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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행일기 (조선이 기록한 강화도조약)

신헌 저 | 김종학 역 | 푸른역사 | 2010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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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94079349 / 528쪽 152 x 2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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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최초로 완역하는 《심행일기沁行日記》
강화도조약은 조선이 체결한 최초의 근대적 형식의 조약이자, 이후 진행된 비극적인 한일사의 시발이 된다는 점에서 한국외교사의 분수령을 이루는 사건이다. 《심행일기 - 조선이 기록한 강화도조약》은 당시 조선 측 접견대관이었던 위당威堂 신헌申櫶이 강화도조약이 체결되기까지의 경과를 기록한 《심행일기沁行日記》(2책)를 최초로 완역하여 소개하는 역주본이다.
일본 메이지 정부에서는 이른바 서계書契 문제와 1875년의 운요호 사건의 책임 소재를 밝힌다는 명목으로 1875년 12월 19일 구로다 키요타카를 전권변리대신, 이노우에 카오루井上馨를 부대신으로 임명하고, 군함 2척이 포함된 총 6척의 선박에 약 800명의 수행원과 군인 등으로 구성된 사절단을 강화도에 일방적으로 파견하였다. 이에 위협을 느낀 조선 조정에서는 1876년 1월 30일에 판중추부사 신헌을 접견대관으로, 도총부부총관 윤자승尹滋承을 접견 부대관으로 임명하여 구로다 일행의 요구 조건을 파악하고 그들을 설득해서 돌려보내는 임무를 맡겼다. 《심행일기》는 신헌이 접견대관으로 임명된 1월 30일부터 일본 측의 요구에 따라 근대적 조약을 체결하고 고종의 어전에 보고를 올린 3월 1일까지의 경과를 담고 있다. ‘심沁’이란 강화를 부르던 옛 이름이었으니, ‘심행일기沁行日記’는 ‘강화도 행차의 일기’라는 뜻이다. 이 책에서 신헌은 2월 11일부터 13일까지 총 3차례에 걸쳐 개최된 공식회담의 기록뿐만 아니라, 양측 수행원 사이에서 진행된 실무진 교섭 기록, 접견단의 행적, 주요 공문서 등을 망라해서 수록했다.
《심행일기》가 국내 학계에 소개되는 것은 1940년에 당시 경성제국대학 교수였던 다보하시 키요시田保橋潔가 쓴 《近代日鮮關係の硏究》(2책)에서 그 일부가 인용된 이후 약 70년 만의 처음의 일이다. 당시 다보하시 교수는 《심행일기》의 하권이 산일散逸되었다고 기록했으나 《심행일기: 조선이 기록한 강화도조약》에서는 《심행일기》의 상권과 하권을 모두 새로 발견해서 번역하고 원문까지 수록했다.


《심행일기沁行日記》 완역 그 이상의 《심행일기 - 조선이 기록한 강화도조약》
1) 부록으로 보는 강화도조약
《심행일기 - 조선이 기록한 강화도조약》에서는 《심행일기》 뿐 아니라 강화도조약과 관련한 주요 자료를 부록으로 수록했다. 그 중 가장 중요한 것으로는 강화도조약 당시 신헌의 수행원이었던 추금秋琴 강위姜瑋가 남긴 《심행잡기沁行雜記》를 꼽을 수 있다. 강위는 매천梅泉 황현黃玹, 창강滄江 김택영金澤榮 등과 함께 조선 근세의 3대 시인으로 꼽히는 문인이자, 초기 개화파 형성에 큰 영향을 미친 선구적인 개화 사상가였다. 그가 강화도조약 체결 이후 서울에 돌아와 조약 체결의 경과 및 자신의 의견 등을 일종의 비망록 형식으로 남긴 글이 바로 《심행잡기》이다, 《심행잡기》는 관변 자료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조약 실무자의 생생한 체험과 진솔한 소회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큰 사료적 가치를 가진다.
또한 부록2에서는 구로다 키요타카가 남긴 <사선일기使鮮日記> 를 토대로 일본 사절단의 행적을 일자별로 제시했다. 이를 통해 독자들은 《심행일기》와 <사선일기> 의 기록을 비교하며 강화도 조약의 경과를 좀 더 입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부록3에서는 신헌의 장자인 신정희申正熙가 남긴 신헌의 행장行狀과 대한제국에서 의정議政 등을 역임한 윤용선尹容善이 쓴 신헌의 시장諡狀도 함께 수록했다.
부록4에서는 《심행일기》의 본문에서 언급된 주요 문서 몇 건을 번역해서 함께 수록하였다. 부록에 수록된 글들은 모두 이 책에서 처음 번역된 것으로서 독자들이《심행일기》와 함께 강화도조약의 시말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2) 사진으로 보는 《심행일기》
《심행일기 - 조선이 기록한 강화도조약》에는 강화도조약 당시 촬영된 사진 15매와 신헌, 강위, 오경석, 조병식, 구로다 키요타카, 이노우에 카오루, 모리야마 시게루 등의 인물 사진, 국립중앙도서관에 소장된 《심행일기》 원본 사진과 일본 외교사료관日本 外交史料館에 소장된 조일수호조규, 조선 국왕 비준문서, 메이지 천황 비준문서 사진 등이 수록되었다. 이 가운데 강화도조약 당시의 사진은 구로다 키요타카의 수행원으로 강화도에 왔던 가와다 키이치河田紀一이라는 인물이 촬영한 것이다. 현재 그의 사진첩은 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연구원에 <江華島條約締結時朝鮮情景及修信使寫眞> 라는 자료로 소장되어 있는데, 이를 통해 우리는 부산항에 정박한 일본 사절선단使節船團의 모습을 비롯해서 구로다가 강화도에 상륙할 때 통과했던 진해문鎭海門, 일본인들의 거처로 제공했으나 그들이 무단으로 ‘공관公館’이라는 이름을 붙였던 강화부 중영中營, 주된 협상장으로 사용되었던 열무당閱武堂 등 현재는 그 흔적이 소실된 역사적 장소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책에서 소개되는 사진들은 근대 사진술로 조선의 풍경을 촬영한 최초의 사례이기 때문에 사진사적으로도 큰 의의를 가진다.


조선의 눈으로 바라 본 강화도조약
강화도조약에 관한 일본과 조선 양국의 기록은 도처에서 그 차이가 극명하다. 일본 측 기록을 살펴 보면 자국의 일방적인 사절단 파견과 근대적 조약 체결 요구를 정당화하려는 정치적 의도와 무관하지 않기 때문에 대체로 당시 조선의 폐쇄성과 낙후성에만 초점을 맞추는 한계가 있다. 그러나 강화도조약에 관한 국내외 기존 연구의 대부분은 구로다 키요타카가 남긴 《사선일기》를 비롯한 일본 측 외교문서에 의거해서 이뤄졌다.
《심행일기》는 일본 대표 구로다 키요다카黑田靑隆의 강화도 교섭 일기인《사선일기》보다 그 내용이 구체적이고 자세하다. 특히 무엇보다 조선의 시각에서 바라본 강화도 교섭 과정을 추정하고 생생하게 진술한 기록이라는 점에서 사료적 가치가 크다.
강화도조약은 향후 조선과 일본 간의 비극적 역사의 시발점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조선과 일본의 사료들이 각각 다르게 진술하는 파편화된 진실을 그러모아서 일본과 조선의 첫 조우과정을 온전히 복원할 필요가 있다. 강화도조약에 관한 조선의 가장 중요한 사료 중 하나인 심행일기를 새롭게 검토해야 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심행일기 - 조선이 기록한 강화도조약》의 발간이 강화도조약에 관한 편향된 서술을 바로잡고, 우리의 관점에서 강화도조약을 새롭게 연구하고 평가하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저자 소개

  • 저자 : 신헌
지은이 : 신헌
조선 후기의 무신으로서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적 조약인 조일수호조규(강화도조약, 1876)와 조미수호통상조약(1882)을 체결한 인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자는 국빈國賓, 초명은 관호觀浩였다가 고종 조에서 헌櫶으로 개명했다. 호는 위당을 비롯해서 금당琴堂, 동양東陽, 우석于石 등을 썼다. 순조 27년(1827)에 조부의 음직蔭職으로 별군직에 임용된 것을 시작으로 헌종 조와 고종 조에 이르기까지 무반의 주요 관직을 두루 역임했다. 무장이면서도 서예와 문장에 능하여 당대에 유장儒將이라는 명성을 얻었다. 국방에 관해 올린 그의 상소문들은 고종 조의 강병정책强兵政策의 방향을 결정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고종 4년(1867)에 위원魏源의 《해국도지海國圖志》에 수록된 도설圖說에 따라 마반차磨盤車와 수뢰포水雷砲를 독자적으로 제작했으며 고종 11년(1874)에 진무사 겸 강화유수에 제수되었을 때 강화도 연해에 50여 개 포대를 창설했다. 저서로는 《민보집설民堡輯說》, 《융서촬요戎書撮要》 등이 있다.  

옮긴이 : 김종학
서울대학교 외교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개화당의 기원과 비밀외교, 1879~1884」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민족문화추진위원회(현 한국고전번역원)에서 한학을 수학했다. 전공은 한국 근대외교사와 정치사상사이며, 서울대·서강대·이화여대·서울시립대·한국방송통신대에서 강의했다. 현재 동북아역사재단 한일관계연구소 연구위원으로 재직 중이다.

주요 논저로 『근대한국외교문서』(11책, 공편), 『근대한국국제정치관 자료집 1: 개항·대한제국기』(공편), 「조일수호조규는 포함외교의 산물이었는가?」, 「조일수호조규 체결과정에서의 오경석의 막후활동: 개화당 기원의 재검토」, 역서로 『심행일기(沁行日記): 조선이 기록한 강화도조약』, 『근대일선관계의 연구(近代日鮮關係の硏究)』(2책), 『신론(新論)』 등이 있다.  

역자 소개

  • 역자 : 김종학
서울대학교 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민족문화추진회(현 한국고전번역원) 국역연수원과 해동경사연구소에서 한학을 수학했다. [근대한국외교문서近代韓國外交文書](동북아역사재단) 편찬위원회 연구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한국방송통신대학교에서 근대 한일관계사에 관한 강의를 하고 있다. 현재 조선 후기 국제관계사와 초기 개화사상에 관한 박사학위논문을 준비 중이다. 주요 논저로 [단재 신채호와 민중적 민족주의의 기원] ([세계정치] 7호, 2007)과 [유길준의 국제정치학](공동 편역, 근간)이 있으며, 번역 논문으로 [국제관계의 변용과 내셔널 아이덴티티의 형성], [중국의 국수파國粹派와 일본의 국수주의]([한국문화] 41호, 2008, 日文) 등이 있다.

목차

서문
해제
강화도조약 체결 과정의 주요사건 일지

심행일기 상
사진으로 보는 강화도조약

심행일기 하

부록
1. 심행잡기沁行雜記
2-1. 선고 판중추부사 부군 행장先考判中樞府事府君行狀
2-2. 보국숭록대부 판중추부사 신공 시장輔國崇祿大夫判中樞府事申公諡狀
3. 구로다 카요타카黑田淸隆의 《사선일기使鮮日記》에 따른 일본 변리사절단의 주요 행적
4-1. 정월 18일 운현서雲峴書
4-2. 왜관시말倭館始末
4-3. 히로츠 히로노부廣津弘信의 구진서와 별함
4-4. 대원위록기大院位錄記 ·답상대원군서答上大院君書

原文
沁行日記 上
沁行日記 下
沁行雜記
先考判中樞府事府君行狀
輔國崇祿大夫判中樞府事申公諡狀
正月十八日 雲峴書
倭館始末
廣津弘信口陳書及別函
大院位錄記·答上大院君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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