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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인류 인류의 기원을 찾아 나선 140년의 대탐사
원제 : The first Human: The Race to Discover Our Earliest Ancestors
시리즈 :
오파비니아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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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90024794 / 351쪽 148 x 2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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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디앤루니스 리뷰
최초의 인간은 언제, 어디서 생겨났을까? 다윈 이후 인간의 기원을 찾기 위한 탐색을 화석 인류의 발견으로 이어졌다. 최초의 조상 인류로서 영광을 누리던 화석들은 머지않아 더 오래된 화석의 발견으로 그 지위에서 쫓겨나기를 반복했다. 앤 기번스는 이 책에서 시종일관 객관적인 거리를 유지하며 인류의 기원을 밝히기 위한 과학자들의 노력과 연구, 치열한 경쟁과 흥미진진한 휴먼 스토리를 들려준다.
출판사 리뷰
출판사 서평 인류의 기원을 찾기 위한 1868년부터 2005년까지의 탐색과 그를 둘러싼 까다로운 논쟁을 객관적, 비평적 관점에서 추적한 고인류학계의 생생한 휴먼 스토리! 최초의 인간은 과연 언제, 어디서 생겨났을?까? 일찍이 다윈은 아프리카 침팬지와 고릴라는 인간과 가장 가까운 대형유인원이며, 우리 모두는 영장류목에 속하기 때문에 인류는 아프리카에서 유래했을 거라고 추측했다. 그 뒤 탐험가들은 이 ‘잃어버린 고리’를 찾아나섰다. 잃어버린 고리란 말은 지상의 생물들이 가장 하찮은 것부터 가장 고차원적인 것까지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존재의 대연... 인류의 기원을 찾기 위한 1868년부터 2005년까지의 탐색과 그를 둘러싼 까다로운 논쟁을 객관적, 비평적 관점에서 추적한 고인류학계의 생생한 휴먼 스토리! 최초의 인간은 과연 언제, 어디서 생겨났을까? 일찍이 다윈은 아프리카 침팬지와 고릴라는 인간과 가장 가까운 대형유인원이며, 우리 모두는 영장류목에 속하기 때문에 인류는 아프리카에서 유래했을 거라고 추측했다. 그 뒤 탐험가들은 이 ‘잃어버린 고리’를 찾아나섰다. 잃어버린 고리란 말은 지상의 생물들이 가장 하찮은 것부터 가장 고차원적인 것까지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존재의 대연쇄라는 오랜 관념에서 나온 것이다. 오래전부터 과학자들은 인간이 자연에 어떻게 적응하고, 동물계에서 어떻게 자기 자리를 찾게 되었는지 보여줄 화석들을 경쟁적으로 찾고 있었다. 그 경쟁의 장에서 최초로 위업을 달성한 사람은 네덜란드의 해부학자 외젠 뒤부아로, 그는 1891년에 ‘자바원인猿人’이라는 이름으로도 널리 알려진 초기 호미니드 화석 호모 에렉투스를 발견함으로써 단번에 부와 명예를 거머쥐는 행운을 누렸다. 1960년에 이르면 루이스 리키가 이른바 ‘손 쓴 사람’이라는 뜻의 호모 하빌리스를 발견하게 되는데, 이는 동아프리카에서 발견된 최초의 인간 직계조상이었다. 1974년에는 도널드 조핸슨이 310만 년 된 ‘루시’라는 어여쁜 이름의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 화석을 발견하면서 최초의 인류를 둘러싼 대중적 관심에 불을 지피는 계기가 되었다. 이 밖에도 메리 리키, 팀 화이트, 미셸 브뤼네, 이브 코팡, 마틴 픽퍼드 같은 고인류학계의 유명한 사람들이 경쟁적으로 인류의 조상 화석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해왔다. 그러나 최초의 조상 인류로서 영광을 누리던 화석들은 머지않아 더 오래되고 원시적인 화석의 발견으로 그 지위에서 쫓겨나기를 거듭해왔다. 문제는 오래된 화석일수록 온전한 형태를 제대로 갖춘 것이 거의 드물다는 점과 ‘루시’처럼 그나마 상당량의 부분 뼈대를 발굴했다 해도 직립보행의 흔적만으로는 최초의 조상 인류로 보기에 무리가 많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이빨과 턱 파편 같은 부분 화석만으로는 누구나 인정할 만한 결론을 얻기가 힘들 수밖에 없다. 고인류학계에서 이른바 ‘팀 계명’으로 불리는 팀 화이트의 다음과 같은 권고사항은 이 세계가 치열한 경쟁과 논쟁, 때로는 협잡으로 얼마나 잡음이 많을지를 집작케 한다. “현장에 가면, 첫날 자동차에서 내린 뒤 반경 20미터 안에서 호미니드를 찾게 될 거라는 생각은 하지 말라. 다른 사람이 발견한 화석을 내가 발견했다고 주장하지 말라. 진실은 언젠가는 결국 밝혀진다. 화석을 매입하지 말라. 관리들을 뇌물로 매수하지 말라. 다른 사람의 현장에 몰래 들어가지 말라. 특히 그가 개발도상국 출신 학자일 경우에는 더욱 명심하라……. 자신에게 이롭게 하기 위해, 또는 자신이 다른 일꾼들보다 더욱 똑똑하거나 잘나 보이게 하려고 이야기를 꾸며내려 하지 말라……. 현대 고인류학은 개인적인 성공보다는 팀워크에 입각한다. 자신의 야망으로 자신의 윤리를 왜곡하지 말라.” 급기야 이렇듯 무자비한 경쟁과 성급한 주장, 팽배한 경계심, 사과를 모르는 그 세계의 모든 것은 파리의 한 논쟁에서 절정에 오르고 거기서 팀 화이트는 이렇게 선언하기에 이른다. “이건 과학의 문제가 아닙니다! 극장의 문제죠. 이건 극장입니다!” 『사이언스』지의 진화 담당기자였던 앤 기번스는 이 책에서 시종일관 객관적인 거리를 유지하며 인류의 기원을 밝히기 위한 과학자들의 노력과 연구, 치열한 경쟁과 흥미진진한 휴먼 스토리를 생동감 있게 들려준다.
『네이처』의 헨리 지는 결국 ‘잃어버린 고리’라는 용어를 쓰도록 부추긴 일을 후회하게 되었다. 그는 자신의 책 『비밀의 시간을 찾아서In Search of Deep Time』에서, 처음에는 그 용어가 “우리 혈통과 유인원의 혈통 사이에 놓인 진화의 빈틈에 가장 가까운 호미니드”라는 말보다 더욱 입에 맞는 것 같았다고 고백하면서 이렇게 설명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우리는 『네이처』의 편집자였음에도 매체들에 묘사된 것과 같은 주술적 고생물학에 영합하는 잘못을 저지르고 있었다. 그런 고생물학은 단선적이고 상승하는 진보적 진화의 모델을 가정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모델이 잘못되었음을 알고 있지만 진화를 그런 방식으로, 특히 우리 자신의 기원을 논할 때는 그런 유혹에 빠지기가 쉽다.”(200쪽)
특별한 건 호미니드 발견이 아니다. 이 일은 찾을 가치가 있는 것이 호미니드뿐인 보물찾기가 아니다. 여기서 주어지는 ‘포상’은 그들의 해부학, 그들의 습관, 그들의 세계에 대한 지식이다. 문제는 인간적이고 기술적인, 그 수수께끼에 집중될 수 있는 모든 자료를 활용함으로써 아주 먼 과거의 지식과 싸우는 것이다. - 팀 화이트(311쪽)
르 그로스 클라크는 호미니드의 징표로서 아랫니와 겹치지 않는, 또는 스치지 않는 짧은 위송곳니를 밝혀냈다. 실제로 많은 고인류학자들은 여전히 수컷의 겹치지 않는 작은 송곳니를 사람과科 성원의 표시로 여기고 있다. 씹을 때 아랫니와 겹쳐서 아랫니를 갈아대는 긴 송곳니는 유인원의 표지였다. 르 그로스 클라크가 볼 때 이렇게 짧은 송곳니는 중대한 행동의 변화를 반영하는 것으로, 사람과의 독특한 특징이었다. 르 그로스 클라크는 당시 대부분의 고인류학자들과 마찬가지로, 다윈이 처음 제시한 생각, 다시 말해 인류의 조상들이 도구를 활용하기 시작하면서, 수컷들이 다른 수컷과 싸우거나 힘을 과시할 때 필요했던 날카로운 송곳니는 필요하지 않게 되었다는 생각에 동의했다. 다윈은 또 도구의 발명이 직립보행과 큰 두뇌의 발달과 동시에 이루어졌다고 생각했다. 초기 인류는 똑바로 서서 걸음으로써, 손을 이용해 도구를 만들고 운반하고 휘두를 수 있었다는 것이다. 도구제작자는 새로운 석기 제작기술을 창조하고 석기를 이용하기 위해 두뇌가 더욱 커져야 했다. 이것이야말로 깔끔한 패키지였다. 도구세트의 발명이 조상 인류가 직립하도록 만들면서 최초의 기술혁명을 일으킨 것이다.(99쪽)
그[루이스]와 메리가 그 머리뼈 주변 흙을 파 들어감에 따라, 그것은 거대한 턱과 이빨을 가진 억센 오스트랄로피테쿠스임이 확실히 드러났다. 한 동료가 이것을 보고 즉석에서 ‘호두 까는 사람’이라는 별명을 붙였다. 흥미로운 것은, 루이스가 진지를 분류할 때 뼈대에서 직립보행의 직접적 증거를 찾지 않고, 그 머리뼈와 이빨의 형질을 토대로 호미니드라고 선언했다는 것이다.
루이스는 이것을 일컬어 “우리가 아는 남아프리카의 근접한 인간과 진정한 인간 사이를 이어주는 고리”라고 했다. 그 억센 머리뼈는 오늘날 오스트랄로피테쿠스 보이세이의 것으로 인정받고 있다. 부분 뼈대를 포함해, 같은 종의 더 많은 성원들이 에티오피아와 케냐에서 발견되고 있는데, 오늘날 A. 보이세이는 인간의 직계조상이라기보다는 인간의 사촌뻘로 멸종한 나름의 혈통을 이루고 있었다고 여겨진다. 진지는 남아프리카의 오스트랄로피테쿠스류와 함께, 아프리카가 인류의 탄생지라는 가설을 더욱 보강해주었다.(69쪽)
1967년 말께 새리치와 윌슨은 연대를 산출해냈다. 인간과 아프리카 유인원들이 분기한 시점은 1,500만 년 전도 2,500만 년 전도 아닌, 약 500만 년 전인 것으로 나왔다. 그들은 결과에 자신감이 생기자 1년에 걸쳐서 자신들의 방법과 분기시점에 관한 논문 세 편을 발표했다. 1967년 12월 1일에는 『사이언스』에 결론을 실었다. “인간과 아프리카 유인원들은 500만 년 전, 다시 말해 플라이오세에 공통조상을 두고 있었다.”
그것은 초대형 분자폭탄이었다. 그 논문은 여러 고인류학자들의 책상 위에 떨어진 순간 깊은 균열을 만들었고, 그 균열은 분자를 연구하는 과학자들과 화석을 분석하는 과학자들 사이를 10년 동안 갈라놓았다.(110쪽)
루시는 아프리카에 대한 다윈의 예측이 옳았음을 증명했던 반면, 다른 가설에 대해서는 다윈이 틀렸음을 입증하기도 했다. 그것은 직립보행이 커다란 두뇌와 석기의 발달과 함께 진화했다는 가설이었다. 직립보행이 커다란 두뇌와 함께 발달했다는 가설은 일찍부터 남아프리카의 오스트랄로피테쿠스류에 의해 흔들리고 있었는데, 두뇌는 훨씬 나중인 200만 년 전쯤의 호모속에 이르러서야 본격적으로 커지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이제 다윈의 주장은 새로이 정비되었다. 커다란 두뇌가 삭제되었고, 그 자리엔 직립보행을 위한 중요한 자극이었던 도구제작이 새로이 올라왔다. 도구를 만드는 인간에겐 자유로운 두 손이 필요했고, 이것이 직립보행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138쪽)
가장 오래된 조상 인류 화석으로서 가장 오래 권좌에 머물러 있던 것이 루시였다. 침팬지 크기만한 이 여성의 놀라운 부분 뼈대는 미국의 젊은 고인류학자 도널드 조핸슨이 1974년 에티오피아에서 발견한 것이다. 루시는 300만 년 전에서 360만 년 전 사이, 동아프리카지구대에 살았던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Australopithecus afarensis 일족이었다. 그리고 20년 동안 교재들마다 루시의 종을 모든 인류의 조상으로 내세우면서, 나중에 등장한 인류는 말할 것도 없고, 아프리카에서 살다가 멸종한 일부 유인원들까지도 그 후손이라고 설명했다. 이 설명은 깔끔한 가계도를 그려내면서, 한 종에서 다른 종으로 이어지는 순차적 전개를 만족시켰다.
브뤼네가 차드 현장을 탐사하던 1990년대 중반께는 이런 관점이 지나치게 단순하다는 뚜렷한 단서들이 제기되고 있었다. 인류 이야기는 톨스토이의 소설만큼이나 복잡해 보이기 시작했고, 생명의 책장을 넘기면 뜻하지 않게 새로운 등장인물이 나타났다. 대부분의 학자들은 루시의 종에서 나온 혈통이 현생 인류로 이어진다고 생각했지만, 일부에서는 300만~ 400만 년 전 지구상에 살았던 초기 인류는 루시의 종만은 아니었다는 주장을 펴고 있었다. 새로 등장한 화석들은 인류 조상의 가계도에 새로운 가지들을 그려 넣었다. 일부 가지는 계속 뻗어나가지 못한 채 멸종한 혈통으로 남았다. 나머지 가지들은 100만 년 전과 300만 년 전 사이라는 같은 시기에 추가되면서, 어느 호미니드가 현생 인류로 직접 이어지는 선에 있는가 하는 논쟁에 불을 지폈다. 그러는 가운데, 인류 이야기에서 인간과 유인원들의 조상 사이에서 잃어버린 고리가 단지 하나만은 아니라는 사실이 명백해졌다. 몇백만 년에 걸쳐 인간에게까지 이어진 하나의 선에는 잃어버린 고리들이 많았다. 그리고 그것들은 원숭이와 사람을 반반씩 닮은 완벽한 중간자도 아니었다. ‘잃어버린 고리’란 말은 찬밥신세로 전락해버렸다.(23~24쪽)
화석 연대를 토대로 맞춰놓은 분자시계는 일관되게, 인간이 침팬지의 조상에게서 갈라져나온 시기는 더 이전이라고, 다시 말해 500만 년 전에서 700만 년 전 사이라고 가리켰다. 그러나 화석사냥꾼들이 찾아낸 것은 루시보다 별로 오래되지 않은 뼈 부스러기와 이빨 몇 개가 전부였다. 인류의 기원과 관련해서 풀어야 할 가장 큰 문제는 이것이었다. 루시 이전에는 무엇이 있었는가? 인류 가족 최초의 성원은 누구였는가? 그리고 그보다 더 오래전 침팬지 무리에서 갈라져나와 독자적인 진화의 길에 들어서기 전, 침팬지들과 마지막으로 공유했던 조상 인류가 되는 유인원은 어디에 있는가?
이것이 1980년대와 1990년대 브뤼네를 비롯한 많은 화석사냥꾼들을 아프리카의 새로운 화석현장으로 몰아대었던 바로 그 수수께끼였다. 브뤼네와 필빔은 서쪽으로 향했고, 팀 화이트를 비롯한 나머지는 동쪽으로 향했다. 그들 모두는 인류 가족 최초의 성원들을 찾겠다는 각오가 서 있었다. 아니 적어도 현생 인류와 밀접하게 연관된 가장 오래된 조상을 찾겠다는 의지가 있었다. 우리의 직계조상이 될 실질적인 개체들을 찾을 가능성은 점점 사라지고 있었기 때문이다.(25쪽)
그해[1995년] 말, 미브와 고생물학자 앨런 워커, 그 동료들은 카나포이 화석과 함께, 투르카나 호의 동쪽 연안, 이른바 알리아 만의 뼈 무더기 층에서 나온 화석들에 대한 기술을 발표했다. 그들은 알리아 만에서도 같은 유형의 화석들을 더 발견했던 것이다. 그들은 이 화석에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나멘시스Australopithecus anamensis라는 이름을 붙였다. 투르카나어로 아남anam은 ‘호수’를 뜻하는데, 그 모든 화석이 나온 곳이 지금의 투르카나 호수 주변을 넘어 훨씬 멀리까지 뻗어 있던 고대의 로뉴문 호수로 흘러드는 강의 범람원이었기 때문에 썩 어울리는 이름이었다. 그들은 이 ‘호수의 원숭이’를 루시 종의 직계조상으로 제시하게 된다. 이 정강이뼈는 직립보행에 대한 가장 오래된 직접증거를 제시하면서 A. 아나멘시스를 논의의 여지없는 최초의 호미니드로 만들었다. 『네이처』 편집자들은 이즈음이야말로 고인류학에서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시기라고 논평했다.(42~43쪽)
인류의 조상 자리를 노리는 새로운 화석들이 등장할 때마다 거의 항상 일종의 논쟁에 휩쓸리게 되었다는 것은 매우 불길한 징조였다. 아무리 경험 많은 학자라 해도 인류의 조상을 발견했다는 소식에는 공룡 같은 다른 동물의 화석을 대할 때보다 더욱 감정적으로 반응할 때가 종종 있었다. 새로운 화석들은 거의 예외 없이, 우리 조상들이 애초부터 커다란 두뇌를 가졌거나 뭔가 특수한 운명의 징표를 지녔던 숭고한 존재라기보다는 그저 평범한 유인원에 지나지 않았음을 드러내면서, 우리 조상들의 생김새에 관한 기존의 관념들을 산산조각 냈다.(55쪽)
목차
지도: 인류의 요람(10) | 연표: 사람과科의 가족들(11)
‘최초의 인류’ 화석발견 연보(12) | 화석사냥꾼들(14)
들어가며(17) | 이야기의 시작(20)
제1부 고대의 발자국
제1장 아프리카의 개척자들(47) | 제2장 대륙의 분리(74)
제3장 인류 초기의 조상(90) | 제4장 혈통을 그려나가다(104)
제5장 루시, 최근의 조상(115) | 제6장 인간에 대한 정의(127) | 제7장 추방(141)
제2부 발견의 10년
제8장 호숫가의 숙녀(167) | 제9장 아파르에서 본 풍경(180)
제10장 뿌리 유인원(190) | 제11장 웨스트사이드 스토리(210)
제12장 영역 싸움(226) | 제13장 규칙을 지켜라(244)
제14장 밀레니엄맨(259) | 제15장 투마이(277)
제3부 뼈에 담긴 교훈
제16장 논쟁의 골자(297) | 제17장 인류의 보금자리(311)
감사의 말(320) | 옮긴이의 말(324) | 용어풀이(329)
더 읽을거리(332) | 찾아보기(34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