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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

시리즈 : 작가정신 일본소설 시리즈 [32]

모리미토미히코 저 | 서혜영 역 | 작가정신 | 2008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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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72883340 / 400쪽 128 x 18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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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출판사 서평 “망상이라도 좋다! 소리 높여 청춘을 구가하자!” 일본판타지노벨대상을 수상하고 데뷔한 교토의 대학원생(당시) 모리미 토미히코가 “교토의 『이상한 나라 앨리스』를 써보자”고 마음먹고 쓴 판타?지 연애소설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는 나오자마자 문단과 독자들의 비상한 관심을 모으면서 단번에 나오키상 후보에 올랐으며, 일본의 유력 출판전문지 《다빈치》의 “올해의 책”(1위), 일본 서점대상(2위), 기노쿠니야서점 베스트텐(2위) 선정의 기염을 토하더니 드디어 제20회 야마모토슈고로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누렸다. 흑발의 귀여운 ... “망상이라도 좋다! 소리 높여 청춘을 구가하자!” 일본판타지노벨대상을 수상하고 데뷔한 교토의 대학원생(당시) 모리미 토미히코가 “교토의 『이상한 나라 앨리스』를 써보자”고 마음먹고 쓴 판타지 연애소설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는 나오자마자 문단과 독자들의 비상한 관심을 모으면서 단번에 나오키상 후보에 올랐으며, 일본의 유력 출판전문지 《다빈치》의 “올해의 책”(1위), 일본 서점대상(2위), 기노쿠니야서점 베스트텐(2위) 선정의 기염을 토하더니 드디어 제20회 야마모토슈고로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누렸다. 흑발의 귀여운 아가씨를 향한 망상폭주 자의식초과잉 순정파 대학생과 사랑스러운 괴짜들이 그려가는 청춘 그래피티 이야기의 골격은 ‘검은 머리 귀여운 후배 아가씨’를 짝사랑하는 어수룩한 선배 남학생의 안타까운 분투기. 하지만 무대가 되는 교토의 마을과 대학 등을 독특한 공간으로 변환시키고 여기에 애니메이션풍의 유쾌하고 비현실적인 캐릭터들을 대거 등장시킨, 아주 뛰어난 ‘망상력’이라는 엔진을 달고 질주하는 이야기다. 주인공 ‘나’는 한 여자에 대한 뜨거운 연정으로 가슴을 태우며 고뇌하고 있다. 그녀는 윤기 있는 검은 머리를 단정하게 자른 아담한 체구의 귀여운 ‘아가씨’. 그녀는 문자 그대로 ‘아가씨’의 속성을 다 갖추었다. ‘여성’으로서의 성적 이미지보다는, 어디까지나 맑고 깨끗하고 천진난만한 캐릭터다. 이 책은 바로 이 세상 남자들의 이상형을 그대로 구현한 것 같은, 현실 세계에서는 있을 수 없을 것 같은 ‘아가씨’에 대한 망상 가득한 한 남자의 짝사랑이라는 그 전형적인 시추에이션을 발판으로 하여 독자들을 단번에 이야기 속 망상의 세계로 끌어들인다. 공중부양을 하는 대학생 히구치, 악덕 수집가에게 책을 빼앗아 세상에 돌려보내는 헌책시장의 신, 사랑을 이루기 위해 일 년 동안 팬티를 갈아입지 않은 ‘빤스총반장’, 고약한 고리대금업자이자 사랑스러운 술꾼 이백 씨, 그리고 길가의 구르는 돌멩이처럼 그녀라는 성 주위의 해자를 착실히 공략하는 주인공 ‘나’까지 현실과 망상이 뒤섞인 캐릭터들이 즐비한 이 소설은 주인공 ‘나’와 그녀의 관계 이외의 모든 것들을 판타지적 상상력으로 눙쳐내어 독자들을 꿈과 현실 속에서 기분 좋게 몽롱하게 만든다. 현실에서 판타지의 세계로 종횡무진 부유하다 순진문구 리얼리티, 위풍당당 판타지, 지브리의 차기작? 작고 가냘픈 몸매, 가지런히 자른 검은 단발머리, 고양이처럼 변덕스러운 걸음걸이, 가끔은 특기인 두 발 보행 로봇 스텝……. 세상만사에 호기심 만발이요, 엄지를 안으로 감싼 쥔 주먹을 위험한 순간마다 날리는 ‘친구펀치’를 구사하고, “나무나무”라는 주문을 시도 때도 없이 읊조리고, 주당들을 단번에 제압해버리는 대단한 주량에, 삼척동자도 속지 않은 구라(?)에도 언제나 순진하게 눈망울을 깜빡이며 속아 넘어가는, 유례없이 다양한 매력과 귀여움을 겸비한 서클 후배 ‘그녀’. 그런 그녀를 좇는 ‘나’는 어떻게든 그녀의 눈에 띄려고, 밤낮으로 그녀의 행선지에 출몰하나 고백은커녕 말도 못 붙이고, 머릿속에는 망상만이 폭주한다. ‘쓸데없이 자존심만 높은 우유부단한 남자’ 대회에 나가면 그랑프리 감이 되고도 남음직한 캐릭터다. 그래도 그는 아가씨의 사랑을 얻기 위해 백야귀행의 밤거리를 파김치가 되도록 돌아다니고, 매운 냄비요리 먹기 시합에 나가 온몸이 불타는 혈투를 치르고, 축제로 떠들썩한 대학 옥상에서 추락해 저승길 앞에서 가까스로 유턴하며 목숨을 건 대활극을 펼친다. 그리고 겨울, 그는 지독한 감기에 걸려 옴짝달싹못하는 와중에도 그녀를 그리워하는데, 매번 아슬아슬 결정적으로 스치듯 지나치기를 반복하던 두 사람 사이가 다음 해 봄, 마침내 테이블 하나의 거리만큼으로 좁혀진다. 기기묘묘한 캐릭터들 외에도 반짝반짝 빛나는 요상한 등장 소품들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술꾼 이백 씨가 타고 다니는 3층 전차(만화 『도라에몽』에 나오는 것 같은), 가짜 전기부랑이라는 술, 대학축제 강의실 한구석에 등장한 거대한 ‘코끼리 엉덩이’, 자전거와 폐품을 모아 만든 ‘풍운괴팍성’, 회오리바람과 함께 하늘에서 떨어지는 비단잉어 등등이다. 짝사랑하는 남녀의 애타는 술래잡기를 배경으로 등장하는 이 기상천외한 물건들과 그것들이 만들어내는 시추에이션들은 마치 애니메이션을 보는 듯 유쾌하기만 하다. 즉, 인간도 우주인도 요괴도 유령도 모두 함께 뛰노는 판타지의 전형적 스토리로 달려 나가는 것이다. 이런 세계관에 대해 리얼리티 운운하는 것은 그 자체로 난센스다. 머뭇거리는 순정 청년과 그런 그의 분투를 전혀 눈치 채지 못하는 순정 아가씨, 그리고 그런 그들을 둘러싼 사랑스러운 괴짜들이 만들어가는 밝고 환상적인 이야기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는 “지브리의 차기작으로 추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세계에서 다카하시 루미코의 만화 캐릭터들이 걸으면서 인간의 철학을 논하는 것 같은 소설!” “나츠메 소세키가 쓴 헤이세이시대의 러브코미디 같다” 등등 독자들의 열렬한 환호를 받으며 위풍당당 판매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아마존저팬 독자들의 폭주하는 애정 공세!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세계에서 다카하시 루미코의 만화 캐릭터들이 걸으면서 인간들의 철학을 논한다?(gomame) 지브리 스튜디오의 차기작으로 추천한다.(토토로의 잠꼬대) 이런 소설, 두 번 다시 만날 수 없다.(아파트) 뉴 장르인가! 연애소설의 벽을 훌쩍 넘어선다.(뽕나무 열매에 맺힌 거품) 25년 동안 내가 읽은 소설 중에 최고!(andouchable) 통절하게 속편을 기다린다.(대나무 사다리) 사랑을 예감케 하는 태연스런 결말, 이 조용한 라스트가 나를 책의 세계에서 현실로 귀환시켜주었다.(꿈을 좇는 벌레) 책장을 넘기자마자 눈 깜짝할 사이에 이미 이상한 나라에 발을 딛고 있다.(하파) 한 손에는 톨스토이를, 한 손에는 이 소설을!(학생) 이토록 흔들리지 않는 세계관이라면 칭찬받아 마땅하다!(아시아의 숨결) 이 책을 수중에 넣은 걸 감사하라.(스크루지) 헤이세이시대의 러브코미디를 소세키가 쓰면 이렇게 될까?(일공당) 나무랄 데 없는 만점 소설.(Z)

저자 소개

  • 저자 : 모리미토미히코
지은이 모리미 토미히코
1979년 일본 나라 현에서 태어났다. 나라여자대학 부속 중고교를 거쳐 교토대학 농학부 생물기능과학과에서 응용생명과학을 전공하고, 동대학원 농학연구과 수사과정을 수료했다. 2003년 『태양의 탑』으로 제15회 일본판타지노벨대상을 수상하고 소설가로 데뷔했다. 2007년, 천진난만한 후배 아가씨와 그녀의 뒤를 쫓는 어수룩한 선배의 청춘판타지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로 제20회 야마모토슈고로상을 수상했다. 본 작품은 나오키상 후보작으로 오른 동시에 2007 《다빈치》 올해의 책 1위, 서점대상 2위, 기노쿠니야서점 베스트텐 2위에 선정되었다.
‘매직 리얼리즘’의 기법으로 현실과 가상을 교묘하게 배열하는 독특한 세계관과 문체가 특징인 모리미는 『펭귄 하이웨이』를 제외한 모든 소설을 교토를 무대로 썼는데, 이 때문에 『사슴남자』(가제)의 작가 마키메 마나부와 함께 ‘교토 작가’로 불리기도 한다. 초기 작품에는 (작가 자신처럼) 교토의 대학생을 주인공으로 한 작품이 대부분이었으나 2007년 발표한 『유정천 가족』에서는 너구리 가족이 등장하는 등 동물이나 초등학생을 주인공으로 한 작품도 쓰고 있다. “꿈이든 현실이든 그건 본질적인 문제가 아니다. 내 재능의 보물 상자는 이미 바닥을 드러냈지만, 아직 나에게는 재능 하나가 남아 있다. 망상과 현실을 뒤죽박죽으로 섞어버리는 재능!”이라고 말하는 모리미는 마키메 마나부와 함께 이사카 코타로를 잇는 일본 문단의 새 기대주로 젊은 독자들의 절대적 사랑을 받고 있다. 현재 그는 교토의 한 도서관에서 근무하면서 집필을 계속하고 있다.
그 밖의 장편소설과 작품집으로 『다다미 넉 장 반 세계일주』 『스위트 블루 에이지』 『여우 이야기』 『신역 달려라 메로스』 『유정천 가족』 『연문의 기술』 『요이야마 만화경』 등이 있고, 「어항을 들여다보는 아이」 「교토 시, 사쿄 구」 「만주사화」 「추억의 영화」 「미주 사랑의 뒷골목」(『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의 외전) 「달팽이의 뿔」 「혹은 실연의 기록」등의 단편소설이 있다.
옮긴이 서혜영
서강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한양대 일어일문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2008년 현재 전문 일한 번역․통역가로 활동 중이다. 옮긴 책으로 『레몬일 때』 『쉬 러브스 유―도쿄밴드왜건』 『하드보일드 에그』 『오로로콩밭에서 붙잡아서』 『도쿄밴드왜건』 『말해도 말해도』 『작은 인연』 『보리밟기 쿠체』 『반딧불이의 무덤』 『시노다 고코의 요리와 인생 이야기』 『번역어 성립 사정』 『그네타기』 『사라진 이틀』『매리지 블루』 등이 있다.

역자 소개

  • 역자 : 서혜영
서강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한양대 일어일문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2008년 현재 전문 일한 번역․통역가로 활동 중이다. 옮긴 책으로 『레몬일 때』 『쉬 러브스 유―도쿄밴드왜건』 『하드보일드 에그』 『오로로콩밭에서 붙잡아서』 『도쿄밴드왜건』 『말해도 말해도』 『작은 인연』 『보리밟기 쿠체』 『반딧불이의 무덤』 『시노다 고코의 요리와 인생 이야기』 『번역어 성립 사정』 『그네타기』 『사라진 이틀』『매리지 블루』 등이 있다.

책 속에서

이것은 내 이야기가 아니라 그녀의 이야기다.
배우들로 가득 찬 이 세상, 모두들 주역을 못 맡아서 안달하는데 그녀는 전혀 의도하지 않는 사이에 그 밤의 주역이 되었다. 정작 본인은 그 사실을 몰랐고, 아직도 모를 것이다.
이 글은 그녀가 알코올에 잠긴 밤의 여로를 위풍당당 끝까지 걸어간 기록이자 주역은커녕 길가의 돌멩이로 만족해야 했던 나의 쓰디쓴 기록이기도 하다. 독자 제현은 그녀의 사랑스러운 모습과 나의 얼간이 짓을 둘 다 숙독 음미하여 안닌 두부의 맛과도 비슷한 인생의 묘미를 만끽하기를.
그리고 바라건대 그녀에게 성원을.


처음 말을 주고받은 날부터 그녀는 내 영혼을 사정없이 움켜쥐었다.
나는 가능한 한 그녀의 시야 안에 머물기 위해
3층 전차가 날아다니는 봄의 밤거리에서, 헌책의 신이 강림한 여름의 헌책시장에서,
공중부양을 하는 대학생과 괴팍왕이 휘젓는 가을의 대학축제에서,
감기로 자리보전한 겨울날 꿈속에서, 그녀와의 ‘우연한’ 만남을 끊임없이 만들었다.
“뭐, 어쩌다 지나가던 길이었어”라는 대사를 목에서 피가 날 정도로 반복하는 내게 그녀는 천진난만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아, 선배, 또 만났네요!”


헌책시장을 방황하던 그녀가 한 권의 책을 발견하고 의욕적으로 손을 뻗는다. 그곳으로 뻗어오는 또 하나의 손. 그녀가 얼굴을 들면 그곳에 내가 서 있다. 나는 신사적으로 그 책을 그녀에게 양보하는 데 주저함이 없다. 그녀는 예의바르게 감사 인사를 할 것이다. 그 뒤는 하늘이 나에게 내려준 기지를 발휘하여 손쉽게 풀어나가면 된다. 그 끝에 있는 건 검은 머리의 아가씨와 함께 걸어가는 장밋빛 캠퍼스 라이프. 아무리 생각해도 나무랄 데 없이 깔끔한 계획이었다. 한없이 달려 나가는 상상 속의 로맨틱 엔진을 멈출 수가 없어서 결국 나는 너무나도 부끄러운 나머지 코피를 내뿜었다.
부끄러운 줄 알아라, 이 화상아!


남쪽을 바라본 나는 숨을 삼켰습니다.
어둡고 좁은 본토초의 남쪽에서 꺽다리 전차 같은 것이 찬란한 빛을 뿜으며 이쪽을 향해 오는 겁니다. 그것은 에이잔전차를 쌓아 올려놓은 것 같은 3층짜리 특이한 전차였는데, 지붕에는 대나무 숲이 우거져 있었습니다.
진홍색으로 칠한 차체는 번쩍번쩍 빛을 냈고 차체의 모서리에는 여기저기 램프가 매달렸습니다. 긴 장대에 매달려 색색가지 빛을 발하는 깃발들, 작은 종이잉어, 목욕탕의 커다란 노렌 등이 차체 옆에서 만국기처럼 나부꼈습니다. 나는 한순간 도도 씨의 일이고 뭐고 다 잊고 어두운 밤을 밀어내듯이 다가오는 그 마법의 상자를 넋을 잃고 바라보았습니다. 인기척이 끊긴 어두워진 본토초지만 그 전차가 지나가는 부근만큼은 축제 때처럼 밝았습니다. 하지만 무서울 정도로 조용했습니다.


“어차피 꿈이야” 하고 훼방 놓는 후진 사람은 개한테나 먹혀버려라. 꿈이든 현실이든 그건 본질적인 문제가 아니었다. 내 재능의 보물 상자는 확실히 바닥을 드러낸 듯했다. 그러나 아직 나에게는 공전절후의 재능이 남아 있었다. 망상과 현실을 뒤죽박죽으로 섞어버리는 재능!


나는 얼간이 바보 빙충이다. 갑자기 도망친 내가 그녀의 눈에는 어떻게 보였을까.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괴상한 녀석으로 보였을 것이다. 부끄러움을 알아라! 그런 뒤에 죽어라!


발아래 펼쳐지는 바보들의 제전을 개의치 않고 의연하게 홀로 하늘을 찌르듯이 서 있는 그 용맹스러운 모습은 다름 아닌 지금 여기에 선 나 자신의 모습 아닌가. 시계탑도 나도, 이 야단법석을 외면하고 영광스런 고독의 길을 택한 것이다.
“전우여! 우뚝 솟아 있는가?” 하고 나는 시계탑에게 말을 걸어보았다.
나는 국가의 장래와 나 자신의 장래를 구별 없이 걱정하며, 매일을 오로지 사색에 잠겨 영혼을 단련하는 남자다. 먼 장래에 세상의 모든 이로부터 사랑받는 사람이 되어 영광스러운 무대에서 만장의 갈채를 받기를 간절히 바라는 고고한 철인哲人이 청춘 암시장에 불과한 대학축제 따위와 무슨 인연이 있겠는가.
그런 내가 이곳으로 발길을 옮긴 이유는 오직 그녀가 온다는 정보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 애와는 무슨 진전이 있어?”
“바깥 해자는 착실히 메우고 있지.”
“해자만 계속 메울 거야? 언제까지 메울 작정이야? 사과나무를 심고 오두막이라도 지어서 거기 살 작정이야?”
“돌다리를 두드리고 또 두드려서 깨버릴 정도의 신중성이 필요하다구.”
“아니야. 넌 해자를 메운 땅에서 무사태평하게 사는 게 좋은 거야. 성으로 돌격했다가 쫓겨 오는 게 무서우니까.”
“잔인하게 본질을 찌르는군.”
“난 잘 모르겠어. 시간낭비 아냐? 적당히 친해져서 둘이 즐겁게 지내면 되잖아.”
“나한테는 내 방식이 있어. 남의 참견 같은 건 필요 없어.”


아직 바깥 해자도 다 메우지 못했는데 그녀는 도대체 얼마나 더 멀어질 작정인가. 운명의 장난아, 짓궂도다. 그녀는 뭔가 큰 역할을 맡았거늘 나는 그저 여기서 찬바람을 맞으며 길가의 돌멩이처럼 구르고만 있구나…….


불굴의 투지로 완전 무의미한 죽음의 심연에서 뜻밖에 되살아난 나는, 더 이상 무서울 게 없었다. 나의 개인사에서 기록을 찾아볼 수 없을 만큼 막대한 양의 아드레날린이 내 뇌를 채웠다. 그녀를 이 가슴에 안고 내 손으로 해피엔딩을 만들어야지. 태어나서 뭔가를 위해 이만큼 애써본 일이 없지 않은가.


한 마리 젖은 쥐가 차가운 빗속을 달린다. 그건 물론 나를 두고 하는 말이다. 나는 맑은 하늘 아래로 나가려고 한다. 하지만 바로 눈앞에 보이는 그 맑은 하늘이 마치 여름의 아지랑이처럼 저 멀리 도망치다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저쪽 햇볕 속에 서 있는 것은 내 마음속의 사람, 검은 머리의 아가씨다. 그녀 주변은 따뜻하고 평온하고 신의 호의로 가득하다. 아마도 좋은 냄새도 날 것이다. 그것과 비교했을 때 내 몸은 어떠한가. 내 주위는 신의 호의는커녕 서툴게 분투하는 나 자신을 한탄하는 눈물이 앞을 가리고 휘몰아치는 사랑의 폭풍우가 몸을 때린다.


드디어 문을 여는 소리가 나고 그녀가 모습을 나타냈다. 나는 고개를 숙였다.
그녀도 까딱하고 고개를 숙였다.
이 기념할 만한 순간부터 나는 바깥 해자를 메우는 일을 마치고 더 어려운 과제에 도전한다. 독자 제현, 용서를 바란다. 그리고 다시 만날 날까지 잘 있기를.
안녕히, 바깥 해자를 메우던 나날이여―.
 

목차

목차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
심해어들
편리주의자 가라사대
나쁜 감기 사랑 감기
역자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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