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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이야기

미우라 시온 저 | 권남희 역 | 들녘 | 2009년 0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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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75278280 / 288쪽 128 x 18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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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세상이 끝나도 이야기는 계속된다
무채색만으로 그린 그림을 상상해본다. 명도는 있으나 채도가 없는 그림. 역동성은 덜하나 안정되고 평온하다. 흐르지 않는 듯 하지만 유유히 흘러가는 커다란 강줄기를 대면할 때처럼. 일면 우울하고 쓸쓸하다. 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움직임은 관찰자의 마음속에 색다른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팔색조 미우라 시온의 <옛날이야기>는 정중동(靜中動)의 무채색으로 그린 종말론적 풍경화다.
3개월 후 지구가 운석과 충돌하여 멸망한다는 보도가 나온다. 지구를 탈출하여 다른 행성으로 가는 로켓에 탑승할 수 있는 사람은 1000만 명뿐이다. 그들은 문자 그대로 선택받은 사람들이다. 하지만 그것도 안전하지 않다. 운석에 부딪히지 않을 경우 우주를 떠돌다 지구로 돌아와야 하기 때문이다. 로켓에 탑승하지 못한 나머지 사람들에게 남은 시간은 고작 3개월. 너나 할 것 없이 시한부 인생을 사는 셈이다. 분노할 법도 하고, 패닉에 빠지거나 자포자기할 법도 한데 <옛날이야기>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다르다. 소름이 끼칠 만큼 태연하다. 호스트바에서 일하는 호스트는 고객관리에 여념이 없고, 금단의 사랑을 선택한 여고생은 오직 삼촌을 만날 날만 기다리며, 여장을 한 택시 운전사는 변함없이 밤길을 달리고, 입강에서 나고 자란 젊은 어부는 오늘도 어망을 던진다. 그리고 이들은 한결같이 누군가에게 끊임없이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지구의 종말이 코앞에 다가왔는데도…….

무게감 있는 놀라운 연작단편집
<옛날이야기>는 133회 나오키상 후보에 올랐던 작품이다. 그러나 한국 독자들에게 잘 알려진 데뷔작 <격투하는 자에게 동그라미를>이나 135회 나오키상 수상작인 <마호로역 다다심부름집>과는 맛이 다르다. 물론 인간 군상의 묘사에 폭넓은 스펙트럼을 적용한다는 점이나 다양한 인물과 그들이 엮어가는 삶을 애정 어린 눈으로 바라본다는 점에서는 변함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옛날이야기>가 색다른 맛을 지닌 작품이라고 평하는 것은 두 가지 이유에서다.
첫째, 연작단편이라고는 해도 각각의 이야기에 나오는 인물들은 전면에 등장하거나 주연 역할을 하지 않는다. 화자이고 주인공이되 조연처럼 읽힌다. 서로 상관없는 듯 보이지만 실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다. 이런 연작단편집이 있는가 놀랄 정도다. 둘째, 미우라 시온의 다른 작품을 읽은 사람이라면 ‘무거운 미우라 시온’을 읽을 각오를 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야기 속 인물들은 모두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하기 어려울 만큼 태연하고 담담하다. 처연하기까지 하다. 공중을 떠돌다 내려앉는 하얀 깃털처럼 가벼워 보이지만 누구보다 중력에 민감하다. 삶과 밀착되어 있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더욱 어둡고 무겁게 느껴진다.

미우라 시온 판 옛날이야기의 힘
<옛날이야기>는 모두 일곱 개의 단편으로 구성되었다. 각각의 이야기 앞에는 ‘우라시마 타로’나 ‘모모타로’ 같은 일본의 옛날이야기가 짧게 정리되어 있다. 하지만 소설을 읽는 동안 굳이 옛날이야기에 구애받을 필요는 없다. 우연적이고 신화적인 요소가 많은 옛날이야기보다 ‘삶과 죽음’ ‘운명’ ‘투사된 존재로서의 인간’이라는 중요한 모티브가 독자를 끌어당기기 때문이다.
이 책은 일반적인 의미의 단편집이 아니다. 일곱 개의 다른 이야기, 다른 인물들로 직조되었기는 해도 복잡하게 서로 얽히고설켜 있다. 매우 촘촘하게 연결되어 있다. 물론 독자가 이 사실을 알아차리기까지는 시간이 좀 걸린다. 이야기와 이야기, 인물과 인물을 연결해주는 고리가 전면에 드러나지 않는 탓이다. 하나하나의 작품을 즐기면서 <옛날이야기>를 끝까지 읽어나가게 만드는 힘, ‘죽음은 이미 태어날 때부터 정해져 있는 사실’이라는 것을 새롭게 발견하게 해주는 힘, 그리고 ‘자기 앞에 주어진 시간의 길이와 무게’를 자각하고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지만 그래도 생은 계속되어야 한다’며 내일을 기다리게 만들어주는 힘도 여기서 비롯되는 게 아닐까?

저자 소개

  • 저자 : 미우라 시온
지은이 : 미우라 시온 (三浦 しをん)
1976년 일본 도쿄에서 태어나 와세다대학 문학부에서 연극을 공부했다.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격투하는 사람에게 동그라미를』을 발표, 소설가로 문단에 데뷔했다. 2006년에 『마호로 역
다다 심부름집』으로 나오키상을, 2012년 『배를 엮다』로 서점대상을 수상하면서, 일본에서 문학적 권위와 대중적 인기를 대표하는 나오키상과 서점대상을 모두 수상한 최초의 작가가 되었다. 2015년 『어느 집에 살고 있는 네 명의 여자』로 오다사쿠노스케상을 수상했다. 그 밖에 『내가 이야기하기 시작한 그는』, 『검은 빛』, 『가무사리 숲의 느긋한 나날』, 『흰 뱀이 잠드는 섬』, 『바람이 강하게 불고 있다』 등으로도 사랑을 받았다. 평소 고문학은 물론 로맨스소설, 만화에 이르기까지 왕성한 독서력을 자랑하는 활자중독자로서 『망상작렬』, 『산지로와 그리고 문을 나섰다』, 『서점에서 만나기』 등 독서일기를 비롯해 작가 특유의 상상력과 유쾌한 신변잡기를 담은 에세이 역시 독자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고 있다.  

옮긴이 : 권남희
일본문학 전문 번역가. 저서에 『번역에 살고 죽고』, 『길치모녀 도쿄헤매기』가 있으며, 역서에 『달팽이식당』, 『카모메 식당』, 『다카페 일기1,2,3』, 『애도하는 사람』, 『빵가게 재습격』, 『샐러드를 좋아하는 사자』, 『저녁 무렵에 면도하기』 , 『평범한 나의 느긋한 작가생활』을 비롯한 마스다 미리 시리즈, 『종이달』, 『배를 엮다』, 『누구』, 『츠바키 문구점』 외에 200여 권이 있다.  

역자 소개

  • 역자 : 권남희
1966년생으로 일본문학 전문번역가이다. 지은 책으로 "동경신혼일기" "왜 나보다 못난 여자가 잘난 남자와 결혼할까"가 있고, 공저로는 "번역은 내 운명"이 있다. 옮긴 책으로는 "마호로역 다다심부름집" "러브레터" "빵가게 재습격" "무라카미 라디오" "고흐가 왜 귀를 잘랐는지 아는가" "오디션" "퍼레이드" "밤의 피크닉" "산다화" "바다에서 기다리다" "황혼녘 백합의 뼈" :젖과 알" "다카페 일기"등 여러 권이 있다.

책 속에서

너는 매일 아침 텔레비전에서 방송하는 오늘의 운세 코너를 본다고 했지. 운명을 믿냐?
……생각해보니 사랑을 믿느냐고 묻는 것만큼이나 쑥스러운 질문이네. 나는 믿고 싶지 않다. 운명도, 사랑도. 어느 쪽도 실제로 본 적이 없으니까. 혹은 “그게 그거였던가?” 하고 생각했을 때는 이미 늦은 거니까. 그런 거라면 없는 것과 다름없다. 운석이 지구에 충돌하는 것과 비슷한 이치다.
충돌했을 때는 어차피 모든 것이 끝나 있다.
_"러브리스" 중에서

내게는 친구가 없다. 이런 일을 하고 있으니 속을 터놓고 이야기할 상대란 게 있어도 곤란하다. 술 취해서 무심코 비밀을 이야기했다간 끝장이다. 사귀는 여자는 교환이 가능하니 괜찮다. 사귀는 동안에도 자신의 사회적인 지위에 대해서는 적당히 얼버무릴 수 있다. 대화를 하지 않아도 만족시킬 수 있는 수단은 널려 있으니까. 하지만 친구가 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꼭 서로의 직업이 화제가 된다. 그래서 내게는 친구가 필요 없다.
그건 어쩌면 과거를 버릴 수 있는 일인지도 모른다. 이누야마와 이야기하며 그런 생각을 했다. 내게는 추억을 이야기할 상대가 없다. 예를 들면 로켓이라는 개를 키웠다는 것. 어릴 적, 내 눈에 비친 고향 풍경. 학교생활. 그런 기억도 전부 내가 멋대로 만들어낸 것일지도 모른다. 내 기억은 어디까지나 나만의 것이 되어, 변형하거나 소멸해도 지적하는 사람도 없고 알아차리는 사람도 없다. 기억을 공유하는 상대가 없으니까.
_"로켓에 대한 추억" 중에서

전에 텔레비전을 보는데, 가요 프로그램에 나하고 별로 나이 차이가 나지 않는 아이돌이 나왔다. 아이돌은 데뷔 당시의 영상을 보고 호들갑을 떨었다. “우와, 엄청나게 옛날이네. 그리워라!” 그랬더니 사회자가 코웃음을 쳤다. “너처럼 어린애한테 옛날이고 뭐고가 어디 있어. 그저 몇 년 전 영상일 뿐이잖아!”라고.
나는 몹시 화가 났다. 중년의 그 남자에게 증오를 품었을 정도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몇 년 동안 톱 아이돌로 뛰어온 그녀와 불규칙한 생활을 해서 얼굴이 팅팅 부은 당신하고는 시간이 흐르는 게 다르다고.
시간은 일정한 속도로 흐르지 않는다. 같은 1분이어도 애가 탈 정도로 길 때가 있는가 하면, 눈 깜짝할 사이일 때도 있다.
아무리 오래 살았어도 시간의 무게와 잔혹함을 의식하지 않고 흥흥거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아직 어려도 시간에 짜부라질 것 같은 경험을 한 사람도 있는 법이다.
_"디스턴스" 중에서

운석이 부딪친다면 지구의 생물은 절멸할 것이다. 어릴 적에 내가 무서워했던 쓰나미는 댈 것도 아니다. 이 바다도 녹색의 산도 전부 타버려서 형체가 없어진다. 그것이 3개월 후에 닥쳐온다고?
하지만 지구에서 도망친다고 해도 좁은 로켓을 타고 우주를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게 될 것이다. 지구가 멸망하지 않을 가능성은 로켓에 탄 1000만 명에 뽑히는 것보다 낮은 확률이다. 그런 실낱같은 희망에 매달린 채 캄캄한 공간을 떠다녀야 하는 건가?
이런 류의 애니메이션이나 영화를 본 적이 있다. 대개 주인공이 대활약을 하여 위기를 막거나 우주에 적응한 인류가 은하 전쟁을 일으키는 내용. 혼돈스럽지만 그곳에는 반드시 미래가 있었다.
하지만 실제로 현실적인 종말이 3개월 앞으로 닥치면 어떻게 해야 좋을지 갈피를 잡기 힘들 것이다.
확신을 갖고 3개월 후의 자기 모습을 구체적으로 그릴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운석이 부딪치지 않더라도 그 전에 바다에서 폭풍우를 만나 죽을지도 모른다. 3개월 후에 죽는다는 걸 알고 있어도 그때까지는 생활을 계속하지 않으면 안 된다.
앞으로 또 공포와 절망이 엄습해올지도 모르지만, 내가 처음에 생각한 것은 그런 것이었다.
_"입강은 녹색" 중에서

계기반 위에 붙어있는 내 기사 신분증. 거기에 기록된 남자 이름을 그녀는 분명히 보았다. 보고도 나를 여자 취급했다. 놀리지도 않았고, 꼬치꼬치 캐묻지도 않았다.
우리는 자유롭게 몸을 개조한다. 오로지 자기 자신을 위해서만. 마지막까지 최대한 호흡하기 쉽도록 살아 있는 한 자신을 품종개량한다.
슬슬 아침 뉴스에서 일기예보를 하려나 생각했더니만, 텔레비전은 아직 로켓 탑승자 당첨 발표를 계속하고 있다.
그녀와 내 행위를 무의미하고 어리석다고 단정한다면, 로켓을 타려는 자도 로켓에 타지 못해 비탄에 빠진 자도 마찬가지로 무의미하고 어리석다.
우리는 살아 있다. 아무리 종말이 가까이 다가와도 슬프리만큼 살아 있다.
내일도 쇳덩어리를 타고 거리를 달리자. 가고 싶은 곳에 도착할 때까지.
그곳은 분명 화성보다도 목성보다도 멀 것이다.
_"도착할 때까지" 중에서

목차

러브리스
로켓에 대한 추억
디스턴스
입강은 녹색
도착할 때까지
꽃
그리운 강가 마을의 이야기를 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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