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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위 성인의 탄생 이야기

윤민구 저 | 푸른역사 | 2009년 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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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91510128 / 359쪽 153 x 2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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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출판사 서평 한국천주교회사와 103위 성인 한국천주교회는 1784년 이승훈이 북경에서 세례를 받고 국내에 신앙을 들여옴으로써 시작되었다. 하지만 그 시작은 순탄치 않았다. 천주를 믿는다는 이유로 가문에서 쫓겨?나고, 신분도 재산도 잃고 숨어 지내며, 인간의 기본권마저 빼앗기는 모진 고문을 당해야 했다. 1886년 신앙의 자유가 주어지기 전까지 신유박해(1801), 기해박해(1839)와 병오박해(1846) 그리고 병인박해(1866) 때 많은 신자들이 순교했다. 바로 이 기해박해와 병오박해의 순교자 24위와 병인박해의 순교자 79위를 합쳐 103... 한국천주교회사와 103위 성인 한국천주교회는 1784년 이승훈이 북경에서 세례를 받고 국내에 신앙을 들여옴으로써 시작되었다. 하지만 그 시작은 순탄치 않았다. 천주를 믿는다는 이유로 가문에서 쫓겨나고, 신분도 재산도 잃고 숨어 지내며, 인간의 기본권마저 빼앗기는 모진 고문을 당해야 했다. 1886년 신앙의 자유가 주어지기 전까지 신유박해(1801), 기해박해(1839)와 병오박해(1846) 그리고 병인박해(1866) 때 많은 신자들이 순교했다. 바로 이 기해박해와 병오박해의 순교자 24위와 병인박해의 순교자 79위를 합쳐 103위 성인이라고 부른다. 한국인 최초의 신부로 103위 성인 중 한 명인 김대건 신부(1821~1846)는 병오박해 때 외국인과 교섭했다는 죄목으로 1846년 9월 16일 새남터에서 군문효수형(죄인의 목을 베어 군문에 매닮)으로 순교했다. 로마 교황청에서는 1983년에 김대건 신부를 포함해 우리나라 천주교회가 박해받을 때 순교한 103인의 순교자를 성인聖人으로 승인했다. 그리고 1984년에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역사상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해 서울 여의도 광장에서 이들의 시성식諡聖式을 거행했다. 이 책은 시성 25주년을 기념하여 출간된 저작으로, 시성이 확정되고 시성식이 거행되기까지의 과정을 기록한 ‘특별한 한국천주교회사’다. 필자는 한국천주교회가 103위 시성을 추진할 때 로마 현장에서 실무를 담당하던 시성청원인諡聖請願人이었다. 이 책은 시성 과정 외에도 고故 김수환 추기경이나 요한 바오로 2세 등 필자가 시성 추진의 실무를 담당하면서 만나게 된 분들에 대한 감동적인 이야기 및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담고 있다(책 속으로 참고). 왜 특별한 한국천주교회사인가? 그렇다면 왜 특별한 한국천주교회사인가? 먼저, 당시 교황인 요한 바오로 2세는 한국교회에서 기적을 증명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에 따라 기적심사를 관면寬免해줌으로써 103위의 성인이 탄생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원래 시성수속은 시복 후 해당 지역의 신자들이 복자를 공경하여 그 복자의 전구轉求로 인해 기적이 일어났다는 것을 근거로 하여 시작하게 된다. 하지만 한국교회는 기적 검증에 대한 철저한 사전준비 없이 시성수속을 시작했다. 따라서 시성 추진이 지지부진할 수밖에 없었고, 내세울 만한 기적사례도 발견하기 어려웠다. 이런 상황에서 교황청 내의 시성 업무를 담당하는 시성성에서는 한국교회가 진료기록의 미비 등으로 기적을 증명하기가 어려울 것이라고 판단하여 기적심사를 관면받을 수 있도록 했다. 둘째, 우리나라의 103위 시성식은 서울에서 거행되었다. 시성식은 오래된 전통에 따라 로마의 성 베드로 대성전에서 거행된다. 1984년에 서울에서 시성식이 거행될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 한국천주교회 200주년을 경축하기 위해 요한 바오로 2세가 한국을 방문하기로 계획되어 있어서였다. 이 밖에 로마에서 시성식이 거행된다면 순교자들의 가난한 후손들이 시성식에 참석하기가 힘들 것이라는 이유 등을 들어 우여곡절 끝에 결국 시성식이 서울에서 거행될 수 있었다. 교황이 이 땅을 처음으로 찾은 1984년 당시 우리나라 사람들은 신군부의 압제하에 기를 피지 못하고 숨이 막히는 삶을 살고 있었다. 그때 교황이 찾아와 전국을 순례하며 평화와 화해의 메시지를 전하였고 전라도 광주를 방문하여 상처받은 이들을 위로하였다. 또한 가장 소외된 이들을 찾아 소록도를 방문하기도 하였다. 신군부 측은 교황의 우리나라 방문을 환영하면서도 광주나 소록도를 찾겠다는 교황의 요청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결국 교황청의 설득으로 교황의 방한 일정은 교황의 뜻대로 정해졌다. 그 일정의 정점은 5월 6일에 있었던 시성식이었다. 교황은 시성식을 통해 비록 시대는 다르지만 진리를 위해, 벗을 위해 목숨을 바친 이들이 걸어간 길을 축복하였다. 셋째, 103위 시성 명칭을 “한국의 라우렌시오 앵베르, 시메온 베르뇌 주교들과 김 안드레아 및 100위 동료 순교복자들의 시성건”에서 “김대건 안드레아와 정하상 바오로 및 101위 동교 순교자들의 시성건”으로 변경한 점이다. 한국교회는 앞의 명칭은 길고, 이들이 한국 출신이라는 사실을 나타내는 데 부적절하다는 이유를 들어 시성성에 명칭 변경을 요청했다. 하지만 시성성에서는 프랑스 출신 순교자들도 한국에서 활동하다가 순교한 것이니 한국의 성인이 되는 것이라며 가톨릭교회 내에서 국수주의는 용납할 수 없고, 프랑스 출신 순교자들 중 주교가 세 위가 있는데 이들을 제쳐두고 다른 사람의 이름을 시성 명칭에 언급하는 것 역시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하며 시성 명칭의 변경에 반대했다. 한국교회는 앞선 이유들 외에도 평신도의 역할이 컸던 한국교회의 상황을 감안해 정하상이 평신도 대표로 시성 명칭에 들어가길 원했기에 시성 명칭의 변경을 거듭 청했던 것이다. 결국 한국교회의 청이 받아들여지고 시성 명칭은 한국교회에서 원하던 대로 변경되었다. 왜 시복시성을 하는가? 시성諡聖이란 무엇인가. 종교상의 이유로 죽임을 당한 순교자들이나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산 사람들을 성인품聖人品에 올리고 후대의 신자들이 이들을 귀감으로 삼는 것을 뜻한다. 그런데 시성에 앞서 시복諡福을 한다. 즉 시성식의 대상자는 복자여야 한다. 시복은, 신자들이 신앙의 영웅을 공경할 수 있는지 이들을 조사해 공적으로 공경할 수 있도록 교황청에서 승인하는 것을 말한다. 복자는 해당 지역교회나 수도원 등에서만 공경할 수 있다. 하지만 성인은 전 세계교회에서 공경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와 같은 시복시성은 왜 하는 것인가? 원래 시복과 시성은 복자나 성인이 되는 당사자를 위한 것이 아니다. 다시 말해서 죽은 사람을 위해 하는 것이 아니고 산 사람을 위해 하는 것이다. 이 세상을 떠나 하느님의 나라에서 하느님과 함께 영원히 살고 계신 분들에게 복자나 성인이라는 칭호가 그 어떤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지는 못한다. 단지 살아 있는 사람들이 그들을 마음으로부터 사랑하고 존경하고 본받으려 할 때 그 사람의 생각과 삶이 바뀌어 결국 그는 하느님이 원하는 사람이 될 것이다. 이를 위해 교회가 신앙의 영웅들을 뽑아 시복과 시성을 하는 것이다(8~9쪽). 103위 시성 과정을 기록으로 남겨야 할 이유 이 책에는 103위 시성 추진의 전 과정이 자세히 소개되고 있다. 필자가 시성 추진하는 일을 어떻게 맡게 되었는지, 교황청에서 한국교회에 어떠한 배려를 하였는지, 한국교회는 무슨 일을 하였으며, 교황청의 오랜 전통을 깨고 어떻게 서울에서 시성식을 거행하게 되었는지, 시성식 준비와 시성식 후의 마무리 작업까지 모든 일들을 소상히 적고 있다. 또한 필자가 시성을 추진하면서 만났던 사람과 사건들, 교황의 방한 일정을 정할 때의 이야기들, 시성식 후 103위 성인 축일 제정에 얽힌 이야기들도 자세히 소개하고 있으며, 이런 일들을 처리하는 과정에서의 필자의 느낌들, 특히 신미년(1811)에 조선천주교신자들이 교황에게 보낸 친필 편지나 <황사영 백서>를 다시 찾았을 때의 감회를 적고 있다. 이제까지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들을 귀한 자료와 함께 소상하게 소개하고 있다. 필자가 이렇게 103위 시성 과정을 기록으로 남기려는 데는 이유가 있다. 103위 시성식이 어떠한 과정을 거쳐 이루어졌는지 궁금하게 생각하는 이들이 있다. 그리고 시성 과정을 정리하여 발표하는 것이 새롭게 추진하는 시복에도 도움이 될 것 같다며 요청하는 이들도 있다. 굳이 이런 요청이 아니더라도 103위 시성 과정을 정리하는 것이 필요하리라 생각하여 일지를 찾아보며 글을 쓰기 시작한 지 꽤 오래되었다.

저자 소개

  • 저자 : 윤민구
1975년 가톨릭대학교를 졸업하고 천주교 신부가 되었다. 이탈리아 로마에 유학하여 1983년 라떼란대학교에서 사목신학 박사학위를 받았고 2003년까지 수원가톨릭대학교 교수로 있었다.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사무차장?으로도 일하였고 안성 대천동, 성남 수진동, 이천, 분당 야탑동 성당에서 주임신부로 있었으며 현재 손골성지 전담신부다.
저서로는 ≪한국천주교회의 기원≫, ≪순교는 믿음의 씨앗이 되고≫(공저), ≪성聖 도리 신부와 손골≫(공저), ≪신흥종교와 이단 I≫ 등이 있고, 번역서로는 ≪한국 초기교회에 관한 교황청 자료 모음집≫, ≪상재상서≫,≪설교의 요건≫, ≪전례의 토착화≫, ≪현대의 사제 양성≫, ≪사제 양성≫(공역), ≪윤유일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의 시복자료집 제4집≫, ≪윤유일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의 시복자료집 제5집≫ 등이 있으며, 논문으로는 [103위 시성수속 경위와 새 시복추진], [신미년(1811)에 조선천주교신자들이 북경주교에게 보낸 편지에 대한 연구], [정하상 성인의 생애와 사상에 대한 연구], [본당사목의 쇄신], [초대교회의 전례기도], [한국천주교회의 토착화], [조선신자들의 대박청래운동大舶請來運動에 대한 해외의 인식], [21세기 본당사목의 새로운 방향], [한국천주교회의 본당사목], [한국천주교회 소공동체 운동] 등이 있다.

목차

목차
103위 성인 시성청원인이 되다.
당시 한국순교자 시성추진 현황
생소한 기적심사관면을 청하다.
눈부시게 빛났던 김수환 추기경의 역할
너무나 고마웠던 시성성 장관 빨라찌니 추기경
시성 확정
시성건의 명칭 변경과 서울에서의 시성 결정
시성후보자 명단 재작성
시성식 준비
걸어서 로마를 다녀오신 김대건 신부님
교황의 방한 일정과 시성식 때의 시성청원
시성식 거행
시성 경축행사
103위 성인 축일제정과 시성칙서
초기순교자 시복 준비
≪한국천주교회의 교부≫ 출간
파리외방전교회와 아노즈 몬시뇰 그리고 103위 시성
<황사영 백서>와 <신미년 백서>를 다시 만나다.
103위 시복 과정
다시 청원인이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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