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구간

사람이 중심이지요 감성멘토 허태수 삶과 의식의 철학적 고찰

허태수 저 | 리즈앤북 | 2012년 03월

북트리

정가
$30.00
판매가
$16.50 (45%↓) 최저가 보상
적립금
$0.33 (2%P)
출고예상일
2026년 10월 09일 수령예상일 안내
북카트 담기 바로구매하기 위시리스트담기

평점 -  ·  리뷰 0

리뷰 쓰기

ISBN : 9788990522757 / 480쪽 148 x 210 (㎜)

이 상품에 궁금하신점이 있으세요? 1:1상담문의

추천inside
Adobe Flash Player 가져오기

이 분야의 베스트셀러

아래의 도서와 구매하시면 이 도서들의 적립금을 즉시적용해 드립니다.

  • 18,000
  • 16,200
  • 19,800
  • 16,200

책 소개

출판사 리뷰

이 책의 저자는 춘천 외곽 동내면 학곡리에 있는 성암감리교회 목사이다. 시골교회 목사인 그는 어느 우연한 기회에 청담동에서 의류 디자인을 하는 첨단 감각의 젊은이들을 만나게 되었는데 첫 만남에서 서로의 갈급함을 금방 눈치 채고 정기적으로 만나 대화를 나누기로 약조한다. 그 대화들은 ‘청담동월요예배’라는 이름으로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이 책에 옮겨진 글들은 그 젊은이들과 주기적으로 만나 나눈 이야기들이다. 그들을 ‘혼돈’ 속에 몰아넣어 옷을 짓는 대신 ‘사랑을 짓는’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게 만든 이야기들이다. 이 글들은 “춤추는 별을 탄생시키려면, 당신의 영혼 속에 혼돈chaos을 지녀야 한다.”는 니체 언어의 증빙이라고 그는 말한다.

“춤추는 별을 탄생시키려면, 당신의 영혼 속에 혼돈chaos을 지녀야 한다.” 프리드리히 니체의 말입니다. 소위 영혼을 다룬다는 몇몇의 직능들이 하는 일이란 결국 이승의 영혼들을 ‘춤추는 별’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어디에도 ‘춤추는 별’은 눈에 띄지 않습니다.
제도화된 이성이 ‘혼돈混沌’을 두려워하여 도망하고, 지성은 관성의 물物에 빠져 눈을 감아 버렸으며, 영성은 뼈대만 남아 불감증에 걸렸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혼돈’을 배우고 익히는 공부를 게을리 할 수밖에 없는 까닭이요, 그 연유로 인해 누구도 스승이 아니며, 누구도 별로 태어나지 못하는 것입니다. - 서문에서

그가 한 역할은 요즘 흔한 멘토 노릇이다. 하지만 그는 세속의 방식대로 맨티들을 이끌지 않는다. 그저 혼돈 속에 몰아넣는 짓이 그가 하는 일의 전부이다. 그의 글들은 기존의 가치를 모조리 파괴한다. 목사이면서도 기독교의 고정관념까지도 깨버린다. “예수를 만나려면 예수를 죽이라”고 말하고 성서를 읽는 까닭은 “기독교의 울타리를 벗어나기 위한 것”이라고 말한다. 그 자리에 다시 마음을 세울 바탕을 마련해준다. 그리고 슬그머니 뒤로 물러선다. 그곳에서 ‘예수의 도道’가 읽는이의 마음속에 스며든다.
그의 글은 ‘관점의 전환’과 ‘시야의 확장’이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야, 눈 떠!”라는 일갈이다. 갈매기들아, 부둣가에서 생선 창자나 쪼아 먹지 말고 하늘 높이 날아 세상을 좀 내려다보아라.

매주 월요일 오후 1시에서 1시 30분까지의 짧은 시간이지만, 나는 충분히 그들을 혼란에 빠뜨리기 시작했습니다. 2년이 되어가는 지금 하나 둘 영혼 속의 혼돈을 통과하며 별들로 태어나고 있는 중입니다. 그렇게 태어난 젊은이들은 그들 자신을 ‘사랑을 짓는 사람들’이라고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여기 옮겨지는 글들은, 그들을 창조의 혼돈으로 몰아넣은 재료들이 어떤 것인지, 무엇으로 그들이 사랑을 짓는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 별이 되는지를 보여주는, 니체 언어의 증빙이라 할 수 있습니다. - 서문에서

각 장의 제목에서 내용을 헤아려볼 수 있다.

제1장은 문학적 상상력을 통해 사고의 지평을 넓혀주려는 글들이다. 여러 문학 작품들을 등장시켜 그 행간을 통해 세상의 이면이 드러내며 눈에 보이지 않는 새로운 세계의 문을 열어준다. 읽어볼 만한 오래된 문학 작품들이 등장한다. 가치 파괴적인 저서들이 소개된다.
제2장은 과학적 원리를 통해 신앙의 시야를 넓혀주려는 글들이다. 물리적인 과학과 정신적인 신앙의 세계가 충돌하지 않고 어우러져 사고의 지평이 우주 너머까지 폭발적으로 확대된다. 물리학과 천문학이 신의 세계를 들여다보는 창이라는 설명이 종교의 영역을 확장시켜준다.
제3장은 역사적 맥락을 더듬어 성서적 사건들을 냉철히 해석하면서 성서를 보는 시야를 종교의 울타리 너머까지 확장시켜 우리의 고정관념들을 파괴한다. 보이지 않던 부분들이 드러나면서 들리지 않던 신의 목소리가 들린다. 반대 방향에 설치된 카메라 화면을 보는 듯한 생생한 현장감이 즐거움과 감동을 준다.

해석은 파격적이고 주장은 새롭고 결론은 늘 신선하다.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기 때문이다. 모든 것들을 새로운 눈으로 새로운 방향에서 새롭게 바라보자는 그의 조언은 이 시대에 유효하다.

북칼럼니스트 김지홍은 이렇게 말한다.
“동일한 시간 속에서 비슷한 삶을 살며 유사한 경험을 하지만, 사람에 따라서 그 경험의 강도와 깊이는 천차만별이다. 또한, 동일한 사안에 관해서도 사람마다 시각이 제각각인 것처럼, 비슷한 경험을 했어도 그 경험으로부터 이끌어내는 사고의 깊이 역시 천차만별이다. 허태수 목사의 글을 읽다 새삼 깨달은 사실이다.”

저자 소개

1959년 강원도 횡성의 작은 산골 마을에서 태어나 앞산이 훤히 바라다 보이는 풍광 좋은 시골 뒷간에서 우연히 사도신경․주기도문과 마주친 가운데 부름을 받은 목회자. 
안양성결신학교, 감리교협성신학교, 감리교신학대학교 선교대학원을 졸업하고 춘천시 동내면 학곡리 성암감리교회에 재직한 지 24년, 여전히 그곳 담임목사로 일하면서 워싱턴웨슬리신학대학원 목회학 박사 과정을 공부하는 학생 노릇과 기독교대한감리회본부 웨슬리출판문화원의 원장 노릇도 함께 하고 있다. 
<영혼의 약국> <내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오늘 하루> <이 세상 모든 것은 사랑이 만든다> <서른 살의 철학> 등, 살고 있는 마을과 하고 있는 일을 중심으로 한, 일기와 같은 짧은 이야기들을 세상에 내놓았다. 그의 목소리는 오랜 시간 주변 물상들과 나누었던 ‘만물과의 대화’, ‘소통의 기쁨’을 우리에게 들려준다. 
짧은 그의 글들은 한 편 한 편이 아포리즘이다. 하나같이 희망과 사랑을 이야기하지만 ‘말만 번지르르하거나 자기도 들어갈 수 없는 길을 만들어 사람들을 유혹하지 않고, 삶으로 그림을 완성시켜’ 그가 곧 그림이고, 그림이 곧 그로 느껴지는 글들을 쓴다. 
우주와 삼라만상과 인간에 대한 시선이 선뜻할 뿐, 치장 없이 전개되는 그의 문장은 읽는 것 자체가 곧 묵상이 되는 글이다. 이런 방식으로 성서 안의 의미들을 구체적인 삶의 현장으로 가져오지만, 주장도 설교도 권고도 하지 않는다. ‘바로 이것 아니겠는가’ 하고 깨달은 자의 감탄을 슬그머니 내려놓을 뿐이다. 순간 ‘예수의 도道’가 마음속으로 들어온다.

책 속에서

그대 목소리 안의 목소리 우리의 도시는 죽어버린 말들의 스모그로 가득 차 있습니다. 언어 오염은 곧 진실의 오염이라는 의미에 닿아 있습니다. 이 세상을 타락시키는 주범 가운데 하나는 진실을 오염시키는 말에 있는 것입니다. 말이 무의미한 소음 덩어리로 전락하여 도시의 허공을 유령처럼 떠돌고 있는 이 현상의 상당한 책임은 말 자체에 있는 게 아니라 말을 잘못 사용하고 학대하는 사람들에게 물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를 인간이게 하는 그 '무엇' 우리는 제대로 ‘정가표’가 붙은 시대에 살기를 꿈꿔야 하고 실천해야 합니다. 자유를 자유라 하고 폭력을 폭력이라 하는, 탐욕을 탐욕이라 하고 민주주의를 민주주의라 정당하게 말하고 인정하는, 그런 세상을 살아야 합니다. 모든 것들이 제 있을 자리를 찾아 바르고 정당하게 이루어지는 그 조화와 균형과 '정상'의 상태를 우리는 꿈꾸며 살아야 합니다.

내 안의 가룟 유다 성서 기록자는 나쁜 놈 ‘유다’를 말하려는 게 아닙니다. 누구에게나 있는, 살아남기 위해 숨어 있는 추잡한 협력에 대한 고발인 것입니다. 성서가 전하는 흥미로운 장면은 유다의 배반이 아니라 제자들의 동요입니다. 그러니까 유다를 예수의 배반자로 기술하기 시작한 복음서 기자는 ‘유다의 배신’을 통해 ‘흔들리는 제자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누군가가 나를 팔리라” 했을 때 모두들 “제가요?” 합니다. 강한 부정의 뉘앙스죠.

목차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