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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조선통치와국제관계

나가타아키후미 저 | 박환무 역 | 일조각 | 2008년 07월

일본의조선통치와국제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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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33705407 / 503쪽 148 x 2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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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출판사 서평 일본은 어떻게 조선통치를 국제적으로 정당화했는가 조선(한국)에 커다란 이해관계를 느꼈던 일본은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을 치러 청과 러시아의 영향력을 배제하고, 영국과는 영일동맹을 체결하여 한국?문제에 영국이 개입할 가능성을 없앴다. 또한 일본은 러일전쟁 중인 1905년 7월 가쓰라-태프트협정을 맺어 미국의 개입 가능성까지도 일단 차단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1906년 이후 미국과 일본 간에 몇 가지 대립이 나타나면서 미국이 조선문제에 깊숙이 관여하고 있다는 일본의 경계심은 사라지지 않았다. 3․1운동의 발발은 조선인들의 독... 일본은 어떻게 조선통치를 국제적으로 정당화했는가 조선(한국)에 커다란 이해관계를 느꼈던 일본은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을 치러 청과 러시아의 영향력을 배제하고, 영국과는 영일동맹을 체결하여 한국문제에 영국이 개입할 가능성을 없앴다. 또한 일본은 러일전쟁 중인 1905년 7월 가쓰라-태프트협정을 맺어 미국의 개입 가능성까지도 일단 차단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1906년 이후 미국과 일본 간에 몇 가지 대립이 나타나면서 미국이 조선문제에 깊숙이 관여하고 있다는 일본의 경계심은 사라지지 않았다. 3․1운동의 발발은 조선인들의 독립을 향한 열망을 얕보던 일본에게 커다란 충격을 주었고, 일본은 도저히 조선 민중이 운동의 주체라고는 인정할 수 없었다. 그래서 조선총독부를 비롯한 일본 당국은 윌슨이 제창한 민족자결주의와 미국인 선교사를 3․1운동의 직접적인 원인이라 믿어 격렬하게 비난했다. 더구나 파리강화회의에서 미국의 반대로 일본의 요구가 거부되자 불만은 한층 강해져 3․1운동에 대한 잔학한 진압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진압에 대한 거센 국제적 비난에 직면한 일본은 조선통치를 개혁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했고 무언가 결단을 내려야만 했다. 하지만 열강이 일본의 조선통치 자체에는 아무런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기 때문에 결국 사이토 마코토의 부임과 문화정치 실시로 사태를 마무리 지을 수 있었다. 미국은 왜 일본의 가혹한 조선통치를 묵인했는가 1882년 조미수호통상조약 체결 이후 미국에 커다란 기대를 갖고 있던 독립운동가들은 미국이 조선의 독립을 위해 구체적인 행동을 취해주길 바랐다. 그러나 미국은 105인사건과 3․1운동 진압과정에서 나타난 일본의 지나친 행위는 주시했지만, 일본의 조선통치를 부정하지는 않았다. 당시 미국은 현실적 이해관계가 적은 조선문제 때문에 일본과 마찰을 빚는 걸 극도로 꺼렸고, 그래서 조선독립에는 소극적인 자세를 보일 수밖에 없었다. 즉 일본과의 관계가 양호한 시기에는 일본의 조선에 대한 입장을 지지하고, 갈등이 생기더라도 일본의 조선통치는 반대하지 않는다는 것이 미국이 조선문제에 대해 취한 태도의 본질이었다. 이는 당시 국제정치의 지배원리가 윌슨이 제창한 민족자결주의라는 이상이 아니라 냉혹한 현실주의였다는 것을 극명하게 보여줄뿐더러, 미국에 기댄 독립운동가들의 외교활동이 얼마나 허망한 것이었는지를 단적으로 드러낸다. 한국의 독립운동은 왜 이데올로기적으로 분열했는가 한국독립운동은 3․1운동 이후 이승만과 정한경 등의 위임통치청원으로 분화와 대립의 양상이 점점 깊어졌다. 이러한 대립의 근본 원인은 미국 등에 대한 외교공작이 무의미하다는 생각과 더욱더 외교공작을 하자는 방법상의 차이에서 비롯되었다. 더구나 워싱턴회의에서 미국 등이 조선문제를 무시한 것과는 대조적으로 극동노동자대회에서는 조선문제에 대한 지지를 적극 표명하자, 외교공작의 무의미함을 주장하면서 이 대회에 참가했던 사람들이 자신들의 생각이 옳았다고 강하게 주장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이들은 민족주의를 견지하면서도 볼셰비키와 제휴하는 데 망설이지 않았고, 바로 이 시점에서 사회주의는 독립운동가들 사이에서 널리 퍼지기 시작했다. 바로 이것이 제2차 세계대전 후 한국의 분단을 초래한 간접적 원인이 되었다. 즉 이 책에서 다룬 시기에 미국이 취한 조선정책에서 한반도의 분단이라는 비극의 역사가 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저자 소개

  • 저자 : 나가타아키후미
지은이_ 나가타 아키후미長田彰文
1958년 일본 오사카大阪 출생. 와세다대早稻田大 경제학과와 교토대京都大 법학부를 졸업하고, 히토쓰바시대一橋大 대학원에서 법학 전공으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가고시마?대鹿兒島大 법문학부 전임강사와 조교수를 거쳐 현재는 조치대上智大 문학부 사학과 교수로 있다. 그동안은 제1차 세계대전을 전후한 국제관계와 3․1운동을 중심으로 한국의 독립운동을 분석하는 데 주력했다. 앞으로는 시기를 더욱 확장하여 1930년대에 일어난 한국과 관련된 여러 국제적 사건들과 태평양전쟁, 패전 후 미국을 포함한 연합국이 일본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한국문제를 어떻게 다루었고 이에 대해 한국의 독립운동가들은 어떻게 대응했는지, 왜 패전국 일본이 아니라 식민지 한국이 분단되었는지 등의 문제를 해명하는 연구를 할 생각이다.
저서로 󰡔セオドア․ルーズベルトと韓國―韓國保護國化と米國󰡕, 未來社, 1992(한국에서는 󰡔미국, 한국을 버리다󰡕로 2007년 출간되었다)가 있다.
옮긴이_ 박환무
서강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한 뒤 도쿄도립대東京都立大 인문과학연구과 사학 전공으로 석사와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현재는 한양대와 성공회대에서 일본사를 강의하면서, 낙성대경제연구소에서 ‘일본의 총력전체제와 조선인 군사동원’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다. 전공은 일본 근현대의 정치와 사회에서 천황이 수행하는 역할에 관한 정치사회사적 연구로, 그 일환으로 최근 ‘제국 일본의 천황과 식민지 조선’을 연구하고 있다. 논문으로 「명치초기 천황의 국가원수화와 ‘인새’의 성립」, 「관동대진재의 복구와 부흥」 등이 있다.

목차

목차
한국의 독자들에게
서론 국제정치사에서 본 삼일운동
제1장 한국병합과 무단통치
제2장 백오인사건과 독립운동
제3장 민족자결주의 제창과 논쟁
제4장 민족자결주의 수용과 대응
제5장 삼일운동의 발발
제6장 독립을 향한 외교활동
제7장 삼일운동과 미국의 반응
제8장 일본의 삼일운동 진압실태
제9장 삼일운동과 일본의 대응
제10장 문화정치와 사이토 마코토
제11장 삼일운동 이후의 독립운동
제12장 미국의원단의 동아시아 방문
제13장 워싱턴회의와 독립운동
제14장 극동노동자대회와 독립운동
결론 조선독립을 둘러싼 국제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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