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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 조선을 사로잡다

신현규 저 | 어문학사 | 2010년 0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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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61841030 / 292쪽 153 x 2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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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출판사 서평 일제시대 왜곡된 근대화 안에서 탄생한 최초의 연예인, 기생 대한민국의 근대화는 아이러니하게도 일제로부터 가혹한 침탈을 당하던 시대부터 시작하였다. 일제는 조선 침략을 합리화하기 위해 내선일?체를 부르짖으며 조선의 정치, 문화, 예술, 사회 각 방면에 걸쳐 일본식 근대화를 이식시켰다. 그들의 근대화는 오직 조선의 인적ㆍ물적 자원을 효율적으로 수탈하기 위한 일환으로 진행된 것이었다. 자신들의 제국주의 침략을 수행하기 위해 대량의 군비물자를 조달하기 위한 군수 공장을 조선에 건설하는 것을 시작으로,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경제, 문화, ... 일제시대 왜곡된 근대화 안에서 탄생한 최초의 연예인, 기생 대한민국의 근대화는 아이러니하게도 일제로부터 가혹한 침탈을 당하던 시대부터 시작하였다. 일제는 조선 침략을 합리화하기 위해 내선일체를 부르짖으며 조선의 정치, 문화, 예술, 사회 각 방면에 걸쳐 일본식 근대화를 이식시켰다. 그들의 근대화는 오직 조선의 인적ㆍ물적 자원을 효율적으로 수탈하기 위한 일환으로 진행된 것이었다. 자신들의 제국주의 침략을 수행하기 위해 대량의 군비물자를 조달하기 위한 군수 공장을 조선에 건설하는 것을 시작으로,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경제, 문화, 예술 등 사회 각계에 근대화 추진에 걸맞은 기반을 구축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한 과정 속에서 조선의 전통 기예의 육성과 계승을 담당하던 ‘기생’은 일제 시대의 근대화를 거치며 그 자취를 감췄다. 하지만 그들은 기생이란 이름 대신 조선 최초의 ‘연예인’이란 이름으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연예인이란 말은 당대에는 쓰이지 않았던 단어이지만, 연예인의 행태를 띤 기생들이 등장하였다. 전근대의 기생들은 근대화 과정의 모순들을 한꺼번에 받아들이면서 다양한 모습으로 분화되어 갔다. 조선시대의 전통무용이나 음악, 노래만 담당하던 기생이 음악기생, 무용기생, 극단 여배우, 대중가요 가수, 화초기생, 항일기생 등으로 분화되어 사회의 각 분야에서 신여성으로서의 놀라운 활약상을 펼친다. 오늘날 엔터테인먼트 산업을 이끌어가고 육성하는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사람이 바로 연예인이다. 엔터테인먼트 산업은 거대한 시장을 형성하면서 체계화된 비즈니스 산업으로 인식된 지 오래다. 스포츠, 외교, 정치, 경제 등 사회 각 방면으로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데, 이러한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원형이 일제시대에도 이미 존재했던 것이다. 조선 문화 홍보대사 역할을 한 명월관 기생, 사진엽서와 전람회의 모델로 활약한 기생, 영화ㆍ연극 부문에서 여주인공으로 유명세를 탄 4인의 기생들, 대중가요 가수와 광고모델로 국민적 인기를 얻은 기생 등 당대 기생들의 다양한 활동을 살펴보면 오늘날과 놀라우리만치 흡사한 연예인의 모습을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바로 근대의 빛을 받아 화려한 인생을 살면서도, 왜곡된 근대의 그늘로 인해 고통 받는 인생을 살았던 일제시대 기생들의 삶을 21세기의 관점에서 재조명한 것이다. 저자의 말 중에서 올해 경인년은 광주민주화운동 30주년이면서 한국전쟁이 일어난 지 60주년이 되는 해이다. 그리고 100년 전에 나라를 빼앗겼던 경술국치의 백주년이 되는 해이다. 그러면서 우리는 지금 아직까지도 일제 강점기의 문화를 청산하지 못했다. 일제 강점기의 정책은 효율적인 식민 지배를 위한 탄압이었고, 고유성 말살 및 우민화, 철저한 경제적 수탈 등으로 영구 예속화를 의도하였다. 하지만 당시의 조선 사회는 식민지 공업화 정책에 의해 강제된 ‘근대’를 체험하게 된다. 식민지 치하의 조선인에게 다가온 ‘근대’의 모습은 라디오, 축음기, 영사기와 같은 발명품, 혹은 미술 전람회, 물산 박람회, 운동회, 영화관, 유람단, 광고 모델 등이었다. 여기에서 권번 기생의 화려한 등장을 빼놓을 수 없다. 당시 고관대작들이나 학자들의 회합에서만 하더라도 기생이 나오지 않는 장면은 상상할 수 없다. (중략) 추천의 말 박민일(강원대 명예교수) 이 책은 뭇사람들에게 폄하 ㆍ 비하ㆍ천시 당했던 기생이 당당한 예능 엔터테이너로서, 또는 여성사와 문화 사회사, 여성 예술사와 예능사를 새롭게 구축한 선구자로서 공고히 자리한다는 것을 알려준다. 제1부 일제 강점기 연예인(演藝人)이 된 기생들 저자의 말 중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연예인의 효시가 되는 기생들은 전통 예악문화의 계승자이면서 근대적 연예인이었다. 라디오 방송에 권번 기생을 빼놓고는 방송 편성이 불가능할 정도였다. 축음기의 SP레코드는 권번 기생 출신 대중가수들, 왕수복, 선우일선, 김복희 등에 의해 폭발적인 판매를 이룬다. 영화의 여배우로 당시 트로이카를 이루었던 기생은 이월화, 석금성, 복혜숙 등이었다. 그리고 나운규의 영화 에 출연한 기생 신일선도 빼놓을 수 없다. 초창기 미술 전람회의 모델도 권번 기생이 거의 장악할 정도로 중요했다. 조선 물산 박람회에서는 공연과 여흥의 중심을 차지했다. 신문 및 잡지의 광고 모델로서는 장연홍, 노은홍, 김영월, 김옥란 같은 기생들이 매력적인 존재였다. 요즈음 행사 도우미처럼 각종 행사에는 기생의 공연이 늘 한결같이 따라다녔다. 더구나 레뷰댄스의 대중화에 기여한 인물도 바로 기생이었다. 근대 대중문화계를 뒤흔든 샛별 조선 문화 홍보대사, 명월관 기생 궁중에서 일할 수 없게 된 관기들은 대다수 요릿집으로 모여들었다. 요릿집 중에서도 잘 알려진 명월관은 전국 각지는 물론 국외 프랜차이즈까지 내면서 크게 번창한다. 당시 경성은 조선의 수도로 내외인의 교류가 빈번했는데 마땅히 음식을 대접할 만한 요리점이 없었다. 그때 생긴 명월관은 청결하면서도 신식의 요리점으로서 조선식의 궁중요리를 선보였다. 또한 큰 규모의 환영식을 거행하는 데 있어서도 으뜸으로 인식되어 조선을 방문하는 외국인은 거의 명월관에서 회합을 가질 정도였다. 이러한 명월관 안에서 활동하는 명월관 기생 역시 유명세를 누리며 조선을 방문하는 외국인들에게 조선의 전통 문화나 관습 등을 알리는 역할을 맡기도 한다. 단순히 여흥을 즐기기 위한 보조자로서의 역할뿐만 아니라 스포츠 선수나 요직의 인사들과 가까이 교류함으로써 자연스럽게 우리 문화를 널리 알리는 문화 전파자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해낸 것이다. 본문 p.45 신문 광고 문안 1932년 1월 10일자 일본 제일의 조선요리 동경東京 명월관明月館 동경 시 고지마치 구麴町區 나가타 초永田町(山王下) 전화 긴자銀座 57-0057번, 57-3009번 최고의 역사를 두고 찬란한 광채를 가젓든 우리 문화가 세월의 추이됨을 따라 부지중 소멸 되어감은 누구나 다 통탄하는 바이외다. 그 잔해(殘骸)의 일부나마 외인(外人)에게 소개함으로써 우리의 존재를 인식케 하는 것이 해외에 있는 우리들로서 마땅히 할 의무의 한 가지가 아닌가. 확신하여 통속적으로 고국을 선전하는 기관으로 명월관을 경영하던 바 사회의 동정과 원조를 받아 소기(所期) 이상의 성과를 얻었음으로 그의 일단을 보고함도 무익한 일이 아닌가 합니다. (중략) 특히 저자는 1922년 12월 9일 미국의 메이저리그 올스타 팀이 야구 시범 경기를 위해 우리나라를 방문한 사례를 들어, 명월관 기생과 미국 야구 선수단의 이색적인 만남을 소개하고 있다. 명월관 기생들의 본분이 유명한 노래를 부르고, 아름다운 춤을 추어 귀빈들의 심신을 즐겁게 하는 데 있다 하지만, 기생들이 미국직업야구선수단에게 조선 춤의 대표인 검무, 승무 외에도 사고무, 춘앵전 등의 춤사위를 선보여 미국선수단을 매혹시켰다고 하니, 조선의 전통 춤과 음악을 알리는 문화 홍보대사로서의 역할도 동시에 수행한 것이나 다름없다. 일제 강점기 최고 히트상품, 기생 사진엽서 일제시대 조선왕조와 함께 ‘관기’는 스러져 갔다. 관기는 국가에 소속된 일종의 공인 예술가였다. 하지만 1908년 9월 15일 ‘기생 및 창기 단속 시행령’이 제정되면서 관기 제도가 폐지되었다. 일제는 기생에 대해 철저한 통제와 감시를 하여 공연 예술가로서의 기생을 몰살한 것이다. 이윽고 일본의 제국주의는 기생들을 상업적으로 이용하기 시작한다. 일본인들은 관기의 모습을 사진엽서에 담아 팔았는데, 요즘으로 말할 것 같으면 연예인 브로마

저자 소개

  • 저자 : 신현규
저자 신현규
중앙대학교 교양학부 교수로 중앙대학교 대학원에서 문학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콘텐츠진흥원, 민속박물관대학(사), 에버에듀닷컴 등에서 을 특강한 바가 있다. blog.naver.com/shglem 논저로는 \"일제강점기 기생인물생활사;꽃을 잡고, 경덕출판사, 2005년\", \"기생에 대한 오해와 진실, '신동아', 동아일보사, 2006년, 11월호\", \"평양기생왕수복―10가수여왕되다, 경덕출판사, 2006년\", \"기생이야기―일제시대의 대중스타, 살림, 2007년\", \"조선미인보감'에 수록된 창가 연구, '우리문학연구' 21, 우리문학회, 2007년\", \"문헌에 나타난 '기(妓)'의 기원 연구-화동기원변증설을 중심으로, '한민족문화연구' 23, 한민족문화학회, 2007년\", \"기생사진에게 말걸기(1)-(6), '월간 사진', 월간사진출판사, 2008년 9월호―2009년 2월호\", \" '선연동' 시 연구―기생의 무덤을 소재로 한 시가 중심으로, '우리문학연구' 29, 우리문학회, 2010년

목차

목차
머리말 3
제1부 일제 강점기 연예인演藝人이 된 기생들
조선 문화 홍보대사, 명월관 기생
명월관 1호실의 놀음기생 13 | 메이저리그 선수단과 명월관 기생의 첫 만남 20 | 요릿집 명월관의 발자취를 따라가며(1)-황토현 시절 33 | 요릿집 명월관의 발자취를 따라가며(2)-명월관 별관 태화관과 3·1 독립선언문 36 | 요릿집 명월관의 발자취를 따라가며(3)-돈의동 본점과 서린동 지점 시절 40 | 요릿집 명월관의 발자취를 따라가며(4)-광복 후 현재 42 | 일본 동경의 명월관과 지방의 프랜차이즈 명월관 44
근대 대중문화계를 뒤흔든 샛별
근대의 대중스타, 기생 53 | 1920년대 대중음악을 꽃 피운 명기·명창 54 | 대중스타로 등장한 평양 기생, 10대 가수여왕 왕수복 56 | 영화, 패션, 광고 등으로 종횡무진하는 기생의 활약상 60 | 놀랄 만한 권번 기생의 수입 63 | 웃음을 파는 이유로 사회적 지탄을 받아야 하는 현실 63
사진엽서 속에 담긴 기생과 식민지 조선
일제 강점기 최고 히트상품, 기생 사진엽서 69 | 제국주의와 히노데상행의 기생 사진엽서 76
그림 같은 자태의 기생, 전람회 모델이 되다
그림 모델의 효시, 권번 기생 일화 81 | 근대 조선미술계를 좌지우지한 조선미술전람회 84 | 기생 김명애를 모델로 그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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