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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52209252 / 709쪽 153 x 2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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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디앤루니스 리뷰
철학, 역사, 심리학, 유전학 그리고 스마일리 페이스를 망라하며, 우리의 행복 추구가 어떻게 새로운 형태의 쾌락을 야기하고, 또한 역설적이게도 새로운 형태의 고통을 초래하는가를 보여준다. 예술과 건축, 시와 경전, 음악과 테크놀로지, 그리고 문학과 신화를 포함한 많은 출처에 기반해, 가장 잡히지 않으면서도 가장 갈망하는 인간의 행복에 대한 광범위한 지적 역사를 제시하는 역작이다.
출판사 리뷰
출판사 서평 행복은 무엇일까? 고대 그리스인들에게 행복이란 곧 미덕이었고, 로마인들에게는 번영과 신성한 은혜였다. 기독교인들에게 행복은 하나님과 동의어였다. 이 책에서 맥마흔은 철학, 역사, 심리학, 유전학? 그리고 스마일리 페이스를 망라하며, 우리의 행복 추구가 어떻게 새로운 형태의 쾌락을 야기하고, 또한 역설적이게도 새로운 형태의 고통을 초래하는지를 보여준다. 아리스토텔레스, 아우구스티누스, 칼뱅, 루터, 로크, 루소, 헤겔, 쇼펜하우어, 니체, 밀, 마르크스, 다윈 그리고 프로이트에 이르기까지……. 맥마흔은 우리 인류가 2,000년의 역... 행복은 무엇일까? 고대 그리스인들에게 행복이란 곧 미덕이었고, 로마인들에게는 번영과 신성한 은혜였다. 기독교인들에게 행복은 하나님과 동의어였다. 이 책에서 맥마흔은 철학, 역사, 심리학, 유전학 그리고 스마일리 페이스를 망라하며, 우리의 행복 추구가 어떻게 새로운 형태의 쾌락을 야기하고, 또한 역설적이게도 새로운 형태의 고통을 초래하는지를 보여준다. 아리스토텔레스, 아우구스티누스, 칼뱅, 루터, 로크, 루소, 헤겔, 쇼펜하우어, 니체, 밀, 마르크스, 다윈 그리고 프로이트에 이르기까지……. 맥마흔은 우리 인류가 2,000년의 역사를 거치며 얻어낸 행복에 대한 불멸의 사유를 되짚으며, 동시에 미술품과 시, 소설, 심지어는 베토벤의 라이프마스크까지를 아우르는 방대한 문화사 속으로 우리의 여정을 이끈다. 예술과 건축, 시와 경전, 음악과 테크놀로지, 문학과 신화를 포함한 많은 출처에 기반을 두고, 가장 잡히지 않으면서도 가장 갈망하는 인간의 행복에 대한 광범위한 지적 역사를 제시하는 역작이다. 인류 2천 년의 역사를 넘나드는 ‘행복’에 관한 장쾌하고 치밀한 탐구가 펼쳐진다!! 우리는 지금 행복한가 스웨덴인은 덴마크인보다 행복한가? 미국인이 일본인보다 행복하며, 러시아인이 터키인보다 더 행복한가? 과연 다른 문화보다 더 행복한 문화가 존재하는 걸까? 그런가 하면 아이슬란드, 덴마크, 스위스 그리고 노르웨이 국민들의 평균 행복 지수가 일본, 독일, 미국 그리고 프랑스보다 더 높은 이유는 무엇일까? 소득 분배와 불평등, 사회복지 사업, 특정한 종교-역사적 특성이 작용한 때문일까? 또는 긴밀한 가족 관계나 정치 참여도 때문일까? 그것도 아니면 더 나은 유전자와 관계가 있는 걸까? 실제로 가능한 이유들은 끝이 없다. 더구나 주관적 행복이라는 복잡한 현상에는 단일한 이유만 있는 게 아니라는 점 때문에 더욱 복잡하다. 최근에 사회과학자들은 여러 민족의 주관적 행복 또는 상대적인 행복을 측정하기 위해 상당한 노력을 들이며, 예의 편차들에 대한 연구를 시작하고 있다. 이 책은 그러한 노력의 출발점 중 하나이다. 행복의 개념을 찾아 나서는 지적인 여행 그리스와 로마 철학의 산물, 그리고 수세기에 걸친 유대-기독교가 반영된 산물인 현대의 행복 개념은 오늘날 우리가 계몽시대라고 부르는 17세기와 18세기에 탄생했다. 상당수의 사람들이 현세의 삶에서 행복해질 수 있다는 새로운 기대를 처음으로 가진 것은 바로 이 시기였다. 고전적인 철학과 기독교적 실천에서는 온 우주와 모든 사물에 내재하는 다양한 행복이란 아주 드물었다. 고대의 행복은 빼어난 미덕이나 예외적인 은혜에 힘입어 평범한 사람들을 뛰어넘은 소수에게만 주어지는 것이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했듯이 행복한 삶이란 신성에 준하며, ‘인간의 수준을 초월한 것’이었다. 계몽사조는 오랫동안 지속되어온 이 개념을 근본적으로 바꾸었고, 행복을 이 지상의 삶에서 모든 인간이 열망할 수 있는 무언가로 여기게 만들었다. 이제 행복은 남녀노소 모두 원칙적으로 획득할 수 있는, 인간에게 부여된 당연한 것이었다. 계몽주의적 시각에서 보면 그것은 신과 같은 오나전성에 대한 이상향이라기보다는 지금 여기에서 달성할 수 있는 자명한 진실이었다. 이러한 극적인 변화는 하룻밤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행복에 대한 계몽사조의 약속은 초기에는 사회적, 지적 엘리트들만의 영역이었으며, 이후 점차 넓게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18세기 말에 이르러 행복은 미국과 프랑스에서 일어난 혁명과 더불어 동기를 부여하는 궁극적 목적으로서 널리 인정되었다. 토마스 제퍼슨은 독립 선언서를 기초하면서 행복추구권은 ‘자명한 진실’이라고 했으며, 1789년 인간과 시민의 인권선언을 했던 프랑스인들도 선언문의 서문 마지막 줄에 ‘모든 이의 행복’이라는 고귀한 목적을 명시했다. 드디어 인간은 엄청난 추구를 시작했고, 지금도 그것은 계속되고 있다. 그리스의 행복: 신의 선물 혹은 신의 분노 믿기지 않을 만큼 부자였던 리디아의 왕 크로이소스는 아테네의 현자 솔론을 자기 앞으로 불러들이고,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누구인지 묻는다. 크로이소스는 내심 가장 행복한 사람이 바로 자신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솔론의 대답은 왕을 분노하게 만들었다. 솔론은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한창 나이에 전장에서 전사한 아테네의 평범한 가장인 텔루스라고 답했다. 인생의 한창때 생을 마감한 사람이 어떻게 ‘행복’할 수 있단 말일까? 대체 우리는 솔론의 대답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 걸까? 이를 알기 위해서는 행복이란 무엇이고, 무엇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우리 자신의 생각을 거두어야 한다. 왜냐하면 행복이라는 용어에 대한 오늘날의 개념들은 그리스 시대의 이상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공포를 자아내는 일식과 월식, 주기적인 역병과 기아의 도래, 말 그대로 피비린내 나는 전쟁. 이런 세상에서 삶이란 무언가 추구해나가는 것이라기보다는 오히려 견디어내는 것이었다. 세상이란 잔인하고 예기치 못한 것이며, 우리의 통제 밖에 있는 힘에 의해 지배되었다. 그러므로 진정 그들에게 의미 있는 것은 바로 죽음이었다. 죽음이야말로 인간의 행운과 축복이 더 이상 빼앗길 수 없는 것이 되었음을 확신시켜주었다. 죽음이 아닌 그 중간 과정에서 자신이 행복하다고 믿는 것은 섣부른 시기상조였고, 착각일 수도 있었다. 신은 변덕스러웠다. 결국 크로이소스는 죽음에 이르러 “살아 있는 자는 그 누구도 행복하지 않다”라고 외친다. 로마시대의 행복: 로마인의 남근상에 깃든 행복 서기 79년에 베수비오 화산의 폭발로 수세기 동안 잿더미 속에 묻혔던 도시의 빵가게 벽에 걸려 있는 표지판에는 남근상이 그려져 있다. 로마인들이 남근상이라 말하는 파시눔(fascinum)은 번영, 풍요, 권력, 행운의 상징이다. 후에 말발굽이 그랬던 것처럼, 남근상은 적어도 기원전 2세기경부터 상당수의 로마 건축물 입구를 장식했다. 파시눔은 ‘펠리키타스(felicitas)’라는 단어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데, 그 말의 본질적인 의미는 ‘풍요’였다. 풍작과 긴밀히 연관되어 있는 펠리키타스는 생명을 부여하는 힘의 현존을 암시한다. 그래서 로마인들의 결혼식에서 하객들은 행운과 다산, 행복과 성공을 뜻하는 ‘펠리키테르(Feliciter)’ 또는 ‘펠리키아(Felicia)’를 외치며 축하했다. 기독교의 행복: 구원에 이르는 행복한 고통 서기 203년, 현재의 튀니지에 해당하는 카르타고에서 젊은 북아프리카 여인이 로마 병사들에 의해 구속되었다. 좋은 집안에서 태어나 훌륭한 교육을 받고 결혼해서 한 아이를 낳아 기르던 22살의 페르페투아는 바로 그 전해에 로마 황제 셉티무스 세베루스가 공포한 기독교 개종 금지법을 위반한 죄로 고발되었다. 아직 세례도 받지 않은 예비 신자였던 그녀와 그녀의 하녀 펠리키타스를 포함한 몇몇 동지들은 구속 중에 완전한 신자가 되었고, 종교의식을 통해 서둘러 스스로를 정화하고는 비명 속의 최후를 맞이했다. 현재까지 알려진 바로는 그들은 3월 7일, 당시 세베루스의 아들 게타의 생일 축제일에, 야유하는 군중들 앞에서 맹수에게 물어뜯기고, 맞고, 칼에 찔려 살해되었다. 페르페투아와 그녀의 동지들은 마치 천국에라도 들어가는 것처럼 침착한 표정으로, 환희에 넘쳐 떨며 감옥에서 원형극장으로 즐겁게 걸어 나왔다. 채찍질과 조소가 쏟아졌지만 그들은 기뻐하고 있었다. 박해당하고 욕설을 들을 때도 분명히 즐거워했다. 관중은 그 광경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런 것을 전혀 보지 못했던 그들로서는 당연한 반응이었다. 비탄 속에서 행복을 찾
목차
머리말∥행복의 계보를 찾아
서론∥행복의 비극
제1부 현대의 신념을 만들기까지
지고선
영원한 지복
천국에서 지상으로
자명한 진실들
현대적 의식義式
제2부 복음을 전파하며
증거에 대한 의문
자유주의와 그 불만들
행복한 세상을 건설하며
즐거운 과학
결론∥행복한 결말
감사의 말
옮긴이의 말
주
색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