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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8987608530 / 376쪽 148 x 2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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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디앤루니스 리뷰
1899년(메이지 32년)에 간행된 이 책은, 후쿠자와가 자신의 어린시절부터 만년까지의 인생역정을 구술하여 속기사에게 필기시킨 것이다. 막부 말기와 메이지 시대로 이어지는 근대 일본의 격동기를 헤쳐나가면서 자신의 뜻을 하나하나 이루어가는 과정을 담담하게 회고하고, 자신의 정치관과 경제관 그리고 사생활에 관해 진솔하게 이야기한다.
출판사 리뷰
출판사 서평 문명개화’의 선구자 근대 일본을 이야기할 때 결코 빠뜨려서는 안되는 인물 가운데 한 사람이 후쿠자와 유키치(福澤諭吉)이다. 그는 19세기의 일본에서 번역가, 문필가, 계몽사상가, 교육자, 언론인으로서 빼어난 업적을 남겼다. 번역가로서는 많은 번역어를 만들어냈으며, 문필가로서는 공전의 베스트셀러가 된 다수의 책을 썼고, 계몽사상가로서 대중 계몽에 크게 기여했다. 뿐만 아니라 교육자로서 일본 최초의 사립학교인 게이오기주쿠(慶應義塾)를 설립하여 일본의 근대화를 선도할 인재를 양성하는 데 힘썼으며, 『지... 문명개화’의 선구자 근대 일본을 이야기할 때 결코 빠뜨려서는 안되는 인물 가운데 한 사람이 후쿠자와 유키치(福澤諭吉)이다. 그는 19세기의 일본에서 번역가, 문필가, 계몽사상가, 교육자, 언론인으로서 빼어난 업적을 남겼다. 번역가로서는 많은 번역어를 만들어냈으며, 문필가로서는 공전의 베스트셀러가 된 다수의 책을 썼고, 계몽사상가로서 대중 계몽에 크게 기여했다. 뿐만 아니라 교육자로서 일본 최초의 사립학교인 게이오기주쿠(慶應義塾)를 설립하여 일본의 근대화를 선도할 인재를 양성하는 데 힘썼으며, 『지지신보』(時事新報)를 창간하여 언론인으로서도 한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그리고 이런 그의 유산은 오늘날에도 면면히 이어지고 있다. 그가 만들었던 번역어들―civilization\u003d문명, enlightenment\u003d개화, speech\u003d연설, competition\u003d경쟁, copyright\u003d저작권 등등―은 일본뿐만 아니라 우리나라까지도 사용하고 있고, 그의 저작들은 현재 일본에서 근대의 고전으로 끊임없이 읽히고 있으며, 게이오기주쿠는 일본의 명문 사립대학인 게이오기주쿠 대학으로 발전했다. 또한 그의 사상은 마루야마 마사오(丸山眞男)를 비롯한 많은 학자들의 중요한 연구대상이 되었고, 『지지신보』는 『산케이 신문』(産經新聞)으로 그 명맥이 이어졌다. 일본 근대화의 주역들, 더 엄밀히 말하면 메이지 유신(明治維新)의 주역들이 일본 군국주의의 부침과 함께 명멸해 갔지만 평생토록 현실정치와 일정한 거리를 유지했던 후쿠자와 유키치만은 일본에 ‘문명개화’를 가져온 선구자로서의 이미지를 계속해서 간직하고 있다. 일본에서 현재 통용되고 있는 만엔 권 지폐에 인쇄된 그의 초상이 그것을 단적으로 말해준다. 후쿠자와 유키치의 인간적인 면모 이 책은 한 인간으로서 후쿠자와 유키치가 살아온 인생을 직접 구술한 것을 기록한 자서전이다. 후쿠자와는 이 자서전에서 막부 말기와 메이지 시대로 이어지는 근대 일본의 격동기를 헤쳐나가면서 자신의 뜻한 바를 하나하나 이루어나가는 과정을 담담하게 회고하고, 자신의 정치관과 경제관 그리고 사생활에 관해서 진솔하게 이야기한다.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후쿠자와는 대단히 열정적이고 자존심이 강하고 맺고 끊는 것이 분명하고 무슨 일을 하든 인내심을 갖고 최선을 다해 노력하는 사람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두주불사의 술고래였다. 이 책에서 가장 재미있는 일화들도 대부분 술에 얽힌 이야기들이다. 나중에 크게 결심하고 술을 끊긴 하지만 아무튼 술에 관한 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사람임을 후쿠자와는 여러 차례 언급하고 있다. 그리고 후쿠자와 집안의 가풍이나 자신의 자녀교육관에 대한 이야기에서는 당시의 세태를 엿볼 수 있을 뿐 아니라 오늘의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후쿠자와 시대 역시 부모들의 교육열이 대단했던 모양인데, 후쿠자와는 자신이 글을 비교적 늦게(열서너 살 때부터) 배우기 시작했음에도 불구하고 남들보다 빠르게 한문과 네덜란드어와 영어를 익힌 경험이 있어서인지 기본적인 예의범절과 예능 교육 외에는 조기교육에 반대하는 입장을 피력하고 있다. 그래서 자신이 낳은 9남매에게 건강하게 자라기만을 바랐지 공부하라는 잔소리를 일체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젊은 사람들이 학교를 졸업하면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국가 관리가 되어 편하게 살려고 시험공부만 한다고 한탄하기도 한다. 또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그의 경제관념이다. 그는 이론적으로는 자본주의의 생리나 돈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었지만 요즘식으로 말하면 재테크에는 별 관심이 없었던 것 같다. 쓸데없는 지출은 최대한 줄이면서도 꼭 필요한 때는 과감히 썼으며, 남에게 돈문제로 아쉬운 소리 하지 않고 줄 돈은 주고 받을 돈은 받는 것이 마음 편하다고 생각하는 타입이었다. ‘근대인’으로서 후쿠자와 유키치 이런 인간적인 면면들 외에 이 책에서 가장 흥미로운 것은 후쿠자와가 양이론과 쇄국이 대세를 이루던 시대에 왜 신변의 위험을 무릅쓰면서까지 서양문명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는지를 설명하는 부분이다. 가난한 하급무사의 막내아들로 태어난 후쿠자와는 봉건적인 신분제도에 반감을 갖게 되었고 문벌제도라는 악습의 근원이 한학(漢學)에 있다고 판단, 이를 타파하기 위해 서양학문에 뜻을 두었다는 것이다. 이후 그는 평생을 일본의 근대화, 즉 일본의 서양문명화를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했다. 그리고 그의 궁극적인 꿈은 일본의 부국강병이었다. 일본이 서양 열강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부강한 나라가 되어야만 후손들이 고통을 겪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거두절미하고 이것만 보면 지구상의 모든 국민국가가 똑같이 산출하는 내러티브를 후쿠자와는 공유하고 있었다. 이런 논리는 일본을 군국주의로 몰고 간 정치인과 군인들에게서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꿈은 같았을지언정 그는 결코 현실정치에 발을 들이지 않았다. 그는 메이지 시대 정치가들의 부도덕성과 이중성을 혐오했고, 관료사회의 획일성과 안하무인적인 행태에 고개를 돌렸다. 결국 자신의 지식과 학문 그리고 명망을 등에 업고 정계나 공직에 진출하지 않고 초지일관 재야의 사상가로 남아 독립적으로 자유롭게 살기를 고집했기에 후쿠자와는 오늘날에도 일본의 과거사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운 인물로 남게 되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국강병은 근대의 양면성을 그대로 보여주는 논리이며 그런 점에서 후쿠자와는 일본의 과거사로부터 완전하게 자유롭지는 못하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후쿠자와가 세상을 떠난 1901년 이후에 약 반 세기에 걸쳐 진행된 일본의 역사를 염두에 둔 평가에 불과하다. 만약 우리가 후쿠자와는 왜 근대의 긍정적인 면만을 보았을까 하는 점에 주목하고 이 책을 읽는다면 우리는 언외의 교훈을 얻을 수도 있을 것이다.
목차
초판 서문
어린 시절
나가사키 유학
오사카 수업
오카타주쿠의 기풍
오사카를 떠나 에도로 가다
처음으로 미국에 가다
유럽 각국에 가다
양이론
다시 미국으로
왕정유신
암살 걱정
잡기
일신일가(一身一家)경제의 유래
품행과 가풍
노후의 생활
옮긴이의 해설
후쿠자와 유키치 연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