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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조를 만든 경종의 그늘 정치적 암투 속에 피어난 형제애

이종호 저 | 글항아리 | 2009년 0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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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96215530 / 271쪽 148 x 2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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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출판사 서평 이 책은 조선의 제20대 국왕 경종景宗과 그 뒤를 이은 영조英祖 간의 형제애를 주제로 하고 있다. 경종은 조선시대를 통틀어 가장 병약하고 어리석은, 한마디로 ‘존재감 없는’ 왕으로 여겨져왔으나, 이 책에서는 기존의 이런 인식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가를 말한다. 이른바 ‘바보 왕’ 경종이라는 이미지는 조작된 것이며 경종 스스로 자신의 의도를 은폐함으로써 반사된 이미지에 불과하다는 것이 이 책의 주장이다. 어떤 근거로 저자는 기존의 통설을 뒤집으며 이 같은 주장을 펼치는 것일까. 그간 역사 인물의 전기를 다수 집필해온 저자는... 이 책은 조선의 제20대 국왕 경종景宗과 그 뒤를 이은 영조英祖 간의 형제애를 주제로 하고 있다. 경종은 조선시대를 통틀어 가장 병약하고 어리석은, 한마디로 ‘존재감 없는’ 왕으로 여겨져왔으나, 이 책에서는 기존의 이런 인식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가를 말한다. 이른바 ‘바보 왕’ 경종이라는 이미지는 조작된 것이며 경종 스스로 자신의 의도를 은폐함으로써 반사된 이미지에 불과하다는 것이 이 책의 주장이다. 어떤 근거로 저자는 기존의 통설을 뒤집으며 이 같은 주장을 펼치는 것일까. 그간 역사 인물의 전기를 다수 집필해온 저자는 조선왕조실록을 읽을 때마다 어떻게 동생 영조가 형 경종을 독살했다는 이야기가 나올 수 있는지 의문이었다. 경종이 죽기 전 서로 상극의 음식인 게장과 감을 먹었던 것, 인삼과 부자를 함께 썼던 것 등이 독살의 정황으로 제시되고 있지만, 독살을 목적으로 이와 같은 음식들이 제공되었다는 것은 여러모로 억지스러운 점이 너무나 많다. 게다가 경종실록이나 영조실록을 보면 영조에 의한 독살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영조는 팔십 평생 자신의 형을 존경하고 숭모하는 마음으로 살아갔다. 영조가 어떻게 형을 독살하고서 평생 가면 쓴 얼굴로 빤한 거짓말을 할 수 있었겠는가 하는 것이 저자의 의문이었다. 사실 어떤 역사학자와 저술가도 경종이 독살되었다고 확신하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일단 그런 추측이 생기고 나면 사람 마음이라는 것은 그러한 의혹에 기울기 마련이고, 경종은 즉위 4년 만에 독살된 나약한 군주의 오명을 벗어날 수 없다. 영조 또한 형을 죽이고 왕에 올랐다는 의혹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이 점을 바로잡고자 하는 것이 이 책의 출발점이다. 여기서 출발한 경종에 대한 저자의 관심은 좀더 넓은 차원의 저술 구상으로 연결되는데 그것은 ‘권력 갈등’ 일변의 정치사에서 다양한 변수들을 고려하는 관점이다. 여기서는 ‘우애’의 정치사로 이 시대를 조명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그동안 조명받지 못한 경종과 영조의 형제애에서 비롯되었다. 권력을 둘러싼 부자지간과 형제지간의 싸움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늘 벌어지는 현상이다. 그런 점에서 이 둘은 예외적 개인들이었다. 붕당정치가 가속화된 17세기 조선의 현실에서 권력을 둘러싼 암투는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쓰레기통 속에서 장미가 피었다는 어떤 비유처럼, 노론과 소론이 서로를 잡아먹고자 했던 적나라한 대치 국면에서도 형제의 의는 다치지 않고 살아남았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평가되어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입장이다. 이런 문제의식으로 그 시대를 보자 모든 것이 새롭게 인식되기 시작한다. 경종은 분명 병약했지만 어리석은 군주는 아니었다. 당쟁을 신하들의 손에만 맡겨둔 것이 아니라 직접 그 안에 뛰어 들어가서 왕권 강화를 모색했다. 동생 영조를 끝까지 보호해서 수많은 모략과 정치적 공격 속에서도 결국 왕위에 오를 수 있게 만들어줬다. 영조가 재위에 오른 뒤 정치적 반대파인 소론을 감싸고 나아가 탕평정치를 편 것은 소론이 형을 보필한 신하들이었기 때문이라는 점이 이 책에서 영조의 어록과 구체적인 인사 조치를 통해서 확인되고 있다. 경종은 세종이나 성종, 숙종이나 영정조 등 거물급 왕에 비하면 그 존재감이 너무나 미약하게 인식되어 왔다. 재위 기간이 짧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경종의 자리는 엑스트라의 자리는 아니었다. 그는 짧지만 주인공으로 무대 위에서 반짝거렸고, 그 반짝거림은 역사의 방향에 일정한 영향을 미쳤다. 이것이 바로 경종의 재발견이다. 참담한 정치적 시련 이 책의 묘미는 ‘바보 왕’ 경종이 전혀 의외의 대목에서 그 실체를 언뜻언뜻 드러냄으로써 손에 땀을 쥐게 하는 내용 전개에 있다. 이처럼 경종의 재발견은 몇 가지 단계를 통해 이뤄지는데 저자가 먼저 주목하는 것은 세자 시절 부왕 숙종의 병이 깊어 경종이 대리청정을 하게 된 4년의 시간이다. 경종과 영조는 숙종의 배다른 아들이다. 경종의 이름은 윤?이고 장희빈의 소생이다. 알다시피 경종의 어머니 장희빈은 정치적으로 소론에 속했고, 소론은 일찍부터 세자인 윤에게 자신들의 정치 생명을 걸었다. 영조는 숙빈 최씨의 소생으로 경종의 여섯 살 터울 동생이며 이름은 금昑이다. 금은 똑똑해서 아버지 숙종의 사랑을 받았고 김창집·이이명 등 숙종 말기의 집권 세력 노론 4대신의 지지를 받았다. 둘의 어머니는 앙숙지간이었고 정치적 배후는 서로 적이었다. 형제는 자칫 서로에게 칼을 겨눠야 할 수도 있었다. 만약 윤의 세자 자리가 확고했다면 두 사람의 우애에 금이 갈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하지만 상황은 그렇지 않았다. 윤의 어머니 장희빈이 궁에서 쫓겨나고 다시 들어왔다가 급기야 사약을 마시고 죽는 일이 발생한다. 이것이 첫 번째 위기였다. 숙종은 윤의 세자 자리는 그대로 유지시켰다. 그러나 세자에 대한 아버지의 사랑은 눈에 띄게 사라져갔다. 그러던 중 격무와 노환으로 인해 숙종의 눈이 보이지 않게 되자 대리청정 문제가 제기되었다. 노론의 목표는 숙종 생전에 세자를 폐위하고 금을 세자로 다시 책립하는 것이었다. 그들에게 윤의 대리청정은 꼬투리를 잡아 폐위시킬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당시 노론의 영수 김창집이 이이명에게 “어디 한번 시험해보는 것도 좋겠지”라고 말했던 것은 대리를 시켜보았다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 그 대안을 시도해보겠다는 생각이 깔려 있다. 이처럼 윤의 지위는 불안했고 거대 노론 세력은 막강했다. 그들은 자신감이 있었다. 노론 측 인사인 민진원의 기록인 『단암만록』에 따르면 세자는 어머니 장희빈이 죽은 이후로 새벽에 몽유병 환자처럼 궁궐을 정신없이 돌아다니기도 하고, 머리를 감지 않아 때가 끼어서 관을 쓸 수 없을 정도로 지저분했으며,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해 실어증 환자처럼 행동할 때가 많았다. 윤은 약점덩어리였고 누가 봐도 왕으로 세울 재목은 아니었다. 하지만 4년간 이어진 대리청정을 윤은 무사히 버텨냈다. 군사, 재정, 인사, 법제 등 여러 사안에 대해 그는 신하들의 의견을 듣고 그런대로 적절한 판단을 내릴 줄 알았다. 학문에 힘써 지도자의 자질을 함양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흔쾌히 받아들였고, 지방의 수령 누군가가 어떻다느니 하면서 파면을 청하는 일 등에 관해서는 거부하는 태도로 임했다. 지방관의 인사 문제에는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또 대신들이 사직을 청하는 의례적인 일에 대해서는 간절하게 설득하여 붇들었다.(51~52쪽) 단, 윤은 말을 길게 하지 않았다. 그가 대리청정 기간에 가장 많이 했던 말은 “마땅히 유의하겠소當留念矣”라는 말이었다. 신하들은 임금과의 토론과 질의, 응답이 아쉽다고 매번 토로할 지경이었다. 노론은 윤을 우습게 여기고 간혹 민생에 관한 중요 문제를 직접 아뢰어 재가를 받기도 했다. 무시하는 태도였다. 하지만 노론은 윤의 대리청정에 만족하지 못하면서도 특별한 문제를 잡아내지는 못했다. 노론의 집요한 폐세자 기도는 숙종이 승하할 무렵에 절정을 이루었다. 숙종 또한 세자가 못마땅하기는 마찬가지였던 모양이었으나 임종을 앞두고도 이렇다 할 언급을 하지는 않았다. 숙종이 죽던 해 4월 이이명은 노골적으로 “정신이 조금 나아지실 때는 대신들을 불러보시고, 나라의 일을 생각하셔서 헤아려 하교하여주소서”라고 말하면서 숙종에게 세자를 바꿀 것을 요청하기도 했다. 하지만 숙종은 세자를 바꾸지 않았다. 윤은 숙종의 뒤를 이어 제20대 왕 경종으로 등극하게 된다. 윤이 경종이 된 이후 노론의 공격은 더욱 집요해졌다. 먼저 포문을 연 것은 소론이었다. 유학 조중우가 경종의 어미 장씨의 희빈 작위를 회복시켜 나라의

저자 소개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에서 '조선조 후기 상거래 질서와 사식詐飾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경희대학교, 수원대학교, 법무연수원, 서울시 공무원교육원 등에서 강의했다. 주요 저서로 '조선을 뒤흔든 아버지와 아들', '영조를 만든 경종의 그늘', '백범 김구', '김옥균', '회재이언적', '우암 송시열', '구봉 송익필', '매월당 김시습', '정암 조광조', '율곡', '화담 서경덕', '율곡선생의 현세 기행', '조선시대의 경제사상' 등이 있다.

책 속에서

윤(경종)은 장희빈, 금(영조)는 숙빈 최씨의 소생이다. 그런데 장희빈은 남인과 소론의 지지를 받았었고, 숙빈 최씨는 노론의 지지를 받을 입장에 있었다. 최씨는 노론 집안 출신으로 왕비가 된 인현왕후 편으로 간주되고 있었던 까닭이다. 그러니 윤과 금에 대한 소론과 노론의 대립구도는 2대에 걸쳐 내려오고 있는 셈이다. 그들이 각기 윤과 금을 지지하는 입장의 저변에는 명분만으로 볼 수 없는 역사의 뒤안길이 깔려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윤과 금 형제의 우애를 심각하게 손상시킬 뇌관이 될 가능성이 없지 않았다. -p.63

실록에서 드러나는 윤의 태도는 왕위에 올라서도 여전히 수세적이었다. 능동적인 면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러나 눈에 얼른 띄지 않는 곳에서 윤의 적극성은 발휘되고 있었다. 왕의 교유한 권한 중의 하나는 바로 인사권이다. 소론의 강력한 비호를 받아 왕위에 오른 이상 윤이 소론을 등용하는 일은 당연한 처사였다. 그러나 그동안 윤은 너무나 무기력한 왕으로 비쳤기 때문에 이 당연한 과정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을 애초에 자라나게 하지 못했다. 즉, 노론의 대립 세력이자 윤을 지지해온 소론의 관계 진출 현황을 세밀하게 관찰해보지 못했던 것이다. -p.148

목차

목차
머리말
프롤로그|형제를 위하여
제1부 비극의 서막
세상에 던져진 형제
상반된 상황에서의 형제
윤, 험난한 세월을 살다
부왕의 임종 앞에서
제2부 거대한 역전
세자 책립
국정의 대리 문제
윤의 정?치적 승부수로서의 '대리청정'
노론을 숙청하는 윤
임금으로서의 윤 - 경종의 재발견
환관들의 모해
또다른 모략 - 목호룡의 고변
교문의 의문
우애는 변함없다
윤의 타계 - 독살설에 대한 반론
제3부 끝없는 우애
형을 이은 아우
망형에의 빚 갚기
의심받는 우애
'황형'에 대한 회억
에필로그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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