현장에도 나타났다.
-149~150쪽
인사제도의 모델이 된 만철과 마찬가지로 화북교통에서도 민족별로 임금 격차가 뚜렷했다. 기본급을 기준으로 살펴보면 일본인이 받는 액수는 중국인의 세 배에 이르렀고, 여기에 각종 수당과 상여 등이 지급되었기 때문에 그 격차는 더욱 컸다.
-164쪽
선로 보수의 경우도 점령 초기에는 피해 시설 응급 복구와 증강 공사가 그나마 원활했지만, 5년 정도가 경과하자 현지 조달이 어려운 침목과 강재가 부족해져 유지 보수가 제대로 되지 못했고, 그 결과 침목 노후와 마모, 레일 파손 등이 적지 않게 발생했다. (……) 그 영향으로 열차 운행 속도가 낮아지는 현상은 어쩔 수 없었고, 당연히 운전 사고도 1941년의 78건에서 1942년 179건, 1943년 387건, 1944년 107건(4개월간)으로 급증했다.
-210~211쪽
고등학교 졸업 이상의 학력을 지닌 일본인 사원은 입사와 더불어 만몽滿蒙 개척 청소년의용군훈련소, 이른바 우치하라훈련소에서 1개월에 걸쳐 무도와 체조, 예배, 농작업 등을 훈련시켜 나중에 중견층이 될 신입사원의 일본 정신을 연마하고 발양한 다음 현지에 배치했다. 뿐만 아니라 화북교통 청년대의 연성이 강화되었다. (……) 일본인 청년 1만 3,000명(1943. 2.)을 대상으로 부동 자세, 행진, 경례 등의 제식훈련과 하계 특별 군사훈련, 해변 야전 훈련 등의 전투 훈련을 계속했을 뿐만 아니라 일상적 연성에도 주력하게 하여 생활과 훈련이 하나가 되도록 했다.
-228~229쪽
지난 철로국에서는 국민당 행정원의 국영사업 정책에 따라 6월 27일 ‘긴급 조치 수항’이 발표되어 인원 정리 방안이 발표되자, 7월 4일에 긴축 감원에 반대하는 파업이 발생했다. 그러나 정리 대상자들은 3개월분 퇴직수당을 받고 정리해고되든지 다른 지역〔샹구이, 구이저우貴州(黔), 저간, 룽하이〕으로 전출될지 선택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국공내전이 전개되자 군사비 조달을 위한 통화 남발이 계속되어 인플레이션이 발생한 가운데 임금이 제대로 지불되지 않았기 때문에 종사원들은 생활을 위해 야채, 석탄, 양철, 용지 등을 판매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일본 점령기에는 “잡혀가 감옥 속에 앉아 있었被捉去坐過水牢”지만 국민당 통치하에서는 “병들고 굶어 고통당하다 죽게 되었다被病餓折磨而死”고 일컬어질 정도였다.
-305~306쪽
공산당의 승리가 거의 확정된 1949년에 이르자 전국의 철도를 통일적으로 운영할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1949년 1월 10일 중국인민혁명군사위원회 철도부가 중국인민혁명군사위원회의 전령에 의해 텅다이위안을 부장으로 스자좡에 성립하였고, “전국 각 해방구의 철로 복구, 관리, 운수를 통일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313쪽
한반도에서는 냉전체제하에 성립한 두 국가 간에 전쟁이 발발하였다. 이에 중국공산당이 ‘항미원조抗米援朝’를 결정하자, 철도부는 전시동원 명령에 응하여 중국 동북 지방에서부터 대군이 남하하는 것을 지원했을 뿐 아니라 지원군 철도병단支援軍鐵道兵團, 철로공정총대鐵路工程總隊, 지원원조대대志願援朝大隊를 조직하여 한반도에 배치하고, 군사작전 수송에 임했다. 이와 더불어 전국에서 인적·물적자원을 염출하여 동북 지구의 철로 공작을 강화했다. 즉 중국 철도부는 다시 ‘일면전쟁, 일면수송, 일면건설’의 전시 수송에 돌입했다. 해방 후 신국가 경제를 건설하기 위해 모든 역량을 투입해야 하는 국면에서 중국의 철도는 또다시 전시동원된 것이다.
-322쪽
목차
책을 펴내며
머리말
1. 연구 과제
2. 기존의 연구
3. 분석 시각
4. 이 책의 구성
Ⅰ. 중일전쟁 이전의 화북철도와 중·일 양국의 갈등
1.화북철도의 운영
(1) 화북철도의 성립과 열강 이권의 형성
(2) 철도 운영의 분립
2.화북철도를 둘러싼 중·일 양국의 갈등
(1) 국민당정부의 철도 관리 통일
(2) 화북 분리 공작과 만철의 진출
Ⅱ. 중일전쟁 발발과 화북교통 설립
1.점령철도 접수와 운영 시스템 구축
(1) 북지사무국과 점령철도 운영
1) 만철의 출동과 북지사무국 설치 2) 북지사무국의 가영업 개시와 운영의 일원화
(2) 경영자원 확보와 수송력 회복
1) 화북철도의 요원 구성과 차량 증비 2) 만철 북지사무국의 시설 복구·증강과 수송 실태
2. 화북교통의 설립 과정
(1) 점령철도 운영을 위한 교통회사
(2) 화북교통 설립
Ⅲ. 화북교통의 수송력 증강과 수송 효율화
1.철도수송 증가와 수송력 증강 5개년계획
(1) 수송 수요의 증가와 수송난 발생
(2) 수송력 증강 5개년계획과 투자의 실태
2. 경영자원 조달 재편과 효율적인 철도 운영
(1) 경영자원 조달 경로의 재편
1) 자재 조달의 혼란과 화북교통의 대응 2) 인적자원 확보와 운용의 재편
(2) 수송의 효율화와 통제 확충
1) 차량 수리 능력 향상과 운용 차량 증대 2) 배차 능력 향상과 구내 작업 정형화
3) 확대되는 전시 통제 운영: 철도에서 연선으로
Ⅳ. 아시아태평양전쟁 개전과 전시 육운 비상체제
1.화북교통과 전시 육운 비상체제 확립
(1) 육운전가와 수송 동태의 변화
(2) 화북교통의 전시 육운 비상체제
2.수송력 증강과 심각해지는 자원 제약
(1) 육상 수송 경로 강화와 경영자원 운영의 재편
1) 육상 수송 경로 강화와 자재난 2) 인적자원 양성과 운용 재편
(2) 수송 효율화의 한계와 수송통제 강화
1) 효율적인 수송을 위한 대책과 그 한계 2) 화물 중심 수송과 화북교통의 경영 악화
Ⅴ. 수송 위기와 자활자전 태세
1.수송 위기와 수송력 확보 대책
(1) 화북교통의 수송력 저하 과정
1) 철도수송의 동태 2) 저하된 내부 자원 관리 능력
3) 항일 게릴라의 적피아타 공세 4) 미군의 공습 전개
(2) 수송 위기의 발생과 화북교통의 대응
1) 미증유의 수송 혼란 상태 2) 화북교통의 수송력 확보 대책
2.자활자전 태세 확립과 결전수송
(1) 일본군의 화북교통 관리와 북지나교통단
(2) 일본의 결전수송과 패전
Ⅵ. 전후의 철도 운영과 국공내전
1.중국의 철도 접수와 운영
(1) 중국의 화북교통 접수와 혼란상
(2) 미국의 지원과 국민당정부의 철도 운영
2.국공내전과 신국가 건설
(1) 국공내전과 전시동원
(2) 중화인민공화국 성립과 국유철도 운영
맺음말
1. 일본의 화북철도 점령
2. 화북교통의 자원 동원과 운영
3. 화북교통의 인적자원 운용
4. 위기 속의 수송력 증강 대책
5. 화북교통의 대응이 드러낸 한계
6. 새로운 중국의 화북철도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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