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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슬리 찬송시선집

존 웨슬리 저 | 나형석 역 | KMC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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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84304604 / 896쪽 223 x 15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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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1780년 웨슬리 찬송시가 2010년 현재 우리 삶과 신앙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 존과 찰스 웨슬리 두 형제는 18세기 영국 국교 내 메도디스트 운동의 두 기둥이다. 이 운동의 영성과 열기를 담고 있었던 것은 존의 설교와 찰스의 찬송시이다. 경험적 논증과 시가 메도디스트 운동의 양대 레토릭이었던 셈이다. 그 동안 존 웨슬리에 대한 학문적 조명과 자료 발간은 한국 교회 내에서 꾸준히 이어져 왔으나 찰스에 대한 것은 상대적으로 미진한 감이 분명 있었다. 미 연합감리교회의 경우 이미 지난 세기 후반부터 찰스 웨슬리 소사이어티를 결성하여 찰스의 9000편에 달하는 시의 소재파악, 자료와 연구물의 목록화, 주요 연구물 출판, 그리고 자료의 목회적 활용방안 등을 논의해오고 있다. 웨슬리찬송시선집은 찰스의 시와 존의 편집 정신이 어울려 1780년 감리교 운동의 영적 파장과 충격력을 극대화시킨 문헌으로서 메도디스트 운동의 실체를 파악하는데 없어서는 안 될 사료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특히 525편의 찬송시 중 찰스의 것이 472편에 달해 실제로는 찰스 웨슬리의 자료집 출간이라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본 찬송시선집의 한국어판 최초 완역으로 인해 기존에 출판된 150편의 존의 설교집 옆에 찰스의 찬송시가 놓여져 이제 메도디스트 운동 연구의 사료적 균형을 조율할 수 있게 된 셈이다. 또한 독자들은 처음으로 찰스의 저작을 적지 않은 지면을 통해 직접 대면할 수 있게 되었다. 본 웨슬리 찬송시선집의 출간은 그 책이 가지는 사료적 가치로 인해서만 오늘에 의미를 주는 것은 아니다. 어떤 역사적 신앙공동체이든 하나님, 세계, 인간, 교회, 성경, 성례, 교회의 삶에 대한 공동체 나름의 해석의 관점 혹은 키를 지니게 된다. 그 것이 없다면 공동체의 정체성 혹은 존재이유가 사라진다. 이 역사적 신앙 공동체들은 자신들의 독특한 독서 코드와 현재의 세계를 대화시키며 공동체의 미래를 향해 비둘기를 날린다. 새로운 세계의 상징, 올리브 잎사귀를 가지고 돌아오길 기다리며. 메도디스트는 자신의 세계 해석의 키를 설교와 찬송시 안에 숨겨두었다. 메도디스트들이 그런 종류의 사람과 공동체가 되고 그 어떤 독특한 세계를 꿈꾸며 사는 것은 그런 설교를 듣고 그런 내용으로 찬양하기 때문이리라. 찰스의 시는 존의 설교와 평행하여 메도디스트 운동의 영적 키와 룰을 제시하고 있다. 저들을 그 이상 앞으로 초대하고, 회개하게 하며, 변화에로 격려한다. 공동체 정체성을 조형해주는 이런 해석의 키와 스타일이라는 점에서 찰스의 시는 메도디스트들의 입에 올려져 저들의 오늘을 위해 대화 파트너로 저들의 미래를 위해 도전과 창조적 통찰의 샘으로 기능하게 될 것이다. 메도디스트를 메도디스트 되게 하는 룰의 재발견이라는 점에서 웨슬리찬송시선집 완역은 단지 사료적 축적에서만 의미를 살펴 볼 일이 아니다. 이 찬송시선집 번역본의 출간 목적이 오늘날 메도디스트를 그 색과 맛에서 더욱 선명하게 만들며 그럼으로써 한국의 보편적 교회의 공동선에 공헌할 수 있도록 돕게 한다는 데 있다면 이 번역물의 출판은 메도디스트 그룹과 한국 교회의 갱신이라는 차원에서도 그 의미를 짚어봐야 할 것이다.

저자 소개

  • 저자 : 존 웨슬리
찰스 웨슬리
유명한 찬송가 작가인 동시에 형 존 웨슬리와 함께 감리교의 부흥에 참여했던 찰스 웨슬리는 1707년 12월 18일 엡워드에서 태어났으며 초기교육은 어머니인 수산나로부터 받았다. 그는 1716년 런던의 웨스트민스터 스쿨에 입학하였으며, 1721년에 왕립 장학생이 되었다. 1726년에 찰스는 다시 옥스퍼드의 크라이스트칼리지에 들어갔는데 이 대학은 당시 형 존이 막 졸업했던 학교로서 그 시대 대학 중에서는 가장 크고 유명한 학교였다. 그곳에서 신성클럽(Holy Club)을 조직하고 헌신과 독서생활 그리고 자선사업 등 여러 가지 종교적인 활동에 헌신한다.
1735년 형 존의 주장으로 영국 국교회의 사제가 되었다. 그 후 1735년 10월에는 형과 함께 새 식민지인 조지아로 떠나 형과는 달리 식민지 경영위원회의 서기와 제임스 오글리토프 장군의 개인 비서로서 일했다. 하지만 건강이 나빠지고 비서로서의 직무수행능력 부족으로 비참한 생활을 하게 되었다. 영국으로 다시 돌아와 1738년 2월에 옥스퍼드에서 거의 죽음 직전까지 이르렀다. 그는 건강을 회복하고 모라비아교의 선교사 뵐러(Petter Bohler)에게 영어를 가르쳤는데, 뵐러는 그 대가로 그와 그의 형 존에게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교리의 참의미를 가르쳐 주었다.
1738년 5월 21일 성령강림절에 그는 “그리스도 밖에는 아무 것도 몰랐으나 그리스도를 앎으로써 모든 것을 아는” 회심을 하였고, 그의 형도 회심을 경험함으로써 그들은 현재 로 알려진 찬송을 불렀고 진정한 중생이 시작되었다. 그 후 그는 런던의 여러 교회, 감옥에 가서 설교했으며, 10년간 그의 형과 함께 영국전역을 순회하면서 야외에서 복음을 전파했다. 1750년 5월 코크에서 일어난 무시무시한 폭동과 함께 10년간의 여행기간은 끝났다. 그러나 그때는 벌써 감리교 운동이 전국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으며 그들의 숫자와 영향력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었다.
찰스의 가장 큰 업적은 찬송가 분야에서이다. 그 많은 양의 작품을 만들어 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작품이 아주 훌륭하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1780년 나온 찬송가집을 능가할 만한 것이 아직 나오지 않았는데 그 찬송가집의 대부분이 찰스에 의해 쓰인 것이다. 역사적으로 중요한 모든 교회들이 커다란 기독교 축제일들을 지킬 때에 사용한 가장 훌륭한 찬송가들 중의 몇몇 작품들이 바로 찰스가 쓴 것들이며 아직까지도 기독교의 신앙 중 복음적인 부분의 내용에 관해 찰스보다도 더 세련되고 충실한 표현을 한 사람은 없다.
1788년 3월 29일 런던에서 사망할 때까지 불후의 찬송가를 지었으며, 감리교 신도들에게 종교는 비록 개인적으로 향유되는 것이긴 하지만 사회적으로 표현되어야 한 다는 것을 가르쳤다. 그가 작사한 것으로 한국 찬송가에 소개된 것은 만유의 주 앞에, 천사찬송하기를, 예수 부활하셨으니, 만입이 내게 있으면, 천부여 의지 없어서, 나 맡은 본분은, 비바람이 칠 때와, 하나님의 크신 사랑 등이 있다.


목차

추천의 글 5
존 웨슬리 초판 서문 8
역자 서문 13

1부. 믿음으로의 초대
- 신앙을 소개하는 찬송시

1편. 하나님께 돌아오도록 권면하고 간청함 24
2편. 신앙의 여러 내용을 묘사함 43
3편. 복을 구하는 기도 155

2부. 경건
- 신앙 상태를 묘사한 찬송시

1편. 외적 종교 172
2편. 내적 종교 180


3부. 통회자를 위하여
여러 처지의 통회자를 위한 찬송시

1편. 회개를 위한 기도 188
2편. 죄를 자각한 통회자 202
3편. 거듭난 통회자 236
4편. 퇴보를 자각한 통회자 304
5편. 퇴보로부터 회복된 통회자 325

4부. 신앙인을 위하여
- 여러 처지의 신앙인을 위한 찬송시

1편. 기쁨중에 있는 신앙인 340
2편. 믿음의 싸움중인 신앙인 457
3편. 기도중인 신앙인 508
4편. 깨어 있는 신앙인 528
5편. 노동중인 신앙인 550
6편. 고난중에 있는 신앙인 560
7편. 완전한 구원을 위해 탄식하는 신앙인 576
8편. 중생에 이른 신앙인 663
9편. 구원받은 신앙인 703
10편. 세상을 위해 기도하는 신앙인 735

5부 메도디스트 공동체
- 집회를 위한 찬송시

1편. 모임 794
2편. 감사드림 809
3편. 기도[성도의 교제, 애찬] 829
4편. 떠남 877

웨슬리 형제의 찬송 부르기 지침 8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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