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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버지 루쉰

저우하이잉 저 | 서광덕 역 | 강 | 2008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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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82181160 / 621쪽 120 x 18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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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반디앤루니스 리뷰

아큐정전으로 우리에게도 널리 알려져 있는 중국의 대문호 루쉰의 아들 저우하이잉이 쓴 아버지에 대한 회고록이다. 작가는 루쉰의 아들로 태어나 격동기 중국을 살아온 80여 년 가까운 시간을 돌아보며 루쉰의 삶과 중국 현대사의 이면에 대한 귀중한 증언들을 남기고 있다.

출판사 리뷰

출판사 서평 아들이 증언하는 중국의 대문호 루쉰의 삶과 격변의 중국 현대사 중국을 대표하는 지식인이자 ‘아Q’를 탄생시킨 대문호, 루쉰(1881~1936). 『나의 아버지 루쉰(魯迅與我七十年, 2001)』은 루쉰의 아들 저우하이잉(周海?, 1929~)이 쓴 아버지에 대한 회고록이다. 저자는 루쉰의 아들로 태어나 격동기 중국을 살아온 80여 년 가까운 시간을 돌아보며 루쉰의 삶과 중국 현대사의 이면에 대한 귀중한 증언들을 남기고 있다. 저자는 작가로서 루쉰의 풍모나 정치적인 행적뿐 아니라, 사소한 생활 습관이나 주변 사람들과의 관... 아들이 증언하는 중국의 대문호 루쉰의 삶과 격변의 중국 현대사 중국을 대표하는 지식인이자 ‘아Q’를 탄생시킨 대문호, 루쉰(1881~1936). 『나의 아버지 루쉰(魯迅與我七十年, 2001)』은 루쉰의 아들 저우하이잉(周海?, 1929~)이 쓴 아버지에 대한 회고록이다. 저자는 루쉰의 아들로 태어나 격동기 중국을 살아온 80여 년 가까운 시간을 돌아보며 루쉰의 삶과 중국 현대사의 이면에 대한 귀중한 증언들을 남기고 있다. 저자는 작가로서 루쉰의 풍모나 정치적인 행적뿐 아니라, 사소한 생활 습관이나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 그리고 아버지로서 루쉰의 모습 등 다양한 각도에서 인간 루쉰을 조망하는데, 여기서 가장 중요한 점은 이러한 증언이 전적으로 ‘아들’이라는 혈연의 시선을 통과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이 회고록의 장점이자 한계이기도 할 것인데, 루쉰이 국민당의 감시를 받으며 끊임없는 위협 속에서 정치활동을 하고 글을 발표했던 것이나, 좌익작가연맹 소속 작가들과 ‘혁명문학’ 논쟁을 벌인 일, 집안이 맺어준 아내를 두고 대학생이자 제자(베이징여자사범대학)였던 쉬광핑(許廣平, 1898~1968--저자의 어머니)과 동거를 하면서 불거진 사건들, 가장 가까운 학문적 ㆍ 정신적 동지였던 동생 저우쭤런(周作人, 1885~1966)과의 결별, 저우쭤런의 일본인 아내와 루쉰을 둘러싼 소문들, 그리고 루쉰의 죽음에 대한 의혹까지 많은 문제들이 아들 저우하잉의 시선을(이 시선이 어느 면 주관적일 수밖에 없으리라는 점은 인정해야 할 것이다) 통해 지금까지와는 다른 진실의 이야기들을 토해내게 된다. 또한 이 책은 루쉰이 사망한 후 그의 가족들이 살아온 중국 현대사, 그 격변의 세월에 대한 소상한 기록이기도 하다. 그렇게 해서 중화인민공화국의 수립, 반우파투쟁, 문화대혁명, 그리고 타이완과의 관계까지 중국 현대사를 관통하는 굵직한 사건들이 거의 모두 등장한다. 루쉰의 친필 원고들이 루쉰 사후에 어떤 운명을 겪었고, 문화대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루쉰의 미망인 쉬광핑은 어떻게 죽었는지, 그리고 루쉰 가족들은 홍위병들의 공격에서 어떻게 살아남았는지 생생하게 증언된다. 그 밖에 루쉰의 손자가 타이완 여자와 결혼하여 공산당원이었던 저자가 정치적 박해를 당한 일, 문혁 초반에 학교에 다니다가 농촌에 투입되어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던 ‘라오싼제(老三屆--문화대혁명이 가장 격렬했던 1966∼68년 사이에 중 · 고등학교를 졸업한 세대)’ 아이들의 이야기, 문혁 기간 중국을 좌지우지했던 사인방의 하나인 장칭 때문에 당한 고통, 루쉰 저작의 저작권을 놓고 벌어진 소송 사건 등등…… 다음은 저우쭤런의 아내 하부토 노부코에 대한 부분이다. 그녀는 돈을 물 쓰듯이 무계획적으로 썼고, 식사가 자기 입맛에 맞지 않으면 멋대로 다른 것을 만들었다. 자식은 아들과 딸 둘뿐인데,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데려오는 인력거꾼을 빼고도 집에서 일하는 일꾼이 적어도 예닐곱 명은 되었다. 아이가 감기에 걸리기라도 하면 곧바로 일본인 의사에게 왕진을 청했다. (……) 그녀의 진짜 목표는 바다오완에 자기 가족만 머무는 것이었다. 젠런 삼촌은 십 개월 후에 쫓겨나고 말았다. 그녀는 아버지에게도 손을 썼다. 그녀가 잠자리에서 저우쭤런 삼촌에게 아버지에 관해 무슨 험담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확실한 것은 1922년 7월 19일 저우쭤런 삼촌이 갑자기 “루쉰 선생 앞”이라 되어 있는 편지를 가지고 왔다는 것이다. 편지에는 “다음부터는 후원에 오지 마시오!”라고 적혀 있었다. 아버지는 의아하여 연유를 알고 싶으니 한번 오라고 일렀으나 저우쭤런 삼촌은 오지 않았다. 노부코의 칼이 얼마나 날카로웠던 것인가! 이리하여 아버지도 바다오완에서 쫓겨났다. (……) 어떤 루쉰 연구자들은 아버지께서 노부코가 목욕하는 것을 봐서 형제 사이가 나빠지게 되었다고 추측한다. 그러나 당시 바다오완 손님방에 살았던 장촨다오 선생의 말에 따르면 바다오완 후원은 창문 아래에 도랑이 있고 화초가 심어져 있어 사람이 접근할 수 없었다고 한다. (본문 118쪽) 상하이가 일본의 지배를 받던 시절, 곡물을 구하기 위해 암시장을 드나들던 이야기도 등장한다. 골목에는 둔탁하게 옷을 껴입은 소상인들이 자주 나타났는데, 그들이 입은 이중으로 된 면 옷 안에는 양식이 숨겨져 있었다. 구매자와 가격을 합의하고 나면 소상인은 슬그머니 주방으로 들어와 옷을 벗고 식량을 쏟아놓았다. (……) 어떤 때는 양곡 상점에서조차 잡곡가루나 옥수수가루만을 팔기도 했는데, 한 사람당 두 근으로 그 양까지 제한했다. 나와 여자 사촌들은 양식 사는 일을 맡았다. 우리는 문도 아직 열지 않은 이른 새벽에 양곡 상점에 가서 줄을 섰는데, 우리 앞에는 이미 양식을 사려는 사람들이 북적댔다. 한 사람이 여러 번 줄을 서는 것을 막기 위해 양식을 산 사람들은 손에 모두 보랏빛 염료를 묻혀야 했다. 그러나 일부 사람들은 염료를 묻히기 전에 유지를 손에 바르는 꾀를 생각해냈다. 그렇게 하면 손에 묻은 보랏빛 염료를 쉽게 씻어내고 다시 줄을 설 수 있었다. 잡곡가루를 더 사서 암시장에서 살 쌀값을 아끼는 것은 매우 큰 행운이었다. (본문 240쪽) 저자와 모친 쉬광핑은 국민당의 지배를 받고 있던 상하이를 탈출한다. 해방구로 향하는 배 위에서 사람들은 외국 라디오 방송을 들으며 공산당의 승리 소식을 기다린다. 옌안 방송국 외에도 런던의 비비시 영어 방송과 인도의 델리 방송을 들을 수 있었다. 비비시를 듣는 임무는 영어에 능숙한 환샹에게 주어졌다. 그는 뉴스를 듣고 난 다음 사람들에게 내용을 정리해서 전해주었다. 소식통이 더 생긴 것이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세계 각국이 중국 정세에 대해 어떻게 반응하고 있으며 세계 여론의 향배는 어떠한지 알 수 있었다. 그 시절에는 ‘미국의 소리’ 방송을 듣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당시 사람들에게 그 다섯 글자는 거짓말과 헛소리를 대표하는 말이었다. 가령 누가 거짓말을 하면 다른 사람들은 그가 ‘미국의 소리’를 방송한다고 말했다. (본문 357쪽) 루쉰의 가족들도 문화대혁명 당시 홍위병에 대한 공포에 떨어야 했다. 자본주의 냄새를 풍기는 물건들을 서둘러 없애고, 외출할 때마다 『마오 주석 어록집』을 챙기는 것도 중요한 일이었다. 어머니는 나에게 홍위병이 우리 집에 쳐들어와 조반造反하는 것을 어떻게 하면 피할 수 있을지 상의했다. 당시의 분위기에 따르면 이를 피하는 유일한 방법은 마오 주석 상像과 어록을 높이, 그리고 많이 다는 수밖에 없었다. 이 때문에 한순간에 우리 집 곳곳에 마오 주석 어록이 넘쳐났다. (……) 언제 닥칠지 모르는 화를 피하려고 라디오 부품, 전자관, 클래식 음반 등의 일상적인 물건들을 모두 나의 큰아들에게 건네 부수게 했다. 반나절을 때려 부수자 모두 조각으로 변했다. 아이들이 좋아하던 이야기책과 연속그림책, 외국 동화책들도 전부 고물상에게 팔아넘겼다. 아이들은 몇날 며칠을 슬퍼했다. 마당에는 겨울을 지키는 모란을 심어두었는데 모조리 뽑아버리고 해바라기, 옥수수로 바꿔 심었다. 어머니가 외출할 때마다 우리들은 어머니 가슴에 마오 주석 휘장이 단정하게 달려 있고, 『마오 주석 어록집』이 가방에 잘 들어 있는지 검사했다. 이는 집안사람 누구든지 책임지고 검사해야 할 일과였다. 우리 집에 면해 있는 거리의 벽은 원래 아무 장식도 없는 푸른 벽돌로 쌓아올린 벽으로 표어 하나 적혀 있지 않았다. 우리들은 혹시 혁명에 대한 경각심이 높은 홍위병이 의심을 하고 뛰어 들어와 물을까봐 재빨리 붉은 페인트를 사와서 “마오 주석 만세”라는 표어를 벽에 칠했다. (본문 491

저자 소개

  • 저자 : 저우하이잉
저자 : 저우하이잉周海?
1929년 9월 27일 상하이, 중국의 대문호 루쉰과 그의 실질적인 아내였던 쉬광핑 사이에서 태어났다. 1936년 루쉰이 사망하고 중화인민공화국이 수립되기까지 성장기의 대부분을 일본군과 국민당의 지배를 받던 상하이에서 보냈다. 공산당이 베이징을 차지한 1949년, 화베이대학에 입학하여 혁명사상을 공부하고, 1950년에는 베이징 푸런대학 사회학과에 진학했으며, 2년 뒤에 베이징대학 물리학과로 편입해 공부했다. 1960년부터 중앙광파사업국에서 근무했고, 2003년에 광파전경전신총국의 부부장이 되었다. 전국인민대표대회 대표와 전국정협위원회 위원을 역임했고, 현재 베이징과 상하이에 있는 루쉰박물관 고문을 맡고 있다.
옮긴이
서광덕
연세대 중어중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동아시아 근대성과 魯迅 : 일본의 노신연구를 중심으로」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연세대 인문학연구원 연구교수로 재직 중이다. 지은 책으로는 『중국 현대문학과의 만남』(공저)이 있고, 다케우치 요시미의 『루쉰』 『일본과 아시아』 등 여러 책을 번역했다. 『‘故事新編’과 상징화의 심층 원리』『1920년대 동서문화논전과 ‘格義’의 문제』 등의 논문을 발표했다.
박자영
「공간의 구성과 이에 대한 상상 : 1920, 30년대 상하이 여성의 일상생활 연구」로 중국 화둥사범대학 중어중문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협성대학교 중어중문학과 조교수로 있다. 논문으로는 「소가족은 어떻게 형성되었는가 : 1920~30년대 ‘부녀잡지’를 중심으로」 「상하이 노스탤지어」 「1990년대 이후 중국에서의 문화연구」 「좌익영화의 멜로드라마 정치」 「동아시아에서 사회주의 인민의 표상 정치 : 1970년대 한국에서의 중국 인민 논의, 리영희의 경우」 등이 있다. 「세상사는 연기와 같다」 등 여러 책을 번역했다.

역자 소개

  • 역자 : 서광덕
서광덕
연세대 중어중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동아시아 근대성과 魯迅 : 일본의 노신연구를 중심으로」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연세대 인문학연구원 연구교수로 재직 중이다. 지은 책으로는 『중국 현대문학과의 만남』(공저)이 있고, 다케우치 요시미의 『루쉰』 『일본과 아시아』 등 여러 책을 번역했다. 『‘故事新編’과 상징화의 심층 원리』『1920년대 동서문화논전과 ‘格義’의 문제』 등의 논문을 발표했다.

박자영
「공간의 구성과 이에 대한 상상 : 1920, 30년대 상하이 여성의 일상생활 연구」로 중국 화둥사범대학 중어중문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협성대학교 중어중문학과 조교수로 있다. 논문으로는 「소가족은 어떻게 형성되었는가 : 1920~30년대 ‘부녀잡지’를 중심으로」 「상하이 노스탤지어」 「1990년대 이후 중국에서의 문화연구」 「좌익영화의 멜로드라마 정치」 「동아시아에서 사회주의 인민의 표상 정치 : 1970년대 한국에서의 중국 인민 논의, 리영희의 경우」 등이 있다. 「세상사는 연기와 같다」 등 여러 책을 번역했다.

책 속에서

우리 둘은 자주 커피가루를 사러 가는 임무를 맡고는 했다. 샤페이팡에서 동쪽으로 나가 골목을 벗어나 삼 분쯤 걸어가면 샤페이루에 위치한 카페 디디에스 옆에 커피 원두를 파는 가게가 있었다. 가게에서 꽤 떨어진 곳에서도 커피콩을 볶는 향기를 맡을 수 있었다. (……) 아버지는 커피에 관해서 그렇게 열성적이지는 않으셨다. 오히려 커피 마실 시간을 아껴 글을 쓴다는 말씀을 하신 적도 있다. 그러나 바진 선생과 몇몇 커피 애호가들의 경우에는 글도 술술 잘 나왔으니, 커피를 마시는 일이 자신이나 타인에게 해를 끼치는 것은 아니었다. --- pp.221-222

롤러스케이트를 샀는데, 거기에는 네 개의 작은 철바퀴가 달려 있어 감히 양쪽 발에 다 신을 수가 없었다. 그저 한쪽 발로만 딛고 앞으로 밀었는데, 그 ‘화아화아’ 하는 소리는 온 골목길에 울려 퍼졌다. 우리들이 너무도 신나게 노는 그 순간, 근처 2층 창문에서 한 남자가 큰 머리를 불쑥 내밀며 시끄럽다고 야단을 치기도 했다. 한번은 어느 나라 사람인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양코배기 두셋이 큰 소리로 꾸짖었는데, 굴러가는 서양식 발음으로 중국어를 말해 사람들의 웃음보를 터지게 만들었다. 그들은 “저리 가! 저리 가! 시끄러워” 하면서 팔을 휘저었다. 그러나 우리는 기죽지 않았고, 하나의 놀이를 못하게 하면 바로 새로운 놀이를 시작했다. 소리는 오히려 더 커졌다. 깡통을 쌍방의 진지 가운데 놓고 공격과 수비로 나누어 멀리 찬 횟수가 많은 쪽이 승리하는 놀이를 하기도 했다. 깡통은 작은 고무공과는 달라서 남의 집 정원을 넘어가 돌려받지 못해도 억울한 생각은 들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었다. --- pp.225-226

목차

목차
아버지에 대한 기억
다루신춘 9호
아화와 쉬마
아버지의 죽음
형제간의 불화와 바다오완의 집
젠런 삼촌의 결혼
주안 여사
배신하지 않는 친구
샤페이팡으로 이사
샤페이팡의 이웃들
체?포당한 어머니
우리 집 세입자들
친구들
외가 친척들
상하이 지키기
해방 전후
해방구로 가자
선양에서 베이핑으로
공부 이력
혼인
어머니의 입당
진상 설명
루쉰 자필 원고 사건과 어머니의 죽음
마오 주석에게 편지를 쓴 전후 사정
맏아들 저우링페이의 혼사
아버지의 유산
못다 한 이야기
후기
옮긴이의 말
루쉰 연보
중국 근현대사 연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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