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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96125266 / 302쪽 125 x 197 (㎜) / 양장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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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서평 국내 최초로 소개되는 판타지 소설의 백미 『사라고사에서 발견된 원고』는 19세기 풍운아였던 얀 포토츠키의 작품으로, 알퐁스 반 월덴이란 프랑스 장교가 부임지인 마드리드로 가는 도중 시에나 모레?나 산을 중심으로 벌어진 기괴한 사건들을 66일 동안 체험한 내용을 기록한 판타지 소설이다. 이 명작을 뒤늦게 발굴한 인문학자 로제 카유아는 \"판타지 문학의 정상에 도달한 이 작품을 계기로 프랑스문학은 한층 더 풍요로워졌다.\"고 평가했으며, 또 다른 인문학자 츠베탕 토도로프 역시 판타지문학 이론의 기본서가 된 그의 『환상 문학 입문』에서... 국내 최초로 소개되는 판타지 소설의 백미 『사라고사에서 발견된 원고』는 19세기 풍운아였던 얀 포토츠키의 작품으로, 알퐁스 반 월덴이란 프랑스 장교가 부임지인 마드리드로 가는 도중 시에나 모레나 산을 중심으로 벌어진 기괴한 사건들을 66일 동안 체험한 내용을 기록한 판타지 소설이다. 이 명작을 뒤늦게 발굴한 인문학자 로제 카유아는 \"판타지 문학의 정상에 도달한 이 작품을 계기로 프랑스문학은 한층 더 풍요로워졌다.\"고 평가했으며, 또 다른 인문학자 츠베탕 토도로프 역시 판타지문학 이론의 기본서가 된 그의 『환상 문학 입문』에서 '세계문학'의 반열에 오른 이 작품을 \"판타지 문학 장르의 전범\"으로 지목했다. 이 작품의 뛰어난 문학성은 일찍이 러시아의 문호 푸시킨도 알아보았기에, 그 환상적이고 회화적인 매력에 빠져 작품 일부를 시 형식을 빌어 러시아어로 옮기기도 했다. 폴란드 명문가 출신으로 집필과 연구와 원정과 정치로 점철된 삶을 살았던 저자가 장장 12년에 걸쳐 집필하고서도 끝내 '마침표를 찍지 못한' 이 대작은 『보카치오』나 『캔터베리 이야기』와 같은 격자소설의 전형을 보여준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나는 신비스럽고 기괴한 사건에 휘말린 주인공이 악마, 정령, 여자 쌍둥이 귀신, 카발라 학자, 산적 등 초자연적인 존재와 비범한 인물들 사이에서 경험한 상상할 수 없는 극적인 순간들은 독자에게 잊을 수 없는 전율과 재미를 선사한다. 사라고사에서 정말 원고가 발견되었나? 『사라고사에서 발견된 원고(Manuscrit trouv? ? Saragosse)』는 1739년 알퐁스 반 월덴이라는 스페인 출신의 젊은 프랑스 장교가 왕명을 받고 부임지인 마드리드까지 가는 여정을 기록한 소설이다. 알퐁스는 시에라 모레나 산을 중심으로 벌어진 그 해괴하고 복잡한 사건들과 거기서 만난 다양하고 기이한 인물들의 이야기를 일기처럼 기록한 후 그것을 상자에 넣고 봉해 버린다. 그로부터 40년이 지난 어느 날, 사라고사를 점령한 프랑스 군대의 한 장교가 우연한 기회에 그 원고를 발견한다. 그는 환상적인 이야기로 가득한 이 원고가 범상치 않음을 깨닫고 소중하게 보관한다. 그러나 얼마 후 그는 스페인 군대의 포로가 되었고, 그 원고를 보게 된 스페인 지휘관은 그것을 프랑스어로 번역한다. 그리하여 자칫 망각 속에 묻혀 버릴 뻔했던 이 원고는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물론, 이것은 이 책의 저자인 얀 포토츠키 백작이 만들어 낸 허구의 설정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포토츠키의 이 걸작이 저자가 문학적 장치로 설정했던 이 허구와 똑같은 운명에 놓였다는 사실이다. 그의 원고는 소실되고 분실되어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졌고,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후에야 작품의 진가를 발견한 몇몇 사람의 노력으로 원본에 가까운 형태로 복원되었기 때문이다. 저자, 포토츠키는 어떤 사람인가? 포토츠키는 폴란드 명문 귀족가문 출신으로 스위스 제네바와 로잔에서 고등교육을 받았다. 수학과 자연과학에 관심이 지대했지만, 그가 진정으로 소명의식을 느낀 분야는 역사학이었다. 그는 젊은 시절 이탈리아와 시칠리아를 여행했고, 몇 년간 공병 장교로 복무하기도 했으며 1779년에는 몰타기사단의 일원으로 갤리선을 타고, 바르바리아 해적들과 맞서 싸우기도 했다. 그는 생전에 기벽과 박식으로 남다른 명성을 누린 인물이었다. 1788년 그는 당시에 대단한 인기를 끌었던 열기구를 타고 바르사뱌의 하늘을 날았고, 왕은 이를 기념하여 주화를 발행하기도 했다. 또한, 여행에 대한 남다른 취향이 있었던 그는 유럽과 중동은 물론 중국과 몽골까지 여행하여 지구촌 곳곳에 그의 발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었다. 특히, 그는 방대한 작업이었던 『폴란드사』 저술에 참여하여 고대사 부분을 맡아 연구서를 출간했고, 슬라브 고고학의 창시자 가운데 한 사람이 되었다. 정치적으로도 지칠 줄 모르는 행동가였던 그는 파리에서 볼테르, 디드로, 홀바크, 라마트리 등 당시 계몽주의자들과 교류하는 한편, 자코뱅들과도 정치적인 교류를 유지했다. 그가 프랑스와 각별한 인연을 맺었던 이유는 당시 프랑스 왕궁에 기거하던 그의 장모 엘리자베스 럼브로미르스카 공주의 영향이 컸는데, 그는 폴란드인이면서도 프랑스어를 완벽하게 구사하여 거의 모든 원고를 프랑스어로 썼다. 그는 또한 1788년 바르샤바에 출판사를 설립하여 책을 출간했으며 학술연구서뿐만 아니라 희곡과 소극 등 문학작품도 썼으며 『사라고사에서 발견된 원고』는 그의 대표작이 되었다. 정치적으로도 모험가 기질을 억누를 수 없었던 그는 포스나니 지역에서 의원으로 당선되어 다양한 정책을 도입했다. 예를 들어 자진납세제를 주장하면서 자발적으로 수입의 5분의 1을 세금으로 바쳤고, 노예제의 폐지와 삼부회 소집을 주장하기도 했다. 또한, 동양사를 의무교육 과목으로 지정하고, 빨치산 저격병을 위한 교본을 만들고, 자신이 직접 디자인한 군복을 입고 다니는 등 다소 돌출적인 행동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정치적 성향은 모순된 양상을 보였다. 한편으로는 프랑스 혁명의 열렬한 지지자였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이 직접 쓴 희극을 통해 민주주의자들을 조롱의 대상으로 삼았으며, 러시아와의 전투에 참가하고 세습왕조에 반대하는 책자를 발간하면서도 차르 알렉산더 1세의 자문을 맡아 왕실 사람들과 가깝게 지내기도 했다. 또한, 오스트리아와 정치적으로 적대적 관계임을 천명하고서도 그들 편에 서서 전투에 참가하는 모순을 드러내기도 했다. 한마디로 말해 그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모험가, 탐험가, 정치가, 학자, 작가였다. 가정적으로 불운했던 그는 두 번의 결혼에서 다섯 명의 자녀를 두었고 1808년 두 번째 부인과 이혼한 후 여러 차례 근친상간을 저질렀던 것으로 알려졌다. 1812년 정치에 대한 환멸과 건강 악화로 은퇴한 그는 1815년 12월 2일 혹은 11일에 비극적인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그의 자살 동기가 정치적인 절망감이었는지 아니면 정신적 우울증 혹은 만성질병에서 오는 고통 때문이었는지는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그의 자살에 대해서는 전설처럼 여러 가지 이야기가 전해진다. 그중에서 은 주전자 뚜껑에 달린 작은 구 모양의 장식을 갈아 총알로 만들어(어머니가 물려준 설탕 그릇의 손잡이란 설도 있음) 고해 신부에게서 축도를 받고 나서 서재에서(침실이란 설도 있음) 자신의 묘비명(자신의 캐리커처를 그렸다는 설도 있음)을 직접 쓴 후에 머리에 총을 쏘았다는 주장이 가장 유력하다. 그의 기이한 죽음, 화려했던 정치경력, 베일에 가려진 사생활, 놀라운 박학다식과 멈출 수 없는 방랑벽에 관한 이야기는 위대한 계몽주의 사상가이면서 동시에 낭만주의적 인물이었던 그의 성격을 잘 묘사하는 요소이며, 그의 위대한 문학적 업적과 일맥상통하는 요소이기도 하다. 작품의 저작권, 표절 시비와 다양한 판본의 존재 이 책의 저작권을 둘러싼 논쟁은 저자의 삶만큼이나 극적이다. 우선, 이 책의 진정한 저자가 누구인지에 대한 논쟁이 오랫동안 계속되었다. 심지어 최근에 이 책을 번역 출간한 출판사조차도 이 책의 저자가 포토츠키가 아닐 수도 있다고 말한다. 이런 혼란은 아마도 최종 원고가 완성될 때까지 무려 12년이란 오랜 세월이 흐르는 과정에서 생긴 우여곡절 때문인지도 모른다. 로제 카유아에 따르면, 얀 포토츠키는 1805년 5월 고고학 연구를 위해 중국으로 떠나기 직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프랑스어로 쓴 초고 상태의 소설 앞부분을 출간한다. 그러나 중단된 줄거리는 1806년 포토츠키가 몽골에서 돌아온 후에도 이어지지 않았고 후속편이 출간되지도 않았다.
목차
알림
제1일
제2일
제3일
제4일
제5일
제6일
제7일
제8일
제9일
제10일
제11일
제12일
제13일
제14일
옮긴이의 말
주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