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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호의 부득탐승 아직 끝나지 않은 승부

이창호 저 | 라이프맵 | 2011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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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62602814 / 288쪽 152 x 2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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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반디앤루니스 리뷰

세계인이 가장 사랑하는 기사(棋士), 한국바둑의 전설 이창호 ‘아직 끝나지 않은 승부’를 말한다 책 소개 바둑의 구도자(求道者) 이창호, 30년 기사생애의 묵묵한 깨달음
서른여섯의 프로기사 이창호 9단. 어린 나이에 입단 후 숱한 화제를 낳으며 한국바둑을 세계최강의 길로 이끈 불멸의 승부사. 그는 1천만에 육박하는 국내 바둑인구에 한해서만이 아니라, 바둑에 무관심한 사람들에게도 널리 회자되는 바둑의 대명사, 혹은 동의어다. 이는 비단 대한민국에 국한된 인지도가 아니다. 오랜 세월 바둑을 국기(國技)로 대접해온 일본뿐 아니라 아시아 각국, 새롭게 바둑열풍이 불고 있는 서구 각국에서도 마찬가지다. 바둑의 종주국(宗主國)임을 자부하는 중국에서는 아무리 벽지산촌의 어린아이라 해도, 자국의 국가주석 이름은 몰라도 ‘바둑의 신’ 이창호의 이름은 안다.
그런 이창호에게는 몇 가지 세간의 편견이 있다. “이창호는 천재다”, “이창호는 사실 바둑밖에 모르는 바보다”, “이창호는 둔하고 느리다”, “이창호는 변화에 무심하다”, “이창호의 전성기는 끝났다”…. 이 같은 오해들에 대해 그간 수도사 같은 침묵으로 일관해왔던 이창호 9단이 드디어 담담히 입을 연다. 바둑의 묘미에 대해, 재능과 생각하는 힘에 대해, 상대적인 느림의 미학에 대해, 변화의 당위성에 대해, 이기려면 버릴 줄 알아야 한다는 지혜에 대해, 그리고 아직 끝나지 않은 승부에 대해….
책은 ‘국민기사’ 이창호가 성심을 다해 신의를 지키며 바둑 한 길을 걸어오면서 얻은 묵묵한 깨달음의 기록이자, 세상의 모든 부모와 아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즐거운 바둑이야기다. 이창호의 오랜 팬들에게는 그의 드라마틱한 승부인생과 심오한 바둑철학을 음미할 기회가 될 것이며, 직장과 사회라는 전장(戰場)에서 살아남기 위한 전략(戰略)을 다루어야 하는 이들에게는 바둑을 통해 끌어낼 수 있는 게임의 법칙과 생존의 필살기를 습득할 계기가 될 것이다.

출판사 리뷰

세계인이 가장 사랑하는 기사(棋士),
한국바둑의 전설 이창호

‘아직 끝나지 않은 승부’를 말한다

바둑의 구도자(求道者) 이창호, 30년 기사생애의 묵묵한 깨달음

서른여섯의 프로기사 이창호 9단. 어린 나이에 입단 후 숱한 화제를 낳으며 한국바둑을 세계최강의 길로 이끈 불멸의 승부사. 그는 1천만에 육박하는 국내 바둑인구에 한해서만이 아니라, 바둑에 무관심한 사람들에게도 널리 회자되는 바둑의 대명사, 혹은 동의어다. 이는 비단 대한민국에 국한된 인지도가 아니다. 오랜 세월 바둑을 국기(國技)로 대접해온 일본뿐 아니라 아시아 각국, 새롭게 바둑열풍이 불고 있는 서구 각국에서도 마찬가지다. 바둑의 종주국(宗主國)임을 자부하는 중국에서는 아무리 벽지산촌의 어린아이라 해도, 자국의 국가주석 이름은 몰라도 ‘바둑의 신’ 이창호의 이름은 안다.
그런 이창호에게는 몇 가지 세간의 편견이 있다. “이창호는 천재다”, “이창호는 사실 바둑밖에 모르는 바보다”, “이창호는 둔하고 느리다”, “이창호는 변화에 무심하다”, “이창호의 전성기는 끝났다”…. 이 같은 오해들에 대해 그간 수도사 같은 침묵으로 일관해왔던 이창호 9단이 드디어 담담히 입을 연다. 바둑의 묘미에 대해, 재능과 생각하는 힘에 대해, 상대적인 느림의 미학에 대해, 변화의 당위성에 대해, 이기려면 버릴 줄 알아야 한다는 지혜에 대해, 그리고 아직 끝나지 않은 승부에 대해….
바둑은 고대부터 전해온 기예(技藝)의 이미지에서 21세기 가장 치열한 정신의 스포츠로 진화하고 있다. 이 책은 ‘국민기사’ 이창호가 성심을 다해 신의를 지키며 바둑 한 길을 걸어오면서 얻은 묵묵한 깨달음의 기록이자, 세상의 모든 부모와 아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즐거운 바둑이야기다. 이창호의 오랜 팬들에게는 그의 드라마틱한 승부인생과 심오한 바둑철학을 음미할 기회가 될 것이며, 직장과 사회라는 전장(戰場)에서 살아남기 위한 전략(戰略)을 다루어야 하는 이들에게는 바둑을 통해 끌어낼 수 있는 게임의 법칙과 생존의 필살기를 습득할 계기가 될 것이다.

저자 소개

1975년 전라북도 전주에서 태어나 1981년 바둑의 세계에 입문했다. 1984년 당대 최고의 승부사 조훈현 9단의 내제자(內弟子)로 들어가 1986년 스승에 이어 사상 두 번째로 어린 나이에 프로로 입단했다. 1989년 최연소로 국내타이틀을 쟁취했고, 1992년 최연소 세계타이틀 획득의 신기록을 세웠다. 1995년에는 이창호 한 개인을 위해 국회의원 105명이 연대서명한 전례 없는 병역특례의 수혜를 입어 공익근무요원으로 복무했다. 이후 기록적인 승률과 연전연승, 반집의 역전드라마로 ‘바둑국보(國寶)’, ‘신산(神算)’, ‘바둑의 신(棋神)’으로 불리며 세계6대기전 제패의 그랜드슬램 달성을 비롯해 바둑으로 국위를 선양하는 행보를 이어갔다. 국내외 통산 타이틀 획득 140회, 총 100억이 넘는 상금을 벌어들이며 부와 명예를 동시에 거머쥔 세계최고의 승부사. 개인적인 슬럼프에 들어서도 국가의 명예와 동료들의 기대가 걸린 국가 단체대항전에만 나서면 주장으로서 90퍼센트가 넘는 가공할 승률을 끌어내는 책임과 배려의 카리스마. 이 책은 수십 년간 전 세계 바둑팬들로부터 가장 사랑받아온 기사(棋士) 이창호가 프로생애의 반환점에서 돌아본 바둑과 승부의 기록이다. 


저서 《이창호 맥산책》 《이창호 사활산책》 《이창호 끝내기 특강》 《이창호 정통바둑》 《이창호 어린이 바둑교실》 《이창호 타이틀 명국집》 《이창호의 부득탐승》 

책 속에서

>대개의 사람들은 천재의 재능을 먼저 발견하지 못한다. 다만 그 행위의 비범한 결과를 보고 비로소 천재라고 부를 뿐이다. 따라서 천재에 대한 고정관념을 버린다면, 다음과 같은 아인슈타인의 말처럼 모든 아이들을 천재로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머리가 좋은 것이 아니다. 문제가 있을 때, 다른 사람들보다 좀더 오래 생각할 뿐이다.”
어쩌면 내가 가진 최고의 재능은 ‘즐거움’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바둑에 관한 한, 주변 어른들의 눈에 비친 나는 싫증을 모르는 아이였다.
아이들은 흔히 주의가 산만하고 재미있는 놀이라도 오래 지속하지 못한다. 바둑은 더욱 그렇다. 손 이외에는 움직일 필요가 없고 대국자 간의 대화가 거의 필요하지 않은 데다 처음부터 끝까지 지속적인 생각(수읽기)을 요구하는 게임이기 때문에 오랜 시간을 한 곳에만 꾸준히 앉아있어야 한다.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는 보통의 아이들로서는 견디기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나는 누구와 대국하든 한번 자리에 앉으면 좀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바둑판에 파묻히듯 미동도 없이 생각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사람들은 무엇을 생각하는지 알 수 없는 뚱한 표정으로 바둑판을 바라보는 나의 얼굴을 보며 신기하게 여겼지만 나는 그런 몰입의 시간이 조금도 지루하지 않았고 마냥 즐거웠다.
딱지치기도, 구슬치기도, 전자오락도, 씨름도 재미있었지만 바둑만큼 나를 매료시킨 놀이는 없었다. 바둑을 배운 이후 그런 놀이들은 모두 시시해졌다. 한번 바둑판 앞에 앉으면 도낏자루 썩는 줄도 몰랐다. (p.30-32)

그때까지만 해도 한국바둑계에는 내제자 제도가 존재하지 않았다. 내제자란 일본문화에 깊숙이 뿌리내린 도제(徒弟) 제도가 바둑계에 접목된 형태로, 스승의 집으로 들어가 숙식을 함께하며 기예를 배우는 제자를 말한다.
선생님은 이 일로 “이제 겨우 서른둘인데 무슨 제자냐”, “창호네가 전주의 알부자라던데, 아마 돈이 필요했던 모양이다”, “매달 상당한 수업료를 받고, 입단하면 거액의 사례금을 받기로 했다더라”는 등의 말도 안 되는 억측에 시달리기도 했다. 하지만 내제자란 것은 그런 것이 아니다. 선생님이 일본유학 시절 세고에 겐사쿠(瀨越憲作) 선생의 내제자로 들어가 아무 대가 없이 가르침을 받았듯이, 나에게 또한 대가 없이 은혜를 베풀어준 것이다.
내가 그렇게 선생님 댁으로 들어섰을 때 불과 몇 년 뒤 우리 사제가 타이틀을 놓고 치열하게 맞서리라고 예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선생님과 나는 물론, 선생님의 가족도 나의 가족도 그 누구도 내가 가까운 장래에 ‘절대자 조훈현’으로부터 타이틀을 쟁취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조훈현이 한국바둑 최초로 내제자를 받아들였다”는 소식이 관철동(한국기원 종로회관)에 퍼지자 선생님의 동료들은 일제히 “호랑이새끼를 키워서 나중에 물리는 거 아니냐”며 농담했다. 그때마다 선생님은 특유의 속도감이 배인 목소리로 이렇게 말하며 유쾌하게 웃었다고 한다.
“제자에게 지면 행복한 거지. 그래도 한 10년은 걸릴 거 아냐?” (p.47-48)

이 무렵 나는 선생님과 그날의 대국을 검토하고 그 결과를 홀로 되새기는 과정에서 ‘바둑은 실수를 적게 하는 쪽이 이기는 게임’이라는 사실을 새삼 자각했다.
이는 싸움을 회피해온 내 바둑의 본질, 그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었다. 싸움을 피했던 것은 싸움이 두려워서가 아니었다. 그 싸움의 수많은 변화에서 돌발적으로 튀어나올 수도 있는 실수가 두려웠던 것이다.
是故百戰百勝, 非善之善者也. 不戰而屈人之兵, 善之善者也(시고백전백승, 비선지선자야. 부전이굴인지병, 선지선자야). 손자병법에 이르기를 “백 번 싸워 백 번 이기는 것은 최선이 아니다. 싸우지 않고 적을 굴복시키는 것이 최선이다”라고 했다.
무릇 승부에 임할 때는 자신을 다스려 최대한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하는 법이다. 나아가야 할 때는 주도면밀하게, 가만히 있어야 할 때는 신중하게 기다려야 한다. 일단 전진하면 실패의 여지를 없애야 하고, 부동(不動)할 때는 불필요한 기미를 보이지 말아야 상대를 서서히 제압할 수 있다.
나는 의식, 무의식중에 입문시절부터 쌓아온 공부로써 하나의 확고한 가치관을 세웠다. 그것은 ‘두터움’이다. (p.72-74)

많은 기자들이 국내 최정상에 선 소감에 대해 질문해왔다. 당시 나는 기쁘면서도 몹시도 송구스러워, 내 생각을 제대로 전하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의 내가 그 시절로 돌아간다면, 아이작 뉴턴의 말을 꼭 인용하고 싶다.
“만일 내가 다른 사람보다 조금이라도 멀리 내다볼 수 있었다고 한다면, 그것은 내가 거인의 어깨 위에 서있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스승은 나의 등대였다. 나는 조훈현이라는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타 비로소 넓은 세상을 시야에 담을 수 있게 된 난쟁이에 불과했다.
300국이 넘는 사제대국을 치르면서 하나둘씩 타이틀을 넘겨주고 때때로 허탈하게 쓴웃음 짓던 나의 선생님, 조훈현 9단. 하지만 나는 어디에서도 나를 내제자로 받아들인 일을 후회한다는 선생님의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내가 선생님이었다면 과연 그렇게 초연할 수 있을까. 솔직히 난 자신이 없다. 10년 전쯤에는 막연하게 ‘나도 나이가 들면 재능이 뛰어난 아이들을 발굴해 후진 육성을 해야겠다’ 하는 생각이 있었지만, 선생님의 마음에 더욱 가까워질수록 점점 더 엄두가 나지 않는다.
실패한 재능처럼 평범한 것은 없고 인정받지 못한 천재는 세상에 널려 있다. 그것이 세상사의 이치일진대, 더없이 범상한 내가 선생님이 빌려준 높은 어깨가 아니었다면 더 높이, 더 멀리 날아오르고자 하는 추동력을 과연 어디에서 얻을 수 있었을까. (p.108-109)

그전까지 많은 사람들이 나를 관찰하고 평가해왔지만 나의 바둑에 ‘민첩한’이라는 수식어를 사용한 사람은 기억에 없다. 대다수의 일치된 평가와 이해는 “느린 듯 두텁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녜웨이핑 9단은 특이하게도 내 바둑의 ‘속도’에 주목했다.
모든 ‘느림’은 절대적인 느림이 아니다. 빠르게, 좀더 빠르게 질주하는 현대생활의 모든 사고방식에 대한 상대적 느림이다. 상대적 느림은 ‘감속(減速)’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바둑의 속도는 외형으로 드러나는 행마의 속도에 좌우되는 것이 아니다. 그 이면에 감춰진 인식의 속도, 판단의 속도가 중요하다. 몸에 맞는 옷과 같은 것, 바로 적정의 속도가 핵심이다. 그것을 달리 표현하면 ‘균형’이다. (p.138)

4주간의 신병 훈련기간, 나는 조교와 동기 훈련병들을 아연실색하게 만들었다.
“연병장 선착순 집합!”의 명령이 떨어지고 “뒤로 번호!”가 붙기만 하면 꼭 한 명이 비었다. 그 하나의 구멍은 바로 나였다.
“또 이창호냐….”
조교의 탄식은 연일 그칠 날이 없었다. 군화끈을 못 매 내무반에서 밍기적거리고 있는 나의 존재 탓이었다.
“사회에서 신발끈 한 번 안 매봤나!”
“한 번도요…. 운동화만 신어봐서….”
무서운 호통에 반사적으로 나온 나의 어눌한 대답은 조교를 뒷목 잡게 만들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정말 운동화만, 그것도 끈 달린 운동화를 감당 못해 ‘찍찍이’ 운동화만 신어본 것을….
결국 조교는 나라는 애물단지를 보다 못해 스스로 비책을 마련하기에 이르렀다. 바로 끈 대신 ‘똑딱단추’ 달린 군화. 손수 똑딱단추를 달아준 조교 덕분에 나는 비로소 비교적 순탄하게(?) 훈련기간을 마칠 수 있었다. (p.148)

하지만 “위기는 곧 기회”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을 뒤집으면 “기회는 곧 위기”라는 말도 된다. 승부에서 기선을 제압하는 일은 대단히 어렵지만 그 우세를 끝까지 유지하는 일은 그보다 훨씬 어렵다. 일단 우세를 의식하면 끊임없는 유혹이 찾아든다. 어려운 상황에 직면하면 물러나고 싶고, 상대의 도발은 무조건 피하고 싶고, 마무리를 서두르고 싶어진다.
그런 유혹을 누르고 처음의 평정한 마음을 끝까지 유지하는 것이야말로 승리의 비결이며 승부의 세계에서, 예술의 세계에서, 경영의 세계에서 성공한 모든 사람들이 늘 “처음으로 돌아가라”며 초심(初心)을 강조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p.165-166)

내가 생각하는 ‘생애 최고의 순간’은 거액의 상금이 걸린 세계타이틀전 우승이 아니다. 그 가슴 벅찬 순간은 내가 국내외 타이틀전에서 기록한 140회의 우승, 그 안에 없다. 그것은 바로 몇 번의 우승을 차지해도 개인의 기록으로 남겨질 수 없는 단체 국가대항전의 우승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최고의 순간을 만들어준 것이 바로 농심신라면배였다. 12회의 국가대항전을 치르는 동안 한 번도 거르지 않고 출전한 유일무이한 기사라는 영광은 내 기사생애의 소중한 기록이다.
때때로 “개인전 우승과 단체전 우승 중 어느 쪽이 더 기쁘냐”는 질문을 받는다. 물론 상금이 큰 개인토너먼트 세계대회 우승도 중요하다. 그렇지만 단체전 우승일 때의 기쁨이 훨씬 크다. 이창호 개인의 패배는 혼자 아픔을 견디면 그만이지만 단체전에서 지면 함께 출전한 동료들과 성원해준 모든 이들이 낙심하게 되기 때문이다. 단체전을 우승하면 그런 부담을 전부 내려놓을 수 있으니 그 기쁨과 영광과 마음 편함을 개인전에 견줄 수 없다.
프로기사라면 어느 기전은 일부러 잘 두고 어느 기전은 일부러 못 두는 일은 있을 수 없다. 하지만 프로도 사람인 이상 승부에 임하는 마음가짐은 조금씩 다를 수도 있다. 내가 최고의 전성기일 때나 최악의 슬럼프일 때나 단체전인 농심신라면배에서만큼은 필사의 집중력을 발휘했던 것도 아마 그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승리도 다 똑같은 승리가 아니며, 패배도 다 똑같은 패배가 아니다. 커다란 승리와 커다란 패배가 있고, 작은 승리와 작은 패배가 있다. 작은 승리를 취하고 커다란 패배를 허용한다면 대국(大局)은 결코 이길 수 없다. ‘나’의 승리는 작은 승리에 불과하지만 ‘우리’의 승리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커다란 승리다. (p.178-179)

그런데 나는 좀, 사실은 아주 많이 구식이라 컴퓨터 모니터를 통한 기보분석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절차가 불편하긴 해도 인쇄된 기보용지를 들고 바둑판 위에 놓아보는 것이 훨씬 좋다. 컴퓨터로는 수읽기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돌을 집어서 꼭꼭 바둑판에 놓아봐야 수도 보이고 효과도 좋다.
나를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이라고 여겨도 어쩔 수 없지만, 나는 현대의 편의성이 인간을 생각하지 않게 만든다고 여기는 쪽이다. 생각하는 힘도 용불용(用不用)이다. 쓰면 쓸수록 발달되고, 쓰지 않고 먼지가 쌓이도록 내버려두면 퇴화한다. (p.196-197)

나는 한 인터뷰에서 백의종군(白衣從軍)의 소감을 이렇게 말했다.
“저는 과거보다 강해졌습니다. 문제는 주변의 상대들이 더 강해졌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단순한 농담으로 받아들였지만, 이 말은 솔직한 내 생각의 표현이었다.
‘무관의 제왕’이라는 호칭이 어색하고 쑥스럽다. 그리고 어느덧 불혹(不惑)의 나이가 머지않았음을 몸으로 느낀다. 최근 들어 계산이 예전 같지 않고 승부에서 지는 일도 많아지면서 ‘어떻게 나이 들어야 할까’를 자주 생각하게 된다.
영원한 성공은 없다. 상황이 극에 달하면 결국 변화하니, 그 변화에 맞서지 말아야 한다. 나아가고 물러날 때를 확실히 알아야 하고, 스스로 제어할 수 없는 형세를 거스르지 말아야 한다. 하지만 지금은 단지 멈추거나 물러날 때가 아니다. 나는 더 나아가고, 더 깊어져야 한다.
문득, 가까운 사람에게 들은 말이 생각난다. 우리 인생에는 많은 문이 있는데 절대 모든 문이 한꺼번에 닫히거나 한꺼번에 열리는 일은 없다고. 어떤 문이 닫히면 반드시 또 다른 문이 열린다고. (p.229-230)

나이 차는 좀 나는 편이지만, 바둑을 잘 아는 아내와의 대화는 어느새 이심전심, 편안하고 즐겁다. 바둑기사들의 생활에 대해 잘 이해하고 있어, 바둑판을 앞에 둔 나만의 시간을 가지는 것에 대해서도 너그러운 사람이다.
일부 주변 사람들은 과거에는 “이창호가 결혼을 하지 않아 안정을 찾지 못한 것 아닌가” 하는 우려를 표현했고, 이제는 “신혼생활에 몰두하다 보니 집중하지 못하는 것 아닌가” 하고 걱정하는 눈치다.
하지만 결혼 여부가 과연 바둑과 상관이 있을까 싶다. 승부는 오직 기사 자신의 기량과 마음가짐에 따른 것이다. 이길 때도 질 때도, 그 책임은 오롯이 나 자신의 몫일 뿐이다.
이런 말을 하면 너무 뻔뻔스럽다고 비난받을지도 모르겠지만, 아내는 꼭 나를 위해 태어난 사람 같다. 결혼한 뒤로도 한동안 성적이 좋지 않아서 마음고생을 많이 한 것 같아 미안했는데 나는 말주변이 없어서 평소 따뜻한 위로 같은 걸 잘 하지 못한다.
동반자(companion)의 어원은 ‘빵(pan)을 같이 먹는 자’라고 한다. 빵은 아니지만, 일상 속에서 함께 밥 먹고 있고, 또 영원히 함께 밥 먹고 싶은 사람. 나의 동반자, 나의 아내다.
나는 스스로 별다른 물욕이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만, 아내와 함께하는 이 행운만큼은 영원히 잃고 싶지 않다. (p.269-270)

당장의 어려움에서 벗어나고자 대충 덮어두고 잊어버리면 나중에 훨씬 큰 타격으로 돌아온다. 바둑판 위에서 모든 것은 다른 것과 연결되어있다. 홀로 존재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따라서 순간의 결함만 때우는, ‘눈 가리고 아웅식’ 미봉책(彌縫策)을 사용하면 언제나 패착으로 귀결된다. 반상 위에서 조심성이 강조되는 이유다.
나의 바둑은 유독 반집승이 많은 편인데, 이 또한 극도의 조심성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내제자 시절, 나는 100번 중에 한 번이라도 역전당할 가능성이 있으면 그 판을 크게 이길 수 있어도 그 수를 두지 않았다. 한번은 선생님이 “왜 그 수를 두지 않았냐”고 물었다. 나는 “이 길로 가면 100번 중의 100번을 반집이라도 이길 수 있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조심(操心)’을 한자(漢字) 그대로 뜻풀이하면 ‘마음을 잡는다’는 의미다. 두려움이 위기에 대한 인식이라면 조심성은 그 인식 이후의 경계하는 마음가짐이다. 겉으로는 유사하게 드러나지만 두려움과 조심성은 크게 다른 것이다.
영국의 대문호 셰익스피어는 이런 말을 남겼다. “용기의 대부분은 조심성이다.” 두려움을 극복하는 용기는 조심성으로부터 온다. 조심성이 없으면 결코 일류 승부사가 될 수 없다.
아울러 바둑판 밖에서도 조심성은 중요하다. 이를테면 말조심을 해야 한다. 무분별한 말은 화살이 되어 주변을 상처 입히고 종내는 자기 자신에게로 돌아온다. 사람들은 모두 자신에 관해 말하고 싶어 하지만, 실제 이룰 준비가 되지 않은 상황에서 말을 앞세우면 작게는 기회를, 크게는 신의를 잃는다. (p.274-275)

지난 날, 나는 한 전화인터뷰에서 이런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바둑을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당시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끝없이 먼 길을 가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때의 생각은 지금도 여전하다.
나의 바둑은 아직도 완성되지 않았다. 그리고 완성이라는 게 가능한지도 잘 모르겠다.
바둑이란 ‘신(神)의 한 수’를 향한, 끝없는 완성에의 추구다.
나는 스스로 원하고 선택한 길을 끝없이 걸어왔고, 스스로 마감을 결정할 때까지 이 여정은 계속될 것이다. (p.2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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