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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 성립과 이야기

조동일 저 | 모시는사람들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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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90699992 / 304쪽 153 x 2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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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출판사 서평 이 책은 동학을 창건한 수운 최제우가 살았던 마을인 경상북도 월성군 가정리에서 최제우에 관한 설화와 민요를 다양하게 조사한 자료를 실었다. 현지조사 성과를 문헌 자료와 견주어 살피고, 자연발생적인 설화와 교단에서 공식화한 것과의 차이를 밝혔다. 최제우, 최옥, 최림 이 세 사람의 이야기를 함께 다루면서 실제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이야기에서는 무어라고 하는가를 살펴 동학이 성립하기까지의 과정을 새롭게 이해하였다.

저자 소개

1939년 8월 9일 경북 영양군 일월면 주곡동 주실에서 태어났다. 영양초등학교에 다니다가 대구로 전학하고, 대구에서 초·중·고등학교를 졸업했다. 1958년 서울대학교에 입학하고, 1962년 불어불문학과 학사, 1966년 국어국문학과 학사, 1968년 국어국문학과 석사, 1976년 국어국문학과 박사가 되었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그림을 그리고 문학 창작을 했다. 1958년 서울대학교 ≪대학신문≫ 제1회 신춘문예 현상 모집에서 소설 <산의 장송곡>과 수필 <채석장 근처>가 당선되었다. 1959년 무렵 정진규, 이유경, 주문돈 등과 함께 시 창작 동인회를 했다. 1965년에 임중빈, 주섭일, 이광훈 등과 함께 ≪비평 작업≫ 동인지를 내서 문학 활동을 시작하고, ≪사상계≫, ≪창작과 비평≫, ≪세대≫, ≪청맥≫ 등에서 비평문을 발표했다. 희곡을 써서 공연하기도 했다. 시·소설·희곡 등의 창작품을 모아 ≪조동일 창작집≫(지식산업사, 2009)을 냈다. 문학 창작에서 비평을 거쳐 연구로 방향을 돌렸다. ≪서사민요 연구≫(계명대학교출판부, 1970; 증보판 1979)를 낸 다음부터는 연구에 전념했다. 연구서가 60여 종이다. ≪한국 소설의 이론≫(지식산업사, 1977), ≪탈춤의 역사와 원리≫(홍성사, 1979; 기린원, 1988), ≪한국문학통사≫(전 6권, 지식산업사, 제1판 1982∼1988; 제4판 2005)에서 한국문학을 고찰하고, 동아시아문학으로, 다시 세계문학으로 범위를 넓혀 ≪동아시아문학사 비교론≫(서울대학교출판부, 1993), ≪소설의 사회사 비교론≫(전 3권, 지식산업사, 2001), ≪세계문학사의 전개≫(지식산업사, 2002)를 내놓았다. ≪한국의 문학사와 철학사≫(지식산업사, 1996), ≪철학사와 문학사 둘인가 하나인가≫(지식산업사, 2000)에서는 문학과 철학의 관계를 고찰했다. ≪동아시아 문명론≫(지식산업사, 2010)도 중요한 저서이며, 일본어와 중국어로 번역되었고, 베트남어 번역이 진행 중이다. ≪인문학문의 사명≫(서울대학교출판부, 1997), ≪학문론≫(지식산업사, 2012)에서는 학문을 논의했다. 근래에는 그림 그리기를 일삼고 작품 300점을 수록한 ≪山山水水 조동일 화집≫(지식산업사, 2014)을 출간했다.


책 속에서

동학교단 측에서 최제우의 생애를 다룬 글을 보더라도, 최제우가 예사 사람은 할 수 없는 이적을 행했다는 이야기가 아주 많이 들어 있다. 최제우가 태어날 때 마을 남쪽에 있는 구미산이 사흘 동안 울었다는 이야기에서 시작해서, 최제우가 죽을 때 형리가 칼로 목을 내리쳐도 칼이 목에 들어가지 않았다는 이야기에 이르기까지, 생애는 이야기의 연속으로 서술되어 있다. 이런 점은 동학 문헌을 연구거리로 삼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바이다. (15페이지)

최제우의 아버지 최옥(1762-1840)은 문집인『근암집』에 행장이 실려 있고, 행장 서두에는 으례 그렇듯이 가계가 소개되어 있다. 최옥은 경주 최씨이다. 시조는 신라 때의 최치원이라 했다. 그런데 이 점이 문제였던 것 같다. 이른 시기의 자료에서는 시조를 조선 초의 최예崔汭라고 했다가, 나중에는 최치원이라고 했던 변화를 엿볼 수 있는데, 최옥은 자기네가 최치원의 후손임을 입증하려는 글을 쓰기도 했다. (35페이지)

최림은 최제우의 아저씨이고, 촌수는 9촌이다. 최림이 죽을때 최제우는 18세였다. 그러니 두 사람은 밀접한 관련을 가졌을 것으로 생각된다. 최제우가 현실을 비판하고 새로운 사상을 전개하기까지 가장 깊은 영향을 받았던 사람이 최림이 아니었던가 한다. (65페이지)

최옥은 장가는 여러 번 들었어도 늦게까지 아들을 두지 못했다. … 그러다가 만년에 이르러서야 과부인 한씨 부인을 얻어서 최제우를 낳았다. 그해가 1824년이다. 최옥은 이미 63세였다. 양자인 제환이 36세였다. 한씨 부인은 서씨 부인이 죽은 다음에 들어왔으나 정실이 아니므로 최제우는 서자이다. 아명은 복술福述이고, 관명은 처음에 제선濟宣이라고 했는데, 나중에 스스로 제우濟愚라고 개명했다. 이제 자식을 두기 어렵다고 생각할 때 태어났기에 더욱 그랬던지, 아버지는 자기 소생인 아들을 비록 서자이지만 끔찍이도 사랑했고, 아들 또한 아버지를 무척 따랐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103페이지)

최제우의 동학은 성격이 단순하지 않다. 주문을 외고 기도를 해서 질병을 퇴치하면서 난세에 피난할 방도를 말해 주는 것 같은 면이 있는가 하면, 마음을 바르게 할 것을 종교적으로 역설하는 데 힘쓴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동학에서 더욱 문제가 된 것은 다시 개벽을 하면 빈천자의 세상이 올 것이라고 한 측면이다. (217페이지)

목차

목차
Ⅰ. 무엇을 어떻게 다루는가?
1. 왜 최제우 집안을 문제 삼는가?
2. 이야기가 무엇을 말해 주는가?
Ⅱ. 산림처사 근암공 최옥
1. 최옥은 어떤 사람이었던가?
2. 최옥을 최제우는 어떻게 말했던가?
3. 최옥 이야기는 어떻게 전하는가?
Ⅲ. 도술가 외와공 최림
1. 최림은 어떤 사람이었던가?
2. 최림은 최제우와 어떤 관련이 있는가?
3. 최림 이야기는 어떻게 전하는가?
Ⅳ. 동학 교조 수운 선생 최제우
1. 최제우는 어떤 사람이었던가?
2. 최제우 이야기가 동학 문헌에는 어떻게 나타나는가?
3. 최제우 이야기는 어떻게 전하는가?
Ⅴ. 마무리하며
다시, 동학을 이야기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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