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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저절로 좋아지지 않는다

한상권 저 | 너머북스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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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94606026 / 456쪽 148 x 2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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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출판사 서평 역사학자, 닫힌 교문 앞에 서다 작지만 큰 이야기, 나의 시대 나의 기록 이 책은 저자가 덕성여대에서 해직된 1997년부터 박원국 덕성여대 이사장의 연임이 좌절된 2001년까지 5년 동안 일어난 일들에 관한 이야기다. 이 기간에 덕성여대에는 교육부 특별감사 두 차례, 국회 교육위원회 국정감사 네 차례, 관선이사가 세 차례 파견되었다. 또한 직무대행을 포함해 이사장이 일곱 명, 총장이 다섯 명 교체되었다. 덕성학원 이사장 임기가 5년인 점을 감안할 때, 직무대행을 제외하고 이사장이 다섯 번 교체된 5년의 기간은 평화로운 시기... 역사학자, 닫힌 교문 앞에 서다 작지만 큰 이야기, 나의 시대 나의 기록 이 책은 저자가 덕성여대에서 해직된 1997년부터 박원국 덕성여대 이사장의 연임이 좌절된 2001년까지 5년 동안 일어난 일들에 관한 이야기다. 이 기간에 덕성여대에는 교육부 특별감사 두 차례, 국회 교육위원회 국정감사 네 차례, 관선이사가 세 차례 파견되었다. 또한 직무대행을 포함해 이사장이 일곱 명, 총장이 다섯 명 교체되었다. 덕성학원 이사장 임기가 5년인 점을 감안할 때, 직무대행을 제외하고 이사장이 다섯 번 교체된 5년의 기간은 평화로운 시기의 25년에 해당한다. 그만큼 덕성 민주화 운동은 치열했다. 65일간의 전교생 수업거부, 260일간의 총장실 점거를 포함하여 2,555명의 전국 지식인 서명 및 기자회견, 재단 항의방문, 성금모금, 가두시위 등 질풍과 노도처럼 일어났던 이 싸움은 1999년 한상권 교수의 복직과 2001년 박원국 이사장의 퇴진이라는 유례없는 결과를 낳았다. 한상권 교수의 부당한 재임용탈락으로 촉발된 이 사건은 불합리한 교수재임용 제도에 대한 불복종 운동이었고, 대학이라는 공공재를 사유화하여 전횡을 일삼았던 사학재단에 대한 거부운동이었다. 이 한가운데 이 책의 저자인 한상권 교수가 있었다. 부당한 재임용탈락을 철회하기 위해 싸우던 한상권 교수는 ‘학교가 조용해질 때까지 일 년 동안 해외에 나가 있을 것’을 전제로 한 복직제의를 거절했다. ‘언제’가 아니라 ‘어떻게’ 복직되느냐가 학원민주화를 위해 싸워온 학생들과 동료 교수들을 위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학내외의 학생, 지식인, 여러 단체들의 연대를 통해 한상권 교수의 복직투쟁은 교수들의 교수권과 학생들의 수업권, 직원들의 노동권을 요구하는 전면적인 권리투쟁으로 승화되었다. 이 책은 힘없는 개인들이 연대와 단결을 위해 노력했던 모든 몸짓들을 꼼꼼히 기록하여 개인의 복직 및 교수 재임용제의 개선, 구재단의 퇴진, 인사행정과 학사행정의 민주화 등에서 끈질기게 불의에 저항한 모든 사람들의 승리임을 증명하고 있다. 또한 이 싸움은 덕성학원의 뿌리를 되찾으려는 기억투쟁이었다. 덕성학원의 뿌리가 친일파 송금선이 아니라 독립운동가인 차미리사에 있다는 것을 밝혀내고, 재단이 주장해온 ‘설립자의 권리’가 근거 없다는 것을 증명했다. 기억투쟁의 기록을 바탕으로 한상권 교수는 2008년 ‘차미리사평전’을 펴내고 ‘차미리사 가치’와 ‘송금선 가치’ 사이의 대립에 종지부를 찍었다. 덕성민주화운동은 우리 사회가 친일파에 의해 오염된 역사를 청산할 능력이 있는지를 시험하는 무대이기도 했던 것이다. 전례가 없는 일을 해냈을 때 ‘역사를 만들었다’고 한다. 그 ‘역사’는 다양한 방식으로 기록된다. 그렇게 기록된 한 시대를 분석하고 종합하는 작업을 하는 사람이 역사학자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역사를 만들고’, 수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기록하고, 또 수많은 사람들이 그 기록을 분석하고 종합하지만, 이 모든 것을 한 사람이 해낸 경우는 무척 드물다. 이 책은 개인인 한상권 교수가 부당한 압력과 불의에 대항하며 만든 ‘역사’를, 기록자인 한상권 교수가 정리한 다섯 권의 ‘투쟁백서’를 자료로 하여, 역사학자인 한상권 교수가 분석하고 종합한 우리 시대 역사의 한 단편이다. 한상권 교수는 한 시대를 살아가는 개인으로서는 치열하고, 시대를 증언하는 기록자로서는 부지런하며, 그 기록을 분석하고 종합하는 역사학자로서는 철저하였다. 자신이 한가운데 있었던 덕성민주화 투쟁을 다루면서도, “역사가는 사실을 원래 있었던 그대로 보여주기 위해 기록에 근거하고 정확히 서술하려고 노력하였다. 그러나 주관적 인식인 ‘서술된 역사’가 객관적 존재인 ‘본래의 역사’와 완전히 부합할 수는 없다.”라는 실증주의 역사학자 랑케의 말을 통해 학자적인 냉정한 시선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가 살아가는 지금은 수많은 사람들의 눈물과 희생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우물물을 마시기 전에 우물을 판 사람의 수고를 기억해야 한다. 『세상은 저절로 좋아지지 않는다』는 올곧은 세상을 염원했던 수많은 영혼의 희생을 ‘기억할 의무’가 우리에게 있다는 것을, 낮지만 굵은 목소리로 일깨워준다. 2010년 8월 교육과학기술부 산하 사학분쟁조정위원회(사분위)가 상지대의 운영 정상화를 추진하면서 구재단 측에서 추천한 정이사 4인을 승인했다. 같은 달 교과부가 사분위의 의결 내용을 최종 승인하면서 17년 만에 구재단이 상지대에 복귀했다. 조선대, 세종대에 이어 세 번째 구재단 복귀 결정이었다. 지난 9월로 임시이사 임기가 만료된 덕성여대도 사분위의 결정을 앞두고 있다. 구재단 측은 전 이사장과 그 가족들을 포함한 이사진 복귀 안을 교과부에 제출해 놓은 상태이다. 5년에 걸친 치열한 학원민주화 투쟁으로 덕성학원에서 구재단이 물러난 것이 2001년. 덕성여대 구성원들은 10년 만에 다시 차가운 거리에서 언제 끝날지 모르는 싸움을 준비하고 있다. 역사학자, 나의 시대를 기록하다 “상식의 회복을 위한 기억의 투쟁” -저자 인터뷰 학내 갈등의 원인과 싸움의 성격은? 덕성민주화운동은 빼앗긴 권리를 되찾으려는 ‘권리투쟁’과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으려는 ‘기억투쟁’, 두 가지 방향으로 진행되었다. 내가 해직된 후 ‘동토의 왕국’이라 불리던 덕성에서 기본권을 되찾으려는 ‘권리투쟁’이 일어났다. 사회의 공기(公器)인 대학을 사유물로 여긴 이사장의 그릇된 교육관 때문에 일어난 저항이었다. 재단 이사장에게 초법적인 권한을 부여한 사립학교법이 그의 일탈된 행동을 뒷받침해주고 있었다. 어느 사립대학보다도 낮은 급여와 열악한 근무조건, 끊임없이 발생하는 부당한 해직, 비싼 등록금에 턱없이 못 미치는 낙후된 교육시설, 무분별한 학부제 시행 등 암울한 교육환경에 맞서 교수, 직원 그리고 학생은 빼앗긴 교육권ㆍ학습권ㆍ노동권을 되찾기 위해 일어섰다. 박원국 이사장은 자신을 ‘교주(校主)’, 즉 학교의 주인이라고 일컬었다. 학교가 자신의 사유재산이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사립학교의 자주성을 확보하고 공공성을 앙양할 목적”으로 제정된 사립학교법에는 설립자의 소유 관념이 없다. 교육은 공공재(公共財)이기 때문이다. 덕성민주화운동은 대학을 사유물로 볼 것인가, 공공재로 볼 것인가라는 가치관 사이의 갈등이기도 했다. 기존의 질서에 대한 도전은 그 지배질서에 내재하고 있는 가치 체계나 구조를 무너뜨리지 않으면 성공할 수 없다. 이러한 의미에서 ‘기억투쟁’은 중요하다. 덕성학원은 모자 세습에서 형제 세습으로, 형제 세습에서 다시 부자 세습으로 이루어진 전형적인 족벌 세습재단이었다. 게다가 덕성학원 설립자라고 일컬어지는 송금선은 친일파, 즉 반민족행위자였다. 덕성학원은 단순한 족벌 재단이 아니라 친일 족벌 재단이었던 것이다. 덕성인은 기억을 둘러싼 투쟁 끝에 덕성학원 설립자가 친일파 송금선이 아니라 독립운동가 차미리사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그 결과 덕성여대는 친일 족벌 사학의 오명을 벗고 정통 민족 사학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었다. ‘차미리사 가치’와 ‘송금선 가치’ 사이의 대립은 독립운동가와 친일파 간의 반세기가 넘는 긴 싸움의 연장이기도 하다. 그리고 덕성민주화운동은 우리 사회가 친일파에 의해 오염된 역사를 청산할 능력이 있는지를 시험하는 무대이기도 했다. 법치국가에서 해직의 부당함을 법에 호소하지 않고 사회적인 형태로 저항한 까닭은? 나는 복직을 법에 호소하지 않았다. 사립학교법이 “교원을 기간을 정하여 임용할 수 있다.”라고 규정했을 뿐, 재임용의 의무나 절차, 요건 등을 법령으로 규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재임용의

저자 소개

  • 저자 : 한상권
저자 한상권은 1953년 충청남도 홍성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 국사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학위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양심수후원회 운영위원,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 부위원장, 한국역사연구회 회장 등을? 역임하였다. 현재 덕성여대 사학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학생들과 배움을 주고받고 있다.
‘인간의 권리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가 차별과 억압에 맞서 싸우는 과정을 통해 쟁취하는 것’이라는 문제의식으로 역사 속에서 기층민들의 권리의식이 성장해가는 모습을 추적하는 연구를 진행하여,『조선후기 사회문제와 소원訴?제도─상언上言·격쟁擊錚연구』(일조각)로 1998년 월봉저작상을 수상하였다.
덕성학원 민주화운동에 참여하여 징계를 받고 해직되었으나 전국 대학 교수들의 복직촉구 서명과 덕성 구성원들의 복직운동에 힘입어 2년 만에 복직되었다. ‘민주화운동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가 1991년의 징계와 1997년의 해직은 덕성학원의 권위주의적 통치에서 비롯된 것이라 하여, 2005년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인정하였다. 해직을 계기로 덕성여대 역사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여, 덕성학원이 독립운동가 차미리사가 세운 민족사학이라는 사실을 뒤늦게 발견하고 관련 사료를 모아, 2008년『차미리사평전-일제강점기 여성해방운동의 선구자』(푸른역사)를 집필하였다.

목차

목차
머리말 과거를 기억하는 것은 더 나은 미래를 꿈꾸기 때문이다
1 어버이날 받은 편지
2 새 교수님 필요 없다. 한 교수님을 돌려 달라!
3 나는 멋대로, 너는 법대로
4 조祖교수, 부父교수
5 월봉저작?상 받은 ‘좌익교수’
6 추적60분
7 땅에서 넘어진 사람, 땅을 짚고 일어서야 한다
8 감히 이사장님의 이름을 거명하다니
9 주인과 머슴이 싸우면 누가 이기는가
10 그 어떤 시기도 덕성에서 보낸 7개월 만큼 길고 힘들지는 않았습니다
11 하늘이 통곡할 일이에요
12 이제 저는 떳떳한 F학점을 받겠습니다
13 재임용탈락 교수의 ‘장외 수업’
14 “한상권 교수 복직”
15 애타는 강단 복귀, 뒷거래는 사절
16 우리가 가는 길이 역사다!
17 기억을 둘러싼 투쟁
18 구속영장이 청구됐습니다
19 물러날 때까지 물러서지 않겠다
20 올해의 인물, 덕성 사람들
글을 마치며
덕성여자대학교 민주화운동일지(1986~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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