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고예상일 안내
주문하신 상품이 한국에서 현지 배송을 위한 출고단계가 이루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날짜입니다. 상품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내부적인 사정으로 인해 출고예상일에 다소 오차가 생길 수 있습니다.
여러 상품(예약상품포함)을 함께 주문하신 경우 출고예상일이 가장 늦은 날짜에 맞춰 함께 배송됩니다.

ISBN : 9788989903802 / 246쪽 152 x 223 (㎜)
이 상품에 궁금하신점이 있으세요? 1:1상담문의

-
최인서
-
정한아
-
김행숙
- 19,800
- 11,700
- 104,400
- 11,700
반디앤루니스 리뷰
1991년 3월 26일, 당시 9~13세이던 5명의 소년들이 대구 지역에서 실종되는 일이 일어났다. 언론과 국민들은 그 아이들을 ‘개구리소년’이라고 호칭하며 전국적으로 행방을 찾았으나 아무런 단서도 발견할 수 없었다. 당시 경찰 못지않게 이 사건을 추적해 들어갔던 인물이 있었는데, 미국에서 심리학으로 학사. 석사. 박사 과정을 이수한 김가원 박사로 그는 KAIST 교수로 재직하면서 개구리소년 실종 사건을 파헤치기 시작한다.
이 책은 그가 개구리소년 실종 사건을 추적하며 기록한 모든 내용을 소설 형태로 써낸 것이다. 의도적인 왜곡이나 거짓이 없음을 밝힌다. 독자들은 이 소설을 읽으며 범인의 윤곽을 그려볼 수 있을 것이다. 공소시효가 4개월여밖에 남지 않은 이 사건을 재수사해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출판사 리뷰
출판사 서평 12년에 걸친 끈질긴 추적! 1991년 3월 26일, 당시 9~13세이던 5명의 소년들이 대구 지역에서 실종되는 일이 일어났다. 언론과 국민들은 그 아이들을 ‘개구리소년’이라고 호칭하며 전국적으로 행방을 찾았으나 아무런 단서도 발견할 수 없었다. 경찰 역시 단일 사건으로는 최대 규모인 연 인원 30만 명 이상을 동원해 수색을 벌였지만 아무런 흔적도 찾지 못했다. 그리고 사건 발생 11년 후인 2002년 9월, 아이들은 유골이 되어 우리 곁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경찰 못지않게 이 사건을 추적해 들어갔던 인물이 또 있었다. 미국... 12년에 걸친 끈질긴 추적! 1991년 3월 26일, 당시 9~13세이던 5명의 소년들이 대구 지역에서 실종되는 일이 일어났다. 언론과 국민들은 그 아이들을 ‘개구리소년’이라고 호칭하며 전국적으로 행방을 찾았으나 아무런 단서도 발견할 수 없었다. 경찰 역시 단일 사건으로는 최대 규모인 연 인원 30만 명 이상을 동원해 수색을 벌였지만 아무런 흔적도 찾지 못했다. 그리고 사건 발생 11년 후인 2002년 9월, 아이들은 유골이 되어 우리 곁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경찰 못지않게 이 사건을 추적해 들어갔던 인물이 또 있었다. 미국에서 심리학으로 학사?석사?박사 과정을 이수한 김가원 박사. 그는 KAIST 교수로 재직하면서 개구리소년 실종 사건을 파헤치기 시작한다. 그 과정에서 무수한 의혹과 대면하게 되고, 1차 가설과 2차 가설을 세우며 범인의 실체를 잡아내려 애쓴다. 그가 지목한 범인은 충격적이게도 실종 아이들 중 한 아이의 아버지인 B씨. 저자는 B씨에 얽힌 수많은 의혹을 제기한다. 알리바이가 입증되지 않고, 아이와 통화한 녹음테이프를 국과수에 제출할 때 원본을 보내지 않았으며, 녹음테이프를 편집했다는 등등 경찰도 모르던 사실을 밝혀낸 것이다. 그리고 B씨의 집 화장실과 골방 부근에 아이들의 사체가 묻혀 있을 거라고 주장한다. 1996년 1월 12일, 저자는 결국 경찰과 함께 사체 발굴 작업을 벌인다. 그러나 사체는 나오지 않았다. 이후 저자는 명예훼손으로 피소되어 벌금형을 받았고, KAIST에 사표를 제출했으며, 한국심리학회에서 제명되는 등 감내하기 힘든 어려움을 당했다. 이 책은 그가 개구리소년 실종 사건을 추적하며 기록한 모든 내용을 소설 형태로 써낸 것이다. 의도적인 왜곡이나 거짓이 없음을 밝힌다. 독자들은 이 소설을 읽으며 범인의 윤곽을 그려볼 수 있을 것이다. 공소시효가 4개월여밖에 남지 않은 이 사건을 재수사해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이 소설에서 제기하는 개구리소년 실종 사건의 10대 의문점 1. 아이들은 개구리를 잡으러 가지 않았다. 아이들은 개구리를 잡으러 간다고 한 적이 없다. 도롱뇽, 더 정확히 말하면 도롱뇽 알을 잡으러 간다고 했다. 그런데 왜 ‘개구리소년’이라고 불리게 되었을까? 2. 범인이라며 걸려온 전화는 400만 원을 요구했다. 사건 발생 후 범인이라는 사람이 전화를 걸어왔다. 그리고는 400만 원을 요구했다. 상식적으로 볼 때 400만 원 때문에 아이들 다섯 명을 납치한다는 게 말이나 될까? 3. 알리바이가 불확실한 인물이 있다. 사건이 나던 날 점심시간 무렵에 B씨는 ○○공장에서 나왔다. 그 시간 이후로 B씨가 공장에 오지 않았음을 여러 사람이 증언하고 있다. 그렇다면 B씨는 그날 오후에 어디에서 무엇을 했으며, 공장에 있었다고 강력하게 주장하는 이유가 뭘까? 4. 서둘러 방송국에 제보한 사람이 있다. 사건이 발생한 바로 그 다음날 아침 방송부터 아이들이 산에서 실종되었다는 내용이 보도되기 시작했다. 아이들을 본격적으로 찾기 시작한 것은 전날 저녁 7시부터였는데 어떻게 바로 그 다음날 아침에 방송이 되었을까? 5. 실종 두 달 후 아이 중의 한 명이 집에 전화를 걸었다. 이때 여러 가지 의문점이 발생한다. 범인의 목소리가 전혀 없고, 전화를 받은 아이 어머니는 상대방 위치를 추적하는 단추를 누르지 못했다. 또 녹음테이프를 국과수에 제출할 때 원본을 보내지 않았으며, 당시 수사기록에는 그 녹음이 조작되었을 거라고 판단했던 기록이 있다. 이건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6. 유골 발견 장소는 연인원 30만 명을 동원해 이 잡듯이 뒤졌던 곳이다. 한 줄로 서서 꼬챙이로 짚어가면서 수색을 했고 저수지 물을 양수기로 다 퍼냈을 정도다. 그런데 어떻게 11년 후 바로 그 자리에서 발견된 것일까? 7. 경찰은 아이들의 유골을 삽으로 파냈다. 사건 현장은 정밀감식반이 도착할 때까지 일단 발견된 상태로 보존하는 게 원칙이다. 그런데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정밀감식반이 오기도 전에 아이들의 유골을 삽으로 다 파내서 현장을 훼손했다. 또 유골이 발견된 날 저체온에 의한 동사가 사망원인이라고 서둘러 결론 내렸다. 단순한 실수였을까? 8. 사체는 이동되었다. 유골이 발견된 당일에는 사체가 4구였다. 다른 1구는 다음날 추가로 발견되었으며, 머리카락과 일부 옷 등은 발견되지 않았다. 사체가 어딘가로부터 이동된 것은 아닐까? 9. 유골 발견 전날 누군가 사체가 있는 곳을 언론사에 제보했다. 유골이 발견되기 바로 전날 누군가 언론사에 전화를 걸어 아이들의 사체가 어디에 가면 나올 거라는 제보를 두 차례 했다. 실종 이후 11년이 지난 때에 거의 정확한 위치를 지목했던 그 사람은 누구일까? 10. 유골을 감식했던 교수가 검찰에 고발당했다. 아이들의 유골을 감식했던 ○○대학교 교수를 전직 경찰관이 수사기밀누출로 검찰에 고발했다. 현직도 아닌 전직 경찰관이 도대체 무슨 이유로 그를 고발한 것일까? 줄거리 1996년 1월 12일, 성난 주민들 사이를 뚫고 경찰의 호위를 받으며 사체 발굴 현장을 빠져나오는 한 남자가 있었다. 이름은 김가원, 한국 최초로 물리심리학 박사 학위를 받은 KAIST 교수이다. 그는 오랫동안 ‘개구리소년 실종 사건’을 추적해 들어갔던 인물이다. 그러나 범인으로 지목한 B씨의 집에서 사체가 나오지 않자 주민들이 ‘정신병자’ ‘사이비 박사’라는 욕설을 퍼부어댔던 것이다. 그 사건 이후 김가원 박사는 명예훼손으로 피소되어 벌금형을 받았고, KAIST 에 사표를 제출했으며, 한국심리학회에서도 제명당한다. 어렵게 지방대 강사 자리를 얻어 낙향을 한 그는 거기에서 선주라는 제자를 만나게 된다. 범죄심리학에 관심이 많았던 선주는 김박사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해 그 사건의 진실을 캐묻기 시작한다. 모든 것을 잊었다며 완강히 거부하던 김박사는 결국 어렵게 말문을 연다. 1993년 3월, 미국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던 김가원은 한국 신문에 난 ‘개구리소년 실종 사건’ 기사를 우연히 접하게 된다. 사건 내용이 자신이 준비하던 연구논문과 매우 흡사해 관심을 갖게 되었지만 바쁜 유학 생활 때문에 이내 잊어버린다. 그리고 얼마 후 박사학위를 취득한 뒤 귀국해 KAIST 교수로 임용된다. 그러던 어느 날 김가원 교수는 개구리소년 실종 사건에서 드러나는 의혹들을 자신이 공부했던 심리학적 관점으로 분석하게 된다. 백주대낮에 다섯 아이가 사라졌는데 아무런 단서가 없다는 점이 이해되지 않았던 것. 자신이 비록 수사관은 아닐지라도 그 사건 해결에 도움이 될 수 있는데 침묵하고 있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는 사건 당일이 기초의회의원 선거일이었음에 1차적으로 주목한다. 선거를 방해하려는 소란행위를 목적으로 일어난 범행이라는 1차 가설을 세운다. 당시 선거결과가 1표차 당선, 연장자 우선원칙에 의한 당선 등으로 나왔기에 충분히 신빙성 있는 일이었다. 사건 현지에 내려가 치밀한 조사를 하던 김교수는 경찰 초동수사의 허점을 발견하고 더욱 사건에 빠져든다. 치밀한 조사를 위해서 직접 부모들을 만나기 위해 나선 그는 식당에서 성수 아버지인 B씨를 만나게 된다. 그런데 아이들의 행방을 찾겠다는 김교수에게 B씨는 경계심을 감추지 못하고 무언가를 감추려고까지 한다. 이런 과정에서 김교수는 2차 가설을 세운다. 범인은 실수 또는 우발적 사고를 은폐하려다 도덕적 경계선이 무너져 나머지 아이들까지 살해하게 되었을 거라는 점이다. 하지만 B씨의 아들만은 어딘가 생존해 있을 거라는 추리를 한다. 자신의 가설
“그래서 내린 결론인데 그 아이들은 납치범이 누군지 정확히 알고 있었어. 아주 정확히!”
“납치범의 익명성이 전혀 보장되지 못했단 말이지?”
“그렇지! 그래서 그 아이들은 살아 돌아올 수 없었던 거야.”
“흐음….”
“추적은 거기서부터 시작되는 거야. 아주 가까운 데서!”
―1권 74~75쪽
“지금 B씨는 내가 어느 정도 윤곽을 잡고 좁혀오고 있음을 느끼고 있을 거야.”
“그래서?”
“이제는 주위 사람들의 시선도 어느 정도 무감해졌으니까 조만간 뭔가를 하지 않을까?”
“다른 곳으로 옮긴단 말이지?”
“그 화장실 근처를 헐고 거기에 새 집을 짓는다면 이 사건은 영원히 미궁에 빠져들 수도 있거든. 그래서 빨리 손을 써야겠는데 말이야.”
―1권 266~267쪽
목차
제13장 17초 동안의 침묵
제14장 비어 있던 골방
제15장 담판
제16장 영점짜리 답안지
제17장 풀린 미스터리, 남겨진 미스터리
제18장 방송사 R PD와 청와대 B 과장
제19장 가해자와 피해자의 거리
제20장 봉고차의 도주
제21장 잠복
제22장 오판의 입증
제23장 원고를 정리하다
제24장 박달재를 넘지 마라
제25장 유골로 돌아온 아이들
에필로그 길고 길었던 여정의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