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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92114547 / 336쪽 223 x 15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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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재일 한국인이 한국 경제 발전에 끼친 공헌 한국인이 일본 이주를 시작한 지도 100년이 된다. 1910년 한일병합 이후로, 일본의 외국인 노동자 입국 제한(칙령 353호)이 한국인에게는 적용되지 않게 됨으로 한국인들의 본격적인 일본 이주가 시작되었다. 한일합병 이전에 일본에 거주하고 있던 한국인은 유학생을 중심으로 790명 정도에 지나지 않았지만, 한일합병이 계기가 되어 한국인의 일본 이주가 급속히 증가하기 시작했다. 1933년까지는 재한 일본인이 재일 한국인보다 더 많았지만, 1934년에는 역전되어 재일 한국인이 압도적으로 많아졌다. 재일 한국인 수가 종전(終戰)에 200만 명을 넘어서기도 했는데, 조국의 해방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일본에서 귀국함으로써 그 수가 줄게 되었다. 그러나 여러 가지 사정으로 귀국하지 못하고 전후에도 일본에 잔류한 한국인과 그 자손이 바로 재일 한국인이며, 조선 적 및 일본 국적 취득자도 여기에 포함된다. 사실, 전쟁 전부터 한국인들이 일본으로 들어가 정착하게 된 경위는 다양하다. 강제 연행으로 끌려간 사람들도 많지만, 학업 또는 취업을 목적으로 본인이 원해서 일본으로 건너간 사람들도 적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강제 연행자들의 경우 일본이 패전한 후 대부분 귀국한 것으로 생각되지만, 학업이나 취업을 목적으로 일본에 넘어온 사람들은 대체로 일본에 잔류하는 경향이 많았다. 한국경제가 매우 어려운 시기에 한국 정부가 실제로 의지 할 수 있었던 것은 재일 한국 기업인들이 었다. 한일 국교 정상화를 계기로 재일 한국 기업인들의 재산 유입이 시작되었고 한국에 대한 투자가 증가되었으며, 재일 한국인이 공식 또는 비공식으로 한국을 왕래하면서 가지고 온 상당한 금액의 엔화가 귀중한 재원이 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한국 경제 발전의 기초를 만드는 과정에서 지대한 역할을 한 사람들은 다름 아닌 재일 한국인들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재일 한국인 1세들에 의한 한국 경제 발전의 공적에 대해서는 한국인 사회가 인식을 달리할 필요가 있다. 재일 한국인 1세는 조국의 발전을 위해 많은 지원을 해왔음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의 목적은 재일 한국인들이 한국의 사회 경제 발전에 어떠한 역할과 공헌을 했는지를 알아보면서 그 실태를 밝힌다. 사례 연구에 대해서는 재일 한국인이 단지 한국 사회에 대한 공헌만이 아니라, 그들이 일본에 건너가게 된 경위나 일본에서의 창업을 시작으로 성공할 때까지의 과정, 그리고 그들의 인생관과 철학관, 경영 노하우 등이 망라되어 있다. ♣ 한국 경제 발전 초창기의 창업과 아이디어 제공 코오롱그룹의 창업자 이원만을 비롯한 기아그룹의 창업자 김철호, 한일합성그룹 창업자 김한수 등은 당시 한국 정부에 경제 발전을 위한 많은 아이디어를 제공했다. 특히 이원만은 일본 기업 활동에서 얻은 경험을 활용하여 수출 산업을 육성할 것을 제안했다. 사실, 자원도 없고 기술도 없고 경험도 없는 그때 상황으로 보면 공업화 추진은 당시로선 꿈같은 얘기였다. 그러나 이원만은 동일한 조건하에서 공업화에 성공한 일본의 사례를 들면서 재일 기업인 입장에선 한국의 모든 산천이 자원이며 사용 가능한 자원은 얼마든지 있다고 단언했다. 예를 들어, 그는 여성의 긴 머리카락도 활용 방법에 따라서 훌륭한 자원이 될 수 있어서 가발을 만들어 수출하면 달러 박스가 되며, 그렇게 하는 데는 고도의 기술이나 설비도 필요 없다는 제안을 했다. 결국 그 아이디어가 박정희에게 받아들여져 한때 가발 산업이 큰 호황을 누렸었다. 나아가, 이원만은 재일 한국 기업인의 자금과 노하우를 도입해서 국내에 수출 전용 공업단지를 건설해야 한다고 제안했으며, 그 제안을 받아들여 실현된 것이 바로 지금의 '구로공단'이다. 뿐만 아니라 산림 보호의 장애 요인으로 되어 있던 전봇대를 목재에서 콘크리트로 바꿀 필요가 있다고 제안한 사람도 다름 아닌, 이원만이였다. ♣ 경제개발 자금 투자와 경영 노하우 제공 재일 한국 기업인들은 조국의 발전에 기여하고 싶다는 심정으로 한국의 산업에 직접 투자하여 산업화의 기수로 활약함으로 경제 발전의 견인 역할을 했다. 일본에서 성공한 재일 한국 기업인들은 재산 유입의 목적으로 일본에서 설비와 원자재 등을 도입하여 한국의 산업화를 도왔고 또한 한국 최초의 수출 전용 공업단지인 구로공단에 입주하여 수출을 통한 외화 소득에 크게 공헌한 바 있다. 재일 한국 기업인들이 일본에서 들여온 시설들은 당시 한국에서는 최신식 기계와 설비로 여겨졌으며, 일본에서 이전된 기술과 경영 노하우는 한국의 경제 발전 초기의 산업 기반 조성에 큰 기여를 했다. ♣ 재일 한국인들이 한국 금융 산업에 끼친 영향 재일 한국인들은 한국에서 기업 활동을 하려고 해도 법률의 미정비, 일본과 한국의 습관의 차이, 인식의 차이 등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은행에서 융자를 받으려고 해도 같은 민족임에도 일반 한국인들보다 더 엄격한 조건이 적용되었다. 이러한 어려움을 느끼게 된 재일 한국 기업인들은 은행을 독자적으로 설립하기 위해 움직였다. 은행 민영화의 일환으로 규제가 완화되면서 재일 한국인 341명이 100% 출자해서 설립한 신한은행은 오늘날 건실한 은행으로 성장했고, 현재 한국 제2의 은행의 위치로 글로벌 은행으로서 발전해 나가고 있다. 따라서 이 책에서는 신한은행이 한국 금융계에 신풍을 불러일으켜 온 경영 방침을 소개함과 동시에 신한은행이 한국 경제 발전에 어떠한 영향을 끼쳤는지에 대해서도 분석 한다. ♣ 재일 한국인들의 조직적 모국 지원 활동 재일 한국인들의 조국 지원에는 개인적으로 자기 재산을 사용한 사적인 방법과 단체나 금융기관 등을 매개로 다수가 공통 목적을 위해서 자금이나 물품 등을 지원하는 공적 방법이 있다. 여기에서는 공적 방법으로서의 조국에 대한 지원 활동과 지원 운동에 대해 살펴보고 있다. 집단적인 지원 행동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해 온 단체가 바로 재일본 대한민국 거류민단(민단)이다. 1964년 창설이래, 중앙 본부를 두고 이를 기반으로 전국적으로 지부를 확대하여 뿔뿔이 흩어져 있던 재일 한국인들을 하나로 뭉치게 하는 구심적 역할을 해 왔다. 이러한 재일 한국인들의 민족적 단합은 조국 발전과 민족 번영에 대한 재일 한국인들의 애국심과 향수를 불러일으켰고 조국에 대한 지원 활동이 구체적으로 실현되었다. 그들은 새마을운동, 서울올림픽 지원, IMF 통화 위기 지원, 그리고 태풍이나 홍수 등 자연재해가 일어날 때마다 조직적으로 지원 활동을 전개해 왔다. 또한 일본에는 출신 지역별 향우회가 있는데, 그러한 조직을 통한 지원 활동도 많이 있다. 초기에는 제주개발협회, 경남개발협회, 전남개발협회 등이 고향 개발 사업에 협력했다. 이러한 조직들은 후에 도민회로서 잔존하고 있고, 그 산하에 있는 부인회 및 청년회 등도 각각 지원 사업을 해 왔다. 이 중에서 가장 적극적인 활동을 한 곳은 제주개발협회였다. 1960년대 초부터 고향인 제주도에 감귤 묘목을 보내는 운동을 전개했고, 관광 개발에도 적극적으로 지원을 베풀었다. 그 성과는 오늘날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크다고 할 수 있는데, 현재 제주도의 2대 산업이 바로 이 감귤 산업과 관광 산업이기 때문이다. 이 2대 산업의 기반 조성에 큰 역할을 한 사람들이 제주 출신의 재일 한국인들이다. 그뿐만 아니라 그들은 개인 또는 향우회 등의 명의로 마을 회관 등 공공시설을 건설하고, 학교 시설이나 도로 포장, 전기 가설, 장학금 제공과 같은 방법으로도 지역 생활환경의 개선과 인재 양성을 위한 지원 활동을 계속해 왔다. 그 성과는 오늘날 뚜렷이 나타나 현재 제주도는 국내 후진 지역에서 선진 지역으로 변모되었다. 제주도 발전의 배경에는 제주 출신의 재일 한국인들이 오로지 고향의 발전을 위해서 지원한 성과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오늘날 제주도 발전의 인프라 정비를 주도해 온 제주 출신의 재일 한국인들의 공적은 매우 크다. 따라서 제주도청이 공표한 자료를 토대로 그들이 구체적으로 어떤 역할을 하고 어떻게 기여를 했는지 살펴본다. ♣ 교육 문화 사업에 의한 사회 경제 발전에 기여 재일 한국인 대부분은 학업 또는 구직을 위해서 일본으로 건너가 남다른 고생을 하면서도 조국을 잊지 않은 이들인데, 아끼며 저축해서 모아 온 돈을 민족 교육을 위해 기부했고 고향에 장학 사업 또는 학교 설립 등으로 인재 양성에 큰 도움을 준 사람들이다. 자신들은 공부하고 싶어도 그럴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기에, 고향의 후배들에게는 경제적 이유로 배움의 기회를 놓치는 일이 없도록 사재를 털어 장학 기금을 설립해서 장학금을 제공하고 있다. 이러한 재일 한국인에 의한 장학금의 혜택을 입은 많은 젊은이들이 현재 각계 여러 분야에서 일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재일 한국인들이 한국 사회 경제의 발전에 큰 기여를 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문화 사업, 생활환경의 개선, 녹화 사업 등을 지원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도 있다. ♣ 재일 한국인 사회의 과제와 전망 재일 한국인 사회는 1세 중심에서 2세, 3세 또는 4세로 세대교체가 급속히 진행되고 있다. 또한 재일 한국인을 둘러싸고 있는 사회 및 경제적 환경도 크게 변모하고 있으며, 사회· 경제 환경의 변화에 따라 심지어 가치관도 점차 바뀌어 가고 있다. 대부분의 1세들은 일본에 살면서도 마음은 항상 조국을 향하고 있었다. 따라서 일본에서의 그들의 생활은 안정적인 정착 생활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들은 언젠가는 귀국한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지만,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일본에 정착해 버린 세대이다. 그러나 2세나 3세는 일본에서 태어났고 태어난 고향도 일본이며 조국에 대한 생각이나 향수도 다른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한 환경에 처해 있는 재일 후세들에게 조국과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해야 할지 그리고 일본에 정주하면서 정체성을 지키면서 살아가는 데 어떤 보람 있는 생활 방법이 있는지를 연구할 필요가 있다. 물론 그 방법은 젊은 층들이 납득하고 따라올 수 있는 것이라야 한다. 또한 기존의 재일 조직들이 매력 있는 커뮤니티가 되기 위해 어떤 방법들이 있는지와 같은 과제들도 남아 있다. 저자는 이러한 과제와 전망에 대해서 조심스럽지만 심도 있게 접근하고 있다.
머리말
제 1 장 재일 한국인의 일본 이주의 경위와 초기 귀국자들의 활약
(1) 일본 이주의 경위
(2) 해방 후 재일 한국인 사회의 실태
(3) 해방 전에 귀국한 기업가들의 활약
제 2 장 한국의 경제 발전에 대?한 재일 한국 기업인들의 역할
1. 경제 발전 초창기의 창업과 아이디어 제공
(1) 일본에서 창업한 이원만(李源萬), 코오롱그룹 창업자
(2) 박정희에게 아이디어를 제공한 이원만
(3) 기아그룹의 창업자 아이디어맨 김철호(金喆浩)
(4) 한일합섬그룹 창업자, 김한수(金翰壽)
2. 경제 개발의 자금과 노하우 제공
(1) 재일 한국인 경제계와 본국과의 관계
(2) 재일 한국인의 재산 반입
(3) 한국 최초의 수출 산업·공업단지 ‘구로공단’ 설립
(4) 박정희 정권의 평가
3. 산업계에 진출한 재일 한국 기업인들
서갑호(徐甲虎): 한국 방적업계의 선구자·방림방적 설립
안재호(安在祜): 조국애와 애향심이 남달리 강했던 재일 기업가
신격호(辛格浩): 롯데그룹 창업자, 한일 경제 교류에 큰 역할
김상호(金相浩): 투자로 조국의 경제 발전에 공헌
박병헌(朴炳憲): 솔선해서 조국에 투자한 재일 민단 조직인
손정의(孫正義): 소프트뱅크 코리아를 설립한 인터넷 재벌
이희건(李熙健): 한국의 금융 근대화 및 경제 발전에 큰 역할
박 종(朴 鍾): 부관페리 개설과 한일 가교 역할
4. 금융 재정 면에서 재일 기업인들의 공헌
(1) 신용조합 오사카흥은(大阪興銀)의 탄생
(2) 재일 한국인 기업의 한국 진출과 그 대표 기관
(3) 신한은행의 설립과 배경
(4) 금융계에 신풍을 일으킨 신한은행의 경영 방침
(5) 재일 기업으로부터의 탈피와 리딩뱅크 신한은행의 도전
5. 재일 한국인들의 조직적 모국 지원 활동
(1) 재일 교포들의 본국 지원의 특징
(2) 런던 올림픽 지원 활동
(3) 새마을운동 지원 활동
(4) 서울올림픽 지원 활동
(5) IMF 통화 위기 지원 활동
(6) 주일 공관의 기증과 재일 향우회의 지원 활동
(7) 재일 한국인의 지원 동기
제 3 장 교육 문화 사업에 의한 사회 경제 발전에 기여
1. 교육 장학 사업으로 인재 육성
박용구(朴龍九): 박용구육영회 창립자, 인재 육성에 공헌
곽유지(郭裕之): 한국에서 관광 사업 고려대학교 일본연구센터 설립
강길태(姜吉泰):인재 육성의 요람, 청암대학의 발전
정환기(鄭煥麒): 진주교육대학교 학술연구재단 설립
김희수(金熙秀): 중앙대학교 경영을 맡은 재일 한국 기업인
권병우(權炳佑): 인재 육성과 사회복지시설에 공헌
배익천(裵翊天): 가조익천고등학교를 설립하여 정부에 헌납
유봉식(兪奉植): 한국 택시 업계에 기술 지도와 고려대학교에 문화관 기증
성종태(成鍾泰): 청도초등학교에 성종장학회 설립
한창우(韓昌祐): 교육 문화와 국제 교류 분야를 지원
최학림(崔學林): 재일 고성육영회와 고성고등학교 설립에 기여
박헌행(朴憲行): 교육과 학교 설립에 의한 인재 육성에 기여
2. 문화·스포츠 분야에 공헌
하정웅(河正雄): 미술품을 수집해서 조국의 문화 사업에 공헌
김의태(金義泰): 한국 유도계에 지대한 공헌
제 4 장 제주도 사회 경제 발전에 대한 재일 제주인의 역할
(1) 재일 제주인과 제주도와의 관계
(2) 제주도의 사회 경제 발전과 생활 향상
(3) 제주도 사회 경제 발전을 위한 재일 제주인들의 지원 활동
(4) ‘황금 나무’가 된 감귤묘목
(5) 재일 제주인에 의한 제주도 최초의 관광호텔 건설
(6) 재일 제주인들의 지역 진흥에 대한 공헌
(7) 재일 제주인들의 공적
(8) 재일 제주호남인들의 역할
<제주 지역 발전에 특히 공헌한 인물들>
강구범(康龜範): 제주대학교 해양연구소 기금 기증
김평진(金坪珍): 제주도의 교육·관광·언론계에 공헌
이근식(李根植): 제주대학교 학술연구기금과 장학기금 설립
김병종(金炳鍾): 교육 장학 사업으로 고향에 공헌
제 5 장 재일 한국인 사회의 과제와 전망
(1) 재일 한국인을 둘러싼 생활환경의 변화
(2) 재일 한국인의 추세
(3) 재일 한국 기업인과 상공인의 과제
맺는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