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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91965669 / 200쪽 223 x 15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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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디앤루니스 리뷰
남북한 유엔 동시 가입, 소련·중국과의 수교 등 역사의 현장에서 활약한 한 외교관의 이야기. 우리나라는 1990년 9월 적대국이었던 소련과 수교를 했고, 이후 1992년 8월 중국과도 수교를 맺는 등, 활발한 외교활동을 펼쳤다. 이 책은 바로 이 역사적인 현장에서 큰 역할을 담당했던 노창희 전 외무부차관의 회고록이다. 38년 동안 직업외교관으로서 한 길을 걸어온 저자의 솔직한 글들을 읽다보면 외교 현장에서 벌어지는 일화들이 주는 긴박감, 재미, 감동과 더불어 겉으로 보기에는 화려하지만 타국에서 국가를 대표해 무거운 책임을 져야 하는 외교관들의 애환을 가슴 가득 느낄 수 있다.
출판사 리뷰
출판사 서평 남북한 유엔 동시 가입, 소련?중국과의 수교 등 역사의 현장에서 활약한 한 외교관의 이야기 1991년 9월 17일, 제46차 유엔 총회에서 남북한이 유엔에 동시 가입했다. 의제번호 제20호로 총회에 상?정된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신규 회원국 가입 건은 만장일치로 의결되었다. 1949년 1월 19일 유엔 사무총장에게 가입 신청서를 제출한 이후 43년 만에 숙원을 푼 것이다. 이에 앞서 우리나라는 1990년 9월 적대국이었던 소련과 수교를 했고, 이후 1992년 8월 중국과도 수교를 맺는 등, 활발한 외교활동을 ... 남북한 유엔 동시 가입, 소련?중국과의 수교 등 역사의 현장에서 활약한 한 외교관의 이야기 1991년 9월 17일, 제46차 유엔 총회에서 남북한이 유엔에 동시 가입했다. 의제번호 제20호로 총회에 상정된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신규 회원국 가입 건은 만장일치로 의결되었다. 1949년 1월 19일 유엔 사무총장에게 가입 신청서를 제출한 이후 43년 만에 숙원을 푼 것이다. 이에 앞서 우리나라는 1990년 9월 적대국이었던 소련과 수교를 했고, 이후 1992년 8월 중국과도 수교를 맺는 등, 활발한 외교활동을 펼쳤다. 이 책은 바로 이 역사적인 현장에서 큰 역할을 담당했던 노창희 전 외무부차관의 회고록이다. 스물두 살의 나이에 외무부에 들어가 38년 동안 직업외교관으로서 한 길을 걸어온 저자의 솔직한 글들을 읽다보면 외교 현장에서 벌어지는 일화들이 주는 긴박감, 재미, 감동과 더불어 겉으로 보기에는 화려하지만 타국에서 국가를 대표해 무거운 책임을 져야 하는 외교관들의 애환을 가슴 가득 느낄 수 있다. 올해 초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취임에 힘입어 외교관이 되기를 꿈꾸는 이 땅의 수많은 청소년과 청년들에게 꼭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역사의 현장과 그 이면 이 책의 매력은 우리 현대 외교 역사의 현장에서 저자가 직접 겪은 사실들을 꾸밈없이 서술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소 수교: 고르바초프와의 숨바꼭질 1990년 9월 소련과의 수교를 앞두고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고르바초프를 만났던 때를 저자는 이렇게 회상한다. 몇 년에 걸친 우리의 끈기 있고 성의에 찬 접촉이 결국은 크렘린을 움직여서 소련으로부터 한?소 정상회담에 동의한다는 통보가 온 것은 5월 22일이었다. 고르바초프 대통령이 다음 달 워싱턴 방문 후 귀국하는 길에 6월 4일 샌프란시스코를 경유하기로 되어 있는데 그곳에서 노 대통령과 만나서 양국관계 발전에 관한 의견을 교환하고자 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해 온 것이다. 외교관계가 없는 국가 간의 정상회담인데다가 구체적인 시간과 장소가 확정되지 않았고 의제나 순서 등 의전 절차도 미정인 상태에서 노 대통령은 관계 참모들만을 대동하고 6월 3일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해서 고르바초프가 묵게 되어 있는 페어먼트 호텔에 투숙했다. “전화가 왔습니다. 곧 만나자고 합니다.” 우리는 본관 7층에 있었는데 신관 23층으로 오라고 한다기에 부리나케 호텔 로비로 내려갔다. 로비에는 미?소 양측 경호원, 행사 요원, 취재 기자들, 구경나온 호텔 투숙객들로 시장판같이 북적대고 있었다. 우리는 미국 측 경호원의 안내로 신관 엘리베이터를 타게 되었는데 엘리베이터 앞에서 소련 경호원들이 대통령을 수행하는 우리들의 머릿수를 하나씩 세더니 “다섯 명만!” 하면서 막아섰는데 그들의 태도가 어찌나 투박하고 거친지 잠시 실랑이가 벌어졌다. 결국 회의에는 참석치 않기로 되어 있는 비서실장, 경호실장 등이 밀려나서 다음 엘리베이터를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엘리베이터를 내려서 긴 복도를 지나 맨 끝 쪽에 있는 큰 방으로 안내되었다. 방에 들어가니 소련 경호원 몇 명만 서성거릴 뿐 우리를 영접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내심 불쾌해서 아무도 말이 없고 어색하고 불편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옆에 가만히 서 있는 대통령이 보기에 민망해서 “좀 앉아서 기다리시지요” 했더니 “어…… 괜찮아” 하며 간단히 대꾸하고 그대로 서 있었다. 그런 상태로 한 5분쯤 지나니까, 도브리닌이 헐레벌떡 나타나서 너스레를 떨었다. “누가 여기로 안내했나! 회담장은 바로 위층인데…….” 어찌 되었던 양국 정상은 역사적인 회담을 가졌다. 약 40분간 진행된 회담은 우호적인 분위기에서 개최되었고 조속한 시일 내의 한?소 수교를 기정사실화하는 만족스러운 것이었다. 그 후 한?소 수교는 급진전되었다. 가을에 유엔 총회에 참석한 최호중 외무부장관은 9월 30일에 셰바르드나제 소련 외상과 만나 그를 설득해서 그 날짜로 양국 간 수교를 천명하는 공동성명을 발표하는 데 성공했다. 이에 따라 서울과 모스크바에는 양국의 대사관이 개설되고 한국과 러시아는 한말 을사년乙巳年 이후 외교관계가 단절된 지 85년 만에 정식 국교를 재개하게 되었다. 이렇게 우여곡절 끝에 성사된 소련과의 수교는 우리나라와 북한의 유엔 동시 가입의 밑바탕이 되었음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미국에서 맺은 고르바초프와의 인연은 우리나라의 노태우 대통령이 레닌그라드를 방문하는 절차로 이어진다. 이곳에서 통역을 맡은 신연자 박사가 자신을 무시한다고 양국 정상이 모인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날카로운 하이힐 소리를 내며 나가는 소동이 벌어지기도 하지만, 저자에게는 “대통령은 레닌 흉상 앞에서 공산주의자를 찬양고무하고 경호실장은 KGB 두목하고 밤새워 술자리를 같이 해도 국가보안법에 걸리지 않는 겁니까?”하는 농이 나올 정도로 행복한 것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역사적 방문은 우리 민족에게 모스크바로 가는 길이 열린 지금, 평양으로 가는 길이 열리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희망을 품게 한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남?북한 유엔 동시 가입: 43년의 숙원을 풀다 “연내에 유엔에 태극기를 꽂고 내가 가서 가입기념 연설을 할 수 있게 하시오!” 노태우 대통령의 부담스러운 신임장을 받고 주 유엔 대사로 부임한 저자는 우리나라의 유엔 가입을 위해 각국 대사들 특히 거부권 행사의 열쇠를 쥐고 있는 중국대사를 만나는 등 각고의 노력을 기울이지만, 실내에서도 선글라스를 쓴 채 자신을 맞이한 리다오유 주 유엔 중국대사의 인간미 없는 푸대접에 실망한다. 그러나 사흘 후 박길연朴吉淵 북한대사와의 만남으로 상황은 급반전한다. 모처럼의 휴일을 맞아서 외출을 준비하고 있는데 대표부의 윤병세 참사관이 급한 목소리로 전화를 해왔다. “북한 대표부로부터 전화가 왔는데 본국 지시라고 하면서 북한대사가 꼭 오늘 오전 중으로 대사님을 만나서 확인할 일이 있다고 합니다.” 우리의 접촉 시도를 번번이 거부하던 북한 측이 급하게 만나자고 하는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지금 당장이라도 좋으니 그쪽에서 시간과 장소를 정해서 알려 달라고 하시오.” 북한 대표부에서 오전 10시에 유엔 본부 맞은편에 있는 유엔 프라자호텔(U. N. Plaza Hotel) 로비에서 만나자고 해서 나는 혹시 ‘북한 측이 입장을 선회하려는 것이나 아닌가’ 하는 부질없는 생각을 하면서 박길연 북한대사를 만났다. 그는 자리에 앉자마자 “평양의 지시에 따라 남측의 공식입장을 확인하려는 것이니 정확하게 답변해주기 바랍니다” 하면서 세 가지 질문을 했고 나는 간단히 답했다. “첫째, 단일의석 공동가입이라는 합리적인 제의를 왜 거부합니까?” “우리는 그것을 문제 해결을 위한 성의 있는 제안이라고 보지 않습니다.” “둘째, 남측은 조국 분단을 영구화하는 북?남 유엔 동시 가입을 끝까지 고집할 생각입니까?” “이미 수없이 반복된 논쟁인데 이제 와서 재론하고 싶지 않습니다.” “마지막으로, 동시 가입이 안 되면 단독가입을 기어이 강행하겠다는 것입니까?” “우리는 이미 공식 문서로 만천하에 그렇게 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북한은 착각하지 마세요. 대통령이 국민 앞에 연내 유엔 가입을 분명히 약속했는데 그것을 바꾸는 것은 우리로서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것으로 대화는 끝났는데 나는 매우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분명히 본국 지시라고 하면서 질문요지도 미리 정해 가지고 왔고 그 이상은 더 들을 생각도 하지 않고 황급하게 돌아갔는데 도대체 이것이 무엇을 뜻하는 것인가? 그러
목차
머리말
학창 시절
사무관 시절
주 캐나다 1등 서기관
과장 시절
주 스웨덴 참사관
국장 시절
주미공사
주 나이지리아 대사
대통령 의전수석비서관
주 유엔 대사
외무부차관
주영대사?
퇴직과 그 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