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구간

케테 콜비츠 - 재원 미술작가론 04 죽음을 영접하는 여인

시리즈 : 재원미술작가론시리즈 [15]

민혜숙 저 | 재원 | 2009년 06월

북트리

정가
$20.00
판매가
$11.00 (45%↓) 최저가 보상
적립금
$0.22 (2%P)
출고예상일
2026년 10월 08일 수령예상일 안내
북카트 담기 바로구매하기 위시리스트담기

평점 -  ·  리뷰 0

리뷰 쓰기

ISBN : 9788955751390 / 128쪽 / 265g / 148 x 210 (㎜)

이 상품에 궁금하신점이 있으세요? 1:1상담문의

추천inside
Adobe Flash Player 가져오기

이 분야의 베스트셀러

아래의 도서와 구매하시면 이 도서들의 적립금을 즉시적용해 드립니다.

  • 10,800
  • 25,200
  • 16,200
  • 16,200

책 소개

출판사 리뷰

출판사 서평 콜비츠가 우리나라에서 언급된 계기가 된 것은 바로 1980년 대 중반에 있었던 젊은 작가들의 전시회였다. 그 전시회가 당국의 탄압을 받아 작품이 철거되면서 화가들과 미술이론가들은 다시 미술과 현실?의 관계에 대한 원론적인 이야기를 해야했고, 여기에서 콜비츠란 작가가 매체를 타기 시작했다. 사실 콜비츠는 이미 19세기 말부터 유럽 화단에서 판화가로 그 위치가 확고했고, 중국에도 노신이 판화운동을 펴던 1930년대에 이미 소개된 바 있었지만, 피카소(한국전쟁을 소재로 했다고는 하지만 사생활은 자유분방했던)조차 기피인물이었던 국내에선 소개... 콜비츠가 우리나라에서 언급된 계기가 된 것은 바로 1980년 대 중반에 있었던 젊은 작가들의 전시회였다. 그 전시회가 당국의 탄압을 받아 작품이 철거되면서 화가들과 미술이론가들은 다시 미술과 현실의 관계에 대한 원론적인 이야기를 해야했고, 여기에서 콜비츠란 작가가 매체를 타기 시작했다. 사실 콜비츠는 이미 19세기 말부터 유럽 화단에서 판화가로 그 위치가 확고했고, 중국에도 노신이 판화운동을 펴던 1930년대에 이미 소개된 바 있었지만, 피카소(한국전쟁을 소재로 했다고는 하지만 사생활은 자유분방했던)조차 기피인물이었던 국내에선 소개할 엄두조차 내지 못했던 화가였다. 현실을 담아내는 것을 의무로 여기던 소위 민중미술이 그 힘을 잃고 있는 이 때에 케테 콜비츠를 언급한다는 것 자체가 시대에 뒤떨어졌다 여겨질만 하지만 그렇다고 파토스(pathos)에 기반한 그의 그림이 이끄는 감동마저 무시될 수는 없을 것이다. 오히려 인간의 본질적인 고통과 괴로움을 직시하고자 했던 케테 콜비츠를 통해 과장되기 마련인 선전형식의 한계 너머의 리얼리티 재현을 고민해볼 수 있을 것이다. 케테 콜비츠가 주의를 기울인 부분이 역사적 사실에만 한정된 것은 아니다. 지역과 시대로 경계짓는 고통의 형태에서 '죽음'이라는 보편적 형태에까지 그가 천착한 주제는 폭넓다. 그의 그림을 보면 인간이면 누구나 맞게되는 죽음이 이보다 더 절실하게 그려질 수 있을까 싶은데, 죽음을 맞이한 사람이 공포에 질린 모습으로 그려지는가 하면 또 어떤 경우에는 죽음에 순응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등, 죽음에 대한 태도가 다양하게 보여지고 있다. 20세기 초 다양한 양식이 범람하던 유럽 전반의 분위기에 휩쓸림없이 묵묵히 자신만의 표현방식을 고수하면서 천착하던 주제 속에 몰입하다 간 콜비츠의 생이야말로 무엇보다 큰 울림을 준다. 작품 속에 영접된 고통과 슬픔을 그의 생애와 함께 엮어 풀어냈다.

저자 소개

  • 저자 : 민혜숙
민혜숙
1972년 서울대학교 미학과 졸업
서울대 대학원 미학과 졸업, 홍익대 미학과 박사과정 수료
코리아 헤럴드 기자 역임
추계예술대학교, 동덕여대, 단국대 강사 역임
역서:, (창작과 비평사)

책 속에서

「칼 콜비츠와 함께 한 자화상」은 말년의 콜비츠 부부이다. 케테의 얼굴과 상반신에 드리워진 그늘은 죽음이 가까워진 노부부의 담담함을 암시한다고나 할까. 1933년 국가사회주의자들이 권력을 잡게 되자 콜비츠는 하인리히 만(Heinrich Mann, 1871~1950, 토마스 만의 형으로 역시 작가, 프랑스에 망명) 등과 함께 아카데미를 탈퇴하였고 그때부터 ‘국내망명’ 생활에 들어갔으며 그녀의 작품은 1936년에 ‘비공식’적으로 전시가 금지되었다. 나이탓도 있겠지만 공식적인 활동이 금지되자 콜비츠는 죽음이라는 주제에 천착했다.

..본문 中

케테 콜비츠가 물질적인 궁핍이나 빈곤만이 불행의 원인이라고 믿은 것은 아니었다. 그 외에도 인생의 법칙으로써 생겨나기 마련인 인간 영혼의 궁핍. 피치 못할 이별, 죽음 등도 사람들에게 불행을 초래한다는 사실을 그녀 자신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슬픔은 사회적인 불행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하면서 개인적인 불행이 가져다 주는 슬픔이 인생에서 커다란 비중을 차지한다는 사실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하층민들이 물질적 궁핍과 박탈로 겪는 고통을 즐겨 다룬 그의 작품들에서는 그 고통의 압박감이 워낙 큰데다 그림이라는 표현방식이 갖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인간이 살면서 겪게 되는 슬픔을 다양하게 보여주지 못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표지글
 

목차

목차
케테 콜비츠 예술의 기본정신........14
예술이냐? 프로파간다냐?.............20
판화가로서 입신한 케테 콜비츠.....27
또 하나의 연작 판화....................50
제1차 세계대전 전후의 콜비츠.......62
휴머니스트 케테 콜비츠...............71
케테 콜비츠와 여성미술...............90
자화상을 통해 본 케테 콜비츠.......99
죽음과 친교를 맺은 케테 콜비츠....108
연보.........................................124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