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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74161972 / 308쪽 153 x 2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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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리즈] 박태원삼국지 [10]
반디앤루니스 리뷰
박태원 삼국지는 그 자체가 작은 문화사이며 현대사라는 평가를 받는다. 그의 문학적 여정과 한국현대문학사의 우여곡절이 녹아 있기 때문이다. 또한 오늘날의 독자들이 읽어도 좋을만큼 빼어난 가독성과 동시대성 그리고 순도 높은 완성도를 지닌 작품으로도 평가 받는다. 다시쓰기와 리메이크가 삼국지의 텍스트 논라고 하는 말처럼 많은 사람들에 의해 삼국지가 재탄생했지만 이번 박태원 삼국지의 영향은 문학사에서도 실로 클 것이다.
출판사 리뷰
출판사 서평 가 반세기만에 출판되었다. 1950년 한국전쟁 중 박태원의 월북으로 중단됐던 를 기준으로 하면, 국내의 독자들은 무려 58년 만에 박태원과 문학적인 상봉을 하는 셈이다. 본래 는 1941년 잡지 에 연재?되었으나 일제 말기의 정치적ㆍ문화적 상황이 여의치 않아 결국 미완에 그치고 말았다. 당시 독자들의 열광적 반응에 힘입어 해방 직후 정음사에서 박태원의 가 다시 번역ㆍ출판되던 도중 그의 월북으로 중단의 위기를 맞이하기도 하였으나 당시 정음사 사장이었던 최영해씨의 이름으로 대신 출간된 는 독자들 사이에서 크게 인기를 끌었다. 당시... 가 반세기만에 출판되었다. 1950년 한국전쟁 중 박태원의 월북으로 중단됐던 를 기준으로 하면, 국내의 독자들은 무려 58년 만에 박태원과 문학적인 상봉을 하는 셈이다. 본래 는 1941년 잡지 에 연재되었으나 일제 말기의 정치적ㆍ문화적 상황이 여의치 않아 결국 미완에 그치고 말았다. 당시 독자들의 열광적 반응에 힘입어 해방 직후 정음사에서 박태원의 가 다시 번역ㆍ출판되던 도중 그의 월북으로 중단의 위기를 맞이하기도 하였으나 당시 정음사 사장이었던 최영해씨의 이름으로 대신 출간된 는 독자들 사이에서 크게 인기를 끌었다. 당시의 많은 독자 중에는 박태원 삼국지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차차 시간이 흘러 잊혀지고 말았다. 월북 후에도 박태원은 1959년 무렵부터 강한 애착을 갖고 있었던 ‘삼국지 번역’에 착수하여, 5년만인 1964년 총 6권의 를 완역, 출판하게 된다. 이번에 깊은샘에서 출판되는 는 유족들과 깊은샘에서 수년에 걸쳐 일본과 중국 등지를 다니며 구해온 것으로 북한에서 완역된 를 저본으로 하여 총 10권으로 복간한 것이다. 지금도 연구자들 사이에서 는 한국 근대문학사상 최고의 모더니스트로 손꼽히는 작가의 유려한 문체와 양백화에게서 전수받은 해박한 한문 실력이 더해진 최고의 명품으로 손꼽힌다. 뿐만 아니라 이 같은 삼국지 번역 경험은 모더니스트였던 박태원이 대하역사소설 을 창작하게 하는 밑거름이 되기도 하였다. 를 출판한 도서출판 깊은샘은 ≪박태원전집≫은 물론 학회지 를 발간하고 있는 ‘박태원 전문 출판사’이다. 의 출간이 갖는 의미 조 성 면(인하대 강의전담교수, 문학평론가) 가 돌아왔다! 반세기를 넘긴 두 세대만의 극적인 귀환이다. 다시 쓰기(re-writing)와 리메이크가 의 텍스트 논리라고는 하지만, 강력한 원본성을 지닌 걸작의 출현에 이제 시뮬라크르들은 바짝 긴장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앞으로 의 판도가 한바탕 크게 요동을 치게 될 것 같다. 장구한 텍스트의 형성사가 보여주듯 는 통상의 문학작품들처럼 천재적 개인에 의한 창작물 즉 단일한 작가의 개념을 전제로 축조된 작품으로 보기 어렵다. 진수(233~297)의 정사 와 배송지(372~451)의 등의 공식적인 기록물들을 비롯하여 민간에서 떠돌던 설화들, 당대의 변문, 송대의 화본, 원대의 잡극, 그리고 등을 거쳐 가 연의(演義)로 완결, 집대성된 것은 나관중(생년미상~1398)에 이르러서이다. 1644년경 이것이 다시 모종강(毛宗崗)에 의해 각종의 한시와 회평(回評)이 첨가된 120회 장편 장회소설로 재구성,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의 원형이 만들어지게 된다. 여기에 요시카와 에이지(吉川英治, 1892~1962)에 의해 근대적 대하소설로 재창작되면서 마침내 가 복수의 텍스트들로 분화되기 시작했던 것이다. 판본사(textual history)의 관점에서 는‘한국어판 삼국지 현대화’의 종착점이면서 시발점이라 할 수 있다. 우리의 경우, 는 목판본과 활자본 등 다양한 형태로 유통되다가 1904년 박문서관에서 펴낸 를 기점으로 근대식 활판본들이 출판되기 시작했다. 이후 한동안 딱지본 형태의 이야기책 시대를 이어오다가 양백화(매일신보, 1929. 5. 5~1931. 9. 21)와 한용운(조선일보, 1939. 11. 1~1940. 8. 20)에 와서 의고적인 편역과 언해의 단계에서 확실하게 벗어나 근대적인 텍스트로 분화되기 시작했고, 마침내 박태원(1909~1986)의 손을 거치면서 오늘날의 우리가 라고 생각하는 현대적인 ‘한국형 삼국지’가 탄생하였다. 그러면 이른바 의 판본사적 획기성과 의미는 무엇이며, 그것은 왜 중요한가. 우선 는 그 자체가 작은 문학사이며 현대사라 할 수 있다. 여기에는 그의 문학적 여정과 한국현대문학사의 파란곡절이 투영돼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이 걸작은 코에이(KOEI) 사(社)의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 를 즐기는 오늘날의 유저들이 읽어도 좋을 만큼 빼어난 가독성과 동시대성 그리고 순도 높은 완성도를 지닌 ‘작품’이기도 하다. 박종화(1901~1981)ㆍ김동리(1913~1995)ㆍ황순원(1915~2000)ㆍ김구용(1922~2001)ㆍ황석영(1943~)ㆍ이문열(1948~) 등 한 시대를 풍미한 대표 작가들의 텍스트들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아무래도 박태원이 처음으로 이룩하고 도달했던 ‘삼국지 한국화와 현대화’라는 압도적 성취에서 좀더 묵직한 존재감을 느끼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더구나 남북의 화해와 교류협력이라는 지난 시대의 성과들이 보수의 논리 앞에서 크게 훼손되고 또 다시 대결적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는 현 국면에서 박태원이 1964년 북한에서 완결지은 가 다시 출판된다는 이 문화사적 사건은 결코 가볍지 않은 것이다. 가 세상에 그 모습을 드러낸 것은 1941년 4월 월간 에 란 이름으로 연재되면서부터이다. 일부 고서 애호가들이 이것보다 앞선 1938년 박태원이 박문서관에서 를 펴냈다는 주장을 펴고 있으나 근거 없는 주장이며, 의 서막을 연 도 1943년 1월 모종강본의 에 해당하는 대목을 연재하다 중단되고 말았다. 이후, 박태원은 1945년 전3권 분량으로 추정되는 축약본 를 ‘박문서관’에서 펴낸 바 있다. 1950년에는 정음사에서 다시 를 번역ㆍ출간하던 중 박태원의 월북으로 중단의 위기를 겪기도 했으나 사장 최영해의 뚝심으로 속간되었으니, ‘최영해 삼국지’는 바로 의 후신이었던 것이다. 이른바 독자들 사이에서 의 은유로 통용됐던 정음사의 최영해 본 는 ‘제1권 도원결의’를 시작으로 단기천리ㆍ삼고초려ㆍ적벽대전ㆍ조조집권ㆍ관공현성ㆍ팔진도법ㆍ공명출사표ㆍ대성귀천ㆍ천하통일 등 총10권 분량으로 1955년 완결되었다. 탁월한 모더니스트가 보여준 유려한 미문에다 서슬 퍼런 냉전시대 월북 작가 박태원의 작품을 읽을 수 있다는 대리만족감과 위반의 즐거움으로 인해 1960년대의 독자들에게 최영해 본 는 기대 이상의 각광을 받았다. 박태원의 월북으로 사라져버릴 뻔했던 걸작을 문화인식과 뚝심으로 이어간 정음사 사장 최영해는 한글학자 외솔 최현배 선생의 아들이다. 그런 ‘최영해 삼국지’는 독자들의 각별한 사랑과 아쉬움 속에서 1959년, 1970년, 1979년 판과 쇄를 달리하면서 80년대 중반까지 계속해서 출판되었다. 이번에 깊은샘에서 새롭게 펴내는 는 그가 1959년 북한의 국립문학예술서적출판사에서 번역, 출판하기 시작하여 1964년 조선문학예술총동맹출판사에서 총 6권 분량으로 완결된 판본을 저본으로 한 것으로 ‘삼국지 마니아’들이 반세기 이상 기다려왔던 의 결정판이며, ‘한국판 현대 삼국지’들의 좌장격인 진짜 원본의 복원이라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그럼에도 한국근대문학을 전공한 연구자들이나 박종화와 최영해를 찾아서 읽을 정도로 내공이 심후한 ‘삼국지 광팬’이 아니라면, 21세기의 젊은 독자들에게 는 다소 낯설지도 모르겠다. 특히 박태원 문학을, 경성거리를 배회하던 식민지 지식청년의 고독한 산책길과 갑오년 농민군들의 뜨거운 함성으로 기억하는 독자들에게 ‘박태원’과 ‘삼국지’는 뜻밖의 조합으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는 이란 첨단 모더니즘과 이란 웅장한 민중적 대하소설 사이의 낙차를 메우는 교량형의 작품이면서 의 밑바탕이 되는 미완의 가작 의 탄생을 예비하는 것이니, 작품사적 의미 또한 결코 간단하지 않다. 여기에를 한국문학사상 최초로 신문에 연재한 바 있었고 동양 고전에 해박했던 양백화(1889~1944)에게 전수받은 단단한 한문 실력에 한국 모더니즘문학을 이끌었던 탁발한 문장력이 뒷받침되고 있으니 그야말로 이보다 더 완
목차
73 현덕은 한중왕의 위에 오르고 운장은 양양군을 쳐서 빼았다
74 방영명이 관을 지우고 나가서 죽기로써 싸움을 결단하고 관운장이 강물을 터서 칠군을 엄살하다
75 관운장은 뼈를 긁어 독기를 다스리고 여자명은 백의로 강을 건너다
76 서공명은 대판으로 면수에서 싸우고 관운장은 패해서 맥성으로 달아나다
77 옥천산에서 관공이 현성하고
78 풍질을 고치다가 신의는 비명에 죽고 유명을 전하고서 간웅은 세상을 버리다
79 형이 아우를 핍박하니 조식은 시를 읊고 조카로서 삼촌을 함해하고 유봉은 처형을 당하다
80 조비는 헌제를 폐하여 한나라를 찬탈하고 한중왕은 제위에 올라 대통을 계승하다
81 형의 원수를 급히 갚으려다 장비는 해를 입고 아우의 한을 풀려고 현덕은 군사를 일으키다
82 손권은 위에 항복하여 구석을 받고 선주는 오를 치고 육군을 상 주다
83 효정에서 싸워 선주는 원수들을 잡고 강어귀를 지키다가 서생은 대장이 되다
84 육손은 칠백 리 영채를 불사르고 공명은 공교하게 팔진도를 배포하다
85 유선주는 조서를 끼쳐 고아를 부탁하고 제갈량은 편히 앉아서 오로병을 평정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