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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티 월스트리트의 마녀
원제 : HETTY: The Genius and Madness of America's First Female Tycoon
ISBN : 9788990976079 / 365쪽 144 x 2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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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서평 재정운영의 마법사 헤티가 전하는 財貨寶典!!! 어쩌면 지금 우리는 역사상 두 번째 맞는 공황이란 이름의 기회 앞에 있을지 모른다. 그렇다면 칼바람 부는 강호(江湖)에서 당신의 규화보전 아니 재화보전은 무엇인가? 거대한 재정제국을 통치했지만 ‘헤티’라는 이름 외에는 알려진 게 거의 없는 한 여성 자본가의 흥미진진하고 놀라운 이야기. 지나친 근검절약으로 검정 드레스만을 고집했던 헤티는 놀라운 재능과 결단력으로 엄청난 부를 이뤘다. 안전한 수익률(6%)과 복리의 마술로 600만 달러의 자산을 무려 1억 달러(현재가치 1... 재정운영의 마법사 헤티가 전하는 財貨寶典!!! 어쩌면 지금 우리는 역사상 두 번째 맞는 공황이란 이름의 기회 앞에 있을지 모른다. 그렇다면 칼바람 부는 강호(江湖)에서 당신의 규화보전 아니 재화보전은 무엇인가? 거대한 재정제국을 통치했지만 ‘헤티’라는 이름 외에는 알려진 게 거의 없는 한 여성 자본가의 흥미진진하고 놀라운 이야기. 지나친 근검절약으로 검정 드레스만을 고집했던 헤티는 놀라운 재능과 결단력으로 엄청난 부를 이뤘다. 안전한 수익률(6%)과 복리의 마술로 600만 달러의 자산을 무려 1억 달러(현재가치 160억 달러)로 만들고 선정 밀레니엄 100대 부호 중 유일한 여성. 그녀가 평생을 고수한 아주 단순하지만 따르기 어려운 재정 철칙은 ‘내려가면 사고 올라가면 팔라’이다. 1907년 대공황 시절에도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불패의 투자신화를 창조한 헤티는 당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월가의 금융 종사자들이 두려움과 경외감으로 부른 “마녀”라는 수식어는 냉정하고 차가운 그녀의 이미지와 절묘하게 어울려 부정적 뉘앙스를 풍겼다. 『기네스북』은 심지어 ‘역사상 최고의 수전노’라는 타이틀로 그녀를 모독하는데 그 이유는 아마도 헤티가 ‘여자’였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은 마샤 스튜어트, 오프라 윈프리, 마돈나와 같은 많은 여성이 시대의 우상이지만, 불과 100년 전에는 여성이 월스트리트에서 비즈니스를 하는 것뿐만 아니라, 심지어 투표할 권리조차 없었다. 헤티는 그 척박한 억압의 시절 군계일학이라 할 만큼 불멸의 재정투자자이다.
1916년 헤티 그린이 죽었을 당시 그녀는 미국에서 가장 부유한 여성이었다. 그녀의 재산은 줄잡아서 대략 1억 달러, 그러니까 현재 가치로 대략 160억 달러가 넘었다. 그러나 단순히 그녀가 남긴 재산의 부피보다도 당시 압도적으로 남성이 많았던 월스트리트에서 대단한 업적을 쌓았다는 사실이다. 그 시절은 여성에게 선거 투표권조차 허락되지 않던 시대였다.
그녀는 19세기의 흉악무도한 히어로들인 앤드루 카네기, 제이 굴드, J. P. 모건, 존 D. 록펠러, 두 명의 밴더빌트 속에 낀 유일한 여성이었다. 그녀는 부동산과 철도회사, 토지 등을 사고팔았고 광산을 소유했으며, 교회와 공장, 건물 등의 담보물을 소유했다. 뉴욕을 포함한 대도시들이 재정적 어려움을 겪을 때 그들은 몸을 숙이고 그녀에게 도움을 청했다. 헤티 그린이 평생을 고수한 아주 단순하지만 따르기 어려운 재정적 철칙은 ‘내려가면 사고 올라가면 팔라’이다. 그녀는 이런 신념을 지키며 1907년 공황이 닥쳤을 때에도 절대로 당황하지 않았다.
월스트리트Wall Street는 1650년대에 이곳으로 이민 온 네덜란드인이 세운 성벽wall에서 유래한다. 당시에는 맨해튼 섬 북단 끝 식민지였던 이 성벽은 영국인을 안에 들이지 않을 목적으로 지어졌으나 그 뜻을 이루진 못했다. 하지만 월스트리트는 점점 세계금융의 중요한 중심지로 성장하면서 그 성벽wall은 모든 것이 허용되는 곳이었지만, 여성에게는 뚫고 들어갈 수 없는 무서운 장벽이었다. 1870년, 빅토리아 우드헐이 월스트리트 최초로 여성이 소유한 증권회사를 열었다. 우드헐의 친구 코닐리어스 밴더빌트가 자금을 댄 이 증권회사는 실질적인 사업보다는 대중의 호기심을 끄는 데 그쳤다. 우드헐은 신문 출판과 대통령 후보에까지 손을 뻗쳤고, 19세기에 일시적으로 유행한 ‘인간은 죽은 사람과도 소통할 수 있다’는 개념에 기초한 종교심령술에 심취했다. 월스트리트는 빅토리아 우드헐이 확고한 빅토리아적 감각을 펼쳐보인 최종 장소였으나 그 관심사는 금방 시들어갔다. 역사학자 존 스틸 고든은 “월스트리트는 보편적으로 전쟁터만큼 여성들에게는 부적절한 곳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1909년 12월, <뉴욕타임스>는 여성 투자자들이 감정에 지배되고 있다는 기사를 실었다 “월스트리트가 확신하건대, 여성들은 멋진 승리자인 동시에 아주 참담한 패배자들이기도 하다. 이런 이유로 많은 브로커가 고객으로 여성 투자자들을 반기지 않는다. 툭하면 화를 내거나 질질 짜는 여성과 더불어 돈과 비즈니스를 논하기는 어렵다. 월스트리트를 바라보는 여성 투자자들은 어느 순간 완전히 감정적이 되기에, 무한한 인내심을 지닌 브로커들만이 그녀들을 진정시킬 수 있다.” 이 기사는 이 규칙에 예외로 헤티를 선별해, “재정에 남성다운 본능을 지니고 있다”고 격찬했다. “그녀는 걸출한 많은 남성보다도 재정을 바라보는 폭이 더 넓고, 철도주식과 부동산의 가치를 보는 시야가 늘 정확하다. 그녀는 남자들이 하는 논리적인 방식으로 투자하여 대체로 이익을 본다.”
목차
서문
1장. 새로운 정착지, 뉴베드퍼드
2장. 실비아 이모
3장. 유언장 소동
4장. 두 번째 페이지 법정 소송
5장. 도피
6장. 벨로스폴스의 다크호스
7장. 폭풍우를 몰고 오다
8장. 브루클린의 백만장자
9장. 후계자 수업
10장. 무임승차를 하지 말라
11장. 위트 넘치는 법정 소송
12장. 여객선을 타고
13장. 월스트리트의 마녀
14장. 네드의 금의환향
15장. 그 누구보다도 오래 살 것이다!
16장. 라운드힐의 추억
17장. 바람처럼 흩어지다
감사의 글
옮기고 나서
출처노트
참고자료
찾아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