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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경계의 신학 시카고에서 띄우는 신학 노트

이상철 저 | 동연 | 2012년 0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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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64471661 / 314쪽 153 x 2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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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출판사 서평 신학, 시대와 통하라 신학이, 인문학이 경계에 섰다. 인문학의 위기는 어제 오늘에 회자되던 이야기가 아니듯이 인문학의 핵심부였던 신학 또한 제 자리를 찾지 못하고 갈팡질팡한다. 신학이 시대와 통?해야 한다는 주장은 20세기 자유주의 신학이 남겨준 유산이지만 현실의 신학은 단지 주류 기독교를 지지하는 하부구조로 전락한 것이 아닌가 하는 비평이 거세다. 요즘 들어 더욱 세차게 불고 있는 안티 기독교의 논의, 즉 ‘개독교’의 논의도 그 연장선상에 서 있다. 이에 대해 젊은 신학자들은 어떤 대안적인 고민을 하고 있을까? 이 책은 현재 미국... 신학, 시대와 통하라 신학이, 인문학이 경계에 섰다. 인문학의 위기는 어제 오늘에 회자되던 이야기가 아니듯이 인문학의 핵심부였던 신학 또한 제 자리를 찾지 못하고 갈팡질팡한다. 신학이 시대와 통해야 한다는 주장은 20세기 자유주의 신학이 남겨준 유산이지만 현실의 신학은 단지 주류 기독교를 지지하는 하부구조로 전락한 것이 아닌가 하는 비평이 거세다. 요즘 들어 더욱 세차게 불고 있는 안티 기독교의 논의, 즉 ‘개독교’의 논의도 그 연장선상에 서 있다. 이에 대해 젊은 신학자들은 어떤 대안적인 고민을 하고 있을까? 이 책은 현재 미국의 시카고 신학대학원에서 박사학위 과정을 밟고 있는 한 젊은 신학자가 3년여에 걸쳐 써내려간 글들을 모은 것이다. 우리 시대 신학의 정체성과 신학자의 정체성, 더 나아가 신앙인의 정체성까지 근본적인 모색을 하며, 자신의 삶으로 온전히 신학을 하려는 분투가 생생하게 담겨 있다. 저자는 신학이 사회와 소통하지 못하고 사회 현상과 신학이 이반하는 현실을 넘어서려는 치열한 사유를 바탕으로 논의를 전개한다. 사회 현상에 둥지를 틀고, 사회의 사건들을 논의의 중심으로 끌어들여 하나하나 해체해나가는 방법으로 소통을 시도한다. 이 책에는 라는 가벼운 부제가 붙었다. 기실은 저자가 시카고에서 공부를 하는 3년여 동안 웹진에 기고하는 형식으로 시대와 소통을 도모했던 단상들을 모았다는 뜻이다. 하지만 그 내용에서는 우리 사회 전반 곳곳의 상처들을 돌아보는 날카로운 철학자의 눈과 안타까운 신학자의 심장이 들어 있다. 광화문광장에서 천안함까지, 온통 파헤쳐지는 4대강과 최근에 떠오른 팝캐스트 방송 는 물론, 노 전 대통령의 죽음과 관련한 생각까지도. 그는 칸트와 헤겔, 프로이트와 니체, 라깡과 지젝, 하이데고와 데리다 등을 불러내며 우리 시대의 쟁점들의 마주선다. 특히 이 책에서 볼 수 있는 현대 철학의 다양한 발전에 대한 이해와 그에 대한 신학적이고 윤리적인 고찰은, 저자의 학문적 관심을 잘 담아낸 매우 큰 의미가 있는 작업이다. 따로 소개는 많이 되었어도, 현대 철학의 종교성에 대한 신학적 분석은 흔치 않은 현대 상황에서 이 책의 자리 매김은 자못 크다고 할 것이다. 이 책에서 보게 되는 신학과 시대의 만남은 시간과 공간이 잘 혼합되어 있는 현대 사회의 지적 지형학의 모습을 띤다. 저자가 이야기하는 근대, 탈근대, 혹은 포스트모던과 같은 용어는 개념으로 남아 있지 않고, 현 시대의 사건들을 통해 그리고 박찬욱 감독의 와 은희경의 소설 《새의 선물》, 움베르토 에코의 소설 《장미의 이름》 등의 예를 통해 우리 시대를 이해하는 실질적인 도구가 된다. 그동안 신학적 용어들이 설명이 아니라 선언만 해주었던 많은 예들을 기억하는 사람에게, 신학을 어려운 학문이고 세상 문제와는 담 쌓은 이른바 게토에 파묻힌 신학이라고 비판하는 이들에게 이 책의 글들은 신선하고 창의적이며, 신학도 현실을 깊이 반영하는 재미있는 학문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 보일 것이다. 왜, 탈경계의 신학인가? 신학이라는 말이 처음 사용되기 시작했을 때부터 이미 신학은 시대를 전제하고 시대의 문제와 도전에 대처하고 응전하면서 지금까지 이어져왔다. 이 책의 제목으로 사용한 ‘탈경계의 신학’은 “신학, 시대와 통하라!”는 신학적 전제에 대한 현대적 각론 내지는 현대적 버전이라 할 수 있다. 왜냐하면 ‘탈경계’라는 말이 21세기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이 대면하고 있는 당대의식이기에 때문이다. 국가와 민족, 그리고 이념을 중심으로 움직이던 세계 질서는 20세기 말에 밀어닥친 현실 사회주의의 패망과 함께 종말을 고했고, 바야흐로 현재의 세계는 자본의 전 지구화라는 보다 간교하고 유령과도 같은 지배 질서로 대체됐다. 유령과도 같다고 표현한 이유는 그 권력의 배후와 실체가 뚜렷하게 드러나지는 않지만, 전(前)시대의 권력의 양태보다 훨씬 광범위한 범위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구화와 세계화라는 슬로건을 걸고 전개되는 신자유주의라는 유령의 첫 번째 강령은 경제적 자유주의에 입각한 무역 장벽의 철폐였지만, 그것은 단순히 재화와 자본의 유통을 가로막는 국경의 해체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삶의 전 영역에서의 개방과 해체를 의미하고 그 틈을 타고 유입되는 모든 낯선 것에 대한 열림과 환대가 이 시대의 미덕이고 윤리라 가르친다. 한국 또한 이러한 흐름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여, 강력한 단일 민족문화 전통 속에서 형성되었던 경계와 질서들이 해체되고 재편되는 급격한 변화를 맞고 있다. 십여 년 전부터 시작되었던 외국인 노동자 문제는 말할 것도 없고, 요 근래는 동남아 일대에서 한국의 농촌으로 시집온 처녀들이 정착하여 한국 남성과의 사이에서 2세들이 태어나면서 다문화 가정의 문제가 수면 위로 부상하고 있다. 이제 우리 사회도 다인종, 다문화 그리고 그에 따르는 다종교 사회로 진입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시대는 우리에게 세계가 겪고 있는 변화와 진통에 대한 올바른 인식과 그에 걸맞은 적극적 해명, 그리고 해방을 위한 새로운 전략과 리듬을 요구하고 있다. 그리하여 우리로 하여금 수많은 경계와 차이와 다양성들에 대한 환대의 방식을 숙고케 함과 동시에, 한편으로 우리 사회 속에 여전히 상존하고 있는 다름에 대한 차별과 배제와 폭력에 대해서는 분노하라고 가르친다. ‘탈경계의 신학’은 이러한 시대적 요청에 대한 응답이라 할 수 있다. 역사의 진행과정에서 시대를 향한 신학의 답변은 늘 어색했고 어눌했고 위험했다. 하지만 그런 이유 때문에 자기만의 자리, 자기만의 언어를 고집하려 했다면 신학은 이미 예전에 폐기되었을 것이다. 로마 교황청의 교권주의를 넘어 종교개혁을 감행한 마틴 루터, 히틀러의 광기와 맞섰던 고백교회와 본회퍼, 흑인 차별이라는 무너질 것 같지 않았던 장벽을 돌파한 마틴 루터 킹 목사, 체제로부터 버림받고 이용만 당하는 타자, 즉 민중을 신학의 전면으로 내세웠던 민중신학 등 세계 기독교 역사를 돌아보면 시대의 장벽과 경계에 막혀 신음하던 시절, 신학은 늘 그렇게 위험한 상상과 무모한 도발을 감행해왔다. ‘탈경계의 신학’은 그리스도교 역사에서 등장했던 자랑스러운 변혁지향적 전통을 지지하면서, 신학의 전통 주제인 신과 인간, 그리고 세계에 대한 문제를 다인종, 다문화, 다종교를 특징으로 하는 현대 사회 속에서 어떻게 다시 묻고 대답할 수 있을지에 주목한다. 이를 통해 교회 안에만 갇혀 있었던 신학의 외연이 확장되어 신학의 탈영토화(대중지향적, 현장지향적, 소수자지향적, 학제 간 연구)를 선도할 수 있는 새로운 시선의 발견과 그 과정에서 원활한 소통의 통로가 되는 것을 꿈꾼다. 하지만, ‘탈경계의 신학’은 21세기형 제국이라 할 수 있는 자본의 입을 통해 선포되고 선전되는 ‘탈경계’, 즉 자본의 세계화라는 허울에는 대해서는 저항한다. 그것이야말로 이 시대의 가장 강력한 경계이자 한계라고 생각하기에 그 저항은 때로는 냉정하고 결연하다. 그러므로, ‘탈경계의 신학’은 ‘탈경계’에 대한 옹호와, ‘탈경계’에 대한 배반을 동시에 함축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중적이고 변증법적이다. 신학, 레비나스의 ‘타자의 윤리’를 만나다 - 다시 쓰는 기독교 윤리 칸트의 후예답게 나치 치하의 독일인 들은 의무론적 윤리론에 충실했다. 단지 자기에게 주어진 일에 매진했을 뿐인데, 아이히만이라는 괴물을 탄생한 것이다. 아우슈비츠 이전의 신학과 이후의 신학이 갈린다고 할 만큼, 신학적인 물음에 커다란 자리를 차지한다. 서구 주체철학의 난맥이 현실에서 가장 극명하게 드러난 사건인 것이었고, ‘진정 신은 어디에 있었는가?’ 하는 물음은

저자 소개

  • 저자 : 이상철
저자 이상철은 한신대 신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신학과(Th.M)에서 기독교 윤리학을 전공하였다(2001). 시카고 맥코믹 신학대학원에서 석사(MATS) 과정을 마친 후(2005-2007), 시카고 신학대학원에서 ‘레비나스와 데리다의 타자의 윤리’를 주제로 철학박사 과정 중이다(2007-현재). 미국 유학 전 명지전문대학에서 3년간(2001-2004) 외래교수로 , 를 강의하면서 대학교재인《성서와 윤리》(2003)를 공저하였다. 현재 ‘토착화 신학(문화신학)’과‘민중신학’으로 상징되는 한국의 진보적 신학전통을 미국 신학계와 이민 교계에 소개하기 위해 2007년 시카고 신학대학원 내에 개소된 ‘한국기독교연구소(The Center for Study of Korean Christianity)’ 상임연구원으로 활동하고 있고, 2009년 여름부터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에서 운영하는 웹진 필진으로 참여하면서 매월 정기적으로 글을 기고하고 있다. 대중문화와 사회현상 안에 드러난 당대의 윤리적 이슈를 해명하는 작업에 관심이 많고, 신자유주의가 지닌 패권적 질서에 맞서 어떻게 하면 신학적으로 윤리적으로 제동을 걸 수 있을지 또한 주된 학문하는 목적이다. 좋아하는 (신)학자로는 지젝, 안병무, 푸코, 본회퍼, 발터 벤야민 등이 있고 레비나스의 타자론과 데리다의 해체론을 본인의 학문하는 방법론 내지 토대로 삼고 있다.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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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의 글
신학을 다시 재미있는 학문으로 채수일
신학이 인문학의 핵심부로 다시 등장하길… 서보명
머리말
왜, 탈경계의 신학인가?
|제I부| 단편들: 근대와 탈근대 사이에서
01_ 근대와? 탈근대 사이에서
칸트와 헤겔, 그리고 맑스 잔혹사 | 근대를 규명하라 | 우리가 맞게 가고 있는 걸까? | 악에 대한 단상
02_ 나의 한국 방문 답사기: 거리의 몰락, 기억의 종말 그리고 MB
로버트 태권V, 광화문 사거리에서 길을 잃다? | 거리의 몰락, 기억의 종말 | 다시 보자, MB!
03_ 현대 기술문명을 둘러싼 타락과 상승의 변증법
배우 임청하에 대한 회상 | 장자(壯子)가 말하는 기술(技術)과 도(道) |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근대성 비판 | 상승에서 하강으로
04_ 악의 평범성(Banality)에 대한 보고서
뉴스를 전해드리겠습니다 | 한나 아렌트의 취재記 | 영화 중에서 |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 내 안의 아이히만 | 전체는 광기다
05_ 난민(難民, Refugee)
미국에서 인간을 분류하는 몇 가지 방법에 관하여… | 우리에게 난민은 누구인가? | 신자유주의와 난민 | 대한민국과 난민 | 에필로그: 국경의 밤
|제II부| 타자論: 타자와 욕망의 서사학
01_ 중세 교회의 타자 포비아(Phobia)
자, 이제 타자다! | 너희가 중세를 아느냐? | 펠라기우스와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 | 무너지는 중세, 도래하는 근대
02_ 칸트와 다른 헤겔 속 숨어 있는 2인치
은희경 《새의 선물》에 빚지다 |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 | 헤겔의 유산: 신, 욕망, 이성 그리고 타자
03_ 프로이트, “내 안에 나 있다!”
욕망 혹은 그것의 좌절과 얽힌 욕구불만에 관한 에세이 | 프로이트 길라잡이 |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그리고 라깡을 향하여
04_ 라깡에게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For Lacan: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 라깡이 어쨌다구? - 차이들의 놀이(Play of difference) | 욕망(desire) in 상징계 | 향유(jouissance) in 실재계
05_ 한국 땅에서 라깡적으로 윤리하기
라깡으로 읽기 | 라깡, 칸트에 反하다 | 한국 땅에서 라깡적으로 윤리하기
|제III부| 자기의 윤리: 니체를 넘고 푸코를 지나
01_ 영화 를 통해 바라본 근대와 탈근대의 지정학
왜, 뱀파이어인가? | 소년, 뱀파이어를 읽다 | 뱀파이어를 통한 해석, 그리고 상상
02_ 니체, 서구 기독교 윤리에 대한 전복
비극(悲劇)의 탄생 | 이성(理性)의 탄생 | 도덕의 계보학 | 21세기 윤리를 향한 짜라투스트라의 제안
03_ 포스트모더니즘 曰: “주체여, 안녕히!”
포스트모던 윤리의 지형 | 포스트모더니즘, 니체에 기대다! | Episode: 내가 ‘주체로 서기’까지
04_ 푸코 曰: “주체여, 다시 한번!”
한국 땅에서 윤리적으로 산다는 것에 대한 울화 | 푸코, 주체를 베다 | 미학(美學)이 윤리와 만날 때 | 자기의 윤리란?
|제IV부| 타자의 윤리: 레비나스를 중심으로
01_ 레비나스, 서구 신학을 쏘다
자기의 윤리 Vs. 타자의 윤리 | 레비나스와 라깡 | 서구 신학은 어떻게 전체성을 옹호했나?
02_ ‘타자의 얼굴’에는 무엇이 있나?
간략한 윤리학史, 그리고 레비나스의 위치 | 타자의 얼굴 - ‘예수의 비유’를 중심으로 | 제1철학으로서의 윤리학
03_ 본회퍼와 레비나스: 타자를 향한 서로 다른 포물선
레비나스에 대한 유감 | 본회퍼의 기독교 윤리 | 타자를 위한 존재
04_ 다시 쓰는 기독교 윤리: 타자에서 타자들로
왜, 복수적 윤리인가? | 레비나스에 대한 도전 | 다시 쓰는 기독교 윤리
|제V부| 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
01_ 죽음의 고고학(考古學)
대통령의 자살 | 나는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가? | 플라톤의 영혼론과 초대교회의 ‘몸(soma)’ 개념 | 아리스토텔레스, 플라톤을 넘어서 or 플라톤의 또 다른 각주?
02_ 중세, 죽음이 편재했던 시기
죽음의 무도 | 춤춰라! 어디서든지 신나게 멋있게 춤춰라 | 중세, 죽음이 편재했던 시기
03_ 하이데거를 위하여 - 87년 6월, 그 개시(開示)의 기억
근대의 탄생, 그리고 와해 | 하이데거, 패러다임의 전환 | Episode: 1987년 6월 | 하이데거의 죽음 이해
04_ 레비나스, 하이데거를 넘어서
여전한 ‘빛의 폭력者’, 하이데거 | 레비나스의 죽음 이해 | Episode: 아우슈비츠에서 들려온 목소리 | 레비나스의 제안
05_ 자살공화국, “아~ 대한민국!”
자살공화국 | ‘불가리스~’를 기억하시나요? | 참을 수 없는 존재의 버거움 | 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
|제VI부| 신학, 해체론과 만나다
01_ ‘데리다로 신학하기’를 위한 말걸기
시카고 통신: 여기는 시카고…| 혜자, 장자에게 길을 묻다 | 시대의 질문, 신학의 대응 | 신학, 데리다를 초대하다
■ 보론(補論). 데리다의 ‘메시아적인 것’에 관한 변명
미국 진보 신학계의 핫 이슈: 좌파적 철학자들과 바울의 만남 | 오고 간 대화들: 데리다의 ‘메시아적인 것’을 둘러싼 공방
02_ 자크 데리다 특별 기고: 천안함 침몰을 둘러싼 해체론적 독법
해체론, 비어 있는 중심을 꿈꾸다 | 나는 왜 해체론으로 세상을 읽는가? | 오바마, 너마저도!
03_ 지젝으로 천안함 읽기: 천안함 침몰과 이라크 침공, 그 기묘한 상동성
한국의 천안함 침몰 발표 | 미국의 이라크 침공 발표 | 지젝에 묻다, 과연 실재는 존재하는가? | 지젝이 지닌 비범함
04_ 해체론적 성서 읽기는 가능한가?
해체론에 대한 농담, 거짓말 그리고 진실 | ‘빛나는’ 예수의 족보 안에 스며 있는 ‘부정한’ 것들 | 칼의 왕, 솔로몬 | 그 재판장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나?| 해체론이 노리는 것
에필로그
신학 여정에서 만난 사람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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