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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1쪽 148 x 2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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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오치균은 작가로서 첨예한 자의식을 갖고 있는 매우 유니크한 스타일리스트이다. 20년을 훌쩍 넘긴 결코 짧지 않은 화력(畵歷) 동안 그는 예외 없이 순수회화에만 전념했다. 서울대 미대와 동대학원을 졸업한 그는 현대미술의 본고장이랄 수 있는 뉴욕으로 유학을 떠나 오로지 실력만으로 뉴욕의 소호에서 인정을 받는다. 그는 뉴욕에서 첫 번째 개인전을 열기 위해 슬라이드 필름을 뉴욕의 갤러리에 돌렸고, 그 결과 그의 예술적 재능을 높이 산 핀다갤러리에서 첫 개인전을 열게 된다. 이후 그는 뉴욕을 중심으로 왕성한 작품 활동을 펼치다가 귀국, 평단의 주목 속에서 다수의 개인전과 초대전을 가졌다.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작업을 벌이던 그는 1995년 돌연 뉴멕시코 주 산타페로 이주해 유럽문화와 토속 인디언문화가 혼합되고 사막과 협곡의 대자연이 천연 그대로 남아 독특한 매력이 있는 그곳의 풍경을 화폭에서 묘사하기 시작한다. 그의 독특한 화풍의 매혹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산타페 작품들이 탄생한 것이다.
오치균의 그림은 여러 평자들이 지적한 것처럼 작가로서의 탐미적 자의식이 진하게 묻어난다. 그는 또한 작업에 임하는 태도가 무척이나 진지하고 삼엄하기 이를 데 없는데, 그것은 그가 다른 직업을 갖지 않고 오로지 그림만을 그려서 생계를 유지해야 하는 ‘전업작가’라는 처지와 무관하지 않다. 미술평론가 정영목은 그의 작품에 대해 “전업작가로서 그의 삶 자체가 작업의 일부분처럼 붙어 다니는, 적어도 작품에 관한 한 열의와 진실성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면서 그의 진실성이 “인간적인 면모에서의 도덕적이거나 윤리적인 또는 교육적인 선악(善惡)의 개념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일상의 삶과 작업에서의 진지함, 그리고 그것이 배여 나오는 작품에서의 느낌이 서로 유린되지 않는다는 뜻에서의 진실성을 의미한다”고 평한다.
그는 매일 회사에 출퇴근하는 직장인처럼 경기도 광주에 있는 작업실에 출근해서 저녁 때 퇴근한다. 그에게 삶이란 곧 미술과 동의어이다. 그림을 그리지 않고서는 그는 단 하루도 삶을 지탱시킬 수 없다. 그의 그림에 다소 어둡고 진한 페이소스가 깔려 있는 것은 삶의 간난신고를 이해하는 그가 원천적으로 인간과 삶의 그늘 같은 부정적인 측면에 서려 있는 기운을 끄집어낼 줄 아는 “심미적인 페시미스트(pessimist)”이기 때문일 것이다.
화가 오치균을 다른 작가들과 뚜렷하게 구별되게 하는 것은 또한 그가 손가락으로 물감을 쌓아 올리는 임파스토 기법에 의한 지두화(指頭畵)를 즐겨 그리고 있다는 사실과도 깊은 연관이 있다. 그는 평면의 세계인 캔버스에 손가락으로 물감을 찍어 쌓아나가듯이 대상을 축조한다. 그의 그림에서 조각이 갖는 조형적 입체성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오치균의 독특한 임파스토 기법과 관련, 명민한 소설가이자 그 자신이 탁월한 탐미주의자이기도 한 김훈은 다음과 같이 그 본질적 가치를 언급한 적이 있다.
“연필로 글씨를 쓰는 나는 오치균의 손가락과 그의 손가락이 화폭에 남긴 흔적들에 각별한 친밀감을 느낀다. 연필로 쓰기는 몸으로 쓰기다. 나는 컴퓨터를 다룰 수가 없지만, 컴퓨터로 글을 쓸 수 있다는 상상을 해본 적도 없다. 연필로 쓰기는 몸으로 쓰기다. 연필로 글을 쓸 때, 어깨에서부터 손가락 끝까지 작동되는 내 몸의 힘이 원고지 위에 펼쳐지면서 문장은 하나씩 태어난다. 살아 있는 몸의 육체감, 육체의 현재성이 없이는 나는 한 줄의 글도 쓸 수 없다. 글은 육체가 아니지만, 글쓰기는 온전한 육체노동인 것이다. 나는 한번 쓴 글을 대부분 지워야 하기 때문에 볼펜이나 만년필로 쓸 수가 없다. 오치균이 손가락으로 물감을 으깰 때 재료가 육체와 섞이는 그 확실한 행복감을 나는 짐작할 수 있다. 재료를 장악하고, 그 재료를 육체화해서 재료를 마소처럼 부릴 수 있는 자만이 예술가인 것이다. 언어는 기호이고 또 개념인 것이어서, 나는 오치균이 색을 부리듯이 말을 부리지는 못한다. 그래서 나는 오치균의 손가락을 대책 없이 부러워한다. 손가락으로 색을 바르는 행위는 세계의 사물성과의 불화일 터인데, 그는 그 불화의 흔적을 남기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그 흔적들이 모여서, 시간의 지속성, 미래에 도래할 새롭고 낯선 색깔의 흐름을 보여줄 때 그의 화폭은 아름답고 강렬하다.”
오치균 역시 미술평론가 손철주와 가진 대담에서 손가락으로 작업하는 것에 “나는 붓이 싫다. 붓은 정교하게 구획하기 때문에 나는 붓이 싫다. 붓은 내 마음대로 부릴 수가 없다. 색들이 엉켜서 마구 들끓으면서 새롭게 태어나기를 나는 바란다. 그러나 손가락으로 그릴 때, 사물이 구획되는 부분을 마무리하기는 역시 힘들다. 내 그림은 몸으로 비벼낸 자취다. 나는 기본을 중시한다. 기본은 자동적으로 나오기 마련이다. 조형이란 본능적인 것이고 기본적인 것이다. 나는 소재의 연원을 생각하지 않는다.”며 완곡한 옹호와 애정을 드러낸 바 있다.
오치균의 작품은 몇 차례의 경매에서 예상낙찰가보다 세 배 가량 높은 금액에 팔리는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미술시장에서 차세대 대표 작가로 떠오르고 있는 오치균은 작가로서의 삶의 구체성을 온몸의 작업으로 실현하고 있는 프로페셔널한 우리 시대의 환쟁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