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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과연암노름에빠지다

유승훈 저 | 살림 | 2006년 0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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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8952204689 / 250쪽 148 x 2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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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반디앤루니스 리뷰

고대에서 현재까지 도박에 얽힌 사회상과 문화를 추적한 우리나라 최초의 도박사! 우리의 전 역사에 걸쳐 도박은 개인과 가족, 사회의 운명을 좌우하는 핵폭탄과 같은 위력을 갖고 있다. 그 은밀하고 위험하고, 그만큼 흥미진진한 도박의 역사를 지금부터 펼쳐낸다. 로또로 '인생 역전'을 꿈꾸는 당신 또한, 그 오랜 역사의 주인공이다.

출판사 리뷰

출판사 서평 다산과 연암이 노름에 빠졌다고? 황해도 곡산부사로 재직하고 있던 1799년, 다산 정약용은 절도사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보냈다. “경자년 봄에 촉석루에서 떠들썩하게 악기를 연주하다 해가 저물어서야 파하였습니다. 그리고 심 비장과 함께 저포 노름을 하여 3천 전을 가지고 여러 기생들에게 뿌려주며 즐겁게 놀았던 일을 기억하십니까? 이제는 벌써 19년이 지났는데도 어제의 일처럼 역력합니다.” 다산이 기생들과 노름을 벌이고 3천 전이라는 거금... 다산과 연암이 노름에 빠졌다고? 황해도 곡산부사로 재직하고 있던 1799년, 다산 정약용은 절도사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보냈다. “경자년 봄에 촉석루에서 떠들썩하게 악기를 연주하다 해가 저물어서야 파하였습니다. 그리고 심 비장과 함께 저포 노름을 하여 3천 전을 가지고 여러 기생들에게 뿌려주며 즐겁게 놀았던 일을 기억하십니까? 이제는 벌써 19년이 지났는데도 어제의 일처럼 역력합니다.” 다산이 기생들과 노름을 벌이고 3천 전이라는 거금을 뿌렸다는 사실이 이채롭다. 『목민심서』를 통해 관리의 청렴을 강조했던 다산의 이력에 비추어 보면 소설 같이 들리기도 하지만, 『다산시문집』에 실려 있는 엄연한 역사적 사실이다. 물론 다산은 이후 수차례 도박의 중독성과 폐해를 경고하게 되지만, 이때만 해도 다산은 노름이나 도박을 부정적으로 보지는 않았던 듯하다. 오히려 그는 ‘저포 노름’을 양반과 기생이 함께 즐기는 흥겨운 놀이의 일종으로 생각한 것으로 보인다. 이 편지에서 ‘저포 노름’은 쌍륙 놀이를 의미한다고 한다. 조선 중기 이후 사대부의 놀이문화를 사로잡았던 쌍륙 놀이는 양반과 기생이 풍류를 즐기는 보편적인 사회상의 하나였던 것이다. 이렇게 보면 연암 박지원이 쌍륙 놀이에 빠져 있었다는 사실도 이해할 만하다. 연암은 편지를 쓰다가 문장이 막히면 혼자서 쌍륙을 쳤다고 한다. 혼자서 왼손, 오른손을 양 편으로 삼아 대국을 벌였다는 말이다. 요즘 말로 하면 ‘혼자 놀기’의 진수를 보여준 셈이다. 도박에 빠져 있었던 것은 다산과 연암뿐만이 아니다. 조선의 왕들과 내시, 종친들도 도박에 사로잡혀 있었다. 궁궐 안에서 벌어진 희대의 쌍륙 사건은 성종 21년(1490)에 일어났다. 문소전의 수복으로 일하는 석시와 왕실의 종친들이 쌍륙을 치다 불을 낸 것이다. 이 도박꾼들은 술내기로 쌍륙을 치다 무엇이 못마땅했는지 서로 다투게 되었고, 그 와중에 화로를 걷어차 불이 나게 되었다. 문소전은 태조와 태종, 왕비의 위패를 모신 사당으로, 종친 가운데 가장 덕망 있는 자를 선별하여 당직을 서게 할 정도로 상징적인 공간이었다. 그런 곳에서 종친과 제사 일을 돌보는 종이 도박판을 벌이다 불을 냈으니, 전대미문의 사건의 아닐 수 없다. 또한 『세종실록』에는 외국의 사신들이 ‘승상, 쌍륙, 죽선’ 등의 물품을 요구했다는 기록도 있다. 조선의 쌍륙 브랜드가 국제적으로 명성을 떨치고 있었던 모양이니, 도박의 ‘한류’는 이때부터 시작된 셈이라고나 할까. 우리 역사 속의 ‘호모 루덴스’들을 발굴한 최초의 도박사(賭博史) 이처럼 지금까지 음지의 역사 속에 묻혀 잘 알려지지 않았을 뿐, 우리 역사 속에서 도박은 한시도 사라진 적이 없었다. 일탈이나 범죄의 온상으로만 치부되었던 도박의 역사에는 당대의 사회상과 문화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왕조사나 정치사, 또는 민중들의 건강성만을 강조하는 기존의 역사만이 우리 역사의 전부는 아니다. 오히려 우리의 전 역사에 걸쳐 도박은 개인과 가족, 사회의 운명을 좌우하는 핵폭탄과 같은 위력을 갖고 있다. 그래서 도박에 얽힌 이야기들은 위험하고, 은밀하고, 그만큼 흥미진진하며 기존의 역사로는 2% 부족했던 갈증을 해결할 수 있다. 『다산과 연암, 노름에 빠지다』는 바로 음지에 묻힌 그 흥미진진한 역사를 복원해낸 책이다. 삼국시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시대를 풍미했던 도박의 종류와 놀이 방법, 도박에 얽힌 에피소드와 사회상 등 도박에 관한 모든 것이 담긴 우리나라 최초의 ‘도박사(賭博史)’이다. 무엇보다 이 책의 의의는 우리 역사 속의 ‘호모 루덴스’들을 발굴해냈다는 데 있다. 호이징가는 인간을 ‘호모 루덴스(놀이하는 인간)’으로 정의함으로써 모든 문화가 놀이로부터 발생했다는 사실을 강조한 바 있다. 호이징가를 비판적으로 계승한 로제 카이와 또한 『놀이와 인간』에서 내기놀이가 일상생활에서 매우 중요한 몫을 차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우리의 역사와 일상 또한 ‘놀이’를 떼놓고서는 말하기 어렵다. 왕이나 양반 귀족, 다산과 연암 같은 지식인에서 평민에 이르기까지 우리 역사 속에는 수많은 ‘호모 루덴스’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역사야말로 우리 문화의 속살이자 ‘놀이하는 인간’이라는 인간의 본성을 담고 있는 세계사의 일부분이다. 위험하고, 은밀하고, 흥미진진한 이 책에 실린 ‘호모 루덴스’들의 일화를 살펴보자. ▶ 신라시대 귀족들이 연회를 즐기던 안압지에서는 목제 주사위가 발굴되었다. 4각형이 3면, 3각형이 8면으로 14면체인 이 주사위의 각 면에는 벌칙에 해당하는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 그 중에는 ‘여러 사람이 코 때리기, 얼굴 간질거려도 꼼짝 않기, 노래 없이 춤추기, 덤벼들어도 그대로 있기, 술 세 잔 한 번에 마시기’ 등이 있었다. 요새 술자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속칭 ‘원샷’ 음주 풍속이 그때도 있었던 것이다. ▶ 고려 말 문인인 목은 이색의 작품 가운데에는 윷놀이와 관련된 시 3수가 전해진다. 여기에 묘사된 윷놀이 장면이 현재와 다를 바 없다. 변화가 무궁하고 강약을 가릴 수 없는 윷판, 큰 연회와 함께 떠들썩한 분위기, 자존심도 없이 아이들과 윷놀이하는 백발노인, 턱이 떨어질 정도로 웃는 사람 등. 이것이 1380년 무렵의 모습이니, 아우성 윷판은 참으로 유구한 역사를 지니고 있는 셈이다. ▶ 고려시대의 의종은 ‘격구왕’이라 부를 만한 임금이었다. 격구는 요즘의 경마와 같은 ‘스포츠도박’이었다. 의종은 얼마나 격구를 좋아했던지 이틀 동안 격구를 구경한 적도 있고, 대궐에서 국사를 논한 다음 바로 격구장으로 달려가곤 했다. 가뭄이 극심했을 때도 기우제를 지내기는커녕 격구에 몰두했다고 한다. 최충헌은 격구장에 담을 세우는 공사를 벌였고, 그의 아들 최이는 격구장에 먼지가 날리지 않게 하기 위해서 물을 뿌리는 데 백성들을 동원한 것도 모자라 구장을 넓히기 위해 민가를 허물기도 했다. 윤길보, 기탁성, 장계렬 등은 격구를 잘 해서 벼슬을 얻었다. 태조 이성계 역시 고려 말 가장 출중한 격구선수였다. ▶ 후에 우의정에 오른 원인손은 ‘투전의 국수’라 불릴 정도로 고수였다. 그의 아버지인 예조판서 원경하는 명문가의 자식이 매일 투전에 빠져 방탕한 생활을 이어가자 크게 진노했다. 하루는 아들의 재주가 어느 정도인가를 시험해볼 요량으로 투전패 중 ‘인장’을 몰래 감추고 나머지 투전패만을 손에 쥔 채 그 중에서 ‘인장’을 뽑지 못하면 심하게 매질하겠다고 호통을 쳤다. 인손이 이리저리 패를 만져보더니 하는 말이 “이 속에는 인장이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원경하는 탄식하면서 “어쩔 수 없구나. 이놈이 어릴 때부터 노름하는 시늉을 하더니 완전히 통달해버렸구나. 이제는 네 마음대로 해라.”라고 말했다고 한다. ▶ 일제시대 고위 관리들의 화투 놀이는 ‘대관의 별실’, ‘모 영감의 소실’로 불리는 첩들에게까지 전파되었다. 남편들의 부를 이용할 수 있었으므로 화투판의 판돈도 당연히 컸다. 이들이 모이면 노름돈을 물 쓰듯 한다는 소문이 많았다. 당시 에서는 ‘뚱뚱마누라 노름돈을 물 쓰듯 하더라’라는 기사로 그런 세태를 비판했다. ▶ 을사오적의 한 사람인 이지용은 ‘희대의 화투대왕’이었다. 이지용은 나라를 판 돈으로 한꺼번에 수만 원씩을 판돈으로 걸었다고 한다. 1907년 국채보상운동이 벌어질 당시 조선의 국채총액이 1300만원이었다. 이지용의 노름돈을 합하면 나라를 살릴 정도이니, 현재의 억대 도박판도 이지용의 도박판에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 일제는 도박용구에 대해서도 세금을 걷었다. 1931년 일제는 이른바 ‘골패세령’을 제정했다. 이 법령은 마작 1조에 3원, 종이로 만든 골패 1조에 20전, 종이가 아닌 골패 1조에 50전씩을

저자 소개

  • 저자 : 유승훈
>> 유승훈(ysh3919@hanmail.net)
1970년 서울에서 출생했다. 경희대학교를 졸업한 뒤 한국학 대학원(민속학 전공)에서 석사학위를 받았고, 고려대 대학원 문화재학과(민속학 전공)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서울시청? 문화재과 학예연구사를 거쳐 현재는 부산시립박물관(동삼동 패총전시관)의 학예연구사로 근무하고 있다. 저서로『현장속의 문화재 정책』(2004)이 있으며, 논문으로는「곰소만의 젓갈생산풍습」(2001)「투전고」(2002)「경강변 부군당의 성격과 역사적 전개양상」(2003)「20세기 초 인천지역의 소금생산」(2004) 등 다수가 있다. 앞으로도 역사민속학의 관점에서 우리나라의 민중생활사와 관련된 연구를 계속 진행할 예정이다.

목차

목차
저자의 말/ 아침 바다에서 길어 올린 단상
프롤로그/ 거꾸로 본 음지의 역사
1장 고대 샤먼은 최초의 도박꾼이었을까-도박과 점복
2장 신라의 귀족, 주사위 놀이로 밤을 지새다-도박과 주사위
3장 백제인의? 저포, 윷놀이의 조상인가-도박과 윷놀이
4장 고려시대의 격구는 스포츠 도박이었다-도박과 격구
5장 양반과 기생, 쌍륙판에서 내기를 벌이다-도박과 쌍륙
6장 조선후기의 투전, 도박의 전성시대를 열다-도박과 투전
7장 친일파 이지용, 나라를 팔아 화투대왕이 되다-도박과 화투
8장 고스톱은 대한민국의 축소판이다-도박과 고스톱
9장 자본주의 국가는 언제나 양다리를 걸친다-도박과 국가
에필로그/ 잃었을 때 떠나라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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