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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93905496 / 368쪽 145 x 2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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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농담하는 세속에 대응하는 법
어긋남이거나 어긋냄이거나
왜 어긋남이고 어긋냄인가
철학자 김영민의 신간 『세속의 어긋남과 어긋냄의 인문학』이 나왔다. 크고 작게 어긋낸 제목 글자에서도 강조되어 있듯, 이번 책은 ‘어긋남과 어긋냄’이라는 인문학하기의 내재적 논리를 일관되게 탐색해나가는 촌철살인의 짧은 글들로 이루어져 있다.
무엇이 어긋남이고 어긋냄인가? 저자는 어긋남이 “하는 일마다 어긋난다”는 식의 일개의 불운한 사건이나 현상이 ‘아니’라고 못 박는다. 어긋남은 우리가 어긋날 수밖에 없는 매우 끈질긴 ‘구조’이며, 세속이란 그 구조와 구성적으로 연루된 인간들의 관계, 그 총체성을 가리킨다. 저자는 인문학이 이 어긋남에 대한 이론적 관심이며, 더불어 그 상처와 어리석음을 다루는 실천의 노동이라고 본다.
이 노동의 성격은 바로 ‘어긋냄’이란 단어가 대변한다. 어긋냄은 단순히 어긋남의 피동성과 우연성을 적극성과 의도성으로 바꾼 말장난이 아니다. 그것은 어긋남의 구조를 관찰해서 그 처참하거나 당혹스러운 존재의 진실을 드러내는 바로 그 ‘작용’이며, 나아가 어긋남의 구조를 균열시키거나 가로질러 다닐 수 있는 ‘인문人紋의 다리’를 놓는 일이다. 따라서 이 책의 제목을 다시 풀이해보면 “너희가 어긋내지 않고 어찌 어긋남을 알 것이며, 어긋내지 않으면서 어찌 어긋나지 않게 살 수 있겠느냐” 쯤이 되지 않을까.
이 책은 각각 20~30편의 작은 글들로 이뤄진 5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뒤의 글들이 앞선 글들의 화두를 붙들고 늘어지는 식으로 점점 의미를 확장하고, 증거를 보충하면서 책의 전체 그림이 완성된다.
대체적으로 볼 때 1장은 ‘어긋남’이 왜 구조이고 인문학의 탐구영역인지를 보여주고 있으며 2장은 그 어긋남을 글쓰기를 통해 ‘재서술’하는 다양한 양상들을 보여준다. 3장은 구조로서의 ‘어긋남’이 어떻게 총체적 난국을 구성하고 있는지에 대한 파란만장한 현상학이며 4장은 완고하게 구조화된 체계 속에서는 욕망보다 먼저 ‘환상’이 존재하며 체계가 뿌려대는 그 ‘환상’이라는 레이저빔을 피해서 살아남는 인문학 실천의 지혜를 모색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5장은 더 나아가 환상보다 먼저 존재하는 듯 보이기도 하고 환상과 짝패를 이룬 것으로 보이기도 하는 ‘모방’에 대해서 르네 지라르의 이론과 더불어 사유하고 있다. 저자는 그 과정에서 ‘문학’이라는 공간이 갖는 중요성을 누누이 강조한다. 결국 이 책은 인문학이란 것이 세속의 어긋남의 구조를 파악한 뒤, 그 구조를 ‘자연’으로 받아들이는 ‘상식’ 혹은 ‘신념’의 인간들 사이에서, 그들의 일상을 지배하고 전염되어 넘치는 ‘환상’과 ‘모방’과 싸우는 ‘문학적 글쓰기(재서술)’의 과정을 보여준다.
보고 느끼고 생각한 것만으로는 ‘아무 것도 아니며’ 그것은 ‘공부’가 될 수 없고, 반드시 로티 식의 ‘재서술’의 과정을 거쳐야 하고, 종이 위에 들뢰즈처럼 ‘차이 나게 반복’해야 비로소 깨달음의 실체를 갖는 것이라는 점도 이 책을 관통하는 실천적 테마이다.
완벽하게 썩지 않기 위해 인문학이 필요하다
1장에 저자의 체험을 이론과 연결시킨
<노암 촘스키의 코>
라는 흥미로운 글이 있다. 아래에서 그 일부를 인용한다.
“일기에는 2005년 11월 27일로 명기되어 있다. 그날 스필버거의 「AI」(2001)를 보면서 우연찮게 헨리(극중의 아버지)의 코에 주목했는데, 그것은 내 매제妹弟인 독일인 베안드(Bernd Sturmfels)의 코와 너무나 흡사했기 때문이었다. 최소한 ‘나’는 헨리의 코와 베안드의 코가 빼다 박은 듯이 닮았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또 다른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아니, ‘생각’ 따위를 하지 않았던 것! 그날 밤의 꿈에 느닷없이 촘스키(Noam Chomski)가 나타났다. 내 꿈에 처음 나타난 촘스키는 특정한 각도로 얼굴을 돌려 자신의 코를 내게 찬찬히 보여주었는데, 아, 나는 꿈속에서도 찬탄을 금치 못했다. 잠에서 깬 나는 곧장 촘스키의 사진들을 찾아가며 그의 코를 유심히 살폈는데, 그 코는 영락없는 헨리의 코였다. 진실은 베안드가 아니라 촘스키라는 사실을, 생각하는 나가 아니라 생각하지 않는 나라는 사실을, 자인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또 다른 나, 혹은 내 무의식은 나와 종종 어긋나며, 그것(그분!)은 내 ‘생각’의 바깥에서 나와 다르게 ‘생각’하고 있(지 않다)는 것! 그 생각하지 않는 생각 속의 진실은 내 생각을 단숨에 깨뜨린다는 것!” _ 본문 46~47쪽
프로이트 이후 ‘나’라는 것이 의식과 무의식으로 분열된 존재라는 사실은 익히 알려졌다. 저자는 더 나아가 이것을 ‘분열’이 아니라 일종의 ‘사유의 뫼비우스의 띠’처럼 구조화해서 보여준다. 즉 “생각하지 않는 생각 속의 진실은 내 생각을 단숨에 깨뜨린다는 것”이 바로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다. 때로는 ‘생각’이 ‘생각하지 않는 것’보다 진실에서 멀어져 있다는 것, 그렇게 나는 내 안에서 어긋나 있다는 것, 이 어긋남의 구조는 바로 ‘자아에 대한 무지無知’라는 각성을 낳고 그 각성 속에서야 비로소 우리는 잠깐 동안 명멸明滅하는 진리의 일단을 체험하게 된다는 것이다. 저자는 진리는 늘 자아라는 방석 밑에 깔려있다가 그 자아라는 고무줄을 끊어버리는 순간(자아의 무지를 깨닫는 순간) 과거에서 현재로 급진急進하면서 내가 나와 만나게 한다(본문 79쪽)고 강조한다.
혹자는 궁금할 수 있다. 그 어긋남을 발견하고 재서술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고, 어떤 대안이 될 수 있느냐고 말이다. 즉, 어긋남을 발견하고 깨달아 나갈수록 자신의 철저하게 체계에 속박되어 있다는 것을 느낄 때, 체계의 바깥은 없다는 것을 느낄 때 과연 그 체계를 부정해야 하는가 아니면 그 체계에서 완전히 사라져야 하는가. 이에 대해 저자는 “‘급진화된 지식’(이 책의 맥락 속에서라면 진정한 앎)조차도 체계 속에 내재화되고 만다. 그러나 새로운 내재화의 여백이라도 있을 때라야 체계는 완벽하게 썩지 않는다”(본문 90쪽)라고 대답한다.
인문학 유행 시대의 인문학
요즘처럼 인문학이 일대 유행이 된 적은 근래에 없었던 일인 듯하다. 서로 내포하는 의미가 다른 다양한 인문학들이 백가쟁명하고 있는지 아니면 유행으로 획일화의 길을 걷는 것인지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인문학이 체계 안으로 내재화하는 일을 반드시 동반하고 있다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고전교양+시사교양’의 버무림 정도 되는 ‘인문학의 이미지’가 스펙처럼 출사의 조건이나 허영의 매뉴얼처럼 교환되는 사태가 바로 그것이다. 그런 점에서 김영민의 이번 책은 인문학의 조건이 ‘불화’와 ‘비판’과 ‘각성’에 있다는 점을 다시 한번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인문학은 결코 우리를 따뜻하게 쳐다보지 않는다. 그것과 더불어 걷는 길은 고행이다.
노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