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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95375747 / 431쪽 128 x 18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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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강경대는 싸우고 있다
故 강경대 열사는
1991년 4월 26일 학원 자주화와
노태우 군사정권 타도 시위 도중
백골단이라고 불리는
사복 경찰들의 쇠파이프에 두들겨 맞아
심장막 내출혈로 숨을 거뒀다.
열사의 주검은
노태우 독재정권의 실체를
만천하에 밝히는 계기가 됐으며,
그해 전국적으로 일어난
반독재민주화운동,
‘5월 투쟁’의 기폭제가 됐다.
강경대 평전
우리는 너무 빨리 잊는다. 성찰하고 용서를 받는 시간에 이르러 되돌아보면 더욱 그렇다. 나 역시 대부분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타인의 노력과 시간을 갉아먹으면서 살아왔지만 공은 언제나 내 것이었고, 타인의 가치는 멀리 있었다. 특히 먹고 사는 일로 주위를 돌아보지 못할 때면 더욱 그랬다.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참다운 이성이나 뭔가 인간적인 감정, 민중의 애환이나 진정한 평화에 대해 조금이라도 생각해봤다면 사정은 달라졌겠지만 화려한 현실 뒤에는 참혹한 번민과 고통만 있을 뿐이었다.
이럴 때마다 나는 마음속으로 여행을 떠났다. 그리고 ‘나는 무엇을 하기 위해 태어났는지’ 물었다. 하지만 해답을 찾을 수 없었다. 모든 것들이 나를 아는 체 하기가 부끄럽다는 듯 그냥 스쳐 지나가버렸고, 내 사상이나 현실 따위를 부정하듯 시선을 피했으며, 애초부터 나와 아무런 관계가 없었던 것처럼 침묵했다. 그래서 나는 너무도 고독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나를 빤히 쳐다보는 하나의 뚜렷한 상과 마주쳤다. 쌍꺼풀이 곱상하게 진 하얀 피부에 부드럽고 상냥한 미소를 짓고 있는 ‘강경대’였다. 그 순간 나는 마치 높은 절벽에서 깊이를 알 수 없는 아래를 내려다보는 사람처럼 현기증이 일어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했다. 내가 진정 무엇을 기억해야 하는지 비로소 깨달았기 때문이다.
표지이야기
이동환 작가는 우리 사회의 ‘부조리’에 대해 얘기한다. 자본주의 논리가 만들어 낸 갖가지 문제들에 억눌리며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을 화폭에 담는다. 어떻게 보면 매섭고 아픈 그림이다. 옴짝달싹할 수 없는 공간에 갇혀 있는 사람들이 빠져나기 위해 몸부림치는 것처럼 안타깝고 격정적이다. 하지만 이 몸부림은 동시에 희원을 품는다. 꾸짖고, 반성하고, 다시 설득하면서 스스로 앞날을 환하게 비출 ‘희망의 등대’가 되길 원한다. 따라서 그가 그려낸 우리 사회의 모습은 예술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그의 예술은 우리 사회를 통렬히 비판하고, 고발하는 것을 넘어서 인간의 가장 근원적인 개조와 우리 사회의 변혁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그의 작품은 1991년 ‘5월 투쟁’과도 깊은 연관성을 찾을 수 있다. 그리고 故 강경대 열사가 품은 순수한 열정과도 맞닿아 있다. 단 한마디 거리낌 없이 표지 작업에 참여해준 이동환 작가에게 다시 한 번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표지 이미지 / 이동환, 상처의 땅, 116 x 91 cm, 2011
강경대는
강경대는 1972년 2월 4일 서울에서 태어났다.
경대는 어려서부터 소중한 물건을 다루듯 조심스럽고 겸허한 마음으로 삶을 배웠다. 어떤 일에 미숙하거나 어려운 문제에 부딪히면 부모님의 의견을 따랐고, 아름다움에 대해서는 아낌없이 칭찬할 줄 알았다.
경대는 짓궂은 친구, 이웃집 아주머니, 가난한 할머니 할 것 없이 모든 사람을 가리지 않고 동등하게 대하는 마음씨 넓은 아이였다. 어떻게 보면 너무 순수하고 점잖아서 주위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모든 일에 솔선수범하고, 타인을 걱정하는 마음은 어린 아이의 성품이 아니었다. 그 흔한 말썽 한 번 피우지 않아 재미없어 보이기도 했지만, 이러한 성격은 경대가 세상을 폭넓게 이해하고 열정적인 청년으로 성장하는 밑거름이 됐다.
경대는 대학에 입학한 뒤 사회 문제에 눈을 뜨기 시작하면서 민중의 삶이 말살되는 현실을 외면할 수 없었다. 이런 마음은 이 나라를 걱정하는 학생운동가의 길로 경대를 서서히 이끌었다. 수많은 선배들이 그랬듯이, 경대는 오로지 그 길을 걷고자 했고, 거기에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삶의 가치를 발견하길 원했다. 하지만 경대의 다짐은 오래가지 못했다.
경대는 스무 살의 삶과 불과 2개월의 대학생활을 끝으로 한 점 꽃잎이 되어 소리 없이 떨어졌다. 백골단의 쇠파이프에 맞아 쓰러진 뒤 영영 깨어나지 못했다. 고등학교 졸업식 때 값 싸게 찍었다고 좋아했던 사진은 영정사진이 됐고, 등교하기 전에 “어머니, 아버지, 학교에 가서 공부 열심히 하고 금방 올게요.”라고 부모님께 남긴 메모는 마지막 유언이 됐다. 무엇보다도 안타까운 것은 단 한 마디 말조차 남기지 못하고 숨이 멎어버린 경대와 그의 죽음을 멍하니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많은 이들의 낙망(落望)이었다.
경대의 죽음은 우연도, 사고도 아니었다. 공안탄압이 부른 ‘필연’이었고, 무자비한 ‘살인’이었다. 악랄한 독재정권의 ‘실체’였다.
전국 방방곡곡이 피 끓는 절망으로 가득찼다. 수많은 젊은 이들이 경대를 따라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쉴 새 없이 날아오는 최루탄과 물대포에 맨몸으로 항거했다. 그리고 91년 ‘5월 투쟁’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노태우 정권의 회유와 협박도 끊이질 않았다. 죽음의 의미를 깎아내리는 것도 모자라 폄훼하거나 희석시키는 갖가지 수작도 부렸다.
이뿐인가. 장례 행렬을 가로막고 시신 위로 최루탄을 난사해 경대를 덮은 태극기를 갈기갈기 찢었고, 그의 억울한 죽음에 항의하는 가족들을 폭행하고 아버지까지 감옥에 가둬 버렸다.
그럴수록 민중은 더욱 단단해졌다. 세대를 초월한 사람들이 거리에 나와 “해체 민자당, 퇴진 노태우”를 외쳤다. 예술인들은 시대의 분노와 눈물을 예술로 승화해 투쟁의지를 북돋았으며, 노태우 파시즘 체제의 본질이었던 백골단들의 양심선언도 잇따랐다. 마치 1987년 6월 항쟁의 열기가 식지 않고 이어지고 있는 듯했다.
어떤 사람들은 강경대가 운동권이었다면 죽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1학년이 무엇을 알고 시위에 참여했겠느냐’며 ‘열사’라는 호칭이 적합하지 않다는 주장을 늘어놓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이야기는 중요하지도 않고, 아무런 의미도 없다. 경대의 ‘진정성’, 생명과 맞바꾼 ‘정의로움’ 그리고 경대의 죽음을 슬퍼하며 거리로 나온 수많은 학생들을 생각하면, 그 같은 주장은 거대한 바위 위에 얹은 모래알 한 개와 같은 소리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