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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해고도에 위리안치하라 절망의 섬에 새긴 유배객들의 삶과 예술

이종묵.안대회.이한구 저 | 북스코프 | 2011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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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96564072 / 368쪽 152 x 2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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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절해고도에 위리안치하라> 는 이종묵, 안대회 교수와 사진작가 이한구가 유배객의 자취를 찾아 섬을 탐방해, 그에 대한 글을 쓰고 사진을 찍어 묶은 책이다. 14개의 유배의 섬 (위도, 거제도, 교동도, 대마도, 진도, 백령도, 제주도, 흑산도, 녹도, 남해도, 신지도, 임자도, 추자도)을 찾아, 유배객들의 삶의 궤적을 좇았다.
짧게는 20여일부터 길게는 27년까지, 섬에 머문 기간이 달랐듯 유배객들의 삶도 제각각이었다. 유배지에서도 편안하고 대접받은 객이 있는가하면 먹을 것을 구걸하며 구차하게 삶을 이어가야 했던 객도 있었다. 정쟁의 피바람 속에서 유배된 섬에서 한탄 속에 숨을 거둔 객도 있었고, 유배에서 돌아와 다시 죽을 때까지 높은 벼슬을 한 이도 있었다. 벼슬아치로 살 때는 결코 이룰 수 없는 학문적 성과를 거둔 이가 있는가하면, 외로운 섬에서 예술혼을 불사른 이도 있었다. 한마디로 절해고도에 유배당한 처지는 모두 같았으나, 그곳에서의 삶의 모습은 모두 달라 보는 이로 하여금 삶의 무상함을 느끼게 한다.


섬에 유배된 사람들은 누구인가

고려시대 이름 높은 문사인 이규보는 변산반도와 위도에서 큰 대접을 받으며 고작 20여일 머문 그곳의 생활을 글에 담아 남겼다. 당대의 수재로 평가받던 이행은, 연산에 의연히 맞섰다가 거제도로 유배를 가, 양 치는 관노의 신분으로 전락하였다. 하지만 그 고통을 견뎌 내며 거제도의 유배에 대한 시 200여 편을 <해도록> 에 묶었다. 신하에게 쫓겨난 두 왕, 연산군과 광해군은 한탄 속에서 살다 섬에서 숨을 거두었다. 정쟁의 피바람 속에서 나로도로 쫓겨난 이건명은 그곳에서 참혹하게 죽임을 당하였다. 게다가 그의 장사를 지내려던 두 아들마저도 정적에 의해 죽임을 당해 세 부자가 나란히 묻히는 정쟁의 희생자가 되었다. 조선의 마지막 선비 최익현은, 일제에 대항해 의병을 일으켰다가 적국 대마도로 유배되었고 그곳에서 생을 마쳤다. 그러나 올곧은 선비 정신은 적국의 사람들에게마저 존경의 대상이 되었다. 진도에서 장장 19년이라는 유배 생활을 한 노수신은, 그 긴 세월 동안 학문을 닦아 결국 대학자로 인정을 받았다. 70세의 나이에 백령도로 유배를 간 이대기는, 섬을 충실히 기록한 <백령도지> 를 남겨, 백령도와 함께 길이 그 이름을 남겼다. 제주도로 귀양을 가 모진 고난을 겪으면서도, 조정철은 <정헌영해처감록> 이라는 책을 남겨 제주도의 풍물과 인심을 오늘에 전한다. 끝내 흑산도에서 생을 마친 정약전은, 흑산도 유배 기간 동안 <현산어보> 라는 뛰어나 저술을 남겼다. 금위대장을 지낸 신헌은 녹도(지금은 녹동항) 근처로 유배를 가서도, 여유로운 모습을 잃지 않았다. 그가 지은 「녹서잡절」은 당시 녹도에서의 생활을 자세히 묘사하고 있다. 이미 함경도 선천 유배에서 <구운몽> 을 지었던 김만중은 남해 유배 생활 중에 <사씨남정기> 라는 걸작을 지어, 유배 문학의 대표 작가로 이름을 남겼다. 자신의 유배 소식을 듣고 부인이 자결하는 등, 슬픔과 고통 속에서 신지도로 유배 간 이광사는, 그 슬픔을 승화시켜 끝내 명필로 남았다. 인생이 뜻대로 되지 않아 임자도로 유배가 된 조희룡이었지만, 부드럽고 넉넉한 마음을 잃지 않고, 자신만의 예술 세계를 구축하였다. 대전별감을 지내다가 왕의 도장을 만져 추자도로 쫓김을 당한 안조원은, 양반이 아니었던 관계로 섬사람들에게마저 무시를 당했다. 귀양다리라고 놀림을 받으며, 거처할 집 한 칸 구하지 못해, 처마 밑에서 지내기까지 하였다. 이렇게 해서 나온 글이 「만언사」이다. 추자도에서의 사연을 시시콜콜 담았는데, 양반이 아니기에 체면을 차릴 것이 없어, 「만언사」에는 신세 한탄이 더욱 생동감 있게 전해진다.


그들은 왜 외딴섬으로 쫓겨났는가?

유배는 중죄를 저지른 자를 차마 죽이지 못하고 먼 곳으로 격리시키는, 사형 다음가는 무거운 형벌이다. 중국 은나라 때부터 기록에 등장하는 유배형은, 진나라와 한나라 때부터는 사형(死刑), 도형(徒刑), 장형(杖刑), 태형(笞刑)과 함께 다섯 가지 형벌의 하나로 정착되었다. 우리나라에도 <삼국사기> 에 그 기록이 보일 만큼 오래되었다. 그러나 특히 정쟁이 일상화된 조선 시대에는 유배형도 함께 늘어났다. 15~16세기에는 벼슬아치 4명 가운데 1명꼴로 유배를 당했다. 그 시대 이름난 벼슬아치 치고 유배를 경험하지 않은 이는 거의 없었다고 해야 할 정도다.
형벌의 정도도 심해졌다. 처음에는 한양과 비교적 가까운 거리였는데, 점차 멀어지기 시작했고, 살기가 힘든 궁벽한 곳으로 정적을 보냈다. 그러다 나중에는 사방이 바다로 둘러싸인 절해고도로 유배를 보내 아예 돌아올 수 없는 길로 내모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또한 정쟁이 심해질수록 정적을 향한 미움과 탄압이 심해져서 위리안치(圍籬安置)라는 추가 조치까지 적용되었다. 위리안치는 유배객이 머무는 집(적거지)의 지붕 높이까지 가시나무를 둘러치고 그 안에 유배객을 유폐시키는 형벌이다. 죄인을 외부와 완전히 격리시켜 개구멍 같은 작은 틈으로 먹을 것을 넣어 주어 목숨을 연장하도록 했으니 참으로 가혹하고 처참한 형벌이었다.


절망의 땅, 유배의 섬

유배는 기본적으로 기한이 정해지지 않은 무기형이다. 권력의 변화가 없는 한 대부분 원래의 자리로 돌아갈 수 없었다. 어찌 보면 감옥에 갇히는 것보다 유배가 더욱 절망스러운 형벌일 수도 있다. 당연히 유배의 섬은 절망의 땅이었다. 게다가 유배를 온 사람은 스스로의 힘으로 생계를 꾸리게 되어 있었다. 그러므로 가족이나 친지 등의 도움이 없으면 매우 고통스럽게 살아야 하였다. 특히 중죄를 범한 경우 노비의 신분으로 떨어져 천민처럼 노역에 동원되기도 했으므로 그 삶은 더욱 고단하였다.
유배객 중에는 이러한 고통과 절망, 분노로 생을 허무하게 마친 사람이 적지 않았다. 조선 최후의 선비 최익현은 나라를 사랑한 죄로 대마도로 유배되었는데, 비분과 강개 속에 곡기를 끊고 결국 이역 땅에서 숨을 거두었다. 권력 다툼의 와중에서 신하들에 의해 폐위된 광해군은 제주도로 쫓겨 가 그곳에서 생을 마쳤다. 한편, 폭정으로 악명을 떨치던 연산군은 쿠데타가 일어나 하루아침에 권좌에서 쫓겨나 교동에 유배되어 생을 마쳤다.

연산군은 평소에 한없이 잔인하여 형벌과 죽임을 당해도 거리낌이 없을 줄로 사람들은 생각하였다. 그러나 정작 유배지로 떠날 때 겁에 질려 벌벌 떨었고 교동에 가는 도중에 배가 바람에 흔들리자 혼비백산하였다. 관아에 도착했을 때 둘러 선 병졸들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엎드려 땀을 흘리기도 하였다. (…) 그러나 연산군의 각시는 교동으로 함께 가지 않았다. 부인 신씨(愼氏)는 따라갔다가는 반드시 죽을 것이라 여겨 아예 함께 가지도 않았으니 연산군은 부인에게도 버림을 받은 것이다.
‘업보의 땅, 왕의 유배지’ 중에서


절망의 섬에서 꽃핀 문화와 예술

유배객 중에는 절해고도 외로운 섬에서 몸과 마음의 안식을 얻는 경우도 있었다.
바쁜 일상에 휘둘려 자연의 아름다움을 볼 여유도 얻지 못하다가 유배를 와서야 산수를 즐기는 호사를 누린 사람도 적지 않았다. 그들은 절망의 섬에서 안식과 평화를 얻고 때때로 그 느낌을 문학으로 드러냈다. 위도에 귀양 갔지만 금세 돌아가리라 믿었던 이규보가 그런 인물이었다. 거제도에서 천민처럼 염소를 치는 잡일을 한 이행과, 남해 끝 나로도로 귀양을 간 조관빈도 그러하였다.
고독과 단절 속에서 자신을 단련시키고, 분노를 학문으로 승화시킨 경우도 있었다.
정약전은 흑산도에서 18년간 유배 생활을 하면서 위대한 박물학 저서인 <현산어보> 와 소나무 벌목을 비판하는 혁신적인 논문인 <송정사의> 를 남겼다. 유배지의 자연과 그곳에서의 삶이 남긴 저작들이다. 노수신은 19년의 세월을 진도에 갇혀 살면서도, 그 분노를 학문으로 삭였다. 훗날 화려하게 조정으로 복귀해 남은 생을 대학자로, 큰 시인으로 행세하였다. 조선의 문장가 유몽인은 이런 노수신을 가리켜, 사람이 어떤 일을 할 때는 19년을 기한으로 잡아야 한다는 말을 남길 정도였다. 백령도로 유배를 간 이대기는 백령도의 생태를 조사한 <백령도지> 를 남겼는데, 한 섬의 전모를 충실하게 보고한 귀한 책으로 남았다. 제주도로 유배를 간 조정철은 <정헌영해처감록> 에서 제주도의 풍물과 정서를 담았는데, 제주도의 과거를 알 수 있는 귀한 자료가 되었다.
유배지에서의 고통을 예술로 꽃피운 사람들도 있었다.
장희빈을 반대하다 남해도로 유배된 김만중은 걸작 한글 소설 <사씨남정기> 를 남겼다. 처절한 유배살이를 구구절절 기록한 「만언사」를 남긴 안조원은, 그가 유배된 추자도를 유배 가사의 산실로 만들었다. 신지도에서 불행한 생을 마친 이광사는 처절한 상황에서도 붓을 놓지 않고 ‘동국진체’라는 글씨를 남겼다. 지금도 호남에는 그의 아름다운 글씨가 현판으로 남아 있는 곳이 있다. 조희룡은 자신의 유배지 임자도를 그림으로 빛냈다. 임자도의 나무와 돌과 노을과 구름을 보고 새로운 감각의 눈을 틔운 조희룡은 자신만의 예술 세계를 꽃피웠다.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삶

유배객들의 삶은 때로는 영화보다 더 드라마틱하다. 권력이 부족해 위도로 유배를 간 이규보는 유배에서 풀리자마자 승승장구, 최고 권력자인 최우가 그의 호적을 고치면서까지 그를 곁에 두고자 하였다. 권력의 정점인 왕에서 하루아침에 죄인으로 몰락한 연산군은 자신이 처음으로 시행했던 위리안치 형벌을 받았다.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최근 들어 긍정적인 재평가를 받는 광해군은, 실제로 연산군보다 더 오래 교동도에 머물렀는데, 교동도는 광해군이 아닌 폭군이었던 연산군의 유배지로 기억되기를 바란다. 인간사의 아이러니와 비극성을 그대로 보여 주는 사례가 아닐 수 없다. 제주도에서는 지금까지도 전해지는 절절한 사랑 이야기의 주인공인 조정철과 홍의녀를 만날 수 있다. 제주도에서 죄인이라는 신분 때문에 홍의녀를 지키지 못한 조정철은 나중에 제주목사가 되어 제주도로 부임, 홍의녀의 묘를 찾는 반전을 보여 주었다. 한편 조정철은 조관빈의 종손(從孫)인데, 할아버지와 손자가 시간을 두고 제주도에 유배되는 기구한 이야기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유배객이 아니라 제주목사로서 그는 홍윤애의 무덤을 찾았다. ‘제주목사 겸 전라도방어사 조정철’이라는 이름으로 묘문(墓文)을 직접 짓고 글씨를 써서 ‘홍의녀지묘(洪義女之墓)’를 세웠다. 200년 세월을 견딘 흔적이 눈에 선한, 작은 묘비이다. 지금도 제주시 애월읍 금덕리에 그대로 남아 있다. 원래 제주시 삼도 1동 전농로에 있던 묘와 묘비를 1936년 제주공립농업학교가 들어서면서 옮겼다.
‘여인의 향기를 품은 섬’ 중에서


그들의 유배가 섬을 알리다

각기 다른 섬, 다른 사연, 다른 기간이었지만 이 책의 유배객들이 가진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바로 궁벽한 땅, 섬을 알린 것이다. 위도를 알린 이규보, 거제도의 고절치라는 지명을 남긴 이행, 나로도를 아름다운 글로 빛낸 조관빈, 백령도를 기록한 이대기, 흑산도의 수생생물을 기록한 정약전, 녹동항의 모습을 시로 남긴 신헌, 절절한 유배살이를 노래한 안조원. 유배객들이 없었다면, 그 섬들은 오늘날 우리에게 풍요로운 이야기를 전해 줄 수 없었을 것이다.

뛰어난 문장과 빼어난 인물은 알려지지 않았던 궁벽한 땅을 세상에 알린다. 왕희지(王羲之)의 「난정서(蘭亭序)」와 소식의 「적벽부(赤壁賦)」가 없었다면, 난정이나 적벽이 후세에 이름을 알릴 수 있었을까?
‘정쟁의 피바람을 지켜보던 소나무의 섬’ 중에서

저자 소개

  • 저자 : 이종묵.안대회.이한구
저자 : 안대회
연세대 국어국문학과와 같은 학교 대학원을 졸업했다. 성균관대 한문학과 교수로 대동문화연구원장을 맡고 있다. 2015년 제34회 두계학술상, 2016년 제16회 지훈국학상을 수상했다. 정밀한 해석과 깊이 있는 사유를 바탕으로 옛글을 분석함으로써 선인들의 삶을 풀어내는 작업에 매진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궁극의 시학』, 『벽광나치오』, 『천년 벗과의 대화』, 『조선의 명문장가들』, 『조선을 사로잡은 꾼들』, 『선비답게 산다는 것』, 『정조의 비밀편지』, 『18세기 한국 한시사 연구』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 『녹파잡기』, 『산수간에 집을 짓고』, 『한서열전』, 『북학의』 등이 있다.  

저자 : 이종묵
서울대학교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에서 석사 학위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학중앙연구원을 거쳐 2017년 현재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있다. 옛사람의 운치 있는 삶을 사랑하여 우리 옛 시와 글을 읽고 그 아름다움을 분석하여 알리는 일을 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조선 시대 경강의 별서』, 『한시 마중』, 『부부』, 『우리 한시를 읽다』, 『조선의 문화 공간』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 『누워서 노니는 산수』, 『부휴자담론』, 『사의당지, 우리 집을 말한다』, 『글로 세상을 호령하다』, 『양화소록: 선비, 꽃과 나무를 벗하다』 등이 있다.  

사진 : 이한구
다큐멘터리 사진집단 ‘사실’, 월간 《사람과 산》 사진부의 팀장이던 시절부터 백두대간, 호남정맥, 낙남정맥 등을 거쳐 산맥 아래에 사는 숱한 마을의 문화를 담고 있다. 멀리 천산산맥의 칸텡그리, 히말라야산맥의 에베레스트, 안나푸르나 등을 포함해 우리 땅과 그 너머까지를 종으로 오르고 횡으로 걸으면서, 그 노정 속에서 자신만의 독특한 사진 세계를 구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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