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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90429858 / 352쪽 153 x 2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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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서평 올해로 91주년을 맞는 3·1절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는 뜻 깊은 책 《노블일지 1892~1934》가 출간되었다. 구한말에서 일제 강점기까지 42년간 이 땅에서 살다간 미국인 여선교사 매티 윌콕스 노블 여사?는 매일매일 자신이 보고 들은 것을 일지로 기록하였다. 이 육필 일지는 그녀의 사후 유족들에 의해 보관되다가 80년대 후반에야 문서로 정리되었으며, 90년대에 국내 일부 기독교계와 사학자들에 의해 연구․소개되었으나 책으로 번역 출간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꽃다운 스물 살의 나이에 갓 결혼한 새신부가 코리아라는 머나먼... 올해로 91주년을 맞는 3·1절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는 뜻 깊은 책 《노블일지 1892~1934》가 출간되었다. 구한말에서 일제 강점기까지 42년간 이 땅에서 살다간 미국인 여선교사 매티 윌콕스 노블 여사는 매일매일 자신이 보고 들은 것을 일지로 기록하였다. 이 육필 일지는 그녀의 사후 유족들에 의해 보관되다가 80년대 후반에야 문서로 정리되었으며, 90년대에 국내 일부 기독교계와 사학자들에 의해 연구․소개되었으나 책으로 번역 출간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꽃다운 스물 살의 나이에 갓 결혼한 새신부가 코리아라는 머나먼 낯선 땅에 선교사로 부임하여, 복음이라고는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이들을 열성적으로 전도하고, 칠남매를 낳아 기르고(그중 둘은 아기 때 숨져 평양에 묻힌다), 병들고 가난한 이웃들을 돕고, 차별받는 여성과 어린이들을 가르치다가 환갑이 넘어 미국으로 돌아가 운명을 맞이하는 지난한 여정은 그 자체로 지난 세기 범상치 않은 한 여성의 삶을 감동적으로 보여준다. 하지만 우리가 《노블일지》를 주목하는 것은 단순한 개인적 차원을 넘어서는 그 역사적 기록으로서의 가치 때문이다. 3ㆍ1운동, 그때 그곳의 생생한 모습 《노블일지》에서 가장 압권이자 그 사료로서의 의의를 가장 잘 보여주는 대목이 3·1운동에 대한 생생한 관찰과 묘사다. 1919년 3월 1일 노블 여사는 사방에서 갑자기 들려오는 기쁨에 찬 만세 소리에 깜짝 놀란다. “오늘은 한국의 위대한 날이다. 한국인들의 기쁨이 얼마나 이어질 수 있을까? 오후 2시, 중학교를 비롯한 각급 학교들이 일본의 한국 지배에 항거하는 시위를 벌였고, 거리로 나가 양손을 위로 올리고 모자를 흔들며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치며 행진을 하기 시작했다. 거리의 사람들 역시 이 대열에 합류했고, 도시 전역에 기쁨의 외침 소리들이 울려 퍼졌다. 나는 긴 행렬 하나가 궁궐[덕수궁] 담장의 모서리를 지나는 광경을 우리집 창문을 통해 볼 수 있었다.” 그러나 만세의 환희는 곧 일본 경찰과 헌병들의 잔혹한 탄압으로 이어진다. “오늘 아침 9시에 남녀 학생들이 인파가 모여 있던 남대문 역전에서 시위를 벌였다. 학생들은 해방가를 불렀다. …… 학생들이 이동을 하여 덕수궁 앞에 다다르자 경찰들이 진압에 들어갔다. 사복 차림의 이들이 가게에서 쏟아져 나와서는 몽둥이로 학생들을 때리기 시작했다. 많은 학생들이 무자비하게 구타당했다. 이화학당의 한 여학생이 몽둥이로 등을 맞는 것을 보고 우리 비서인 김봉율 군이 다가가 말리려 했다. 그러자 신분을 위장한 경찰로 의심되는 사복 차림의 일본인들이 김봉율 군을 때리기 시작했다. 그의 머리를 때린 몽둥이가 세 동강으로 부러지자 그들은 그의 목을 주먹으로 때리고 고개를 뒤로 꺾어서는 감옥에 집어넣었다.”(1919년 3월 5일자) “어제 저녁 일요일, 서울 서부의 몇몇 동네와 종로에서 동대문에 이르는 서울 시가에서 수백 명의 사람들이 한국의 독립을 외치는 데모가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경찰과 헌병들에 의해 베임을 당했고, 몇몇은 죽임을 당했다. 토요일 아침에는 다섯 명이 살해됐다.”(1919년 3월 24일자) “평양에 있는 우리 기홀병원과 서울의 세브란스 병원에는 처참하게 칼로 베어진 환자들이 매일 이송되고 있다. …… 현재 병원의 병실과 복도는 부상자로 득실거린다. 어제 세브란스에서 60장의 침대 시트와 많은 붕대를 요청하는 비상전화가 왔다. …… 그들은 맨손으로 단지 ‘자유, 우리에게 자유를!’을 외쳤던 사람들이다.”(1919년 3월 28일자) “요즘은 밤에 한국인이 거리를 걷기만 해도 경찰에게 매를 맞는다. …… 어젯밤 거리를 걷던 사람들은 만세를 부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세 명이 살해됐으며 많은 사람들이 다쳤다.”(1919년 3월 30일자) “3월 31일 저녁 한 한국인 남성이 시골에서 올라와 남대문에서 기차를 내려 집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그는 정부에 고용된 소위 일본 재향군인들(순전한 악당들)에게 잡혀서 매를 맞았다. 어떠한 구실도 없었다. 다만 공포체제를 조성하는 것이었다. 그 남자는 너무 심하게 맞아서 밤사이에 죽었다. 이것은 하나의 예외적 사건이 아니다. 이러한 경우가 수도 없이 많고 증거도 확실하다.”(1919년 4월 2일자) 노블 여사는 시위를 하다 붙잡힌 이들이 겪은 심문과 고문, 감옥의 열악한 환경과 불공평한 재판 과정 등도 상세히 소개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충격적인 것은 일본 경찰들이 여학생들을 벌거벗겨 고문하는 장면이다. “경찰서에서 그들은 몸수색을 위해 옷을 벗으라는 명령을 받았다. 그것은 굴욕감을 주기 위한 것이었다. 잠시라도 머뭇거리면 금줄 세 개를 단 네다섯 명의 남자들로부터 매를 맞았다. 감옥에서도 그들은 벌거벗겨진 채 지내며 간부들의 사무실로 불려가서 심문을 당하고 매를 맞았으며, 다시 알몸으로 감방으로 돌아와야 했다. …… 감옥에 아직도 남아 있는 두 소녀는 고문을 당해야 했다(출옥한 소녀들의 증언이다). 한 소녀는 양쪽 엄지손가락을 한데 묶여 매달렸다. 다른 소녀는 이화학당에서 가장 총명하고 예쁜 여학생으로 진남포에서 내가 시작한 최초의 여학교 출신인 박인덕이다. 그녀는 옷을 벗기우고 심한 채찍질을 당했다. 그녀는 또한 무릎을 꿇고 앉아 무거운 의자를 들고 있어야 하는 고문도 당했다. 만일 떨려서 손이 내려오면 팔을 맞아야 했다.”(1919년 3월 28일자) 《노블일지》는 이러한 공포 분위기에서도 용감하게 진행된 한국인들의 동맹파업과 동맹휴교, 일본 상품들에 대한 불매운동 등 당시 서울의 모습과 항일운동의 전개 양상을 세밀히 그리고 있다. 제암리 학살사건에 대한 새로운 증언 3월 1일 이후 전국으로 들불처럼 번진 만세시위가 특히 활발했던 곳이 수원 일대였다. 일본군은 기독교와 천도교 세력이 배후에 있다고 보고, 이에 대한 계획적 토벌의 일환으로 1919년 4월 15일 제암리와 고주리의 예배당에 신자들을 모으고 총살한 뒤 불태운다. 이것이 바로 ‘제암리 학살사건’이라고 알려진 사건의 개요다. 하지만 당시 수원 지역 감리사였던 남편과 함께 직접 학살 현장을 둘러보고 생존자들을 만나 증언을 들은 노블 여사의 기록에 의하면, 당시 일본군의 방화와 살육이 더 폭넓은 지역에서 이루어졌으며 희생자도 알려진 29인보다 훨씬 많았음을 알 수 있다. 먼저 노블 여사는 사건의 발단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최근 일본정부는 소위 ‘역도들’을 제압할 수 있는 더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했다고 한다. 우리는 맨손으로 단순히 ‘독립 만세’를 외치는 사람들에게 얼마나 더 가혹할 수 있을지에 대해 상상할 수 없었다. 그러나 보병대 2사단, 포병대 1사단, 기병대 2사단이 일본으로부터 파병되고 난 후 우리가 처음 알게 된 사실은 마을들이 불타고 있다는 소문이 무성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특정 마을들이 불타버렸다는 결정적 소식은 그곳에서 서울로 도피해온 사람들에 의해 전해졌다.”(1919년 4월 2일자) 당시 미 부영사를 위시한 선교사들이 제암리의 피해 상황을 조사하기 위해 방문했을 때 “그들은 실상이 전해들은 그 어떠한 소문들보다도 훨씬 참혹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들은 재가 되어버린 교회와 숯덩이가 된 시신들을 보았으며, 살이 타면서 나는 냄새를 맡고 병이 날 지경이었다. 곡물 창고와 가축들도 모두 불에 탔다. 군인들은 가정을 방문하면서 남자들을 교회로 모이라고 했는데, 그들이 다 모이자 교회에 불을 붙이고 안에 있던 사람들을 모두 불살라버렸다. 누군가 도망을 치려고 하면 그들은 총으로 쏴 죽였다. 남편들이 어떻게 됐는지 교회로 보러 왔던 두 여성이
목차
옮긴이의 글_어느 미국인 여선교사의 한국 생활 42년
머리말
제1권 1892~1896 태평양을 건너 코리아로
제2권 1896~1905 피난을 떠나는 사람들
제3권 1904~1910 빼앗긴 땅의 슬픔
제4권 1911~1919 그날의 만세 소리
제5권 1919~1925 불타버린 마을에서
제6권 1927~1934 승리의 생활
옮긴이 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