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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구회 추억

신영복 저 | 돌베개 | 2008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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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71993163 / 136쪽 208 x 2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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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반디앤루니스 리뷰

1966년 이른 봄철, 서오릉으로 가는 소풍길에서 저자는 꼬마 여섯 명을 발견한다. 그리고 길을 묻다 시작된 그들의 대화는 소풍길 내내 이어진다. 이들은 소풍이 끝난 뒤에도 정식으로 청구회라는 그룹을 만들어 독서토론 등을 하며 정기적인 모임을 가진다. 하지만 동네 골목을 청소하고 겨울철 미끄러운 비탈길을 고치며 남산 약수터까지 마라톤 등의 활동을 했던 청구회의 활동은 저자가 통혁당 사건에 연루되면서 그 순수성을 의심받게 된다.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쓴 젊은 날의 청구회의 이야기는 저자의 긴 징역살이에 관한 회상이 엮이며 한국사회의 아픔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출판사 리뷰

출판사 서평 ‘청구회 추억’Memories of Chung-Gu Hoe 단행본 출간 올해는 신영복 선생이 20년 20일의 수감생활을 마치고 광복절특사로 특별가석방된 지 꼭 20년이 되는 해이다. 그리고 그의 책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출간 2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청구회 추억’은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에 실린 글 중 한 편이다. 이 글은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의 다른 글들처럼 특정한 수신인을 마음에 두고 쓴 편지글이 아니다. 문학작품으로서의 구성 요소를 온전히 갖춘, 단편소설과도 같은 이야기이다. 이 글은 저자가 구속되기 전 2... ‘청구회 추억’Memories of Chung-Gu Hoe 단행본 출간 올해는 신영복 선생이 20년 20일의 수감생활을 마치고 광복절특사로 특별가석방된 지 꼭 20년이 되는 해이다. 그리고 그의 책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출간 2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청구회 추억’은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에 실린 글 중 한 편이다. 이 글은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의 다른 글들처럼 특정한 수신인을 마음에 두고 쓴 편지글이 아니다. 문학작품으로서의 구성 요소를 온전히 갖춘, 단편소설과도 같은 이야기이다. 이 글은 저자가 구속되기 전 2∼3년간의 실제 이야기를 담고 있어서, 청년 신영복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이번에 단행본으로 출간하는 ‘청구회 추억’은 신영복 선생의 글과 김세현 작가의 일러스트, 조병은 교수(성공회대 영어학과)의 영역 원고가 어우러진, 세대의 구분 없이 함께 읽을 수 있는 이야기책이다. 이 책의 발간으로 외국 독자들에게도 신영복 선생을 알리고 또한 이 글의 높은 문학적 가치를 알릴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절망의 끝에서 써내려간 아름답고 슬픈 이야기 ‘청구회 추억’은 정교한 플롯으로 구성된 한 편의 단편소설과 같은 작품이다. 이야기는 1966년 이른 봄철 서오릉으로의 소풍에서 시작된다. 문학회 회원들과 함께 서오릉으로 봄소풍을 간 필자는 같은 방향으로 걷고 있는 꼬마 여섯 명을 발견하게 된다. 안쓰런 춘궁春窮의 느낌이 드는 그 꼬마들과 함께 소풍을 즐기고 싶었던 필자는 그들에게 다가가 말을 건넨다. “이 길이 서오릉 가는 길이 틀림없지?” 이렇게 시작된 꼬마들과 필자의 대화는 서오릉 소풍길 내내 이어졌고, 서오릉에서도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헤어질 때 꼬마들이 건넨 진달래꽃 한 다발은 필자를 어쩔 수 없이 ‘선생님’으로서 그들 앞에 서게 했다. 진달래 한 묶음을 수줍은 듯 머뭇거리면서 건네주던 그 작은 손, 그리고 일제히 머리 숙여 인사를 하는 그 작은 어깨와 머리 앞에서 나는 어쩔 수 없이 ‘선생님’이 아닐 수 없었으며, 선생으로서의 ‘진실’을 외면할 수는 도저히 없었던 것이다. 그날 이후 필자는 꼬마들과 함께 정식으로 청구회靑丘會라는 명칭을 만들고 독서토론 등을 하며 정기적인 모임을 가졌다. 독서 이외에도 동네 골목 청소, 겨울철 미끄러운 비탈길 고치기, 그리고 남산 약수터까지 마라톤 등을 하였다. 이 모임은 필자가 통혁당 사건에 연루되어 구속되기 직전까지 이어졌다. 이들의 소박하고 순수한 만남은 당시의 정치적, 사회적 상황 속에서 굴절되고 왜곡되었다. 필자는 구속된 후 중앙정보부에서 심문을 받게 되었는데, 그 자리에서 ‘청구회’의 정체와 회원 명단을 대라는 추궁을 받게 되었다. 그리고 서울지방법원의 한 검사는 필자에게 청구회 노래 가사 중 “우리는 주먹 쥐고 힘차게 자란다”에서 ‘주먹 쥐고’가 “국가 변란을 노리는 폭력과 파괴를 의미”하는 것 아니냐는 다소 희극적이기까지 한 추궁을 하였다. 억지와 견강부회로 점철된 수사과정은 단순히 필자 개인의 불행과 곤혹에 그치는 사소한 문제가 아니라는 점에서 심각한 사회성이 복재伏在하고 있다고 말한다. 언젠가 먼 훗날 나는 서오릉으로 봄철의 외로운 산책을 하고 싶다. 맑은 진달래 한 송이 가슴에 붙이고 천천히 걸어갔다가 천천히 걸어오고 싶다. 이 글의 마지막 문장이다. 필자는 ‘언젠가 먼 훗날’을 기약하면서 이 문장을 썼을까. 아닐 것이다. 영원히 오지 않을지 모를 불안한 먼 미래를 생각하며 필자는 깊은 슬픔과 절망 속에서 이 글을 썼을 것이다. 끝나지 않은 이야기, ‘청구회 추억’의 추억 ‘청구회 추억’을 읽어본 독자라면 누구나 후일담을 궁금해 할 것이다. 필자는 이 글이 쓰인 경위, 그리고 청구회 아이들과의 재회 등 궁금해 하던 것들을 「‘청구회 추억’의 추억」이라는 제목으로 후기에 담았다. ‘청구회 추억’은 1969년 남한산성 육군교도소에서 쓴 글이다. 1968년 7월, 필자는 통혁당 사건으로 구속된 후 1심법원인 육군보통군법회의에서 사형언도를 받고 남한산성 육군교도소로 이송되었다. 이때가 1969년 1월이다. 이 글은 남한산성 육군교도소로 이송된 후 1969년 11월 대법원에서 원심이 파기되기까지 사형수로 있을 때 쓴 글이다. 사형언도를 받았을 때의 느낌을 필자는 ‘공허’空虛라는 단어로 표현했다. 총살형에 처해질지 모른다는 극도의 공포 속에서 저자는 지나온 일들을 되짚어보고, 그 속에서 청구회 아이들을 생각해냈다. 어쩌면 매달 마지막 주 토요일이면 어김없이 장충체육관 앞에서 자신을 기다릴지 모를 청구회 아이들을 생각하며 안타까워했다. 그리고 그들과의 만남을 처음부터 끝까지 떠올리며, 항소이유서를 쓰기 위해 빌린 볼펜으로 마룻바닥에 엎드려 한 자 한 자 쓰기 시작했다. 필자는 남한산성 육군교도소 재소 당시에 ‘청구회 추억’과 그 외의 여러 메모를 휴지에 남겼는데, 이것은 교도소에서 허용되지 않는 것이라 공책처럼 묶어 몰래 감추어 두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이송 통보를 받은 필자는, 평소 우호적이던 근무 헌병에게 휴지묶음을 부탁하며 집에 전달해주거나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당신이 가져도 좋다는 말을 남겼다. 그리고 20년 20일의 기나긴 무기징역은 시작되었고, 휴지묶음은 그 소재를 알 길이 없었다. 필자가 출소하기 전에 만들어진 초판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에는 이 글이 실릴 수가 없었다. 출소 이듬해 집에서 휴지묶음이 발견되었고, 1998년 증보판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에 이 글이 비로소 수록되었다. 이 후기에는 필자가 고등학생 시절 보았던 이라는 그림에 대한 이야기가 실려 있다. 필자는 출소 후 고등학교 때 미술선생님인 김영덕 화백 댁을 방문하여 그분이 그린 작품 을 보고 놀라움을 느꼈다고 술회한다. 나는 출소 후 선생님의 벽제 화실에서 다시 그 그림을 만났다. 오랜 세월의 격리 때문이었을까. 놀랍게도 서오릉 길에서 만난 어린이들이 바로 그 그림 속의 어린이들이란 것을 깨달았다. 진실의 해후 같은 감동이었다. 은 전쟁의 비극과 공포를 아이들의 모습만으로 압축적으로 표현한, 강력한 호소력이 있는 작품이다. 서오릉 길에서 만났던 아이들이 바로 그 그림 속의 아이들, 즉 전쟁의 공포로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던 아이들의 모습과 흡사했던 것이다. 이러한 놀라움을 필자는 ‘진실의 해후 같은 감동’이라고 표현한다. 우리의 삶은 수많은 추억으로 이루어져 있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모든 추억을 다시 만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과거를 만나는 곳은 언제나 현재의 길목이기 때문이며, 과거의 현재에 대한 위력은 현재가 재구성하는 과거의 의미에 의하여 제한되기 때문이다. 더구나 추억은 옛 친구의 변한 얼굴처럼 전혀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그것이 추억의 생환生還이란 사실을 나중에 깨닫기도 한다. 필자는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젊은 날의 청구회와 그의 기나긴 징역살이를 이야기하지만, 이 추억은 단순히 아름답게만 볼 수 없는 한국사회의 아픈 단면이 고스란히 담겨 있음에, 이 ‘청구회 추억’은 거듭 곱씹어 보아야 할 작품인 것이다.

저자 소개

1941~2016
경남 밀양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 경제학과 및 동 대학원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숙명여자대학교 경제학과 강사를 거쳐 육군사관학교 경제학과 교관으로 있던 중 1968년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구속되어 무기징역형을 선고받았다. 복역한 지 20년 20일 만인 1988년 8월 15일 특별가석방으로 출소했다. 1989년부터 성공회대학교에서 강의했으며, 2006년 정년퇴임 후 석좌교수로 재직하였다.
저서로『감옥으로부터의 사색』, 『나무야 나무야』,『신영복의 엽서』,『강의―나의 동양고전 독법』,『청구회 추억』,『변방을 찾아서』,『담론―신영복의 마지막 강의』,『더불어숲-신영복의 세계기행』,『처음처럼-신영복의 언약』,『신영복(여럿이 함께 숲으로 가는 길)』 등이 있으며, 역서로 『외국무역과 국민경제』, 『사람아 아, 사람아!』, 『노신전』(공역), 『중국역대시가선집』(공역) 등이 있다.

책 속에서

사형이 선고되었을 때 순간적으로 스치는 느낌은 한마디로 '공허'空虛였다. 나의 존재 자체가 공동화空洞化되는 상실감이었다고 기억된다. 그리고 너무 짧게 끝나는 생애에 대한 아쉬움이 뒤따랐다. (...) 그 중의 하나가 바로 청구회 어린이들과의 약속이었다. 매월 마지막 토요일에 장충체육관 앞에서 기다리고 잇을 그들의 모습에 마음이 아팠다. 나는 감옥의 벽에 기대어 그들과의 만남을 처음부터 끝까지 떠올렸다. 그리고 마룻바닥에 엎드려 쓰기 시작했다. 하루 두 장씩 지급되는 재생종이로 된 휴지에, 항소 이유서를 작성하기 위해서 빌린 볼펜으로 기록하기 시작했다. 기록이라기보다는 회상이었다. 글을 적고 있는 동안만은 옥방의 침통한 어둠으로부터 진달래꽃처럼 화사한 서오릉으로 걸어 나오게 되는 구원의 시간이었다. _'청구회 추억'의 추억 중에서



독서 이외에 청구회 회원들이 한 일들도 제법 다채로운 것이었다. 이를테면 우선 동네의 골목을 청소하는 일을 들 수 있다. 나는 그들이 한 달에 몇 번씩 자기 동네의 골목을 쓸었는지 정확히 알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여름철과 겨울 방학 때는 매주 2,3회씩이나 골목을 청소한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The members of Chung-Gu Hoe did various other things than reading. For instance, they cleanded the alley of their village, though how many times a month I did not know exactly. I remember, however, that they swept the aleey two or three times a week during summer and winter vacations.

목차

목차
1 니토泥土 위에 쓰는 글
2 고성古城 밑에서 띄우는 글(부분)
3 떠남과 보냄
4 교巧와 고固
5 어둠이 일깨우는 소리
6 서도와 필재筆才
7 저마다의 진실
8 비슷한 얼굴
9 겨울 새벽의 기상나팔?
10 한 포기 키 작은 풀로 서서
11 함께 맞는 비
12 민중의 창조
13 잡초를 뽑으며
14 여름 징역살이
15 죄수의 이빨
16 나는 걷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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