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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울림을 배우다

김태완 저 | 호미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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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88526927 / 289쪽 148 x 2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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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출판사 서평 우리 사회는 오랜 농경사회의 전통 속에서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의 문화를 꽃피워 왔다. 일정한 공간에 서로 모여 살면서 힘을 보태 일하고 그 결실을 나누는 모듬살이에서는 갈등과 다툼이 빚어지기 십상이기에, 서로 조화롭게 어울리기 위한 지혜가 필요했던 것이다. 요즘처럼 복잡하고 다원화된 사회에서는 다른 이들과의 조화로운 관계 맺기의 중요성이 더욱 대두되고 있다. 서점에 처세술에 관한 책들이 즐비한 것이 이를 반증한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과 조화롭게 지내는 참된 ‘어울림’은,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서 그때그때 기술적으로 처신하는 얄팍... 우리 사회는 오랜 농경사회의 전통 속에서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의 문화를 꽃피워 왔다. 일정한 공간에 서로 모여 살면서 힘을 보태 일하고 그 결실을 나누는 모듬살이에서는 갈등과 다툼이 빚어지기 십상이기에, 서로 조화롭게 어울리기 위한 지혜가 필요했던 것이다. 요즘처럼 복잡하고 다원화된 사회에서는 다른 이들과의 조화로운 관계 맺기의 중요성이 더욱 대두되고 있다. 서점에 처세술에 관한 책들이 즐비한 것이 이를 반증한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과 조화롭게 지내는 참된 ‘어울림’은,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서 그때그때 기술적으로 처신하는 얄팍한 처세에 있지 않다. 진정한 어울림은 상대방에 대한 배려에 있다. 그리고 그것은 사람이 자라면서 체득하는 인성에서 비롯된다. 처세에 관한 책 한두 권으로 손쉽게 ‘마스터’할 성질의 것이 결코 아니다. 남과의 어울림의 지혜는 어려서부터 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체득해야 한다. 어린 아이가 자기중심적인 태도에서 벗어나 다른 사람을 배려할 줄 아는 인성을 기르기까지에는, 수없이 많은 충돌과 꺾임, 그리고 그에 잇따른 자기 성찰의 과정이 필요하다. 자라면서 남을 배려할 줄 알고 남과 조화롭게 지낼 줄 아는 지혜를 체득한 사람은, 어느 곳에서든, 무슨 일을 하든 주변 사람들이 좋아하고 신뢰하고 따르게 되어 사회생활에서 수월하게 좋은 성취를 얻게 된다. 이것이 어울림의 지혜이다. 는, 「책문」으로 잘 알려진 지은이 김태완이 옛글 ‘사자소학’을 오늘에 맞게 새로이 풀이하여 쓴 에세이로서, 21세기를 사는 청소년들이 어울림의 지혜를 자연스럽게 익혀 나갈 길을 제시한다. 낡은 것이라고 무턱대고 버려야 할까? 왜 낡은 것이 되었을까 한번 곱씹어 보자! 중국 주자 시절의 책 ‘소학’을 모태로 하여, 조선시대 후기에 어린 아이들 용으로 만들어져 근대에까지 읽히던 ‘사자소학’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몸가짐과 마음가짐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 구체적인 행동 요강을 일일이 열거한 책이다. 한마디로 조화로운 인간을 키워내기 위한 교양서인 셈이다. 그러나 유교의 나라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사자소학’은, 비록 그 안에 담긴 뜻은 곡진해도, 21세기의 오늘날에는 많은 내용이 신사복에 고무신을 신은 것만큼이나 어색하고 시대와 동떨어져 있다. 그렇건만 지은이는 이 시대에 왜 하필이면 이미 낡아 버린 ‘사자소학’을 들고 나왔을까? 지은이 김태완은 “우리의 옛 문화에 담긴 의미와 가치를 충분히 곱씹어 보아야 한다”고 말한다. 지난 몇십 년 동안 산업화 과정에서 우리 전통의 것일랑 무턱대고 폐기처분했다가 뒤늦게 되살린다고 다시 한바탕 소란을 피우곤 한 것이 한둘이 아니었다. 외부의 눈으로, 남의 잣대로 우리 것을 무조건 헐고 없앴다가, 그런 행위가 결국은 우리의 근간을 스스로 헐어 없애는 일임을 뒤늦게 깨달은 소치였다. 아무쪼록 우리 문화는 우리가 우리 눈으로 보고 판단해서 버릴 것은 버리고 이어나갈 것은 이어나가야 한다는 것이 지은이의 생각이다. 그런 맥락에서, ‘사자소학’은 비록 그 구체적인 지침은 많은 부분이 시대에 걸맞지 않다 해도 그 안에 담긴 기본 정신은 오늘에도 여전히 유효하다는 판단에서 이 책을 쓰게 되었다고 한다. 그것은 사람들과의 관계에 관한 책인 ‘사자소학’의 기본 정신이 바로 남에 대한 배려와 남과의 조화로운 어울림을 가르치는 데에 있기 때문이다. 재미있는 고사와 어린 시절의 자기 경험을 통해 일깨워 주는 ‘어울려 살기’의 지혜 지은이는 옛글 ‘사자소학’에 담긴 의미를 오늘의 청소년들 눈높이에 맞추어 완전히 새롭게 풀이해 들려준다. 자신의 유년기와 십대에 겪고 보고들은 이런저런 이야기들이며, 또 옛 고전에서 뽑아낸 재미있는 일화들을 들려주면서, ‘어울림의 지혜’를 일깨워 준다. 마치 바로 옆에서 이야기하듯 조곤조곤 풀어 나가는 이야기는 더러는 옛날이야기를 읽는 듯도 하고, 더러는 좋은 도덕 선생이나 어머니한테서 찬찬히 타이름을 받는 듯도 하다. 그러나 이 책은 무엇이 옳고, 어떻게 해야 한다고 강요하기보다는, 독자 스스로 느끼고 깨우치기를 기다리면서 결론은 독자의 판단과 사유에 맡기고 있다. 잔소리가 사라진 요즘 세상을 향한 애정 어린 잔소리 우리 속담에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말이나, ?내가 필요한 모든 것은 유치원에서 배웠다?는 책이나, 성장기의 올바른 인성 교육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사자소학’이 언제부터인가 아이들 한자 학습서로 각광받고 있는 것은, 한자를 가르치는 것 위에 그 내용이 아이들 인성 교육을 위한 것이어서 학부모가 보기에 금상첨화 같은 한자 교재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 책은 옛 성현들의 말씀을 ?어 청소년들이 익혀야 할 마음가짐과 몸가짐에 대해 시시콜골 잔소리를 늘어놓은 셈이니, 입에 쓴 약일 수도 있다. 사실 회초리며 잔소리가 사라진 요즘 세상에 이보더 더 귀하고 애정 어린 잔소리는 없을 터이다. 한자 학습서로도 활용할 수 있게 배려한 편집 이 책은 ‘사자소학’이라는 텍스트를 통해, 청소년들이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꼭 필요한 어울림의 지혜를 스스로 키워 나가게 하려는 것이 본령이기는 하지만, 그에 더해 한자 학습까지 바라는 독자를 위해 한자 원문과 독음, 또 처음 나온 한자의 음과 훈을 본문에 곁들여 놓았다. 원문을 독송하면서 그 의미를 새기다 보면 자연스럽게 한자를 익혀 나갈 수 있다. 조금 어린 학생이라면 부모가 함께 독송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저자 소개

경북 봉화에서 태어나 초, 중등 교육과정을 이수하고, 숭실대학교에서 학부와 대학원을 졸업했다. 율곡 이이의 책문을 텍스트로 삼아 실리사상을 연구하여서 철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숭실대, 경원대 등에서 동양철학, 한국철학 등을 강의하였다. 현재 광주광역시 소재 대안학교 지혜학교 철학교육연구소 소장으로 재직 중이다. 《책문》은 조선시대 고급공무원 선발 시험인 대과의 마지막 단계에서 출제한 시험과 답안의 한 유형인 책문 가운데에서 오늘날 사회의 정치경제의 현안을 해결할 답안과 사회문화의 방향을 모색하는 데 타산지석이 될 만한 글을 가려 뽑아서 엮은 책이다. 지은 책으로는 《율곡문답》, 《경연, 왕의 공부》, 《사자소학, 어울림을 배우다》, 《시냇가로 물러나 사는 즐거움》, 《책문, 시대의 물음에 답하다》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는 《상수역학》, 《도교》, 《고대 중국의 축제와 가요》, 《성학집요》, 《고전이 된 삶》, 《주자평전》 등이 있다.

책 속에서

나이가 곱절이 많으면 아버지처럼 섬긴다. 나이가 열 살이 더 많으면 형처럼 섬긴다.
年長以倍 父以事之 十年以長 兄以事之

옛날 서당에서 공부할 때는 같은 스승 밑에서 같이 학문을 닦고 배우던 사람들은 나이가 조금 차이 나도 모두 ‘벗’으로 통했다고 합니다. 사회에서도 적어도 열 살쯤은 더 많아야 형으로 대했고 그보다 적으면 다 벗으로 통했습니다.
물론 때로 상대방을 존중할 때는 나이가 많든 적든 ‘형’이라는 호칭을 쓰기도 했습니다. ‘노형’이라는 말은 나이 많은 사람에게만 쓰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을 높이고 존중할 때 아랫사람에게도 쓰던 말이었습니다.

‘오성과 한음’이라고 들어봤지요? 조선 시대의 학자이며 정치인이었던 이항복과 이덕형이랍니다. 이항복, 이덕형이라는 이름보다도 오성과 한음이라는 호가 더 알려져 있지요.
두 사람의 개구쟁이 짓과 갖가지 일화는 어린이들이 즐겨 읽는 동화나 소설로도 꾸며져서 누구나 재미있게 읽고 있지요. 그런데 사실 이 두 사람은 나이가 다섯 살이나 차이가 납니다. 이항복이 1556년생이고, 이덕형이 1561년생입니다. 이항복이 이덕형보다 다섯 살 위입니다. 그런데도 이 둘은 친구 사이로 통했습니다.
요즘 같으면 5년 선배를 친구로 부르고 대한다는 것은 어림도 없지요. 왜 이렇게 되었을까요?
옛날 서당에서는 나이가 많든 적든 같은 스승 밑에서 함께 배우며 자기 능력에 따라 글을 읽으며 한 단계가 끝나면 다음 단계로 올라갔기 때문에, 지금처럼 나이에 따라 선배, 후배가 엄격하게 나뉘는 것이 아니었지요. 그러나 근대식 학교 교육을 받게 되면서 나이에 따라 학년이 정해지고, 한 학년이 끝나면 거의 예외 없이 다음 학년으로 올라가기 때문에 선배, 후배가 분명해졌습니다. 게다가 전통적인 장유유서의 윤리에 군대식 서열 문화가 뒤섞여 조선 시대보다 더 엄격한 상하의 서열 문화가 생겨난 것입니다.


온몸과 머리카락, 살갗을 헐지 말고 상하게 하지 말라.
身體髮膚 勿毁勿傷

옛날 사람은 아버지의 정기와 어머니의 피로 내 몸이 이루어졌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몸을 함부로 굴려서 다치고 상처를 입으면 부모님의 몸을 다치고 상하게 하는 것과 같이 여겨 큰 불효로 생각했습니다.

공자의 제자 가운데 효성이 지극한 증자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평생 몸가짐을 조심하여서 몸에 흉터 하나도 없었답니다. 그는 죽을 때 제자들에게 자기 손발을 만져 보라고 하였습니다.
“너희는 내 손발을 만져 보아라. 흉터가 하나라도 있느냐?”
제자들이 흉터가 없다고 하였더니,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평생 살얼음을 밟듯, 깊은 못가에 다가가 듯 조심조심 살아왔다. 그래서 부모님이 온전하게 낳아 주신 몸을 잘 간직했다. 이제는 저 세상으로 갈 테니 앞으로는 내가 이런 조심을 하지 않아도 되겠구나.”
깨끗하고 흠 없는 몸으로 나를 낳아 주셨으니 어버이의 정기로 이루어진 이 몸을 잘 간직하여 흠 없이 돌아감으로써 부모님께 마지막 효도를 다 한다고 한 것입니다.
이처럼 옛 사람들은 부모님에게서 물려받은 몸을 털끝 하나까지도 잘 간수하여 다치거나 상하게 하지 않는 것이 효도의 시작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형제가 착한 일을 하면 반드시 밖으로 드러내어 칭찬한다.
형제에게 실수가 있으면 숨기고 남에게 드러내지 않는다.
兄弟有善 必譽于外 兄弟有失 隱而勿揚

「맹자」에도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맹자에게 물었습니다.
“선생님, 순舜은 천자이고 고요皐陶는 법관입니다. 만일 순의 아버지가 사람을 해쳤다면 고요는 어떻게 했을까요?”
맹자가 대답했습니다.
“법을 집행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순 임금이 막지 않겠습니까?”
“순 임금이 어떻게 막을 수 있겠는가? 고요가 집행하는 법은 전해 내려 온 것이기 때문에 아무리 임금이라고 해도 바꿀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순 임금이 어떻게 했겠습니까?”
“순 임금은 온 세상을 다스리는 임금 자리를 헌신짝 버리듯이 버리고, 몰래 아버지를 업고 도망하여 바닷가에서 살면서 죽을 때까지 즐거워하며 세상을 잊어버렸을 것이다.”

이것은 이야기는 사회 정의, 법, 국가의 기강 같은 것을 무시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법이 있어야 사회가 제대로 돌아가고 나라가 온전히 지탱됩니다. 다만 그런 가치보다 부모와 자식, 형제와 같은 천륜이 더 근원이라는 말입니다. 법과 사회질서도 가족 사이의 우애와 사랑을 기반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법은 어디까지나 사람과 사회를 위해 있는 것이지 사람과 사회가 법을 위해 있는 것은 아닙니다. 만일에 부모와 자식이 서로 고발하는 사회라면 그 사회는 법은 잘 지켜질지 몰라도 가족은 남아날 수 없는 사회일 것입니다.


어른은 어린이를 사랑하고 어린이는 어른을 공경한다.
어른 앞에서는 나아가고 물러날 때 반드시 공손히 한다.
長者慈幼 幼者敬長 長者之前 進退必恭

내가 내 삶의 주인이듯 상대방은 그 사람 삶의 주인입니다. 따라서 내 인격이 소중한 만큼 상대방의 인격도 소중한 것입니다. 나는 고유한 인격을 가진, 세상에 둘도 없는 존재이면서 동시에 반드시 누군가와 어떤 관계를 맺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관계 속에서 살자면 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장치가 필요합니다. 그것이 바로 윤리이고 도덕입니다.
사람은 저마다 고유한 인격을 갖고 있기 때문에 그 누구도 나이나 신분 같은 후천적인 요소에 따라 차별을 받아서는 안 된다는 생각은 민주 사회의 바탕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사랑하고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공경하는 윤리, 곧, 상하 관계에서 형성된 윤리가 반드시 낡은 것은 아닙니다. 남의 인격을 그 자체로 존중해야 하는 것은 기본이지만 한편으로 사랑과 공경도 소중한 윤리인 것입니다. 다만 아랫사람이 모든 일, 모든 상황에서 윗사람에게 예속되어 있고 윗사람의 말이나 생각을 무조건 따라야 한다는 것은 아니며, 결코 그래서는 안 됩니다.
남을 인격으로 대하는 것이 그 사람을 그 사람 자신의 삶의 주인으로 인정하는 것이라면, 사랑과 공경 또한 내 처지에서 상대방을 한 인격으로 대하는 것입니다. 어른을 공경하고 아랫사람을 사랑으로 돌보아 주는 것은 전통적인 윤리 의식이 오래 뿌리내린 사회에서 인격을 존중하는 또 다른 방식인 것입니다.


일을 할 때에는 계획을 잘 세우고 말을 할 때에는 실천할 수 있는지 살핀다.
作事謀始 出言顧行

「한비자」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공자의 제자인 증자와 그의 아내가 시장에 가려고 하는데 아이가 따라가려고 치맛자락을 잡고 울며 보챘습니다. 증자의 아내가 아이에게 말했습니다.
“돼지를 잡아 고기를 먹게 해 줄 테니 울지 말고 집에서 기다리렴.”
그 뒤 아내와 함께 시장에서 돌아온 증자가 돼지의 다리를 묶고 잡으려고 했습니다. 아내는 멀쩡한 돼지를 왜 갑자기 잡으려 하느냐며 증자를 말렸습니다. 그러자 증자가 말했습니다.
“당신이 돌아와서 돼지를 잡아 준다고 아이한테 말하지 않았소?”
아내가 말했습니다.
“아이를 달래려고 일부러 거짓말을 한 것인데 아깝게 돼지를 잡으려고 합니까?”
이에 증자가 말했습니다.
“어떻게 아이를 속일 수 있단 말이오. 아이들은 아무것도 모르기 때문에 부모를 보고 따라 배우는 것이오. 지금 당신이 아이를 속이는 것은 아이에게 남을 속이도록 가르치는 것이라오. 어머니가 자기 아이를 속이면 아이는 어머니를 믿지 못할 것이오.”
말을 끝낸 뒤 증자는 돼지를 잡았습니다.

증자의 아내는 어려운 상황을 벗어나려고 앞뒤 생각 없이 성급하게 말을 내뱉었습니다. 그래서 살림 밑천일 수도 있는 돼지를 어이없게 잃었습니다. 그러나 증자는 아내와 아이에게 큰 교육을 한 것입니다. 자기가 한 말은 반드시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 말입니다.
정치가들의 공약公約은 공약空約이라는 말도 합니다. 그만큼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한번 내뱉은 말은 반드시 책임을 져야 합니다. 말과 행동이 일치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말을 할 때는 그만큼 신중해야 합니다. 하지도 못할 일을 미리 떠벌리는 것만큼 실없는 일도 없습니다.
이익을 위해 사람이 모이고 경쟁 속에서 살아가는 오늘날에는 양심과 도덕을 지키기가 참 어렵습니다. 사실 도덕을 지키며 사는 것은 꽤 불편합니다. 그러나 도덕이 없이는 사회를 지탱할 수 없습니다. 어느 사회든지 사회 구성원이 서로 합의하고 인정하는 도덕규범이 있습니다. 우리는 사회의 도덕규범을 마땅히 지켜야 할 뿐만 아니라 민주 시민이라면 개인의 양심적인 도덕률도 지켜야 합니다.

목차

목차
머리말 어울려 살아가는 방법을 가르치는 사자소학
부모 이야기
부부 이야기
형제 이야기
스승 이야기
친구 이야기
몸가짐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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