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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우스트 박사 1 - 세계문학전집 244

시리즈 :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18]

토마스 만 저 | 임홍배.박병덕 역 | 민음사 | 2010년 0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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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37462443 / 484쪽 132 x 2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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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출판사 서평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 토마스 만 스스로가 가장 아끼는 작품이라고 밝힌 최후의 걸작 광기와 혼돈의 시대, 비운의 천재 음악가로 다시 태어난 20세기 파우스트 독일 정신의 모순과 타락, 인간성과 예술 문명의 몰락에 대한 뼈아픈 자기비판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 토마스 만이 남긴 최후의 걸작 『파우스트 박사』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244.245)으로 출간되었다. 토마스 만은 이 소설을 자신이 가장 아끼는 작품으로 꼽았을 뿐만 아니라, 집필 과정에 관한 300쪽가량의 책을 따로 출간할 만큼 심혈을 기울였다. 고독하고 오만한 천재...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 토마스 만 스스로가 가장 아끼는 작품이라고 밝힌 최후의 걸작 광기와 혼돈의 시대, 비운의 천재 음악가로 다시 태어난 20세기 파우스트 독일 정신의 모순과 타락, 인간성과 예술 문명의 몰락에 대한 뼈아픈 자기비판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 토마스 만이 남긴 최후의 걸작 『파우스트 박사』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244.245)으로 출간되었다. 토마스 만은 이 소설을 자신이 가장 아끼는 작품으로 꼽았을 뿐만 아니라, 집필 과정에 관한 300쪽가량의 책을 따로 출간할 만큼 심혈을 기울였다. 고독하고 오만한 천재 작곡가가 창작의 위기에서 자신의 영혼을 담보로 악마와 거래를 하고, 결국 정신적 파멸에 이른다는 내용으로, 중세 파우스트 전설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였다. 토마스 만은 이 작품에 양차 대전 당시 파시즘에 열광하고 유대인 학살을 묵과한 독일의 실상을 투영하여 날카롭고 진중한 자기성찰을 보여 주었다. 다른 한편으로 가장 독일적인 면모를 보이는 전위적인 음악가의 생애를 통해 독일 정신의 본질과 독일의 역사, 사상, 문화와 예술을 총망라한 철학적인 작품이다. 끝내 구원받지 못하는 20세기의 슬픈 파우스트 히틀러 치하의 독일에서 인문학자인 차이트블롬은 이 년 전에 죽은 친구이자 천재 작곡가인아드리안 레버퀸의 전기를 집필한다. 레버퀸은 창작의 위기를 겪다가 악마를 대면하고, ‘누구도 사랑하지 않고 이십사 년 후에 영혼을 바칠 것’을 조건으로 계약을 맺는다. 이후 그는 시대적 혼란과 주변의 불행 속에서도 뛰어난 곡들을 창작하지만, 결국 십 년간이나 정신 착란에 시달리다 죽는다. 그는 파멸에 이르기 직전, 마지막 작품인 「파우스트 박사의 비탄」을 들려주기 위해 지인들을 모은 자리에서 자신의 작품들이 악마와의 계약을 통해 탄생한 것이며, 주변 사람들이 당한 불행은 이 계약을 지키기 위해 자신이 꾸민 것이라는 비밀을 털어놓는다.이 작품의 모티프가 된 파우스트 전설은 르네상스와 종교개혁 시기에 실존한 기인(奇人) 파우스트를 둘러싼 이야기들이 민담으로 굳어진 것이다. 신학과 마술에 몰두하고 예언자 노릇을 하던 그의 모습은 당시의 시대적 분위기로 인해 악마적인 것으로 간주되었고, 그는 사람들의 입을 거치면서 악마에게 영혼을 판 인물로 형상화되었다. 독일 문학에서 사랑받는 소재로, 괴테를 비롯해 레싱, 하이네 등 수많은 작가들이 다뤄 온 이 전설은 토마스 만의 『파우스트 박사』에 이르러 현대판으로 완성되었다. 작품의 제목은 주인공 레버퀸이 파멸 직전에 마지막으로 작곡한 「파우스트 박사의 비탄」에서 따온 것이며, 20세기의 파우스트인 레버퀸 자신을 가리키는것이기도 하다. 레버퀸은 남들보다 뛰어난 지성과 창조력을 타고났지만 태생적으로 오만하고 고독하다. 그는곧잘 발작적으로 웃어 대는데, 정황을 따져 보면 인간성과 생명을 비웃는 웃음이다. 그리고 그는 주변인들을 이름으로 부르는 일이 없을 뿐 아니라 이름을 기억하지도 못하며, 오랜 친구에게도 쉽사리 말을 놓지 않는다. 자신과 같은 부류의 사람들과 이야기할 때에도 ‘우리’라는 말대신 ‘자네들’이라고 하는 등 인간적인 교류나 인간 정신을 비하하고 그로부터 스스로를 격리하며 그 이상의 것을 추구하려 하는 인물이다. 작품을 위해서라면 진정 사랑하는 사람이 불행해지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레버퀸의 삶은 작중 서술자인 차이트블롬이 레버퀸의 전기를쓰는 시기, 즉 보다 이상적이고 위대한 것에 대한 환상에 빠져 인간 정신과 인도주의를 사지로내몰고 나치와 파시즘을 맹신한 양차 세계 대전 당시의 광기 어린 독일에 대한 서술과 교차하며 하나로 연결된다. 그러나 지금 세상에서는 경건하고 고지식한 방법으로는, 정당한 수단으로는 어떤 것도 만들어 낼 수없으며, 아궁이에서 활활 타오르는 지옥의 불꽃이 없으면, 마귀의 도움이 없으면 예술이 불가능한 시대라는 걸 깨달았단 말입니다……. 친애하는 동료 여러분. 그렇습니다. 예술은 정체되고 난관에 부닥쳤습니다. 예술은 스스로를 비웃기 시작했습니다. 레버퀸을 둘러싼 주변 인물들 역시 타락하고 모순된 독일 정신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신성을 이성의 잣대로 왜곡하고 악마보다 더 극악한 사고를 부추기는 신학 교수들, 새롭고 특이한 것에 무분별하게 열광하며 인간적인 수준의 재능은 하찮은 것이라 여기는 예술 애호가들, 사랑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고 욕정에 사로잡혀 결국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하는 연인 등. 이들의 사회적 지위나 지적 소양에는 부족함이 없지만, 진정성은 찾아볼 수 없다. 짐짓 열띤 논쟁을 벌이는 대학생들이건 부잣집 살롱에서 우아한 모임을 갖는 지식인들이건, 그들이 끝없이 늘어놓는 현학적인 장광설 속에는 정작 조국에서 벌어지는 문제에 대한 고민이나 반성이 들어있지 않다. 그리고 가장 양심적인 인물로 보이는 작중 서술자 차이트블롬 역시 악마적인 환상에 사로잡힌 친구 레버퀸을 걱정한다고 하지만 그를 말리기는커녕 호기심 때문에 방관하며, 전쟁에 미친 조국과 인간성을 폄훼하는 주변 사람들을 경계하지만 은둔한 채 탄식만 하는 그의 나약한 휴머니즘은 전혀 실효성이 없다. 냉소, 광신, 방관. 이것이 당시 양차 대전과 나치즘을 대면하는 독일 국민들의 태도이자, 오늘날 진정성을 상실한 인간 문명을 대면하는 우리의 태도일 것이다. 괴테의 파우스트는 죽음에 이르러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결국 구원받지만, 토마스 만의 파우스트인 레버퀸은 정신을 놓기 직전 청중들 앞에서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스스로를 단죄하면서 그 어떤 구원의 가능성도 배제한다. 제가 지은 죄는 용서받을 수 있는 한도를 넘었습니다. 자비와 용서의 가능성을 철저히 불신하면 오히려 끝없이 자비심을 자극할 거라는 계산까지 함으로써 저의 죄는 극단으로 치달았습니다. 보시다시피 저는 저주받은 몸이며, 어떠한 용서도 기대할 수 없습니다. 어떠한 용서의 가능성도 이미 그런 계산적사고로 차단되었기 때문입니다. 레버퀸 최후의 작품 「파우스트 박사의 비탄」이 인간적인 것을 부정하고 새로운 것을 향한 욕망으로 악마와 결탁한 레버퀸이 지옥의 나락으로 떨어지며 그 어떤 희망도 차단한 채 감내하는 극단적 절망과 비애의 표현인 것과 마찬가지로 『파우스트 박사』는 독일 민족이 저지른 극단의 광기에 대한 절망적 고백록이며, 누구보다 독일과 독일 정신을 사랑하는 토마스 만은 이 작품을 통해 독일 지성을 대표하여 통렬한 자기비판과 속죄를 수행하는 것이다. 한편, 전통적인 인간 정신이 무너지고 이성에 대한 맹신이 오히려 폭력과 야만 행위를 낳는 시대에 대한 날카로운 진단이기도 한 이 책은 다시금 문명의 위기에 처한 문명 시대를 때로는 냉소하고 때로는 광신하고 때로는 방관하며 살고 있는 오늘의 독자들에게도 깊은 울림이 될 것이다. 다양한 기법과 방대한 사상을 총망라한 대가의 걸작 『파우스트 박사』는 “내가 있는 곳에 독일 문화가 있다.”라고 한 토마스 만의 말을 여실히 증명하는 작품이다. 독일 정신에 대한 자기 성찰적 작품이니만큼, 작품 전반에 독일의 정치, 역사, 사상, 문화가 풍부하게 녹아 있다. 토마스 만이 현대판 『파우스트』의 주인공을 음악가로 설정한 것도 음악이 가장 악마적인 동시에 ‘가장 독일적인’ 예술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주인공 레버퀸은 독일 철학자 니체에게서 영감을 얻어 창조한 인물이며, 음악, 예술에 대한 그의 주장 이나 그가 선보이는 작곡 기법 등은 독일 철학자 아도르노와 오스트리아 태생의 작곡가 쇤베르크에게서 차용한 것들이다. 또한 독일의 종교개혁을 주도한 루터의 신학이 중요한 논쟁점이 된다. 비단 독일 문화뿐만 아니라, 성경을 비롯한 다양한 고.중세 문헌들과 근현대

저자 소개

19세기에 창작 활동을 시작한 토마스 만은 그 시대의 가장 위대한 시민적 작가일 뿐만 아니라 위대한 비판적 리얼리스트로서, 동시대 사회의 위대한 교사였다. 또한 그 발전에 있어서 독일 낭만주의의 극복과 독일 휴머니즘의 부활을 추구해 20세기 문학에 큰 획을 그었다.
독일 고전주의의 괴테에 비견되는 20세기 독일문학의 대표주자인 토마스 만은 1875년 6월 독일 북부의 한자동맹 소속 도시 뤼베크의 부유한 집안에서 3남 2녀 중 둘째로 태어났으며(세계적인 작가 하인리히 만이 바로 그의 형이다), 1955년 8월 스위스 취리히 근교에서 타계했다. 뤼베크의 참정의원을 지낸 아버지로부터는 냉철한 사고와 도덕적인 기질을 이어받았고, 독일인과 브라질인의 혼혈인 어머니로부터는 감각적이고 분방한 예술가 기질을 물려받았다. 이것이 바로 ‘시민성’과 ‘예술성’으로 일컬어지는 그의 이원성의 원천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아버지가 사망한 후 경제적으로 어려워진 가족은 뮌헨으로 이주했다. 토마스 만은 여기서 잠시 보험회사 견습사원으로 지내다가 뮌헨 대학에서 청강하면서 문학의 길을 준비하게 된다. 청년 시절 그의 사상 형성에 영향을 준 것은 쇼펜하우어, 바그너, 니체였다. 
그리고 토마스 만이 문학 활동을 시작한 1890년대 중엽에 자연주의는 이미 위기에 빠졌고, 반합리주의적 문예사조인 신낭만주의, 인상주의, 상징주의가 득세하기 시작했다. ‘데카당스’라는 말로 집약되는 토마스 만 초기의 예술적 경향에는 예외 없이 삶과 죽음의 문제가 드러난다.  


 



1894년 3월 토마스 만의 학창 시절은 끝났다. 그는 고등학교 졸업을 포기하고 가족이 있는 예술의 도시 뮌헨으로 이주하게 되며 ‘죽음’의 세계라고 표현한 바 있는 ‘문학’의 세계에 마침내 발을 들여놓게 된다(토마스 만은 그 후 40년 가까이 뮌헨에서 살았다). 토마스 만은 몇 년 뒤인 1901년 2월 13일 형 하인리히 만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문학은 죽음’이라고 표현한 바 있다. 또한 작품 <토니오 크뢰거>에도 “문학은 결코 천직(天職)이 아니라 저주다”라는 표현이 나타나고 있다. 그해 1894년 최초의 단편 <타락>을 <사회>지(誌)에 발표한다. 
1895년 7월 토마스 만은 당시 형 하인리히 만이 체류하던 이탈리아로 최초의 외국여행을 시도했다. 10월에 다시 뮌헨으로 돌아와 뮌헨 공과대학에서 역사, 미술사, 문학사 등을 청강하며 1년 뒤인 1896년 말 <짐플리치시무스>지(誌)에 실린 단편 <행복에의 의지>를 탈고했다. 
1896년 10월 토마스 만은 다시 이탈리아로 떠났는데, 우선 베니스에 들른 후 로마를 거쳐 나폴리를 여행했고 마지막에 로마에서 형 하인리히와 재회했다. 이때 토마스 만은 베를린의 피셔 출판사에서 발행하는 한 잡지에 단편 <키 작은 프리데만 씨>를 보냈다. 잡지사에서는 그 소설을 수락했을 뿐만 아니라, 그가 보관하고 있는 다른 소설들 모두를 보내달라고 요청했다. 토마스 만은 <환멸>, <어릿광대>, <토비아스 민더니켈> 등의 작품을 보내주었는데, 출판인 사무엘 피셔는 이 소설들에 무척 만족해했고 이제는 장편소설을 쓰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토마스 만에게 권유했다. 그래서 토마스 만은 최초의 장편소설 ≪부덴브로크 가의 사람들≫을 쓰기 시작했다. 


 



1900년 토마스 만은 1년 만기 지원병으로 육군에 입대하지만 행군 도중에 발가락에 생긴 건초염으로 입대 3개월 만에 제대하게 된다. 이듬해 1901년 10월 ‘한 가문의 몰락’이라는 부제가 붙은 두 권짜리 장편소설 ≪부덴브로크 가의 사람들≫ 초판이 나왔다. 
1903년 토니오라는 한 혼혈아를 통해 시민사회의 아웃사이더로서 고독하게 살아갈 수밖에 없는 한 예술가의 숙명을 그린 단편 <토니오 크뢰거>를 발표하고, 비슷한 시기에 그 주제 역시 시민성과 예술성의 또 다른 변주에 불과한 <트리스탄>을 발표하는데, 이 작품은 토마스 만의 아이러니 수법이 특히 잘 드러나 있는 대표적 단편이다. 
1905년 2월에 뮌헨 대학 수학 교수인 프링스하임의 딸 카티아 프링스하임과 결혼하고, 그해 11월에 장녀 에리카 만이 출생한다. 1909년에는 독일의 어느 소공국을 무대로 하는 중편 <대공전하>를 발표하여, 고독한 예술가적 존재를 사랑과 결혼에 의하여 삶의 세계와 손을 잡게 한다. 1911년 5월 휴양지에서 존경해 오던 작곡가 구스타프 말러의 서거 소식을 접한 것을 경험으로 <베니스에서의 죽음>을 쓰기 시작하여 이듬해 발표한다. 이것은 토마스 만의 초기 작품 중 가장 긴 단편소설로서 과거의 작품들과는 달리 피셔 출판사가 아니라 히페리온 출판사에서 간행되었다. 


 



1915년 보수적 견해를 피력하는 에세이적 논설문 <프리드리히와 대동맹>을 발표했고, 이어 ≪한 비정치인의 고찰≫의 집필에 들어가 이 작업에 꼬박 2년간 몰두했다. 600쪽이 넘는 대단한 분량의 저작이 1918년 10월에 완성되었다. 프랑스적 민주주의나 문명 개념을 독일의 문화 개념과 대립적인 관점에서 서술한 방대한 저작 ≪한 비정치인의 고찰≫은 토마스 만의 사상의 한 전환점이자 작가 생활의 요약인 동시에 과거와의 작별이었다. 
1922년 소설 ≪사기꾼 펠릭스 크룰의 고백, 어린 시절의 책≫을 출간했고, 보수적 정치관을 지양하는 연설문 <독일 공화국에 대하여>라는 강연을 하면서 독일 청년층에 민주주의의 지지를 호소한다. 이후 바이마르 공화국의 문화사절 자격으로 국외로 강연 여행을 다니는데, 이때 형 하인리히와의 형제 논쟁이 그 해결점을 찾게 된다. 1924년, 전쟁으로 집필이 중단되었던 대작 ≪마의 산≫이 출간된다. 


 



1926년에 이루어진 토마스 만의 두 번의 여행, 즉 프랑스 수도 파리와 고향 도시 뤼베크로의 여행은 특별히 언급할 가치가 있다. 프랑스 지식인 단체는 <인간성의 이념에 근거한 독일의 정신적 경향>에 대한 강연을 위해 토마스 만을 초청했고, 뤼베크에서는 한자동맹 도시의 항구 700주년 기념식에 연사로 그를 초청했던 것이다. 이후 2년 동안 성서적 연작소설에 침잠하면서 구약성서 중의 창세기에서 그 소재를 찾은 4부작 장편소설 ≪요제프과 그 형제들≫을 집필하기 시작한다. 1929년 스웨덴 한림원에서는 ≪부덴브로크 가의 사람들≫에 대해 노벨 문학상을 수여하지만, 토마스 만은 ≪마의 산≫이 없었으면 노벨상을 받지 못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듬해 이탈리아의 무솔리니와 히틀러를 비판한 단편 <마리오와 마술사>를 출간하는데, 여기서는 이탈리아의 어느 해수욕장에서 일어난 어떤 우발적 살인사건이 그려진다. 
괴테 서거 100주년인 1932년에 즈음하여 토마스 만은 <시민시대의 대표자로서의 괴테>, <작가로서의 괴테>라는 강연을 하면서 인류애의 고귀함을 역설한다. 이듬해 1월 히틀러가 독일 수상이 되자, 뮌헨 대학에서 <리하르트 바그너의 고뇌와 위대성>이라는 제목의 강연을 한 후 국외로 강연 여행을 떠나 그대로 망명한다. 스위스 취리히 호반에 거처를 정한 후, 당분간 정치적 활동을 자제했기 때문에 이로 인해 다른 망명 문학가들의 오해를 받기도 했다. 나치 정권에 대한 토마스 만의 첫 공개적 반박은 1935년 4월 니스에서 개최된 ‘지식인연합위원회’ 회의 석상에서 <유럽이여, 경계하라!>라는 제목으로 그 포문을 열었으며, 연이어 이듬해 6월에는 부다페스트에서 <인문학과 휴머니즘>이라는 제목으로 ‘자유의 살해자에 대한 비판과 강건한 민주주의의 필연성’, 즉 진보에 대한 능동적 옹호가 필연적인 이유를 강도 높게 피력했다. 


 



1933년 이후 4부작 연작소설 ≪요제프과 그 형제들≫의 1, 2, 3부가 각각 <야코프 이야기>, <청년 요제프>, <이집트에서의 요제프>라는 부제로 1∼2년 간격으로 발표되었는데, 이 작품에 대해 빈과 프라하, 부다페스트 등지의 신문 논평들은 매우 우호적이었지만, 독일의 언론계에서는 기사화하지 않았다. 토마스 만은 이제 마지막 4부를 쓰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지만, 다른 책을 너무 쓰고 싶어서 그 계획을 당분간 유보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결국 마지막 4부는 1943년에 가서야 <부양자 요제프>라는 부제로 출간되었다. 이 4부작 ‘요제프 소설’을 완성하기까지 토마스 만이 순수 집필에 바친 시간은 1926년 12월부터 1943년 1월까지 13년이었다. 물론 괴테를 패러디한 ≪바이마르의 로테≫와 <뒤바뀐 머리>를 쓴 1936년 8월부터 1940년 8월까지가 제외된 기간이다. 
토마스 만의 세 개의 대표 소설−즉, 20대 후반에 쓴 ≪부덴브로크 가의 사람들≫, 50대에 쓴 ≪마의 산≫, 그리고 70대에 접어들면서 완성한 ≪요제프과 그 형제들≫−이 세 소설을 토마스 만은 스스로 평가하면서, 처음 것은 독일 소설이었고, 두 번째는 유럽 소설, 그리고 세 번째는 신화를 토대로 유머러스하게 그려낸 인간에 관한 노래라고 말하며, 이것은 보다 풍요롭게 전개되어 간 정신의 성장과정이라 할 수 있다고 어느 한 편지에서 밝힌 바 있다. 


 



1940년에 발표된 <뒤바뀐 머리>는 인도 설화의 패러디로, 인도의 전설을 빌려 삶과 정신과의 조화적 종합이라고 하는 이상 실현의 어려움을 나타내고 있다. 
이 시기에 토마스 만은 히틀러 타도를 위해 영국 BBC 라디오 방송에서 제안한 <독일 청취자 여러분!>이라는 제목의 논평을 4년 6개월 동안 매월 한 번 정도 방송을 하며, 독일 국민들에게 히틀러 정권의 비민주성과 비인간성을 호소한다.
1944년 토마스 만은 미국 시민권을 획득하고,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 선거의 참모 역할을 하게 되며 루스벨트는 그해 11월 대통령에 당선된다. 1945년과 1946년 사이에 토마스 만은 사방에서 요청해 오는 사회적 의무와 강연으로 완전히 지쳐 있었다. 그러나 이 시기 그는 아도르노와 토론 및 논의를 계속 진행했는데, 왜냐하면 당시 그는 소설 ≪파우스트 박사≫에서의 한 부분, 즉 순수 음악적인 성격의 장을 집필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마침내 1947년 초 ≪파우스트 박사≫가 완성된다. 이 작품에서는 1587년의 민중본에서 출발한 파우스트 모티브의 수백 년 전통이 새롭게 파악되고 변형되며 해석된다. 소설은 자서전 형식이며, 독일의 작곡가 아드리안 레버퀸의 삶의 내용을 기록하는 일기 형식으로 되어 있다. 작곡가의 삶을 서술함과 동시에 음악적 창조의 본질을 관통하고 있다는 의미에서 음악에 관한 소설이지만, 20세기의 독일적 상황과의 연관하에서는 독일인들에 관한 소설이다. 


 



1948년 여름 토마스 만은 이 작품을 다시 잡고 ≪파우스트 박사의 성립≫이라는 연대기를 쓰기 시작했다. ‘소설의 소설’이라는 부제를 지닌 이 책을 그는 단 3개월 만에 탈고했고, 이 연대기는 ≪파우스트 박사≫의 생성 과정 및 계획, 형상화에 대해 보고하는 일기다. 
1951년 발표된 ≪선택된 인간≫은 ‘착한 죄인’에 대한 설화의 아이러니적 해석이자 중세에 성립된 오이디푸스 동기의 기독교적 판본의 패러디, 즉 중세문학의 패러디다. 어딘지 모르게 동화의 경계에 있는 듯한 설화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토마스 만은 “모든 의미에서 이 ≪선택된 인간≫이 나의 후기작품”이라고 칭한다. 


 



1953년에 발표한 단편소설 <기만당한 여인>에서 토마스 만은 다시 ‘삶’과 ‘죽음’ 사이의 복합관계에 대한 실마리를 끌어내었다. ≪선택된 인간≫의 발표 직후 토마스 만은 ≪사기꾼 펠릭스 크룰의 고백≫을 다시 집필하기 시작한다. 이 ≪사기꾼 펠릭스 크룰의 고백≫은 토마스 만의 다른 작품들에 비해 비교적 잘 알려지지 않은 작품이지만 몇 가지 특이한 점을 지니고 있다. 집필 기간이 무려 50년이라는 점과 자서전적인 고백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토마스 만이 남긴 마지막 작품이자 미완성 작품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특히 중요한 것은, 토마스 만의 다른 모든 작품이 주도면밀한 가공에 따라 완결되어 출간된 데 반해, 이 작품은 세 번이나 미완의 단편으로 남아 있다는 것이다. 첫 번째는 1922년 <어린 시절의 책>, 두 번째는 1937년 암스테르담에서 펴낸 확대판, 세 번째는 1954년 <회상의 제 1부>가 그것이다. 


 

역자 소개

  • 역자 : 임홍배.박병덕
임홍배
서울대 독문과 및 동대학원 졸업, 독일 프라이부르크 대학 및 훔볼트 대학에서 수학. 현재 서울대 독문과 교수로 재직중. 저서 및 역서로 독일 명작의 이해(공저) 황석영 문학의 세계(공저) [루카치 미학](공역)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등이 있음.

박병덕
1952년 전남 영암에서 태어났다. 서울대학교 독문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문학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전북대 사범대학 독어교육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논문으로 '카프카의 변신연구', '귄터 그라스의 넙치에 나타난 서술기법' 등이 있고, 역서로는 [에리히 프롬:소유냐 존재냐], [슈바이쳐:나의 생애와 사상], [솔즈베리:새로운 황제들] 등이 있다.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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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우스트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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