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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76825001 / 455쪽 153 x 2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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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디앤루니스 리뷰
20세기 두 천재의 은밀한 투쟁을 밝혀낸 팩션형 역사 교양서! 방대한 자료와 수많은 인터뷰를 바탕으로 새로운 역사적 사실을 주장하는 팩션형의 역사 교양서이다. 추리소설을 능가하는 추론을 통해 20세기 초에 일어난 사건들 이면에서 투쟁하는 히틀러와 비트겐슈타인의 모습을 형상화하고 있기 때문에,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은 홀로코스트 배후의 진실들을 찾아가는 여정을 흥미진진하게 따라갈 수 있을 것이다.
당시 예술계의 반유대주의적 정서와 철학적인 영향 관계 등을 면밀히 추적함으로써, 히틀러의 반유대주의를 공고하게 만들었던 사상의 스펙트럼을 보여준다. 뿐만 아니라 당시 문화·예술계의 지형과 비트겐슈타인의 이론적 바탕 등 풍부한 역사·철학적 지식을 알려준다.
출판사 리뷰
출판사 서평 홀로코스트의 근원, 히틀러의 반유대주의는 비트겐슈타인에 대한 증오에서 비롯되었다!! ― 20세기 두 천재의 은밀한 투쟁을 밝혀낸 팩션형 역사 교양서 20세기 최대의 만행 중 하나인 ‘홀로코스트’(유대인 대학살)는 무엇 때문에 일어났을까? 유대인의 선민사상이나 속물성, 독일 국민이나 나치의 반유대주의 등 지금까지 숱한 원인이 제기되었지만, 이 문제에 대한 명쾌한 해답을 보여주지는 못했다. 저자 킴벌리 코니시는 홀로코스트를 저지른 장본인인 히틀러(Adolf Hitler, 1889~1945)의 반유대주의를 추적해야만 그 근원을 ... 홀로코스트의 근원, 히틀러의 반유대주의는 비트겐슈타인에 대한 증오에서 비롯되었다!! ― 20세기 두 천재의 은밀한 투쟁을 밝혀낸 팩션형 역사 교양서 20세기 최대의 만행 중 하나인 ‘홀로코스트’(유대인 대학살)는 무엇 때문에 일어났을까? 유대인의 선민사상이나 속물성, 독일 국민이나 나치의 반유대주의 등 지금까지 숱한 원인이 제기되었지만, 이 문제에 대한 명쾌한 해답을 보여주지는 못했다. 저자 킴벌리 코니시는 홀로코스트를 저지른 장본인인 히틀러(Adolf Hitler, 1889~1945)의 반유대주의를 추적해야만 그 근원을 알 수 있다면서 이 문제에 대한 해법을 제시하고 있다. 그 결과 비트겐슈타인(Ludwig Wittgenstein, 1889~1951)이야말로 히틀러가 반유대주의를 갖게 된 최초의 ‘유대인’, 즉 홀로코스트의 근본 원인이라고 말한다. 1904년 오스트리아 린츠에서부터 1945년 나치 패망에 이르기까지 두 인물 간에 벌어진 은밀한 투쟁과 그들의 사상과 활동에 영향을 준 19~20세기 유럽의 지성계를 추적함으로써 히틀러의 반유대주의를 뿌리부터 파헤친다. 이 책은 방대한 자료와 수많은 인터뷰를 바탕으로 새로운 역사적 사실을 주장하는 팩션형의 역사 교양서이다. 추리소설을 능가하는 추론을 통해 20세기 초에 일어난 사건들 이면에서 투쟁하는 히틀러와 비트겐슈타인의 모습을 형상화하고 있기 때문에,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은 홀로코스트 배후의 진실들을 찾아가는 여정을 흥미진진하게 따라갈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책은 『비잔티움 연대기』 등 역사 관련 교양서를 꾸준히 번역하고 있는 남경태의 솜씨로 번역되었다. 당대 지성계의 모습과 사상적 맥락들을 알기 쉽게 전달해주고 있으므로, 독자들은 두 천재의 모습뿐만 아니라 그들이 관계맺고 있는 예술가·사상가들의 모습을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1904년 오스트리아 린츠] 히틀러의 반유대주의, 그 근원을 밝히다! “레알슐레(오스트리아 린츠의 국립실업학교)에서 나는 유대인 소년 한 명을 만났다. 우리는 모두 그를 조심스럽게 대했는데, 그 이유는 단지 우리가 여러 차례의 경험으로 그가 경솔하다고 의심하게 되어 그를 그다지 신뢰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본문 39쪽) 히틀러가 『나의 투쟁』에서 말한 이 유대인 소년은 누구일까? 그들 모두가 조심스럽게 대했고 그다지 신뢰하지 않은 소년을 히틀러가 훗날의 자서전에 밝힌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는 히틀러가 유대인에 대한 증오를 일으키는 데 그 소년이 기초를 제공했기 때문이다. 그 소년은 말끔한 옷차림을 하였고,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부유한 가문 출신이었다. 그러나 그는 말더듬이에 다른 급우들이 잘 쓰지 않는 ‘당신’(Sie)이라는 호칭을 사용했으며, 가문이 이룬 부와 권세, 문화적 영향력을 과시했으며, 다른 학생들 사이에서 겉돌았을 뿐 아니라 친구를 사귀려 하지도 않았다. 그래서 그는 친구들 사이에서 ‘왕따’였다. 그 소년은 바로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이다. 이런 비트겐슈타인을 급우들은 두운까지 맞춰가며 다음과 같이 조롱했다. “비트겐슈타인은 초라하고 바람 부는 길을 걸어 빈으로 간다네.”(Wittgenstein wandelt wehmutig widriger Winde wegen Wienwarts. 본문 34쪽) 동갑내기 히틀러는 급우들보다도 훨씬 더 비트겐슈타인을 미워했다. “언젠가 아돌프는 한 소년에게 ‘두 자우유트!’(이 더러운 유대놈아)라고 소리쳤어요. 그 소년은 깜짝 놀랐죠. 그때까지 그는 자신이 유대 혈통인 줄 모르고 있다가 몇 년 뒤에야 알게 되었거든요.”(본문 8쪽. 예칭거, 『히틀러의 소년기』Hitler Jugend) 히틀러가 비트겐슈타인을 그토록 미워한 이유는, 무엇보다 그에게는 없는 문화적 특권을 비트겐슈타인이 누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히틀러는 어린 시절부터 음악과 미술 분야에 대한 관심이 지대했지만, 그것을 충분히 누릴 만한 여건이 되지 못했다. 그런데 철강업으로 재계를 주무를 정도로 막강한 비트겐슈타인 가문은 1903년 열린 분리파(구스타프 클림트가 1897년 예술가협회를 탈퇴한 후 창설한 예술가 단체) 전시회를 후원하고, 브람스가 그의 집에서 사적인 공연을 할 정도로 예술 분야에서도 막대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경솔한’ 비트겐슈타인은 이런 가문의 배경과 예술작품에 대해 자랑스럽게 떠들고 다녔으므로, 히틀러는 그를 증오할 수밖에 없었다. 평생에 걸쳐 반유대주의를 주장하고 실행에 옮긴 히틀러는 유대인 일반에게 적용하기 힘든 근거로 그들을 비난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 비난의 근원은 사실 비트겐슈타인과 관련된 것들이다. 당시 보통의 유대인은 비트겐슈타인 가문과 같이 재계를 주무르거나 독일의 미술과 음악에 영향을 주지도 않았다. 히틀러는 유대인이 주식시장을 조작하고, 예술을 상업화해서 타락시켰으며, 볼셰비즘을 성공시키기 위해 노력한다며 그들을 비난했지만, 그 화살은 비트겐슈타인 가문의 몫이었다. 그리고 히틀러는 오스트리아의 빈보다도 린츠를 더 중요한 예술의 중심지라 믿고서는 훗날 그곳에 유럽 전역에서 약탈한 예술품들을 보내 ‘아돌프 히틀러 박물관’에 소장하도록 했다. 어린 시절 누리지 못한 예술 향유를 린츠에서 이루고자 했던 것이다. 또한 린츠에 헤르만 괴링 제철소를 세운 뒤 비트겐슈타인 가문이 소유했던 제철소(비트코비츠 제철소)를 흡수하기도 했다. 어릴 적 비트겐슈타인에 대한 증오가 다양한 형태로 발현된 것이다. [바그너와 쇼펜하우어] 히틀러의 반유대주의에 사상적 기반을 제공하다! 이 책은 “히틀러가 없었다면 홀로코스트도 없었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독일 내에 널리 퍼져 있던 반유대주의적 정서를 무시하진 않는다. 전통적인 반유대주의는 인종주의와 더불어 히틀러에게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했던 이념들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이 이념들은 유대인을 향한 그의 증오를 스스로 ‘과학화’라는 방식으로 정당화하는 계기였던 것이다. 리하르트 바그너는 히틀러의 우상이었다. 린츠 시절부터 그에게 열광한 히틀러는 오페라 『디 마이스터징거』(Die Meistersinger)를 정확하게 외울 정도로 그의 음악에 심취해 있었다. “그는 그 음악을 완전히 외웠고 휘파람으로 모든 곡조를 따라 불 수 있었다. 묘하게 예민한 떨림음이었으나 곡조는 완벽했다.”(본문 40쪽) 훗날엔 『로엔그린』(Lohengrin)의 가사를 외워 보임으로써 독일의 음악학자들을 깜짝 놀라게 하기도 했다. 히틀러가 바그너에게 얼마나 심취했는지는 그의 연설만 봐도 알 수 있다. “[히틀러의 연설을 들으면] 주악상, 장식, 대위법, 음악적 대비와 전개가 서로 얽힌 전반적인 양태를 명확히 확인할 수 있다. 그래서 그의 연설은 교향악의 구성을 지니며, 바그너의 음악에서 트롬본이 울려 퍼지는 것처럼 극적인 클라이맥스로 끝난다.”(본문 41쪽) 그러나 히틀러가 가장 크게 영향을 받은 것은 바로 바그너의 반유대주의이다. 바그너는 『음악의 유대주의』(1850년)라는 책에서, 예술의 정신이 쇠퇴하는 과정을 개괄하면서 그 원인이 유대인이 예술계에 침투해 들어왔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유대인은 비겁하고, 예술이 표현하고자 하는 모든 것에 대립되며, 유대인의 예술은 다른 사람들의 창조적 작품을 도용한 결과라며 극단적인 반유대주의를 표명했던 것이다(본문 178쪽). 『나의 투쟁』에서 히틀러가 끊임없이 유대인을 비난하는 말은 이런 바그너의 반유대주의 발언과 닮아 있다. 바그너의 반유대주의는 히틀러의 반유대주의의 전거이다. 이런 바그너의 반유대주의는 프란츠 리스트(Franz Liszt, 1811~1886)
목차
서론
제1부 두 천재의 만남
1장_린츠의 유대인
2장_트리니티의 첩자들
제2부 반유대주의의 근원
3장_바그너와 『음악의 유대주의』
4장_쇼펜하우어의 두 계승자
5장_신비주의적 경험과 자아
6장_쇼펜하?우어, 로젠베르크, 인종 이론
7장_주술, 마법, 히틀러
제3부 비트겐슈타인의 비소유 이론
8장_마음을 여는 열쇠
9장_정신과의 합일
10장_비트겐슈타인과 정신적 사회주의
11장_아비세나와 아베로에스
12장_논증: 아퀴나스와 스트로슨
결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