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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에서 차 한잔 신비의 나라 부탄에서 온 편지

브리타 다스 저 | 이은숙 역 | 문학의숲 | 2011년 0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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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93838145 / 360쪽 138 x 2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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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이 책은
부탄의 동쪽 지역 몽가르로 일 년 동안 자원봉사를 간 캐나다 여성이 전하는 부탄 이야기다. 웅장한 히말라야 설산을 배경으로 훼손되지 않은 본연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한 땅 부탄에서 보낸 일 년 동안의 행복했던 경험, 예기치 않았던 사건 그리고 사람들 이야기를 솔직하면서도 감수성 풍부한 필체로 생생하게 엮어 나간다.

세상 끝 지상낙원으로 불리는 나라 부탄.
아시아에서 가장 가난하면서도,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의 목록에 올라 있는 그곳에서
자원봉사자로 일하며 웃고 울고 사색하며 경험한 다채로운 문화와 살아가는 방식
신비로운 베일을 벗고 진정한 모습을 드러낸 히말라야의 작은 왕국 부탄 이야기


캐나다에서 물리치료사로 일하는 저자는 학창 시절부터 베트남, 인도네시아, 네팔 등지로 배낭여행을 자주 다녔으며, 부탄을 수차례 여행한 아버지와 함께 인도와 네팔을 거쳐 부탄에 이르는 여행을 한 후 새로운 도전을 계획하게 된다. 의료 혜택이 고루 미치지 못하는 부탄에서 물리치료사로 자원봉사를 해 보기로 한 것이다. 1997년, 스물여섯 살의 저자는 영국 대외자선봉사 단체인 VSO의 후원 아래 부탄의 수도 팀푸에 도착한다. 부탄 왕정 복지부는 저자에게 부탄 동부의 몽가르 병원에서 네 명의 물리치료 보조사들을 훈련하는 책임을 맡긴다.
몽가르에 도착하자마자 온몸으로 겪게 된 부탄의 생활 현실은 상상 이상이었다. 벼룩과 쥐는 일상이었고, 물, 전기, 식품, 생필품 등은 돈이 있어도 마음대로 쓸 수 없었다. 병원에서 본 환자들의 치료 상태와 위생은 말문이 막힐 정도였다. 각오는 했지만 그 모든 악조건을 극복할 수 있을지 도저히 자신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꾸스짱 뽀올 라!(안녕하세요!)”
경쾌한 목소리로 인사하며, 잔뜩 겁먹은 저자에게 힘을 실어준 주인공은 그곳 사람들이었다. 가난한 환경과는 별개인 인간애를 지닌 이들이었다. 수줍어하면서도 이방인을 결코 배척하지 않고 어떻게 해서든 차 한잔, 달걀 하나라도 대접하려 애쓰는 인심을 보인 부탄 사람들이 웅대한 자연 경관 이상으로 저자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마을 사람들의 집을 방문할 때마다 저자의 눈에 들어온 것은 집집마다 있는 불단이었다. 불교 국가라 할 만큼 신자가 많은 부탄에서 종교는 일상 자체였다. 사람들은 병원에서 치료를 받으면서도 기도 바퀴(마니차)를 돌리며 ‘옴 마니 밧메 훔(부탄에서 가장 보편적인 기도 문구. 문자 그대로 번역하면 ‘오, 연꽃 속에 있는 보석이여’란 뜻이다. 마니는 ‘보석’을, 밧메는 ‘연꽃’을 뜻하고, 옴은 만물의 시작을 나타내는 소리며 훔은 ‘그렇게 되어지다’는 뜻의 어미다. 훔과 옴은 우주를 나타내기도 한다.)’을 외었고 집에서는 불단의 불상 앞에 항상 향을 피우고 공양물을 올렸다. 곳곳에는 많은 수의 기도 깃발(불교 경전이나 상징물이 인쇄된 긴 천 조각)과 초르텐(불사리탑. 불교 유물이나 보석을 보존하는 불교의 석조 건조물), 종(행정 관청 및 국립 승원으로 쓰이는 요새 겸 사원) 등이 눈에 띄었다.
이러한 부탄인들에게 믿음은 그저 믿음 자체일 뿐, 그 믿음의 대상이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수많은 형상의 불상들에 예불을 올리는 이들은 다르마(부처님의 가르침. 진리)를 따르고 깨달음을 구할 뿐이다.

“이걸 어디서 구하셨어요?”
오래 되어 누렇게 바랜 예수 그리스도의 사진을 가리키며 더듬더듬 샤르촙어로 내가 묻는다. 화려한 불상과 밀교(탄트라 불교라고도 함. 7세기 후반 인도에서 성립한 대승 불교의 한 파)의 몇몇 보살상들과 함께 예수 그리스도의 사진이 불단의 한 공간을 차지하고 있다. 페마의 할아버지는 잠시 생각하더니 대답한다.
“외국의 부처지.” (191쪽)

이 책의 원제는 ‘버터티 앳 선라이즈(Buttertea at Sunrise)’이다. 버터차는 찻잎을 끓인 물에 버터와 소금을 섞어 진한 맛을 낸 부탄의 차로, 저자는 방문하는 집마다에서 이 차를 대접받는다. 처음에는 배에 통증이 일 만큼 거부감이 드는 맛이었지만 곧 익숙해지면서 결국에는 이 차를 좋아하게 되는데 이는 저자가 부탄의 일상에 녹아드는 과정을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

노르부 아마는 기분이 한껏 부풀어 있다. 끊임없이 이야기를 쏟아내며 우리의 찻잔을 채워 준다. 그 차는 뿌옇고, 기름방울들이 둥둥 떠 있다. 나는 조심스레 한 모금 홀짝여 본다. 느끼한 맛이다! 그리고 아주 많이 짭짤하다! 대체 무슨 차가 이런 맛이란 말인가? 노르부 아마가 기대에 찬 표정으로 나를 본다. 나는 억지웃음을 짓는다. 혀와 배 속이 오그라드는 느낌이지만. 내 배는 그 이상한 액체의 역겨움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듯싶다.
“수유차예요.”
비쿨이 알려 준다.
“버터차죠. 전에 마셔 본 적 있어요?”
나는 고개를 가로젓는다.
“괜찮죠?”
그의 물음에 나는 마지못해 동의한다. 차가 아니라 느끼한 수프 같다고 생각하면서 다시 한 번 용기를 내어 한 모금을 마신다.
“여기, 이걸 넣어서 먹어 봐요.”
비쿨이 자오를 한 움큼 집어 내 찻잔에 넣어 준다. 나는 그런다고 맛이 좋아질까 싶은 마음으로 자오를 넣은 차를 흘끔거린다. 입맛이 당기지 않기는 마찬가지이다. 둥둥 떠 있는 쌀알에 밀려 기름기가 안 보이는 것이 그나마 좀 낫다고 할까. 그래도 예의상 다시 한 모금을 마신다. 놀랍게도 맛이 그런대로 괜찮다. 자오를 오도독오도독 씹다 보니 짭짤한 차 맛에 서서히 속이 풀리는 것 같다. 나는 또 한 모금 마신다. 마실수록 맛이 더 좋아진다.
결국 노르부 아마가 몇 번이나 내 찻잔을 채워 줬는지 모를 만큼 많이 마신다. (181-182쪽)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다운 풍광과 따뜻한 사람들에 둘러싸여 있어도 매일이 그저 좋을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저자는 자원봉사를 하는 병원에서 만난 인도인 의사 비쿨과 연인 사이가 되어 든든한 지원군을 얻은 셈이었지만 부탄의 열악한 생활환경은 인내심을 밑바닥부터 흔들어 놓기도 한다. 저자는 이 같은 경험을 이 책에서 매우 솔직하게 풀어 놓는다.

며칠 후, 우기가 다시 돌아온 듯하더니 겨울이 코앞으로 다가온다. 비가 내리는 음산한 날씨에 나는 병이 난다. 창문이 모두 닫힌 내 작은 물리치료실에는 빛이라고는 한줄기도 들어오지 않는다. 수술실에서 들려오는 요란한 발전기 소리가 내 온몸을 뒤흔든다. 귀는 아프고 목은 쑤시고 온몸은 한기에 오들오들 떨린다. 옆방에서 누군가 벽을 쾅쾅 치는 소리에 머릿속에서 드릴 돌아가는 소리가 들린다.
나는 당직실로 가서 간호사들이 아껴 마지않는 장작난로 옆에 자리 잡고 앉는다. 쿠마르가 시무룩한 얼굴로 들어온다. 무슨 일이 있느냐고 묻자 뚱한 대답이 돌아온다.
“물이 안 나와요. 하수관이 고장 났어요.”
그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기타 간호사가 손을 씻던 수도에서 물이 똑똑 방울져 떨어지더니 이내 멈춰 버린다. 이번에는 또 얼마나 오랫동안 물이 안 나올까? 그때 칼리타 선생이 들어와서 큰 소리로 불만을 늘어놓는다. 오늘은 그럴 만도 하다. 물이 안 나오면 수술은 물론 깁스 붕대도 감을 수 없으니.
그날은 전기가 잠깐 들어왔다 나가는 일도 없이 하루 종일 정전이 계속된다. 또 하룻밤을 전깃불 없이 지내야 한다는 생각에 기분이 더 우울해진다. 퇴근 후, 방 한가운데 달려 있는 형광등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데, 나와 함께 집으로 돌아온 비쿨이 내 침대 위에 털썩 앉는다.
“그 더러운 병원 옷을 입고 침대에 앉으면 어떡해요! 일어나요!”
내가 짜증을 내자, 비쿨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나를 올려다본다. 여전히 병원 생각에 빠져 있던 그는 갑작스런 나의 짜증에 놀라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내 베개 위에 그대로 앉아 있다.
“일어나요!”
극도의 분노가 솟구쳐 오른다. 병원에서 본 모습들이 주마등처럼 뇌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육 번 침대에 누워 있던 가여운 소녀 소남의 얼굴이 자꾸 떠오른다. 소남은 결핵약에 대한 알레르기 반응으로 생살이 군데군데 벗겨져 있었다. 수십 마리의 파리들이 윙윙거리며 소남의 주변을 맴돌다가 상처에서 나오는 진득진득한 진물 위에서 잔치를 벌였다. 아마도 소변기에 새까맣게 내려앉아 배를 채웠던 그 파리들이었으리라. 나는 소남의 몸에서 나는 악취를 참으면서 몇 번이나 팔을 휘둘러 파리들을 쫓았다. 소남의 엄마는 급기야 그 성가신 곤충들로부터 가여운 딸을 지키고자 시체를 덮듯 소남을 시트로 푹 덮었다.
“최소한 내 침대만이라도 깨끗하게 하고 싶어요. 이해 못 하겠어요?”
나는 소리를 지르며 한달음에 방을 가로질러 가 비쿨을 침대에서 끌어내린다.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린다. 비쿨의 더러운 의사 가운이 눈에 들어오자, 청소할 때 본 너무나도 끔찍했던 병실의 광경이 떠오른다. 시커먼 구정물에 둥둥 떠 있던 온갖 오물과 쓰레기들이 하수구로 휩쓸려 내려가던 모습이.
“정말 미안해요.”
비쿨이 나를 와락 껴안으며 눈물 젖은 내 뺨에 부드럽게 입을 맞춘다.
“집에 가서 옷 갈아입고 올게요. 그럼 되죠?”
나는 소리 내어 흐느끼며 고개를 끄덕인다.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어요.”
생각지도 않은 말이 새어 나온다. (270-271쪽)

미사여구로 포장하지 않고 애써 상황을 합리화하지도 않으며 아주 솔직하게 자신이 경험한 내용을 들려주는 저자의 이야기는 신비의 나라 부탄의 모습을 생생하게 있는 그대로 보여 준다. 부탄에서의 생활이 일 년이 채 안 된 시점에 저자는 원인 모를 복통에 시달려 몇 주를 앓게 된다. 태국 방콕의 병원에까지 실려 가고 결국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이 좋겠다는 권고를 받는다. 의사의 충고를 무시하고 몽가르로 돌아가 두 달의 요양 끝에 병원에 복귀하지만 몸이 회복되지 않아 결국 삼 주 만에 일을 그만두고 캐나다로 돌아가기로 한다. 그리고 10년 후, 그때의 경험을 이 책 한 권에 담아냈다.
낯선 곳에서의 새로운 생활은 많은 것을 얻게 한다. 저자도 마찬가지였고, 이 책을 읽는 독자도 직접은 아니지만 저자의 경험을 충분히 나눌 수 있을 것이다. 개발의 바람 속에 변화가 계속되는 부탄을 떠올리며 ‘히말라야의 호젓한 왕국의 신비로운 풍경과 수백 년 동안 이곳 사람들을 지탱해 온 불교의 참모습을 다시 볼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품기도 하지만, 저자에게 있어 부탄은 여전히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옴’ 소리다.


부탄
입헌 군주국. 면적은 38,394㎢(한반도의 약 5분의 1), 인구는 약 683만 명이며 불교 신도가 전체 인구의 75퍼센트에 이른다. 1인당 국민소득은 1,880달러로 아시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이지만, 국민총생산(GNP) 대신 국민총행복(GNH, Gross National Happiness) 정책을 내걸고 물질주의로 충족될 수 없는 정신적 행복을 추구한다는 기치 아래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발전을 추구하는’ 태도를 거부한다.
GNH는 전 부탄 국왕 지그메 싱계 왕추크가 1970년대, 국민총생산을 대신해 고안한 개념이다. 부탄 정부가 내놓은 행복 측정 공식에 따르면 행복 측정의 기준은 경제, 문화, 환경, 정부의 4개 항목과 심리적 복지, 건강, 문화, 시간 사용 등 9개 영역으로 이루어지며 각각은 다시 72개의 척도에 따라 분석되는데 예를 들어 심리적 복지의 경우에는 명상의 빈도, 이기심, 질투, 자살 욕구 등의 척도에 따라 측정된다.
부탄 정부는 전통 생활양식과 자연을 보호하기 위해 외국인 입국을 한 해에 7,500명으로 제한하고 있으며 일인당 하루 체재비 200달러를 부과하고 있다. 또한 세계 최초로 담배 판매를 금지했으며 기계보다 사람이 효율적이라는 이유로 교통신호등을 설치하지 않는다(수도 팀푸에 잠시 신호등이 개설되었으나 곧 철수하였다).
2006년 영국 레스터대학이 178개 국가 8만 명을 대상으로 한 삶의 만족도 조사에서 8위에 오르는 등 행복지수가 높은 국가의 하나로 손꼽혀 왔다.
1999년 6월 1일, 외국 자본의 도움에 힘입어 인터넷을 도입함으로써 매스미디어를 개방했고, 처음으로 텔레비전과 위성 안테나를 합법화했다. 그와 함께 대중문화가 일부 개방되면서 인도 가요와 할리우드 액션 영화들이 수입돼 큰 인기를 얻고 있다. 또한 곳곳에 도로를 내고 시장을 정비하는 등 개발을 통한 변화가 계속되고 있다.

저자 소개

  • 저자 : 브리타 다스
저자 : 브리타 다스 (Britta Das)
독일에서 태어나 열네 살에 가족과 함께 캐나다 토론토로 이주하였다. 캐나다 웨스턴온타리오대학에서 물리치료 부문 학위를 받았고, 인도, 네팔, 부탄, 베트남, 태국, 인도네시아 등지로 배낭여행을 다녔다. 1997년 영국 대외자선봉사 단체인 VSO의 후원 아래 물리치료사로 부탄에 들어가 경험한 내용을
<히말라야에서 차 한잔>
에 담아 펴냈다. 2011년 현재 토론토에서 남편, 두 딸과 함께 지내면서 물리치료사 일을 계속하고 있다.  


역자 : 이은숙
영화, 다큐멘터리, 애니메이션 등 다양한 매체의 작품을 번역했으며, 현재는 출판 기획·번역 네트워크 '사이에' 위원으로 활동하며 좋은 외서를 국내에 소개, 번역하는 일에 힘쓰고 있다. 옮긴 책으로는 <핑거북, 나를 말하는 손가락>, <히말라야에서 차 한 잔>, <스파르타 이야기>, <호감이 전략을 이긴다>, <공정무역이란 무엇인가>, <20세기 최고의 탐험가 어니스트 섀클턴> 등이 있다.  

역자 소개

  • 역자 : 이은숙
EBS를 비롯한 텔레비전 방송에서 영화, 다큐멘터리, 애니메이션 등을 번역하였으며
현재는 출판 기획·번역 네트워크‘사이에’의 위원으로 도서 번역에 주력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핑거북, 나를 말하는 손가락>, <안녕, 엠마>가 있다.

책 속에서

노르부 아마는 기분이 한껏 부풀어 있다. 끊임없이 이야기를 쏟아내며 우리의 찻잔을 채워 준다. 그 차는 뿌옇고, 기름방울들이 둥둥 떠 있다. 나는 조심스레 한 모금 홀짝여 본다. 느끼한 맛이다! 그리고 아주 많이 짭짤하다! 대체 무슨 차가 이런 맛이란 말인가? 노르부 아마가 기대에 찬 표정으로 나를 본다. 나는 억지웃음을 짓는다. 혀와 배 속이 오그라드는 느낌이지만. 내 배는 그 이상한 액체의 역겨움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듯싶다.
“수유차예요.”
비쿨이 알려 준다.
“버터차죠. 전에 마셔 본 적 있어요?”
나는 고개를 가로젓는다.
“괜찮죠?”
그의 물음에 나는 마지못해 동의한다. 차가 아니라 느끼한 수프 같다고 생각하면서 다시 한 번 용기를 내어 한 모금을 마신다.
“여기, 이걸 넣어서 먹어 봐요.”
비쿨이 자오를 한 움큼 집어 내 찻잔에 넣어 준다. 나는 그런다고 맛이 좋아질까 싶은 마음으로 자오를 넣은 차를 흘끔거린다. 입맛이 당기지 않기는 마찬가지이다. 둥둥 떠 있는 쌀알에 밀려 기름기가 안 보이는 것이 그나마 좀 낫다고 할까. 그래도 예의상 다시 한 모금을 마신다. 놀랍게도 맛이 그런대로 괜찮다. 자오를 오도독오도독 씹다 보니 짭짤한 차 맛에 서서히 속이 풀리는 것 같다. 나는 또 한 모금 마신다. 마실수록 맛이 더 좋아진다.
결국 노르부 아마가 몇 번이나 내 찻잔을 채워 줬는지 모를 만큼 많이 마신다. (181-182쪽)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다운 풍광과 따뜻한 사람들에 둘러싸여 있어도 매일이 그저 좋을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저자는 자원봉사를 하는 병원에서 만난 인도인 의사 비쿨과 연인 사이가 되어 든든한 지원군을 얻은 셈이었지만 부탄의 열악한 생활환경은 인내심을 밑바닥부터 흔들어 놓기도 한다. 저자는 이 같은 경험을 이 책에서 매우 솔직하게 풀어 놓는다.

며칠 후, 우기가 다시 돌아온 듯하더니 겨울이 코앞으로 다가온다. 비가 내리는 음산한 날씨에 나는 병이 난다. 창문이 모두 닫힌 내 작은 물리치료실에는 빛이라고는 한줄기도 들어오지 않는다. 수술실에서 들려오는 요란한 발전기 소리가 내 온몸을 뒤흔든다. 귀는 아프고 목은 쑤시고 온몸은 한기에 오들오들 떨린다. 옆방에서 누군가 벽을 쾅쾅 치는 소리에 머릿속에서 드릴 돌아가는 소리가 들린다.
나는 당직실로 가서 간호사들이 아껴 마지않는 장작난로 옆에 자리 잡고 앉는다. 쿠마르가 시무룩한 얼굴로 들어온다. 무슨 일이 있느냐고 묻자 뚱한 대답이 돌아온다.
“물이 안 나와요. 하수관이 고장 났어요.”
그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기타 간호사가 손을 씻던 수도에서 물이 똑똑 방울져 떨어지더니 이내 멈춰 버린다. 이번에는 또 얼마나 오랫동안 물이 안 나올까? 그때 칼리타 선생이 들어와서 큰 소리로 불만을 늘어놓는다. 오늘은 그럴 만도 하다. 물이 안 나오면 수술은 물론 깁스 붕대도 감을 수 없으니.

그날은 전기가 잠깐 들어왔다 나가는 일도 없이 하루 종일 정전이 계속된다. 또 하룻밤을 전깃불 없이 지내야 한다는 생각에 기분이 더 우울해진다. 퇴근 후, 방 한가운데 달려 있는 형광등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데, 나와 함께 집으로 돌아온 비쿨이 내 침대 위에 털썩 앉는다.
“그 더러운 병원 옷을 입고 침대에 앉으면 어떡해요! 일어나요!”
내가 짜증을 내자, 비쿨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나를 올려다본다. 여전히 병원 생각에 빠져 있던 그는 갑작스런 나의 짜증에 놀라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내 베개 위에 그대로 앉아 있다.
“일어나요!”
극도의 분노가 솟구쳐 오른다. 병원에서 본 모습들이 주마등처럼 뇌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육 번 침대에 누워 있던 가여운 소녀 소남의 얼굴이 자꾸 떠오른다. 소남은 결핵약에 대한 알레르기 반응으로 생살이 군데군데 벗겨져 있었다. 수십 마리의 파리들이 윙윙거리며 소남의 주변을 맴돌다가 상처에서 나오는 진득진득한 진물 위에서 잔치를 벌였다. 아마도 소변기에 새까맣게 내려앉아 배를 채웠던 그 파리들이었으리라. 나는 소남의 몸에서 나는 악취를 참으면서 몇 번이나 팔을 휘둘러 파리들을 쫓았다. 소남의 엄마는 급기야 그 성가신 곤충들로부터 가여운 딸을 지키고자 시체를 덮듯 소남을 시트로 푹 덮었다.
“최소한 내 침대만이라도 깨끗하게 하고 싶어요. 이해 못 하겠어요?”
나는 소리를 지르며 한달음에 방을 가로질러 가 비쿨을 침대에서 끌어내린다.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린다. 비쿨의 더러운 의사 가운이 눈에 들어오자, 청소할 때 본 너무나도 끔찍했던 병실의 광경이 떠오른다. 시커먼 구정물에 둥둥 떠 있던 온갖 오물과 쓰레기들이 하수구로 휩쓸려 내려가던 모습이.
“정말 미안해요.”
비쿨이 나를 와락 껴안으며 눈물 젖은 내 뺨에 부드럽게 입을 맞춘다.
“집에 가서 옷 갈아입고 올게요. 그럼 되죠?”
나는 소리 내어 흐느끼며 고개를 끄덕인다.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어요.”
생각지도 않은 말이 새어 나온다. (270-27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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