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 사마광 (續詩話)
북송 때의 유명한 역사가로 자가 군실(君實)이고 호가 우수다. 섬주(陝州) 하현[夏縣, 지금의 산시성(山西省) 샤현] 속수향(涑水鄕) 출신이기 때문에 속수선생이라고도 하고 온국공(溫國公)에 봉해졌기 때문에 온공(溫公)이라고도 하며 시호는 문정(文正)이다. ≪자치통감(資治通鑑)≫의 저자로 널리 알려져 있다. 북송 진종(眞宗) 천희(天禧) 3년(1019)에 사마지(司馬池, 980∼1041)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어릴 때부터 재주가 뛰어나고 상황 판단이 빠를 뿐만 아니라 결단성도 있었다.
인종(仁宗) 보원(寶元) 원년(1038)에 스무 살의 나이로 진사시에 급제해 벼슬길로 나아간 그는 인종 황우(皇祐) 3년(1051)에 관각교감(館閣校勘)을 맡았는데 이것은 경전과 역사를 좋아한 그에게 조정의 각종 전적을 자유로이 열람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제공했다. 그리고 황우 5년(1053)에 사관검토(史館檢討)라는 사관(史官)의 직책을 맡음으로써 더욱더 역사 연구에 전념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신종(神宗) 때에 이르러 왕안석(王安石)이 신법(新法)을 강행하자 그는 이에 반대하다가 마침내 낙양(洛陽)으로 내려가 은거 생활을 하게 되었다. 이때 그는 294권이나 되는 거질의 역사책 ≪자치통감≫을 저술했다.
원풍(元豊) 8년(1085)에 신종이 세상을 떠나고 열 살짜리 아들 철종(哲宗)이 즉위하자 섭정이 된 선인태후(宣仁太后)가 신법을 싫어한 나머지 구법파의 영수인 사마광을 불러들여 재상으로 삼았다. 그러자 사마광은 신법파 인사들을 모조리 조정에서 몰아내고 그들이 제정한 신법을 하나씩 하나씩 모두 폐기해 버렸다. 그러나 조정으로 복귀한 지 얼마 안 된 원우(元祐) 원년(1086) 10월 68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주요 저서로 ≪자치통감≫ 이외에 ≪온국문정사마공문집≫·≪계고록(稽古錄)≫·≪속수기문(涑水記聞)≫·≪절운지장도(切韻指掌圖)≫ 등이 있다.
저자 : 사마천 (司馬遷)
기원전 145년경에 태어나 기원전 90년경에 세상을 떠난 것으로 추정된다. 자(子)는 자장(子長)이며 섬서성 용문(龍門) 출신으로 아버지 사마담(司馬談)은 한 무제 때 태사령(太史令)이었다. 열 살 때 아버지를 따라 수도인 장안(長安)에 와서 동중서(董仲舒)와 공안국(孔安國)에게 학문을 배웠다. 20세 때 여행을 시작하여 중국 전역을 두루 돌아다녔으며 돌아온 후에는 낭중(郎中)에 올랐다.
기원전 110년 아버지 사마담이 그에게 반드시 역사서를 집필하라는 유언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기원전 108년 태사령이 되어 무제를 시종했으며 천제(天帝)에 제사 드리는 봉선(封禪)에 참여하고 역법을 개정했다. 부친의 유지를 받들고자 국가의 장서가 있는 석실 금궤(石室金櫃)에서 수많은 자료를 정리하고 수집했다. 기원전 104년 정식으로 『사기』 집필을 시작했다.
기원전 99년 이릉(李陵)이 군대를 이끌고 흉노와 싸우다가 중과부적으로 투항하는 사건이 발생하였는데, 이때 사마천은 홀로 무제 앞에 나아가 이릉을 변호하다가 무제의 노여움을 샀다. 옥에 갇힌 그에게 세 가지 형벌 중에 하나를 고를 권리가 주어졌다. 첫째 법에 따라 주살될 것, 둘째 돈 50만 전을 내고 죽음을 면할 것, 셋째 궁형을 감수할 것이었다. 사마천은 두 번째 방법을 취하고 싶어 했으나 귀족이 아니었던 그가 그런 거액을 낸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고 결국 마지막 것을 선택하게 되었다. 기원전 93년 사마천은 마침내 다시 무제의 곁에 있게 되었다. 이때는 『사기』의 집필이 대체적으로 마무리되는 시점이었다. 아버지의 유언을 받든 지 대략 20년 만이었다.
저자 : 좌구명 (左丘明)
『춘추좌전』과 『국어(國語)』를 집필했다고 알려진 춘추시대 노나라의 유학자이자 사학자. 노나라에서 태사(太史)를 지낸 적이 있으며, 공자와 동시대 사람으로 전해지나, 자세한 일생은 기록에 남아 있지 않다.
<사기·12제후 연표서>
에서는 “노나라의 군자 좌구명은 제자들이 각각 오류를 범하며, 제각기 주관에 집착하여 그 진의를 잃는 것을 염려하였다. 그래서 그는 공자의 기록에 연유하여 그 구절을 상세하게 논술하여
<좌씨춘추>
를 지었다”고 하였다. 공자와는 의기(意氣)와 지취(志趣)의 좋음과 싫음을 같이 하여 『논어·공야장(公冶長)』에서 공자는 \"말을 잘하고 얼굴빛을 좋게 하며 공손함이 지나친 것을 좌구명이 부끄럽게 여겼는데 나 또한 이를 부끄러워한다. 원망을 감추고 그 사람과 사귀는 것을 좌구명이 부끄럽게 여겼는데 나 또한 이를 부끄러워한다\"고 하였다. 사마천의 『사기』에 따르면, 만년에 시력을 잃은 뒤에 춘추시대 주나라와 노(魯)·제(齊)·진(晉)·정(鄭)·초(楚)·오(吳)·월(越)나라의 역사를 다룬 『국어』를 지었다고 한다.
『춘추좌전』의 지은이에 대해서는 여러 견해가 있고 명확하지 않다. 또한 좌구명의 좌가 성이고 구명이 이름인지, 좌구가 복성(複姓)이고 이름이 명인지도 명확하지 않다. 한 사람의 온전한 작품으로 보기 어렵고, 오랜 시간에 걸쳐 여러 사관들이 채취한 사료를 누군가가 체제를 통일하고 선택, 가공, 정리한 작품이라는 견해도 있다.
좌씨춘추>
사기·12제후>
편자 : 신동준
학오學吾 신동준申東埈은 고전을 통해 세상을 보는 눈과 사람의 길을 찾는 고전 연구가이자 역사문화 평론가다. 아울러 21세기 정경연구소 소장으로 있는 그는 격동하는 동북아시대를 슬기롭게 헤쳐 나가기 위해 동양고전의 지혜를 담아 다양한 조직의 현대적 비전을 꾸준히 제시하고 있다.
저자는 일찍이 경기고 재학시절 태동고전연구소에서 한학의 대가인 청명 임창순 선생 밑에서 사서삼경과 『춘추좌전』, 『조선왕조실록』 등의 고전을 배웠다. 서울대 정치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한 뒤 「조선일보」와 「한겨레신문」 등에서 10여 년간 정치부 기자로 활약했다. 1994년에 다시 모교 박사과정에 들어가 동양정치사상을 전공했고, 이후 일본의 동경대 동양문화연구소 객원연구원을 거쳐 〈춘추전국시대 정치사상 비교연구〉로 모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또한 서울대·고려대·외국어대 등에서 학생들에게 한?중?일 3국의 역사문화와 정치경제 사상 등을 가르치고 있다. 동아시아 3국의 역대 사건과 인물에 관한 바른 해석을 대중화하기 위해 「월간조선」, 「주간동아」, 「주간경향」, 「이코노믹리뷰」 등 다양한 매체에 꾸준히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2012년부터는 「조선일보」 주말판 경제섹션 「위클리비즈」의 인기칼럼 ‘동양학산책’을 연재하면서, 채널A와 TV조선 및 연합뉴스의 시사교양 프로그램에 패널로 출연하고 있다.
저서로는 『조조처럼 대담하라』, 『제갈량처럼 앞서가라』, 『상대가 이익을 얻게 하라, 관자처럼』, 『남다르게 결단하라, 한비자처럼』, 『탁월한 사람을 모방하라, 마키아벨리처럼』, 『리스크없이 쟁취하라, 손자처럼』, 『인으로 세상을 경영하라, 공자처럼』, 『상대를 열광케하라, 귀곡자처럼』, 『리더의 비전』, 『리더의 품격』, 『최후의 승자가 되라』, 『1인자의 인문학』, 『2인자의 인문학』, 『역사의 결정적 순간』 등 70여 권에 달하는 저서와 『꽃 지는 시절 그대를 다시 만나다』, 『자치통감 삼국지』, 『무경십서』, 『마키아벨리 군주론』 등 30여 권의 역서와 편저가 있다.
1956년 충남 천안에서 태어나 경기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 정치학과 및 동대학원을 졸업하였다. 조선일보와 한겨레신문 정치부 기자를 역임했으며, 동경대 객원 연구원과 서울대, 외국어대 강사를 거쳐 현재 21세기 정치연구소를 열어 최고 통치권자에 관한 연구와 집필 활동을 하고 있다. <통치학원론>, <삼국지통치학>, <조조통치론>, <중국문명의 기원>, <논어론>, <공자의 군자학> 등의 저서와 <자치통감-삼국지>, <춘추좌전>, <국어> 등의 역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