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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82181139 / 300쪽 148 x 2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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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디앤루니스 리뷰
『저널리즘, 민주주의에 약인가 독인가(원제: Democracy and the News)』는 “토크빌 이후 가장 뛰어난 미국 사회의 관찰자”로 불리는 미디어 이론가이자 사회학자인 허버트 갠즈의 2003년도 저작으로 저널리즘과 민주주의의 관계를 분석하고 있다. 갠즈는 저널리즘이 민주주의에 기여한다고 단언하지 않는다. 그는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저널리즘이 민주주의를 위해 공헌할 수 있는 여지가 그다지 크지 않으며 때로는 저널리즘의 관행과 보수화가 민주주의에 해악을 끼칠 수도 있다는 점을 인정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갠즈는 시민 민주주의를 완성하는 데 저널리즘의 역할이 꼭 필요하다고 말한다. 갠즈는 풍부하고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미국 사회에서 저널리즘이 생산되고 작동하는 방식과 저널리즘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세밀하게 관찰하고 저널리즘이 시민 민주주의에 기여하기 위해 변화해야 할 방향을 제시한다.
출판사 리뷰
저널리즘이 민주주의를 완성한다는 것은 신화일 뿐인가
『저널리즘, 민주주의에 약인가 독인가(원제: Democracy and the News)』는 “토크빌 이후 가장 뛰어난 미국 사회의 관찰자”로 불리는 미디어 이론가이자 사회학자인 허버트 갠즈의 2003년도 저작으로 저널리즘과 민주주의의 관계를 분석하고 있다. 갠즈는 저널리즘이 민주주의에 기여한다고 단언하지 않는다. 그는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저널리즘이 민주주의를 위해 공헌할 수 있는 여지가 그다지 크지 않으며 때로는 저널리즘의 관행과 보수화가 민주주의에 해악을 끼칠 수도 있다는 점을 인정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갠즈는 시민 민주주의를 완성하는 데 저널리즘의 역할이 꼭 필요하다고 말한다. 갠즈는 풍부하고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미국 사회에서 저널리즘이 생산되고 작동하는 방식과 저널리즘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세밀하게 관찰하고 저널리즘이 시민 민주주의에 기여하기 위해 변화해야 할 방향을 제시한다.
허버트 갠즈가 관찰하는 미국 저널리즘의 지형도
오늘날의 민주주의는 직접 민주주의가 아닌 대의 민주주의의 불가피성을 전제하고 있다. 우리가 민주주의라고 말하는 것은 선거 기간에만 작동하는 협소한 제도적 민주주의일 뿐이다. 그마저도 조직화되지 않은 일반 시민들이 선거에서 행사할 수 있는 힘은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로비가 적법한 선거운동으로 인정되는 미국에서는 선거 기간 동안 적극적으로 로비활동을 하는 거대 조직들에게 실질적인 힘이 집중된다.
갠즈는 오늘날 일반 시민들이 정치적 권리와 경제적 권리를 모두 박탈당했다고 진단한다. 노동시장의 유연화와 계약직 고용의 증가로 경제적 불평등이 가속화되면서 인구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가난한 사람들이 설 자리는 자꾸만 좁아지고 있다. 가난한 사람들은 자신들이 정치에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으며 정치는 자신들의 일상과 무관하다고 생각한다. 심지어는 누가 대통령으로 당선되든 정치적으로 큰 차이가 없다고 본다. 결과적으로 가난한 사람들의 투표 참가율은 자꾸만 낮아지고 있다. “로버트 맥체스니는 경제적으로 상위 5분의 1에 속하는 사람들이 대통령 선거에서 투표한 사람의 반 이상을 차지한다고 추산”한다. 이제 권력을 박탈당한 일반 시민들은 정치인들의 정치권력을 공식화하는 데 한 표를 던질 뿐인 유권자로 철저하게 타자화되고 있다.
저널리스트에게 부여된 권력도 이제는 많이 약화되었다. 사람들은 뉴스 없이도 일상생활에 거의 지장을 받지 않는다. 9.11과 같은 세계를 뒤흔든 충격적인 사건이 터질 때만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기 위해 뉴스를 시청한다.
저널리즘의 황금시대라고 불리는 1960년대와 1970년대에는 민권운동, 베트남전쟁, 워터게이트 사건과 냉전 등이 저널리스트들에게 풍부한 이슈를 제공했다. 그러나 황금시대 이후로는 9 .11 사건을 제외하면 과거와 비견될 만한 커다란 이슈가 드물었다. 전국 3대 네트워크 방송 저녁 뉴스의 시청자 수는 2001년에 2,800만 명이었다가 9.11 사건이 일어났을 때 7,900만 명까지 증가했으나 그후 다시 급격하게 하락했다. 시민들은 뉴스에 관심을 잃고 있으며 이에 따라 저널리스트들의 영향력도 점차 감소하고 있다. 이제 저널리즘에 대한 관심은 향후 국내외에 어떤 일이 생길지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윤에 대한 압박도 저널리스트들의 지위 하락에 영향을 미친다. 뉴스 기업들도 다른 기업들과 마찬가지로 합병, 감축, 복합기업화의 과정을 겪기 시작하면서 저널리스트들은 뉴스 선택에 대한 통제권을 잃고 수용자들의 관심을 끄는 뉴스 프로그램을 만드는 일에만 강박적으로 매달리게 되었다. 「CBS 리포트」와 같은 역사적인 탐사 보도 시리즈는 경성 뉴스와 연성 뉴스를 뒤섞은 「뉴스 매거진」과 같은 프로그램으로 교체되고, 걸핏하면 목소리를 높이는 보수적인 진행자를 내세우는 「러쉬 림보」 같은 토크쇼와 패널쇼가 번성하고 있다.
저널리즘의 한계는 저널리스트들이 백악관이나 국방부, CIA 등과 같은 국가 안보나 핵심적 공권력과 관련 있는 부서들이나 은행, 투자, 세계 경제와 연관된 재무부나 미연방준비은행에서 나오는 정보에 우선적인 뉴스 가치를 부여하는 관행과도 관련이 있다. 노동과 노동자에 대한 뉴스조차도 노동 현장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재무부나 미연방준비은행의 고위 공직자들이 공급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렇게 정부에서 내려오는 하향식 뉴스는 저널리스트들이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상류 계급에게 유리한 시각을 반영하고 지배 이데올로기를 강화한다.
또다른 문제는 뉴스 조직이 정시에 정기적으로 뉴스 상품을 공급해야 한다는 저널리즘의 본질적 속성에서 비롯된다. 신문은 하루에 두세 번씩 편집판이 나오고 텔레비전 뉴스는 매번 업데이트를 해야 한다. 이 ‘끊임없는 뉴스 주기’ 경쟁은 뉴스 신상품이 좀더 빠르고, 정형화되고, 효율적으로 생산되기를 요구한다. 그 결과 예측 가능한 뉴스 소스를 바탕으로 하여 신속하게 뉴스를 만들어낼 수 있는 대량 생산 공정이 요구된다. 자연스럽게 저널리스트들은 안정적으로 뉴스 자료를 제공해줄 수 있는 정보원인 고위 공직자들에게 더욱 의존하게 된다.
저널리스트들은 시민들에게 정보만 제공하면 시민들이 정치에 더 참여하게 될 것이고, 그럴수록 미국이 민주적인 사회가 될 것이라고 희망한다. 그러나 실제로 저널리스트들이 뉴스를 일반 시민들의 입장에서 다루는 경우는 아주 제한적이다. 저널리스트들은 자신들의 견해가 온건화, 보수화되어 간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으며, 일반 시민들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뉴스가 무엇인지 심각하게 고려하지도 않는다.
저널리스트들이 시민들에게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정보를 공급한다고 하더라도, 뉴스가 수용자들에게 미치는 효과에 대해서 어느 누구도 구체적으로 예측하기 어렵다는 사실도 저널리스트들이 역할을 수행하는 데 현실적인 어려움으로 작용한다. 1960년대 소방 호스와 몽둥이로 무장한 남부 경찰들에게 무차별적으로 공격당하는 흑인 인권운동가들의 시위에 관한 뉴스 보도는 대중이 조직화되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2000년 ‘빼앗긴 선거’에 대한 엄청난 양의 뉴스 보도와 토론 프로그램들은 기존의 선거 결과를 뒤집는 데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했다.
갠즈는 마셜 맥루언의 “미디어는 메시지다”라는 선언이 부분적으로만 진실을 담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뉴스는 그 자체가 메시지를 지닌 것처럼 보이고 가끔씩 영향력을 행사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사건 그 자체가 메시지라는 것이다. 더 중요한 것은 수용자들이 그 수많은 메시지 중에서 어떤 것에 어떻게 응답하는가이다. 사람들은 평소의 가치관 및 성향과 잘 부합하는 기사에 더 많은 주의를 기울인다. 그러나 그것이 행동으로 직접 연결되는가 아닌가는 또다른 문제이다. 저널리즘이 할 수 있는 것은 시민들이 정치에 역동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주는 것, 즉 매개자의 역할을 하는 것일 뿐이다.
시민을 위한 매개자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기 위하여 갠즈는 저널리즘이 다음과 같은 변화를 모색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일반 시민들이 뉴스에 친숙하게 접근할 수 있도록 이용자 친화적인 뉴스를 만들 것, 전국 뉴스나 국제 뉴스를 지역화하여 독자들이 뉴스에 대해 갖고 있는 거리감을 줄일 것, 객관성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기존의 보도 관행에서 벗어나 사건 보도에 그 사건을 취재한 기자의 의견을 덧붙여 시민들이 다양한 견해를 접할 수 있도록 할 것, 일반 독자들의 의견과 여론조사원에 의해 수집된 의견들에 더 많은 뉴스 공간을 부여하여 공론장이 형성될 수 있도록 할 것, 다양한 사회경제적 배경을 가진 기자들을 채용하여 기존의 하향식 뉴스를 수정하는 다관점 뉴스를 개발할 것, 매일 뉴스를 보는 사람들이 줄어들고 있는 현실을 반영하여 일주일 동안 일어난 뉴스를 요약해주는 주간 뉴스 프로그램을 만드는 식으로 오랫동안 지속되어온 뉴스 보도 형식의 변화를 꾀할 것 등이다.
갠즈는 시민 민주주의가 제대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시민들이 정보에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것 이외에도 다양한 사회적 기반들이 확보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원활하게 돌아가는 경제, 합리적이고 평등한 사회, 안정적인 노동 조건과 탄탄한 중산층 등이 그것이다. 그런 기반들이 마련되지 않으면 아무리 시민들의 정치적 권리가 제도적으로 잘 보장된다고 하더라도 일반 시민들이 실제로 정치에 참여하는 일은 요원할 것이다. 갠즈에 따르면, 저널리스트들은 시민들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민주주의의 조건과 기반을 만드는 일은 정치나 법률 영역 너머 일상적 삶의 영역에서 시민의 자리를 복원해내는 것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민주주의를 제도적으로 완성된 개념으로 보고 그 영역 안에서 시민들의 참여를 생각할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 이념을 지속적으로 성찰하고 확장해가야 하는 열린 개념으로 다뤄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저널리즘이 진정으로 민주적인 시민 주체의 탄생에 기여할 수 있는 방법이 될 거라고 저자는 결론을 맺고 있다.
서문
1. 시민 민주주의와 권력 박탈
조직의 권력 | 경제적인 권력 박탈 | 정치적인 권력 박탈 | 권력 박탈의 한계 | 권력 박탈을 실감하는가 | 여론조사 결과의 맥락 | 세계를 향한 불신 | 권력 박탈 : 국민은 무엇을 하는가
2. 저널리즘이 당면한 문제들
통제권의 상실과 지위의 하락 | 예상된 결과들 | 뉴스 청중 감소로 인한 권력 박탈 | 청중의 불만에 의한 권력 박탈 | 저널리스트들의 대응 | 대응 방법의 한계
3. 저널리즘의 관행과 문제점
외부 유입 뉴스와 하향식 뉴스 | 뉴스의 대량 생산 | 데이터 변형 : 수동성, 뉴스 적합성, 대리인 | 민주주의에 관한 저널리즘 이론과 그 결함 | 다운플레잉 이코노미 | 저널리즘의 한계와 그 민주주의적 함의
4. 뉴스 효과의 문제
뉴스는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 기관이나 사회를 향한 뉴스 효과 | 장기적 효과의 가능성 | 저널리스트는 민주주의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
5. 뉴스,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이용자 친화적 뉴스 | 전국 뉴스와 국제 뉴스의 지역화 | 참여적 뉴스 | 공공 저널리즘 |
설명적 저널리즘 | 뉴스 의견 | 다관점적 뉴스와 뉴스 미디어 | 또다른 뉴스 형식들 | 뉴스와 유머 | 뉴스 픽션 | 새로운 저널리스트 | 더 좋은 뉴스를 위한 비용 | 변화의 가능성
6. 시민 민주주의를 위하여
시민 민주주의 | 시민 민주주의로 가는 길 | 제안들 | 시민 민주주의를 위하여 : 현실과 이상을 교차시키기
주
옮긴이의 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