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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계이황 아들에게 편지를 쓰다 - 개정판

이황 저 | 이장우.전일주 역 | 연암서가 | 2011년 0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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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96043461 / 381쪽 152 x 2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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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때로는 자상하게, 때로는 엄하게
겨레의 스승 퇴계 이황의 가르침


“모든 일은 부디 진실로 삼가고 조심하여 부끄러움과 후회를 남기지 않도록 하여라.
몸은 낮은 지위에 있으나, 만약 마음이 안정되고 청렴하여 욕심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면, 반드시 마땅히 해서는 안 될 일을 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모름지기 거듭 경계하고 경계하도록 하여라.”


∠내용 소개

편지를 통해 보는 퇴계 이황의 진면목

2008년에 첫 번역 출간되어 독서계에 큰 반향을 일으킨 『퇴계 이황 아들에게 편지를 쓰다』 개정판. 초판 이후 추가로 발굴된 관련 도서들을 참고하여 내용을 대폭 보강하고 문맥을 쉬운 표현으로 바꾸어 독자들의 이해를 높였다.

퇴계 이황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철학적 이론은 많이 소개되었으나 이러한 이론에 앞서 생생한 역사적 인물로서의 퇴계의 인간적 면모에 대해서는 비교적 알려진 것이 적었다. 이 책은 퇴계가 아들에게 보낸 편지글을 모은 것으로 집안의 대소사를 챙기는 생활인으로서의 퇴계의 진면목을 엿볼 수 있게 해준다.
퇴계 선생에게는 준(寯)이라는 맏아들과 채(寀)라는 둘째 아들이 있었다. 준은 도산과 가까운 예안의 외내(烏川) 마을에 사는 금재(琴?)라는 이의 딸에게 장가를 가서 10여 년 이상 처가살이를 하였다. 이 책을 보면 퇴계 선생이 40세 때부터 17살로 처가에 가서 살고 있는 이 맏아들에게 보낸 편지가 보이기 시작한다. 그 다음은 퇴계가 서울에 올라가서 조정에서 벼슬살이하면서 외내로 보낸 편지들, 풍기군수로 근무할 때 보낸 것들, 또 퇴계가 고향에 돌아와 있을 때에 이 맏아들이 반대로 벼슬하여 경주의 집경전(集慶殿) 참봉(參奉)이나, 서울의 제용감(濟用監) 같은 곳에 근무할 때 보낸 편지들이 차례로 나온다. 둘째 아들 채는 나자마자 곧 생모(生母)를 사별하고, 커서는 의령에 있는 작은 외할아버지-외종조부- 댁에 보내 놓고 있었다. 그 집에서 장가도 들었으나 곧 자식도 없이 죽어 거기서 묻히게 되었다.

이 책에 실은 편지는 대부분 맏아들 준에게 보낸 편지들이다.

때로는 자상하게, 때로는 엄하게
이 편지들을 보면 퇴계 선생과 관련된 사실 중에서, 우리가 아직까지 잘 몰랐던 점이나, 또 일반인들이 잘못 알고 있는 점들도 찾아볼 수 있다.
그 중 한 가지는 퇴계 선생의 ‘벼슬살이’에 대한 생각이다. 다 아는 바와 같이, 퇴계 선생은 평생 동안 70번이나 벼슬을 사양하고 물러나기를 바랐다. 그러나 이 편지 가운데서 볼 수 있듯이 아들에게 간절히 벼슬에 나아가기를 권한 점이라든가 퇴계 자신의 처신을 살펴보면 벼슬살이를 애당초 외면하고 싫어했던 것은 아닌 듯하다. 당시에 있어서 사람다운 대접을 받으려면 과거에 급제하여 기본적인 벼슬살이를 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라고 생각한 듯하다. 다만 노년에 이르러 그렇듯 벼슬을 사양한 것은 당신의 건강 문제, 학문에 대한 열의, 제도권 정치에 대한 실망 등등에 기인하는 듯하다.

이 편지들을 보면, 이퇴계는 참으로 자상하고 세밀하고 또 철저한 분이었다. 아들에게 공부를 열심히 하여 과거시험에도 합격하고, 또 남들같이 벼슬도 하여 입신출세할 것을 권하기도 하고, 또 선비로서 교양과 인품을 갖출 것을 권하기도 하지만, 대인 관계에 있어서 구체적인 행위 준칙에 이르기까지 세밀하게 일러주는 아버지였다. 모두 화기에 찬 자상한 내용이지만, 때로 아들이 잘못을 저질렀을 때는 준열하게 타이르는 엄한 아버지의 모습도 찾아볼 수 있다.

노비에 대한 이야기들
이 편지에는 친가·처가의 허다한 친척 이름들이 나오기도 하지만, 또 그보다 적지 않게 집안에서 부리던 남녀 종들의 이름이 나온다. 당시에 이 노비들은 ‘전민(田民)’이라고 하여, 토지와 함께 사유 재산의 일종으로 분류되었으며, 호적도 따로 없고 주인집의 호적에 노비로 등기되며, 노비의 자식은 자동적으로 그 부모의 상전(上典) 집의 노비가 된다. 그래서 가령 어떤 양반 집안에서 형제자매들이 재산을 분배할 때는 토지뿐만 아니라 노비들도 재산의 일부이기 때문에 같이 분배하게 된다. 퇴계 마을에서 외내로, 외내에서 서울로 또는 퇴계에서 서울이나 경주, 의령, 풍기, 영주, 풍산 등지로 퇴계 가문의 편지를 전달하여 주었던 것도 모두 이 노비들이며, 퇴계 가문의 어떤 양반이 행차할 때마다 말을 몰거나 짐을 운반한 것도 이 노비들이며, 농사를 지은 것도 이 노비들이다. 이러한 노비들을 관리하는 일에 대해서도, 퇴계 선생은 매우 세심하게 편지에서 자주 지시하고 있다. 너그럽게 다루어야 할 때는 휴식을 주고 건강을 보살피며 너그럽게 다루고 엄하게 다루어야 할 때는 종아리를 때려 가면서라도 엄하게 다루어야 한다고 하였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주는 메시지
이 편지들에서 우리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던 퇴계 선생과는 다른, 매우 “낯선 퇴계 선생”을 만나보게 된다. 그런데 이분도 요즘 우리들이 일반적으로 고민하고 있는 문제를 우리나 다를 바 없이 고민하고 있다. 자식, 손자들의 공부와 출세, 자식, 조카, 하인들의 병역 면제, 처가와의 재산 분쟁, 말을 잘 안 듣는 하인들에 대한 노여움, 소실과의 관계에 대한 명분상 떳떳하지 못함, 개가한 며느리에 대한 구설을 듣고 느끼는 당혹감과 수치심, 여러 가지 떳떳하지 못한 청탁에 대한 난감함, 숙명적으로 타고난 자신의 여러 가지 병환 때문에 생겨나는 끊임없는 신체적 고통 등등…… 이러한 점을 읽게 되면서 독자는 오히려 이 낯선 퇴계 선생에 대하여 더욱 가까워지고, 따뜻함을 느끼게 된다. 세상에 이렇게 체질적으로 병약하고, 가정생활에서도 불행한 일이 많았던 분이 어떻게 그렇게 집안의 살림도 잘 이루어 가면서 많은 제자를 키우고, 또 그렇게 많은 저술을 남길 수도 있었던 것일까? 이 책은 조선 시대 사대부의 생활상과 사고에 관한 귀중한 자료로서뿐만 아니라 이퇴계를 다시 읽고 조명하는 데도 많은 시사를 줄 것이다.

저자 소개

  • 저자 : 이황
저자 : 이황
퇴계(退溪) 이황(李滉)은 1501년 11월 25일 안동 예안현 온계리에서 진사 이식(李埴)과 박씨 부인의 7남 1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6세에 이웃 노인에게서 ≪천자문(千字文)≫과 ≪동몽선습(童蒙先習)≫, ≪명심보감(明心寶鑑)≫, ≪소학(小學)≫ 등을 배웠고 12세에는 숙부 송재공(松齋公) 이우(李?)에게 ≪논어(論語)≫를 배웠다. 15세에 게[蟹]를 보고 <부석천사자유가(負石穿沙自由家)> 등의 시를 지었고 20세에는 ≪주역(周易)≫을 탐독했다.

21세에 서울로 올라와 성균관에 유학한다. 27세에 경상도 향시에 2위로 합격하고 28세에 진사회시에 2등으로 합격, 32세에 문과 초시 2등으로 합격하고 다음 해인 33세(1533)에 반궁(泮宮)에 유학하며 경상도 향시에 합격한다. 34세에 문과에 급제해 승문원권지부정자와 예문관검열이 되었고 36세에 선무랑과 성균관전적을 거쳐 9월 호조좌랑에 임명되었다. 37세에 선교랑, 승훈랑, 승의랑에 임명되었으나 어머니 박씨의 상을 당해 관직에서 물러난다.

39세에 3년 상을 마치고 홍문관부수찬을 거쳐 수찬지제교로 승진해 40세에는 사간원정언, 승문원교검, 경연시독관, 춘추관기주관교리에 임명되었고 42세에는 홍문관부교리, 충청도·강원도어사로 순찰했으나, 43세에 병을 이유로 관직을 사임했다. 이후 종친부전첨, 세자시강원필선, 사간원사간, 성균관사성 등에 여러 차례 제수되었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44세 10월에 상경한 후 중종이 승하하자 부고와 시장을 집필했다. 47세 7월에 안동부사에 제수되었으나 사임했다. 홍문관응교에 제수되어 상경해 사퇴하려고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48세에 외직을 자청해 단양군수로 취임했다. 10월에 풍기군수로 전임했다. 49세에 소수 서원을 개칭해 사액 서원의 효시가 되었다. 9월에 신병으로 사임해 귀향했다. 그러나 신병을 이유로 세 번이나 사직원을 제출한 후 회답을 기다리지 않고 퇴계로 돌아와 임소를 이탈했다는 죄목으로 직첩을 박탈당했다. 50세에 예안 하명동에 한서암(寒棲庵)을 짓고 학문에 전념한다. 53세 4월에 성균관대사성에 제수되었으나 사퇴한다.
54세에 형조·병조참의, 첨지중추부사에 임명되었고 경복궁에 새로 지은 여러 전각의 편액을 썼으나 이듬해 병으로 모든 관직을 사임하고 귀향한다. 56세에 도산에서 ≪주자서절요(朱子書節要)≫를 편찬 완성하고 다음 해인 57세에 도산 서당을 지을 터를 마련하고 ≪계몽전의(啓蒙傳疑)≫를 저술했다. 58세에 대사성에 임명되자 사직을 청했으나 허락받지 못하고 공조참판에 임명되었다. 59세에 휴가를 얻어 귀향한 후 관직을 사임하고 ≪송계원명리학통록(宋季元明理學通錄)≫을 저술했다.

60세에 고봉 기대승(奇大升)과 편지로 사단칠정론(四端七情)을 변론했다. 도산서당(陶山書院)이 완공된다. 61세에 <도산기(陶山記)>를 저술했다. 64세 2월에 무이구곡도(武夷九曲圖)의 발문을 썼으며 65세에 ≪경현록(景賢錄)≫, ≪역학계몽(易學啓蒙)≫, ≪명당실어(名堂室語)≫ 등을 저술했다. 66세에 공조판서와 홍문관·예문관대제학에 제수되었고, 다음 해인 67세에 다시 예조판서, 경연춘추관사로 임명되었으나 사의를 표명하고 8월에 귀향, 역동 서원(易東書院)을 새로 건축했다.

68세에 선조 원년 의정부우찬성과 판중추부사에 제수되자 6월에 소명을 어기지 못해 상경해 양관의 대제학을 겸임했다. 재임 중 <무진육조소(戊辰六條疏)>, ≪성학십도(聖學十圖)≫를 저술했다. 69세(1569)에 이조판서에 임명되었으나 사의를 표명하고 귀향했다. 70세 7월 역동 서원에 가서 ≪심경(心經)≫을 강의하고, 8월 역동 서원의 낙성식에 참여했다. 11월 격물치지설(格物致知說)을 개정하다 병이 심상치 않자 12월 봉화현감으로 재직 중이던 큰아들을 사직, 귀가하게 해 장례 준비를 갖추도록 했다. ‘퇴도만은진성이공지묘(退陶晩隱眞城李公之墓)’라는 명문(銘文)과 자명(自銘)을 몸소 짓고, 임종 직적 매화분에 물을 주라는 말과 함께 한서암에서 세상을 떠났다. 이후 영의정에 추서되었다.  

역자 : 이장우
서울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졸업하고, 국립 대만대학에서 석사학위를,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중국 국립중앙연구원, 프랑스 파리 제7대학, 미국 하버드대학 등지에서 연구와 강의를 하였으며, 현재 영남대학교 중국언어문화학부 명예교수, 사단법인 영남중국어문학회 이사장, 동양고전연구소 소장으로 있다. 주요 저서와 번역으로 『한유 시 이야기』(1988), 『중국문화통론』(1993), 『중국문학을 찾아서』(1994), 『중국시학』(1994), 『중국의 문학이론』(1994), 『퇴계시 풀이』(공역, 1996), 『고문진보(전.후집)』(공역, 2007), 『퇴계 이황, 아들에게 편지를 쓰다』(공역, 2008), 『퇴계잡영』(공역, 2009), 『당송팔대가문초-소순(唐宋八大家文抄-蘇洵)』(공역, 2012) 등이 있다.  

역자 : 전일주
경북 포항에서 태어나 영남대학교 한문교육과를 졸업하고, 영남대학교 대학원에서 문학박사를 취득하였다. 2011년 현재 영남대학교 강사로 있다. 저서에 <한국 한자 자전 연구>(2003), <경산의 전설과 민담>(공저, 2002), <학산재와 영모재>(2003, 공저), <선현의 향기>(2007) 등이 있다.  

역자 소개

  • 역자 : 이장우.전일주

옮긴이 이장우(李章佑)
경북 영해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졸업하고, 국립 대만대학에서 석사학위를,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중국 국립중앙연구원, 프랑스 파리 제7대학, 미국 하버드대학 등지에서 연구와 강의를 하였으며, 현재 영남대학교 중국언어문화학부 명예교수, 사단법인 영남중국어문학회 이사장, 동양고전연구소 소장으로 있다.
주요 저서와 번역으로 󰡔한유 시 이야기󰡕(1988), 󰡔중국문화통론󰡕(1993), 󰡔중국문학을 찾아서󰡕(1994), 󰡔중국시학󰡕(1994), 󰡔중국의 문학이론󰡕(1994), 󰡔퇴계시 풀이󰡕(공역, 1996), 󰡔도산잡영󰡕(공역, 2005), 󰡔고문진보(전․후집)󰡕(공역, 2007) 등이 있다.

옮긴이 전일주(田日周)
경북 포항에서 태어나 영남대학교 한문교육과를 졸업하고, 영남대학교 대학원에서 문학박사를 취득하였다. 현재 영남대학교 강사로 있다.
저서에 󰡔한국 한자 자전 연구󰡕(2003), 󰡔경산의 전설과 민담󰡕(공저, 2002), 󰡔학산재와 영모재󰡕(2003, 공저), 󰡔선현의 향기󰡕(2007) 등이 있다.
 

책 속에서

너는 최근에는 무슨 책을 읽고 있느냐? 학업을 그만두고 게으름을 피우며 세월을 보내고 있지는 않느냐? 세월은 흐르는 물과 같다. 나는 너희들 두 아이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아무것도 이룬 것이 없으니, 끝내 무슨 일을 하려고 하느냐? 너는 생각이 여기에까지 미치느냐?-51쪽

특히 네가 돌아갈 곳이 없어서 처가살이를 하며 어렵고 고생스럽다 하니, 매번 너의 편지를 보고 나면 며칠은 즐겁지가 않구나. 비록 그렇다 하더라도 너 스스로 살아가는 도리로서는 더욱 굳게 스스로를 지키며 분수를 편히 여기고 천명을 기다려야 할 것이다. 그러니 괴로워하거나 탄식하고 싫어하고 원망하는 마음이 뜻밖에 생겨, 잘못된 일을 하여 나무람을 듣게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나도 일찍이 처가살이의 어려움을 잘 알고 있지만 궁핍한 형세가 그렇게 하였을 뿐이었다. 아비가 가난하여 자식도 가난한 것이니 무엇이 이상할 것이 있겠느냐? 내가 내려갈 것이니 모든 일은 만나서 이야기하도록 하자-71쪽

무릇 형제들 사이에는 모든 일을 공평하게 한 후에야 집안의 법도가 허물어지지 않을 것이다. 공평하게 하지 않고도 그 마음이 편안할 수 있는 것은 사람으로서는 어려운 것이다. 네가 이것에 대하여 마땅히 돌이켜 생각하여 말하기를, “내 동생이 받은 노비를 보니 오히려 나보다 부족하구나. 내가 만일 더 받는다면 내 동생은 또 더 부족할 것이다”라고 해야 할 것이다. 형제는 한 몸이니 한 몸이란 것은  역시 마땅히 마음도 하나이다. 내 동생의 부족함을 나의 부족함으로 여긴다면, 우애의 마음이 구름과 같이 일어나 다른 생각이 저절로 소멸되어 없어질 것이다.-72쪽

초상에는 슬픔을 주로 하니 모든 일은『가례家禮』를 참고로 하여 시속에서 행하는 바를 마땅히 물어  힘써 조심하고 다른 사람과 의논하여 나무람을 듣지 않도록 하는 것이 지극히 마땅하고 마땅할 것이다. 더구나 너희들은 모두 너희 어머니의 초상을 치르지 않았으니 이 초상이 바로 너희 어머니의 초상이라는 마음을 가지면 저절로 삼가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어떤 사람은 계모가 친모와 차이가 있다고 하지만 이것은 대개 뜻을 알지 못하며 경솔하게 하는 말로써 사람을 의義가 아닌 것에 빠지게 하는 것으로서 들어서는 안 될 것이다.-81쪽

또한 너희들은 학업은 절대로 내가 없다고 해서 게으름을 피우거나 그만두어서는 안 될 것이다. 거듭 마땅히 십분 분발하여 힘써 부지런히 공부하여 공을 이루기를 밤낮으로 바란다. 뜻있는 선비를 보아라. 어찌 모두 부모형제가 곁에서 보살피고 꾸짖은 후에야 공부를 하느냐? 너희들은 모두 가까이에서 본받을 만한 것을 본받도록 하여야 하나, 의지와 기상이 나태하고 게을러 세월을 유유히 보내고 있으니, 스스로를 버림이 어찌 이보다 더 심함이 있겠느냐? 옛사람이 이르기를 나아가지 않으면 퇴보한다고 하였다. 너희들은 날로 나아갈 줄을 모르니 아마도 날로 퇴보하여 마침내는 쓸모없는 사람이 되고 말까 두렵다.-88쪽

너 혼자서 제사를 모시고 학업을 닦고 널리 집안일을 다스리자니 골몰할 때가 많으리라고 생각한다.  마땅히 옳은 것을 따르고 순리대로 처신하되 평소 뜻한 바와 항상 공부하는 것을 그만두지는 말아야 할 것이다. 만약 세속적인 일에 끌려 학업의 뜻을 그만두게 되면 마침내는 시골의 시대에 뒤떨어진 쓸모없는 사람이 될 뿐이니, 경계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90쪽

대개 나는 항상 나의 병으로 인하여 사람으로서 사람들 사이에 지켜야 할 예의를 매번 지키지 못하는구나. 최근에 큰 변고를 당하였을 때 나의 병 때문에 유명을 달리해도 가보지 못했으니 한스럽기 짝이 없구나. 나 자신을 되돌아볼 때마다 자책감이 들 뿐 되돌릴 길이 없구나. 너도 마침 병을 얻어 분수를 다하지 못하는 고통 역시 나와 같구나. 저 충의 댁의 초상은 그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너는 나의 뜻을 알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그런 까닭에 이 말을 하는 것이다.-141쪽

산소를 보는 일이 이미 끝났거든 곧 절로 올라가서 독서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만약 사람이 할 도리와 남과 교제하기를 다하기를 기다린 뒤에 전적으로 독서를 일로 삼으려고 한다면 날이 거듭 지나더라도 하루도 그러한 날을 얻을 수가 없을 것이다. 네가 생각하기에 삼춘 90일 가운데 며칠간 절에서 독서를 하였으며, 며칠간 사람이 할 도리에 골몰하였느냐? 네가 읽은 바가 몇 권의 책인지도 알지 못하겠고, 지은 바는 다만 시와 부 각 일 편에 그칠 따름이다. 본래 아름답지 않은 바탕으로써 옛 습관을 고치기를 기다리지만, 지리멸렬하기가 이와 같으니 어찌 변화되기를 기다릴 수 있겠는가?-161쪽

같이 공부하는 사람 중에 불행하게도 남을 나쁘게 인도하여 여럿을 망치고 온 집안까지도 망하게 하는 것을 즐겨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니 삼가 그 무리에 빠져들지 말고, 정신없이 그런 자들과 함께 어울리지 않도록 하여라. 또 그 가운데는 유익한 친구도 있어 정중하고 간절하게 충고해 주거든 그런 사람과 비슷하게 될 것을 생각하여서 함부로 경박하게 행동하여 관계를 끊어서는 안 될 것이다.-171쪽

공부하는 날은 적고 세속 일은 많아서 얻었던 것도 곧 잊어버리니 비유하자면 칼 가는 사람이 칼날이 겨우 날램을 보자마자 가는 것을 치우고 마구 써 당장에 무디어지게 하는 것과 같으니, 어찌 옳다고 하겠는가?-178쪽

네가 시험 칠 때 착용할 귀마개는 값이 비싸다고 핑계대고 막동이가 질질 끌기만 하고 바로 구해 오지 않는구나. 시험을 친 후에도 또 겨울이 깊어져 모피들이 아주 적거나 전혀 좋은 물건이 없어서 사러가서도 좋은 물건을 구하지 못하였다. 끝에 가서 다시 임영수林永守로 하여금 간신히 조금 나은 것을 구하였기에 만들어서 보낸다. 네가 몹시 기다릴 것을 알고 있는데 이렇게 늦어졌으며, 또 그렇게 좋은 것도 아니니 안타깝구나. 그러나 일반적으로 착용하는 물건에 대하여 꼭 좋은 것을 구하는 것이야말로 큰 병통이니 이 정도라도 무방할 것이다.-209쪽

네가 비록 일이 많지만 책 읽는 것을 게을리해서는 안 될 것이다. 요컨대 공부는 계속해서 외우는 것과 문장을 짓는 것 두 가지를 한꺼번에 해나가야 효과가 있을 것이다. 금군과 외내의 여러 김씨 자제들이 모두 다 착실하니 너는 모름지기 그들과 서로 의지하고 도움을 받도록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218쪽

식구는 많고 양식은 부족하니 굶주린들 별수가 있겠느냐? 걱정되고 걱정되는구나. 앞서 바꾼 김백영金伯榮 집의 곡식 섬은 보내왔느냐? 금년의 일은 평상시와 같이 처리해서는 안 되고 모름지기 매우 절약할 생각을 해야만 겨우 연명이라도 할 수 있을 것이다.-240쪽

아몽阿蒙이 퇴계로 왔다고 들었다. 그 놈이 읽은 것은 모름지기 하루 이틀 안에 차례대로 익혀 외우게 하고, 매번 한 권을 마칠 때마다 또한 앞서 읽은 것을 복습하도록 하는 것이 지극히 옳을 것이다. 지난번에 이 아이가 오로지 이와 같이 숙독하지 않은 것을 보았는데, 비록 천 권의 글을 읽더라도 끝내 무슨 소득이 있겠는가?-24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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