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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학파와 정다산 - 최익한 전집 1

시리즈 : 최익한 전집 [3]

최익한 저 | 송찬섭 역 | 서해문집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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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74834845 / 592쪽 150 x 2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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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출판사 서평 독립운동가, 사회주의 운동가 그리고 월북 격변의 시대를 살다 간 최고의 지식인 최익한 국내 최초의 최익한 전집, 그 첫 번째 책 최익한은 한학과 근대사회과학의 소양을 겸비한 국학자로 역사학계에서 평가된다.... 독립운동가, 사회주의 운동가 그리고 월북 격변의 시대를 살다 간 최고의 지식인 최익한 국내 최초의 최익한 전집, 그 첫 번째 책 최익한은 한학과 근대사회과학의 소양을 겸비한 국학자로 역사학계에서 평가된다. 특히 다산 정약용을 다루는 ‘다산학’ 분야에서는 가장 뛰어나다고 인정받는다. 그중에서도 정약용을 포함한 실학파 전체를 집대성한 《실학파와 정다산》은 남북한을 통틀어 최초의 실학 연구서이자 아직도 생명력을 지닌 저작으로 평가받을 만하다. 또한 ‘최익한 전집’의 첫 번째 책인 《실학파와 정다산》은 최익한 연구에서도 가장 핵심이 될 것이다. 근현대사 최고의 지식인, ‘문화사학자’ 최익한은 누구인가? 최고의 지식인으로 평가받는 최익한의 생애는 그야말로 파란만장했다. 그는 1894년 갑오농민전쟁이 좌절된 뒤 제국주의 열강들의 경제적, 군사적 침략이 본격화되는 시기인 1897년 경북 울진군 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친 대에는 천석꾼으로 불릴 정도로 부유했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집안에서 한학을 배우다가 두각을 나타내어 15세에 당시 영남학파의 거두인 면우?宇 곽종석郭鍾錫 문하로 나아갔다. 1917년 최익한은 서울에서 21세라는 늦은 나이에 신학문을 배우기 시작했다. 중동학교를 1년 만에 마친 다음 1918~1919년 2년간은 기독교청년회관에서 신흥우에게 영문학을 배웠다. 이 시기에 조선의 실상을 더욱 깊이 인식하면서 항일운동에 뛰어들었다. 1919년 3ㆍ1운동이 그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준 것이다. 그는 3ㆍ1운동 직후부터 임시정부의 군자금 모금원으로 활약했다. 그러나 그 해 8월 경북 영주군에서 1600원을 모금해 상해로 보낸 사건이 발각되어 일제에 체포되었다. 그는 1921년 경성 복심법원에서 징역 4년형을 선고받았으며 복역 중인 1924년에 감형으로 석방되었다. 감옥을 나온 그는 바로 일본으로 건너가 와세다대학 정경학부를 다녔는데 이때부터 사회주의사상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진보적인 청년사상 단체인 고려공산청년동맹, 일월회, 재일본무산청년동맹, 신흥과학연구회 등에 가입했다. 그의 활동이 표면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한 것은 1927년 4월 중동학교와 와세다대학 동창인 박낙종이 3차 조선공산당(일명 ML파 공산당) 일본부를 조직할 때 그의 권유로 조선공산당에 입당하면서부터다. 이때 박낙종은 조선공산당 일본부의 책임비서였으며, 최익한은 조직부장을 맡았다. 그 뒤 최익한은 일본과 조선을 오가며 활동했고 신간회 창설을 전후하여 방향전환론을 적극 주장하면서 ML당의 이론가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그는 3차 조선공산당 김준연 책임비서 시기(1927년 9월~11월)에는 조직부장을, 김세연 책임비서 시기(1927년 11월~1928년 2월)에는 선전부장을 맡으며 활동하다가 1928년 2월 조선공산당에 대한 대대적인 검거가 행해졌을 때 동경에서 박낙종과 함께 체포되었다. 이때 김준연, 김세연 등과 함께 최고형인 징역 6년을 언도받은 것을 보면 그의 위치를 알 수 있다. 최익한은 서대문형무소에서 복역하다가 1932년 7월 대전형무소로 이감하는 도중 대전역에서 만세시위를 주도해 징역 1년을 추가받아 모두 7년간의 옥살이를 했다. 설상가상으로 복역 중이던 1934년 2월에는 울진에서 조선독립공작단사건이 발생했는데 그의 두 아들이 연루되어 장남 재소在韶는 2년형, 차남 학소學韶는 3년형을 받아 복역했는데, 재소가 옥중에서 사망하는 비운을 겪었다. 전후 약 10년간의 감옥살이가 말해주듯이 이 시기에 그는 매우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굽히지 않고 활동했다. 이후 최익한은 학문과 저술 작업에 전념했다. 그는 곧 이즈음에 활발히 일어난 국학운동에 편승하여 신문, 잡지를 통하여 많은 글을 발표했다. 특히 1938년 5월에는 《조선일보》의 향토문화 조사위원으로, 1939년 2월에는 《동아일보》의 논설사원으로 관여하면서 양 신문에 글을 실었고, 신문이 폐간된 뒤에는 새로이 창간된 《춘추》지를 이용했다. 해방을 맞으면서 최익한은 다시 사회주의 활동을 시작했다. 그는 곧 과거 ML계 인사들과 함께 조선공산당 서울시당부 간판을 내걸었고 그 뒤 서울계가 중심이 된 장안파와 합치면서 장안파의 중진이 되었다. 그리고 조선건국준비위원회와 조선인민공화국의 중앙간부로서 활동했다. 그는 해방 당시 우리 사회의 변혁론에 대해 박헌영의 재건파와는 입장을 달리했지만 장안파가 대세에 밀려 재건파에 흡수되자 그도 재건파가 주도하는 조선공산당(1945년 9월 11일)에 입당했다. 그 뒤에도 그는 변혁의 성격, 반제민족통일전선 형성 문제 그리고 대중정당으로서의 남조선노동당 건설을 위한 조선인민당, 조선공산당, 남조선신민당 등 3당 합당 방법론에서 박헌영을 중심으로 한 주류파와는 입장을 달리했다. 이 때문에 그는 박헌영 일파의 노선에 반대하는 사회로동당(1946년 11월), 근로인민당(1947년 5월) 창당에 참여했다. 특히 통일전선 형성 문제에서는 박헌영 일파와 달리 우익을 더 넓게 포괄하려는 입장을 취했다. 예컨대 1945년에는 한민당, 국민당 등 우익정당과도 제휴하려 했으며, 1947년 김규식이 중심이 된 민족자주연맹(1947년 12월)에 참여하기도 했다. 그 뒤 최익한은 월북했다. 그는 최고인민회의 제1기 대의원을 지냈으나 그 밖에는 정치적으로 뚜렷한 활동을 하지 않았다. 그는 학문에 치중하여 주로 우리 역사와 문화에 관한 글을 쓰거나 강의를 했다고 한다. 그 뒤 그에 대한 소식은 잘 알 수 없는 실정이다. 최익한 전집을 펴내며 최익한은 최고의 실학연구자였다. 본래 그는 우리 역사와 문화에 대한 관심이 남달랐다. 최익한이 처음으로 글을 발표하기 시작한 것은 1925년에 《동아일보》에 실은 이다. 1935년 다산 서거 100주년을 맞이하여 각 신문, 잡지사에서 특집 기획을 마련했을 때 그도 신조선사의 요청으로 을 작성했다고 한다. 실학에 대한 관심의 시초라고 볼 수 있다. 그는 1937년부터 언론 매체를 통하여 자신의 재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조선일보사와 관계를 가졌는데 1938년 말까지 한문학, 역사, 향토문화 등에 관하여 꾸준히 글을 실었다. 이 가운데 한시에 대한 글과 중국 역사에 대한 글을 제외하고는 한국의 역사, 인물, 문화유적을 다룬 국학에 해당된다. 대체로 관심을 한군데 집중하지 않고 다양하게 글을 썼다. 1938년 말부터 다시 《동아일보》와 관계를 맺으면서 1940년 8월 《동아일보》가 폐간될 때까지 많은 글을 집필했다. 그 뒤 《동아일보》가 폐간되자 그는 《동아일보》 기자였던 양재하가 중심이 되어 창간(1941년 2월)한 《춘추》지로 활동의 장을 옮겼다. 이때 실은 글들은 신문에 비한다면 소논문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대부분 제도사, 정책사 등으로서 1940년대에 들면서 여러 영역으로 관심이 넓어졌음을 보여 준다. 해방 초에는 정치적 활동이 재개됨에 따라 국학연구에 몰두할 만한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다만 일제 시기에 쓴 , 등을 기초로 하여 간행된 《조선사회정책사朝鮮社會政策史》(1947)는 그의 학문적인 열망을 보여 준다. 월북한 뒤에는 곧 정치적으로 소외되면서 다시 국학연구에 몰두했다. 북한 역사학의 출발과 더불어 간행된 《력사제문제》, 《력사과학》 등에

저자 소개

저자가 속한 분야 : 인문/국문학자 


최익한崔益翰(1897~?)
시인·고전문학자, 사회주의 독립운동가
아호 창해滄海, 성해成海, 돌샘石泉
1897  경북 울진 출생
1913~16  면우 곽종석의 문하에서 3년간 성리학 수학
1917~20  지리산 산방에서 공부하며 한시 수창(17)
               <최익한상전간재崔益翰上田艮齋> 투서(17)
               경성기독교청년회관 영어과 입학(18)
               중동학교 야학부 입학(19)
               논설 <가명인假明人 두상頭上에 일봉一棒> 발표(20) 
1921~24  군자금 모집 사건으로 2년간 수감(21~23)
               시조 <동도東都에서 느낌>, <한양에서 느낌> 발표(23)
               김황·이병기·권덕규·정인보·박한영·이능화·홍명희·문일평 등과 교류
1925~27  와세다대학 전문부 정치경제과 입학(25)
               일월회·조선공산당에서 민족해방 및 사회주의 운동
1928~36  ML당 사건과 대전역 만세 사건으로 8년간 투옥 
1937~40  만시 <곡아 25절哭兒二十五絶> 발표(37)
               조선일보사·동아일보사에서 2년 8개월간 언론 활동 
               [여유당전서를 독함] 외 고전 잡문 다수 연재
1941~44  동대문 밖 창신동에서 3년 9개월간 술집 운영
1945~47  조공 장안파 결성, 민전 기획부장, 근민당 상임위원
               [조선사회정책사] 발간(47)
1948~57  남북연석회의 참가 후 가족과 함께 평양에 거주
               제1기 조선최고인민회의 대의원
               김일성종합대학 조선어문학부 조선문학과 부교수
               과학원 조선어 및 조선문학 연구소 연구사
               [실학파와 정다산](55), [조선명장전](56), [정다산선집](57) 등
               고전 논저 다수 출간
1957년 9~10월경 숙청설, 1970년대 초 타계설이 있다


 

역자 소개

  • 역자 : 송찬섭
1956년 부산 출생. 서울대학교 국사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1985년 이후 여러 대학에서 강의하였고 현재는 한국방송통신대학교 문화교양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우리 역사를 과학적으로 연구하고 성과를 대중에게 보급하기 위해 1988년 만들어진 역사학연구소 또한 중요한 활동의 장으로 삼고 있다. 주요 저작은 《1862년농민항쟁》(공저), 《조선 후기 환곡제 개혁 연구》, 《농민이 난을 생각하다》, 《현장검증 우리 역사》(공저) 등이 있다.

목차

목차
책머리에
해설ㆍ 최익한의 삶과 《실학파와 정다산》
서문
상편. 실학파의 사적 발전
머리말
1장 실학의 술어와 개념
2장 실학파와 선행자들
3장 ‘실학’ 발전의 사회적 환경_17세기 말부터 19세기 초까지의 조선에 대한 몇 가지 고찰
1. 국내적 제 모순의 관계 / 2. 대외적 제 모순의 관계 / 3. 영정시대 18세기 조선의 신문풍과 그 특징 / 4. 1801년‘사학’사건과 그 후 사회적 정세
4장 유형원, 이익 일파의 실학사상
5장 홍대용, 박지원, 박제가 일파의 실학사상
주
하편. 실학의 대성자 정다산에 대한 연구
머리말
제1부 다산의 사상가적 경력에 대한 사회적 개관
1장 다산의 약전略傳
2장 다산의 실학적 연원과 경로에 대한 고찰
1. 가계와 학파 / 2. 무학武學과 이술吏術의 전통
3장 실학파의 서학_천주교와 서양과학과의 관계에 대한 고찰
1. 기독교-천주교의 입국과 시대적 변질 / 2. 동서 문화의 상호영향과 반기독·반유교의 사상적 대조 / 3. 천주학의 과학적 의상衣裳과 실학자들의 바판적 태도 / 4. 가톨릭교회의‘의례금지령’, ‘사학’취제의강화, 실학파-다산일파의 배교 표명과‘내수외화’의 의의
4장 실학파의 발전과 수난에 대한 역사적 고찰
1. 남인·서인·성호학파·채당의 교착관계 / 2. 당쟁과 척사의 표리적 관계 / 3. 정조의‘벽파’퇴치 계획과 서학파의 관계 / 4. 정조 서거, 서학파의 격화와 신유 사학사건 / 5. 서학의 교학 양파 분열과 학파로서의 다산의 사상과 영향
제2부 다산의 여러 철학적 견해
5장 새로운 과학적 견해와 미신타파론
6장 유학 개혁사상과 실용주의
1. 유교경의에 대한 새로운 해설들 / 2. 덕치론과 사공론
7장 인식과 비판에서의 유물론적 요소
1. 인성론 / 2. 음양·오행론 / 3. 왕양명의 ‘치양지致良知’설 / 4. 퇴계·율곡의 이발기발론 / 5. 귀신과 신앙론
제3부 다산의 정치 경제사상
8장 정치사상
1. 균민주의 정치론 / 2.《경세유표》에 나타난 개신안 / 3. 문벌계급과 지방차별의 타파와 ‘인재위흥’의 필요에 대한 강조 / 4. 민주\u003d민권주의사상
9장 경제사상
1. 중농경제사상 / 2. 농민문제에 대한 제론 / 3. 신전제론
10장 다산의 7장 역술
제4부 다산의 실학에 대한 간단한 재론
1. 철학-세계관 / 2. 경제 정치사상과 민주주의 / 3. 애국사상과 민족문화 운동의 선구적 형태
주
부록
1. 다산연보
2. 다산의 일사逸事와 일화逸話
3. 다산의 저서 총목總目
4. 종두술-우두술과 정다산
5. 다산의 이상사회와 그 역사적 제약성
주
창해 최익한 선생 연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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