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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71994085 / 300쪽 153 x 2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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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서평 강제병합 100주년, 망국(亡國)의 역사에 대한 복기와 성찰 저자는 이미 『밖에서 본 한국사』,『뉴라이트 비판』을 통해 우리 사회의 국수주의적 역사관을 비판했던 역사학자. 그가 이번에는 경술국치 100년을 맞아 ‘망국’(亡國)이라는 화두로 조선의 실패를 유교 정치의 좌절과 동아시아 문명 전환의 관점에서 짚어냈다. 이 책은 17세기부터 1910년까지 총 3부에 걸쳐 조선의 쇠퇴와 망국 과정을 살핀다. 그동안 우리 사회는 조선의 망국 원인을 두고 신채호 같은 한말·일제 때의 많은 지식인들이 주장한 유교 망국론, 이에 대한... 강제병합 100주년, 망국(亡國)의 역사에 대한 복기와 성찰 저자는 이미 『밖에서 본 한국사』,『뉴라이트 비판』을 통해 우리 사회의 국수주의적 역사관을 비판했던 역사학자. 그가 이번에는 경술국치 100년을 맞아 ‘망국’(亡國)이라는 화두로 조선의 실패를 유교 정치의 좌절과 동아시아 문명 전환의 관점에서 짚어냈다. 이 책은 17세기부터 1910년까지 총 3부에 걸쳐 조선의 쇠퇴와 망국 과정을 살핀다. 그동안 우리 사회는 조선의 망국 원인을 두고 신채호 같은 한말·일제 때의 많은 지식인들이 주장한 유교 망국론,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서양인들의 한국 발전의 비결로 꼽는 ‘유교 자본주의론’이 엎치락뒤치락했다. 망국의 원인을 내부에서 찾으려는 경향조차 우리 민족에 대한 자부심을 꺾으려는 식민사관으로 간주하여, 대한제국기와 고종을 과대평가하는 자위(自慰) 사관으로 흐르는 경향도 보였다. 이런 논란의 흐름 속에 아직도 조선의 망국에 대한 결론을 제대로 내리지 못하고 여전히 같은 수준에서 머물러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 점에서 강제병합으로부터 한 세기, 해방으로부터 두 세대가 지난 지금 시점에 출간된 이 책은 각별한 의미를 갖는다. 민주화·경제성장의 성취를 통해 자부심을 갖게 된 우리 사회가, 이젠 과거 식민 지배의 트라우마를 걷어내고 100년 전 망국의 과정을 냉정하게 읽어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에 저자가 주목하는 것은 망국의 귀결보다는 그에 이르는 과정이다. 저자는 그동안 우리 사회가 일제에 의해 조선이 망한 결과에만 주목했지 무너지는 과정 자체를 복기하는 데는 소홀했다고 주장한다. 일제가 조선을 식민지로 만든 것은 당연히 비난받을 일이지만, 강제병합이라는 결과만으로 조선 망국의 모든 책임을 일제에 지우는 것은 조선 망국의 의미를 다양한 각도에서 바라볼 기회를 빼앗고 있다는 지적이다. 저자가 보기에 조선이 망국에 이르는 과정은 17세기부터 이어진 유교 정치의 쇠락과 지배층의 권력 사유화, 그리고 서세동점이라는 문명사적 전환이라는 배경이 맞물려 있었고, 1910년 강제병합은 그 귀결이었다. 결국 일제의 조선 망국 책임론은 식민 지배의 피해자인 우리 민족 구성원들에게 분노를 쏟아낼 출구는 만들어줄지언정, 스스로 망국에 대한 내부적 진단과 성찰을 방기하는 결과를 낳고 있다는 비판이다. 유교 정치의 쇠퇴, 어떻게 조선의 망국을 불렀나? 권력 사유화는 곧 국가 위기의 지표 저자는 조선이 망국에 이르는 원인으로 유교 정치의 쇠퇴를 지목한다. 그리고 그 핵심에는 ‘권력 사유화’가 있다. 조선 후기 유교 질서 퇴화의 가장 중요한 문제가 ‘권력 사유화’에 있었다고 나는 본다. 권력의 공공성은 사회 내의 균형과 조화를 이루고 지키기 위한 필수적 기반 요소다. 권력 사유화는 광해군 시대 이후 지속적으로 진행된 현상이었다. (……) 19세기의 조선은 권력의 공공성이 완전히 증발되어가는 상황을 보여주었다. - 48쪽 저자에 따르면 유교 정치에서 원칙적으로 지배층의 권력은 공공에 복무하도록 제한된다. 주어진 권한 이상으로 무리하게 사용할 수 없는 것이다. 이는 동아시아의 ‘관료 봉건제’에서 구체화되는데, 무력·경제력 등에서 우월한 유력 계층이 관료층으로 편성되어 특권을 부여받는 대신에 왕권의 통제하에 놓이게 된다. 중간 권력의 경쟁과 발호를 억제하여 국가의 목적을 달성시키는 시스템인 것이다. 그러나 광해군 이후 인조반정, 붕당정치, 세도정치로 이어지는 왕권의 쇠퇴로 인해 이런 유교 정치의 틀은 작동 불가능할 정도로 망가져버렸고, 철종을 왕으로 세운 것에서 보듯 19세기 세도정치하에서는 신하가 왕을 갈아치우는 단계에까지 이른 것이다. 이젠 왕 주변으로 친위 세력이 형성되면서 지배층의 권력은 공공성이 아닌, 자신의 사익을 목적으로 행사되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 정점을 보여준 것이 고종의 대한제국기이다. 대한제국 건립은 권력 사유화의 절정이었다. 의정부가 유명무실해지고 궁내부가 비대해진 것이 그 단적인 징표였다. 이런 권력 사유화는 유교 정치의 원리에 용납되지 않는 것인데, 오랜 세도정치를 통해 정치의 공공성이 약화된 끝에 (……) 유교적 질서가 말살된 상황을 보여준 것이다. - 212쪽 저자는 고종이 왕조 위기의 순간에도 수시로 의정부 관리들을 갈아치우며, 자신의 부와 권력 쌓기에만 몰두했다고 비판한다. 『매천야록』 곳곳에 진상품에 따라 신하를 평가하는 왕의 추태가 기록되어 있는데, 저자는 고종에게 망국의 책임을 돌리기는 힘들겠지만 조선의 ‘품위 없는 죽음’에는 분명한 책임이 있다고 강조한다. 이 같은 권력 사유화가 오늘날에도 되풀이되고 있는 현상은 조선의 망국에서 보듯, 곧 권력 집단의 위기의 지표로 읽어낼 수도 있을 것이다. 대원군의 쇄국 정책이 없었다면 과연 조선은 망하지 않았을까? 조선의 실패와 유교 정치의 종말은 별개 유교 국가는 대규모 보험 체계의 성격을 가진 조직이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납입금이 많은 고객에게 더 큰 혜택을 제공하지만, 납입금이 거의 없는 고객에게도 최소한의 생존 조건을 보장해주는 보험 체계다. 오늘날의 정치론으로는 사회주의에 가까운 것이다. 부와 권력의 성장에 한계를 두고 생존 조건을 보장하는 체제이므로 부와 권력을 추구할 동기도 약하기 때문에 자원의 효율적 배분에 큰 장애를 일으키지 않는다. 농업 사회에 매우 적합한 체제로서 중국과 한국에서 큰 성공을 거뒀다. -105쪽 저자는 유럽 열강들이 동아시아로 밀고 들어오기 전까지 유교 정치는 동아시아 전통 질서의 원리로서 제 역할을 잘 해왔다고 주장한다. 특히 유력 계층의 권력을 견제하는 사회적 기능에 효과적이었는데, 건국 초기 조선 사회의 안정성도 이런 유교 정치에 바탕을 두었다는 주장이다. 그리고 만약 동아시아 국가들에 충분한 시간적 여유가 주어졌다면 유럽식 근대화 못지않은 나름의 독창적인 근대화를 만들어낼 수 있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이런 측면에서 저자는 대원군의 쇄국 정책을 ‘유교 정치 회복’이라는 관점에서 읽어낸다. 대원군 입장에서는 당시 세도 정치로 망가진 조선의 유교 국가 체제를 복구하는 것이 유럽식 근대화를 받아들이는 것보다 훨씬 시급한 일로 판단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저자가 보기에 개항 이후 유럽식 근대화 도입만 빨랐어도 조선이 망하지 않았으리라고 주장하는 것은, 개항 무렵의 조선의 정치사회적 조건을 무시하는 논리라는 것이다. 쇄국이든 개국이든 조선의 망국은 “유교 국가 체제를 유지하지도 못하고 있던 세도 정치”에서 이미 조짐을 드러내고 있었다는 것이다. 결국 저자의 이런 논리를 따라 가면 조선의 실패와 유교 정치의 실패를 함께 묶는 것은 큰 오해를 부를 수 있다. 조선의 실패로 유교 정치 체제가 사라졌을 뿐이지, 그 거꾸로는 아니었다. 고종은 계몽군주인가 암군인가? “요즘 일각의 보수적인 사학자들이 고종을 ‘계몽군주’쯤으로 높여주고 (……) 예술인들이 명성황후를 뮤지컬의 주인공이자 민족 저항의 상징으로 만들고 있다. 하지만 당시 백성들에게 고종의 집권기는 분노와 절망의 시대였다.” - 박노자, 『나를 배반한 역사』 중에서 강제병합 100주년이 되는 올해 구한말 황실 인물들을 조명한 소설들이 나오고, 비극적인 최후를 맞았던 명성황후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와 드라마도 속속 만들어지고 있다. 특히 연초 ‘조선의 마지막 황녀’라는 부제를 달고 나온 한 소설은 베스트셀러가 됐고, 최근에는 고종의 리더십을 높게 재평가한 평전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대중문화 상품으로 만들어지고 소비되는 왕실의 모습이 정말 우리 역사 속 모습이었을까? 저자는 고
목차
머리말_ 망국의 의미
프롤로그 _ 서세동점(西勢東漸)의 풍경
1부 조선은 어떻게 시들어갔는가(17~18세기)
1. 조선과 중국의 관계 (1)_ 천하 체제 속의 전통 질서
2. 조선과 중국의 관계 (2) _ 껍데기만 남은 조공 관계
3. 사림(士林)의 권위와 사림의 권력
4. 실용주의의 보루, 대동법
5. 신권과 왕권의 힘겨루기, 예송논쟁
6. 정조의 어찰 정치
7. 정조의 권도(權道) 정치
8. 실학의 좌절
2부 조선은 어떻게 쓰러져갔는가(19세기)
1. 조선 망국의 두 단계
2. 실종된 왕권
3. 대원군도 못 벗어난 세도 정치의 틀
4. 동도서기론의 한계
5. 『매천야록』의 고종 시대
6. 망국의 마지막 고비, 임오군란
7. 친일의 두 자세, 김홍집과 박영효
8. 세도 정치의 종점, 을미사변
9. 왕 노릇을 거부한 고종
3부 조선은 어떻게 사라져갔는가(대한제국기)
1. 외세 줄서기의 천태만상
2. 중국과 일본의 엇갈린 행로
3. 조선의 마지막 지킴이, 의병
4. 고종만을 위한 나라, 대한제국
5. 고종의 마지막 짝사랑, 러시아
6. 러일전쟁을 향한 길
7. 오적의 죄인가, 고종의 죄인가?
8. 죽음의 품격
에필로그_ 근대화의 길
맺음말_ 한국은 아직도 식민지 사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