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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63571188 / 215쪽 152 x 2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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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서평 진정한 자유를 갈망한 리버럴리스트 “이 책을 통해 마루야마가 우리에게 들려주는 가장 핵심적인 메시지는, 일국의 특수성을 넘어서서 보편성을 지향하려는 노력 자체일 것이다. 저자는 그것을 “리버럴리스트의 초상”이라는 부제로 제시하고 있다. 이 책에는 일본이라는 특수 공간에서 그 공간이 갖고 있는 한계를 직시하고, 그것을 넘어서서 리버럴리즘이라는 보편적 이념의 세계를 지향하며 사고하고 행동하고자 했던 마루야마 마사오의 여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박홍규 ·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한반도만큼이나 일본... 진정한 자유를 갈망한 리버럴리스트 “이 책을 통해 마루야마가 우리에게 들려주는 가장 핵심적인 메시지는, 일국의 특수성을 넘어서서 보편성을 지향하려는 노력 자체일 것이다. 저자는 그것을 “리버럴리스트의 초상”이라는 부제로 제시하고 있다. 이 책에는 일본이라는 특수 공간에서 그 공간이 갖고 있는 한계를 직시하고, 그것을 넘어서서 리버럴리즘이라는 보편적 이념의 세계를 지향하며 사고하고 행동하고자 했던 마루야마 마사오의 여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박홍규 ·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한반도만큼이나 일본에게도 20세기는 극단의 시대였다. 일본을 대표하는 지성인 마루야마 마사오는 전전에서 전후로 이어지는 시대적 격류와 어떻게 마주하며 살았던 것일까? 저자는 마루야마의 각종 저작과 기록의 행간에 담겨있는 사유의 파편을 섭렵해가며 20세기를 고뇌하며 살다간 한 지성인의 모습을 이 책에 생생하게 담아놓았다. 깊고 푸른 울림이 있는 책이다.” (강상규 · 방송대학교 일본학과 교수) 전후 일본을 대표하는 정치학자이자 사상가인 마루야마는 도쿄제국대학 법학부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1940년 같은 대학의 조교수를 거쳐 1950년에 교수가 되어 1971년까지 재직했다. 20대 후반의 젊은 나이로 일본정치사상사 연구에 새로운 장을 열었으며, 에도 시대 사상가 오규 소라이의 저작을 치밀한 사회과학적 방법론으로 분석해냄으로써 일본 ‘근대성’의 뿌리를 밝히는 등 독자적인 학풍을 조성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깊은 좌절에 빠져 있던 일본 사상계에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과 방향, 비전을 과감히 제시하며 일본의 학계와 사상계의 흐름을 주도했다. ‘학계의 덴노(天皇)’, ‘마루야마 덴노’ 또는 ‘전후 일본사상의 원점’, ‘전후 민주주의의 이론적 리더’로 불릴 만큼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현대 일본에 매우 큰 지적 · 사상적 영향을 끼쳤다. 또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오에 겐자부로는 마루야마에 대해 “일본의 다양한 전문 분야의 지식인들에게 ‘공통의 언어’를 제공해주었다”고 평가했다. 마루야마가 정치에 관한 규범이론과 일본 사상사에 관한 탐구, 이 두 가지를 연구한 것은 20세기의 일본이 처한 특수한 환경 때문이었다. 그의 주된 관심은 선진 제국과 공통되는 대중사회적 상황과 일본사회에 뿌리 깊이 남아 있는 전통문화의 문제를 함께 해명하는 데 있었다. 이러한 조건 속에서 인간의 자유를 보장하는 정치는 어떻게 가능한가. 거기에 마루야마의 리버럴리즘(liberalism)을 지탱하는 근본 물음이 있었다. 그리고 이 물음의 중요성은 서로 다른 문화 사이에 불관용이 팽배해 있는 오늘날의 세계에서도 결코 소실되지 않았다. 논형의 책 · 일본사상사 사토 히로오 외 지음 / 성해준 외 옮김 · 전향: 전시기 일본정신사 강의 1931~1945 쓰루미 ?스케 지음 / 최영호 옮김 · 일본전후사 1945~2005 나카무라 마사노리 지음 / 유재연 · 이종욱 옮김 · 21세기 천황제와 일본 박진우 편저 · 현대일본사상론 야스마루 요시오 지음 / 박진우 옮김 · 근대 천황상의 형성 야스마루 요시오 지음 / 박진우 옮김 · 천황제 국가의 지배원리 후지타 쇼조 지음 / 김석근 옮김 · 전향의 사상사적 연구 후지타 쇼조 지음 / 최종길 옮김 · 기지의 섬 오키나와: 현실과 운동 정근식 · 전경수 · 이지원 편저 · 경계의 섬 오키나와: 기억과 정체성 정근식 · 주은우 · 김백영 편저 · 오키나와 현대사 아라사키 모리테루 지음 / 정영신 · 미야우치 아키오 옮김 · 동아시아 자타인식의 사상사 가쓰라지마 노부히로 지음 / 김정근 · 김태훈 · 심희찬 옮김 · 천황제 코드 조용래 지음 · 일본 교육의 역사: 사회사적 시각에서 가타기리 요시오 · 기무라 하지메 지음 / 이건상 옮김 ‘천황제’와의 대결로 이렇게 마루야마는 ‘천황제’에 대해, “이것을 쓰러뜨리지 않으면 절대로 일본인의 도덕적 자립은 완성되지 않을 것이라 확신한다”는 입장에 다다랐다. 다만 중요한 것은, 국가기구에 세습군주를 둘지 두지 않을지 하는 문제가 아니라, “더 근본적인 문제”로서 “진정한 자주독립의 정신”을 길러서 어느 쪽의 제도가 되든 “훌륭하게 자기 나라를 만들어갈 용감한 국민”으로 개개인들이 성장하는 것이다. 따라서 평생 일본국 헌법 제조 개정을 주장하지는 않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자신에 대한 서훈은 거절하고 있다. 쓰루미 ?스케에 따르면 문화훈장도 “피했다”고 한다. 후에 논문집『일본의 사상의 독일어판에서는 ‘천황제’란 말에 대해 일본어를 이용하여 “Tenno-System”이라 표현하고 있다. 마루야마는 ‘천황제’를 군주제나 황제제라는 제도일반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일본에 고유한 ‘정신구조’로서 문제시했던 것이다. 이 입장을 내세운 논문 「초국가주의의 논리와 심리」는 잡지『세계의 1946년 5월호의 권두를 장식하게 되는데, 말미에는 “1946. 3. 22”라고 써놓은 일자가 인쇄되어 있다. 실로 서른두 살이 되는 생일에 ‘천황제’와의 결별을 선언한 것이다. ‘전후 첫 강의’의 초고에는 “쇼와”이라고 연호로 연월일을 기록하였으나, 이번에는 물론 서기로 표기했다. (4장 전후 민주주의의 구상 중에서) 푸코와의 대화 마루야마는 우치다 요시히코· 기노시타 준지와의 좌담 「전통과 현대를 둘러싸고」에서 푸코와의 대화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다. 그들이 하고 있는 것은 전부 반데카르트주의, 즉 근대 합리주의에 대한 고발이지요. 그런데 말하다 보면, 유럽의 데카르트주의의 전통이 갖고 있는 견딜 수 없을 정도의 무게와 힘이 나에게도 전해져옵니다. 그들은 필사적으로 그것에 반항하면서도, 데카르트주의로부터 깊이 제약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반항을 통해 동시에 그것을 재생시키고 있는 것이지요. 푸코는 한 해 전의 인터뷰 「신체를 관통하는 권력」에서 역사의 재해석을 통한 ‘정치’라는 것을 주장하고 있다. “아직까지 존재하지 않는 그 무엇인가를 사실의 언설이 환기시키고 만들어내는, 즉 ‘작위(fictionner)’하는 것. 그러한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역사를 자신에게 실감시켜주는 정치의 현실에 근거하여 역사를 ‘작위’하고, 역사의 사실에 근거하여 아직 존재하지 않는 하나의 정치를 ‘작위’하는 것입니다”[Foucault 200a]. -눈앞의 현실을 응시하면서 과거의 역사에 침잠하여 사료의 숲을 돌아다니면서, 지금까지 지배적인 전통으로 생각되어온 것과는 다른, 또 하나의 존재했을지도 모르는 전통을 찾아내어 그것을 명확한 형태로 묘사해내는 것. 근대의 이념을 찬양하는 극동의 정치학자와 근대적인 ‘주체’의 죽음을 선고한 서구의 철학자는 각자의 전통과 격렬히 투쟁하며, 그 재해석을 통한 언설에서의 ‘정치’를 감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5장 인간과 정치 그리고 전통 중에서)
‘다이쇼 시대의 아이’
제1차 세계대전과 쌀소동 등 이 시대의 일본사회에 큰 영향을 미친 사건들은 저널리스트인 부친과 더불어어릴 적부터 마루야마 마사오의 생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전후 아베 요시시게(安倍能成)나 오우치효에(大內兵衛) 등 메이지 시대에 태어난 대가들과 함께한 좌담회에서 마루야마는 “나는 이 좌담회에서는 유일하게 다이쇼 시대의 아이(大正ッ子)니까요”라고 말하고 있다[座2-238]. 다이쇼라는 시대의 공기를 마시고, 어릴 적부터 세상의 변화를 몸소 느끼면서 성장해갔다. 마루야마 스스로 ‘다이쇼 시대의 아이’라고 부르는 것은 일반적인 다이쇼 태생의 사람들보다 상당히 무거운 의미를 갖고 있다.
훗날 성장하여 사상사가가 된 마루야마는 이 다이쇼 시대를 “일본의 근대사 중에서는 사회적으로 가장 위기의식이 약해진 시대”라고 평하고, 세계의 대세가 데모크라시와 인터내셔널리즘을 향하고 있다는 낙관주의가 확산된 “전체적으로 밝고 쾌활한” 시대였다고 부정적인 함의를 띤 논조로 말하고 있다[座3-144]. 다만 이것은 위기감이 팽배했던 쇼와 시대의 공황 이후와 대조하면서 한 발언으로, 그런 각도에서 보았을 때 묘사될 수 있는 시대상이라고 여기면 좋을 것이다. (1장 다이쇼 시대의 아이 중에서)
‘정치화’의 시대
국가가 경제·사회정책을 통해 국민 생활에 개입하고, 문화나 사상의 영역까지도 이데올로기의 선전에 의해 동원되어간다. 그때까지 적어도 제도설계의 원리로서 존재했던 국가와 사회, 사회와 개인의 구별은 사라지고, 모든 것이 강력한 ‘정치’의 에너지에 빨려들어간다. 국가에 따라서는 개인의 권리나 자유의 주장도 고려의 대상에서 멀어지고 대신에 ‘민족’ 공동체의 생존과 팽창이 동원의 기치가 되었다.이러한 ‘정치화’의 동향은 이탈리아 파시즘과 독일 나치즘의 발흥 그리고 만주사변과 사상통제의 강화에의해 일본 지식인들에게도 절박한 문제로 인식되고 있었다. 마루야마도 학생으로서 ‘데모크라시의 위기’에 강한 관심을 갖고 있었다고 회상하고 있다. (2장 정치화의 시대 중에서)
동시대 비판으로서의 국민국가론마루야마가 이미 전시 중에 제시한 후쿠자와론이나 도쿠가와 사상사에 관한 논문 「국민주의 이론의 형성」에서
간단한 윤곽이기는 하지만 이러한 ‘근대 내셔널리즘’의 입장을 표명했다는 점은 두 가지 측면에서 동시대의 정치체제를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에 대한 비판이 되었다. 그것은 한편으로 만세일계의 천황이 통치하는 ‘국체’란 이념에 기초하여 정부와 군부가 ‘만민익찬(萬民翼贊)’이나 ‘진충봉공(盡忠奉公)’ 혹은 ‘신도실천(臣道實踐)’과 같은 구호들을 통해 위로부터 국민을 동원하는 체제와는 달리, 사람들 개인 개인이 ‘자주적 인격’을 키워 스스로의 판단에 따라 ‘주체’로서 나라의 정치를 담당해가는 체제를 제기한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국체’에 내재하는 ‘팔굉일우(八宏一宇)’라는 이념이 일본국가의 범위를 넘어서 만주나 남아시아·동남아시아 여러 지역도 포함하는 ‘대동아공영권’의 지배질서를 정당화하는 데 사용된 것에 비해, 다시한 번 국민국가를 단위로 하는 건전한 내셔널리즘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 두 가지 점은 마루야마의 스승인 난바라시게루와 오카 요시타케가 전시 하에 공유했던 주장이기도 하다. (3장 전시에서 전후까지 중에서)
‘천황제’와의 대결로
이렇게 마루야마는 ‘천황제’에 대해, “이것을 쓰러뜨리지 않으면 절대로 일본인의 도덕적 자립은 완성되지 않을 것이라 확신한다”는 입장에 다다랐다. 다만 중요한 것은, 국가기구에 세습군주를 둘지 두지 않을지 하는 문제가 아니라, “더 근본적인 문제”로서 “진정한 자주독립의 정신”을 길러서 어느 쪽의 제도가 되든 “훌륭하게 자기 나라를 만들어갈 용감한 국민”으로 개개인들이 성장하는 것이다. 따라서 평생 일본국 헌법 제조 개정을 주장하지는 않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자신에 대한 서훈은 거절하고 있다. 쓰루미 슌스케에 따르면 문화훈장도 “피했다”고 한다. 후에 논문집『일본의 사상의 독일어판에서는 ‘천황제’란 말에 대해 일본어를 이용하여 “Tennȏ-System”이라 표현하고 있다. 마루야마는 ‘천황제’를 군주제나 황제제라는 제도일반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일본에 고유한 ‘정신구조’로서 문제시했던 것이다. 이 입장을 내세운 논문 「초국가주의의 논리와 심리」는 잡지『세계의 1946년 5월호의 권두를 장식하게 되는데, 말미에는 “1946. 3. 22”라고 써놓은 일자가 인쇄되어 있다. 실로 서른두 살이 되는 생일에 ‘천황제’와의 결별을 선언한 것이다. ‘전후 첫 강의’의 초고에는 “쇼와”이라고 연호로 연월일을 기록하였으나, 이번에는 물론 서기로 표기했다. (4장 전후 민주주의의 구상 중에서)
푸코와의 대화
마루야마는 우치다 요시히코· 기노시타 준지와의 좌담 「전통과 현대를 둘러싸고」에서 푸코와의 대화에 대해 이렇게말하고 있다. 그들이 하고 있는 것은 전부 반데카르트주의, 즉 근대 합리주의에 대한 고발이지요. 그런데 말하다 보면, 유럽의 데카르트주의의 전통이 갖고 있는 견딜 수 없을 정도의 무게와 힘이 나에게도 전해져옵니다. 그들은 필사적으로 그것에 반항하면서도, 데카르트주의로부터 깊이 제약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따라서 반항을 통해 동시에 그것을 재생시키고 있는 것이지요.
푸코는 한 해 전의 인터뷰 「신체를 관통하는 권력」에서 역사의 재해석을 통한 ‘정치’라는 것을 주장하고 있다. “아직까지 존재하지 않는 그 무엇인가를 사실의 언설이 환기시키고 만들어내는, 즉 ‘작위(fictionner)’하는 것. 그러한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역사를 자신에게 실감시켜주는 정치의 현실에 근거하여 역사를 ‘작위’하고, 역사의 사실에 근거하여 아직 존재하지 않는 하나의 정치를 ‘작위’하는 것입니다”[Foucault 200a].
-눈앞의현실을 응시하면서 과거의 역사에 침잠하여 사료의 숲을 돌아다니면서, 지금까지 지배적인 전통으로 생각되어온 것과는 다른, 또 하나의 존재했을지도 모르는 전통을 찾아내어 그것을 명확한 형태로 묘사해내는 것. 근대의 이념을 찬양하는 극동의 정치학자와 근대적인 ‘주체’의 죽음을 선고한 서구의 철학자는 각자의 전통과 격렬히 투쟁하며,그 재해석을 통한 언설에서의 ‘정치’를 감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5장 인간과 정치 그리고 전통 중에서
목차
한국어판 서문 / 영어판 서문
서장 사상의 운명
1장 다이쇼 시대의 아이
2장 정치화의 시대 / 늦깎이 청년 / 다시 근대로
3장 전시에서 전후까지 / 멀어진 메이지 시대 / 원대한 도움닫기 / 8월 15일 - 끝 그리고 시작
4장 전후 민주주의의 구상 / 잿더미에서의 출발 / 천황제와의 결별
5장 인간과 정치 그리고 전통 / 니힐리즘의 그림자 / 공포의 시대를 넘어서 / 또 하나의 전통
종장 봉인은 화려하게
연보/ 참고문헌/ 저자후기/ 역자후기/ 찾아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