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고예상일 안내
주문하신 상품이 한국에서 현지 배송을 위한 출고단계가 이루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날짜입니다. 상품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내부적인 사정으로 인해 출고예상일에 다소 오차가 생길 수 있습니다.
여러 상품(예약상품포함)을 함께 주문하신 경우 출고예상일이 가장 늦은 날짜에 맞춰 함께 배송됩니다.

ISBN : 895775086X / 312쪽 148 x 210 (㎜)
이 상품에 궁금하신점이 있으세요? 1:1상담문의

-
김태웅, 박평식, 추명엽, 김성현
-
DK 제2차 세계대전 편집위원회
-
데이비드 그레이버, 데이비드 웬그로
-
김성대
- 34,200
- 47,700
- 42,300
- 26,010
반디앤루니스 리뷰
우리 민족의 북방영토와 관련된 치욕과 통한의 역사를 중심으로 제1장은 정묘.병자호란, 제2장은 을미사변, 제3장은 을사보호조약, 제4장은 한일합방 그리고 제5장은 북방영토를 다루었다. 이제 암울한 역사의 기억을 꽁꽁 묶은채 살아가는 것이 아닌, 아픔 속에서 희망을 찾는 한민족으로 다시 태어날 것이다.
출판사 리뷰
출판사 서평 이 책이 기획된 이유는 북방영토, 즉 간도문제를 다루기 위해서이다. 이 책은 간도가 왜 우리 땅인가에 대한 명확한 역사적 배경 설명과 함께 범국민적인 관심이 뒤따라야 간도땅을 되찾을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지금까지 간도문제를 일반인들이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이 거의 없었다. 다시말해 적지 않은 관련학계의 자료와 연구는 일반인들이 읽기 힘들었고 신문이나 잡지에 보도되었던 내용은 너무 단편적이었다. 이에 한민족공동체발전협회에서 간도 영유권 문제를 다루기 위해 이 책을 펴내면서 그 역사적 배... 이 책이 기획된 이유는 북방영토, 즉 간도문제를 다루기 위해서이다. 이 책은 간도가 왜 우리 땅인가에 대한 명확한 역사적 배경 설명과 함께 범국민적인 관심이 뒤따라야 간도땅을 되찾을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지금까지 간도문제를 일반인들이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이 거의 없었다. 다시말해 적지 않은 관련학계의 자료와 연구는 일반인들이 읽기 힘들었고 신문이나 잡지에 보도되었던 내용은 너무 단편적이었다. 이에 한민족공동체발전협회에서 간도 영유권 문제를 다루기 위해 이 책을 펴내면서 그 역사적 배경을 누구나 알 수 있게 했고 그리고 간도 영토 문제가 어떻게 하여 지금에 이르렀는가를 우리 민족의 역사를 통해 일목요연하게 알 수 있게 했다. 왜 통한의 역사인가? 우리 민족의 정서를 한마디로 하자면 한(恨)이라고 한다. 일제 강점시에 강요된 것으로 생각하여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도 많지만, 우리 역사에는 정말 안타까운 일들이 너무도 많다. 그 가운데 가장 통탄할 일은 아마도 우리 민족의 영토가 줄어들었다는 사실일 것이다. 간도는 합법적으로 우리의 영토이다. 그럼 어째서 우리 영토는 우리 머릿속에서조차 한반도 내로 갇혀 있게 되었을까? 우리의 북방 영토는 언제, 어떻게 우리의 관할을 벗어나게 되었을까? 그 동안 간도협약과 관련한 많은 책들이 출판되고, 많은 논문이 발표되었다. 하지만 역사와 우리의 북방영토를 직접적으로 연관지어 생각하기는 쉽지 않다. 한마디로 이 책은 통한의 한국역사를 통해 북방영토의 역사성과 미래에 대한 모든 것을 담아냈다. 아픔의 역사에서 찾는 우리 민족의 희망이야기 이 책은 제1장에서 병자 · 정묘호란을 다루었고 그 굴욕적 결과물인 삼전도비(대청황제공덕비)의 유래와 함께 어떻게 청나라와 조선의 국경관계가 이루어졌는지 알 수 있게 하였다. 제2장은 을미사변을 통해 어떻게 일본이 대한제국이 외교권을 침탈하는 과정을 알 수 있게 하였다. 제3장, 제4장은 을사보호조약과 한일병합조약의 배경과 그 과정을 통해 일본의 침탈과 한민족의 대응을 설명했다. 그 가운데 어떤 매국노가 있었는지, 그리고 그때 자결한 순국지사들의 일화와 유서를 모아 수록했다. 제5장에서는 본격적으로 영토문제가 청나라와 어떻게 진행되다가 일본에 의해 중국에 어떻게 빼앗겼는지 그리고 우리는 어떻게 해야만 이 땅을 되찾을 수 있는지를 다루었다. 북방 영토란? 우리나라의 북쪽 경계를 맞대고 있는 중국과 합의한 최초의 국경협정은 숙종 임금 때인 1712년에 있었다. 청나라의 목극등은 강희제의 명을 받고 조선과의 경계를 확정하기 위해 조선에 건너온다. 목극등이 주도한 국경탐사를 통해 양국의 경계가 확정된 내용이 백두산정계비에 기록되어 있다. 백두산정계비에 기록되어 있는 중국과의 경계는 “동위토문, 서위압록(東爲土門, 西爲鴨綠)”이다. 백두산정계비에 따를 경우 조선은 백두산과 천지를 청나라에게 내준 것이 되지만, 송화강의 상류인 토문강을 국경선으로 삼게 되어 두만강 이북의 만주 땅과 연해주 일대의 광활한 영토를 차지하게 된다. 5세기 고구려 전성기의 우리 영토는 아시아 대륙의 동북지방 거의 전역이었다. 먼 옛날 우리 선조들이 3천 년 이상 점령한 땅이었고, 현재도 유적 및 유물이 널려 있다든가 하는 감상적 차원에서 북방영토에 대한 연고권을 부르짖을 수는 없는 일이다. 하지만 간도 지역은 우리에게 충분히 우리의 영토라고 주장할 수 있는 법적, 물질적 증거가 충분한 곳이다. 우리민족의 영토임이 확실한 역사적 근거와 국제법적 정당성을 분명히 갖고 있다. 그렇다면 북방 영토는 어디를 말하는 것일까? 두만강 건너 현재 중국과 러시아가 점유하고 있는 간도와 연해주 땅을 말한다. 맨 처음 청나라와 합의한 국경은 정묘호란 때 만들어졌다 1592년의 임진왜란은 무려 7년을 끌었다. 임금이 도망가고, 백성은 임금을 믿지 않게 되었다. 조선은 전쟁에서 결국 승리했지만, 전 국토가 전장이었기 때문에 나라살림이 피폐해질 수밖에 없었다. 전쟁터에서 백성과 함께 한 광해군은 이중외교를 통해 명나라와 청나라의 싸움에 끼어들지 않으려 했다. 그는 오랜 전쟁으로 엉망이 된 나라살림을 일구려고 노력했다. 국방을 튼튼히 하고 대동법을 실시하여 토지를 많이 가진 양반층에 조세를 부과했다. 이런 광해군을 밀어내고 왕위에 오른 인조는 사실 명분이 별로 없었다. 그는 논공행상을 둘러싸고 벌어진 조그마한 반란에도 도성을 버리고 도망쳤다. 백성들은 임금이 제일 먼저 도망가는 것을 다시 보게 되었다. 청나라 군대가 쳐들어오자, 아무 대책도 없던 인조의 조정은 맥없이 패하고 청과 화의를 맺기에 이른다. 1627년 청나라(당시는 후금)와 조선은 북방영토분쟁의 시발인 ‘강도회맹(江都會盟, 정묘조약의 다른 이름)’을 체결한다. 강도회맹을 통해 조선과 청나라는 “양국은 각각 경계를 봉하여 서로 온전하게 한다”고 하여 양국간의 경계를 정했다. 그러나 강도회맹에서는 국경에 대한 지도나 국경지대의 명확한 지명이 언급되지 않아, 당시 어디를 국경으로 삼았는지는 구체적으로 알 수가 없다. 만주족의 청나라가 중국 대륙을 정벌하고 그 중심을 북경으로 옮겨 가면서, 만주는 텅 비어버렸다. 청은 만주족이 떠나버린 만주에 중국 한족들이 들어가 자리 잡는 것을 막기 위해 만주 땅에 대하여 봉금정책을 실시했다. 봉금지대가 언제 어디에 설정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정확한 기록이 없다. 대체로 청 태종 때인 1626년에서 1643년 사이에, 책문(柵門)밖 100리의 땅을 비워 두었다고 한다. 조선과 청나라 모두 엄격하게 봉금정책을 시행한 약 200년간 봉금지대에는 어떤 사람의 접근도 금지되었다. 이 봉금정책을 공식적으로 먼저 깬 것은 청나라다. 1867년 청나라는 일방적으로 봉금정책을 파기하고 한족들을 이주시켰다. 야금야금 쳐들어온 일본 제국주의 19세기 이전까지 일본의 왕은 허수아비였다. 실제로 일본을 지배하고 통치한 것은 쇼군이었다. 쇼군의 막부 통치는 약 700년간이나 지속되었다. 일본의 메이지 천황은 쇼군의 막부로부터 통치권을 빼앗아 직접 다스리기 시작했고, 일본은 서구 문물을 가장 빨리 받아들인 아시아 국가가 되었다. 조선의 상업에 대한 천대는 국제 무역을 중국에 대한 조공무역으로 축소시켰고, 이는 국제 사회에 대한 무지로 이어졌다. 오랜 세도정치와 왕가의 권력다툼으로 조선의 조정은 새롭게 등장하는 서구 열강과 일본의 제국주의에 대항할 힘을 기르지 못했다. 일본의 한반도 침략은 1895년의 명성황후 시해를 기점으로 노골화되기 시작했다. 1905년의 불법적 을사조약은 고종 임금의 재가도 받지 못했다. 항일의병들이 전국적으로 조직되고, 일본과 싸웠지만, 조선의 조정을 제압한 일본은 조선의 관군을 앞세워 우리 민족끼리 싸우게 하였다. 고종 임금은 대한제국으로 국호를 바꾸고, 안간힘을 썼지만, 조선은 이미 일제에 의해 강점당한 꼴이 되어 있었다. 친일 매국노들은 나라를 송두리째 일본에게 넘겨주었고, 조선의 백성들은 항일투쟁을 해방의 그 날까지 멈추지 않았다. 청나라와 일본이 팔아먹은 우리 땅 1860년 청나라는 러시아와 북경조약을 맺으면서 네르친스크조약을 파기하고 연해주 일대를 조선의 동의도 없이 러시아에 넘겨주었다. 당시의 조선은 민란이 끊이지 않아 내부적으로 혼란에 빠져 있었다. 우리의 북방영토인 연해주는 우리도 모르게 청나라에 의해 러시아의 손에 넘어가고 말았다. 을사보호조약으로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빼앗은 일본은 1909년 청나라와 간도협약을 맺었다. 남만주철도 부설권을 포함한 이권을 얻는 대신 일본이 청나라에 내준 것이 우리의 간도땅이다. 당시
목차
[제1장] 오랑캐에게 짓밞힌 강산
1. 프롤로그 - 영광과 치욕의 역사를 담은 비석 이야기
2. 잘난 임금 몰아내고 못난 임금이?
3. 두 번이나 강산을 짓밟은 오랑캐
4. 소현세자의 못다 이룬 꿈
5. 고향에 돌아와도 반겨줄 이 없네
6. 삼전도비를 통해 배우는 역사
[제2장] 여우사냥
1. 대원군과 명성황후의 권력싸움
2. 여우사냥이 시작되다
3. 그래도 해는 뜨고!
4. 명성황후 시해 사건 보고서들
5. 을미사변에 가담한 조선인 앞잡이들
6. 아버지의 매국행위를 애국으로 속죄한 우장춘 박사
[제3장] 이 날을 목 놓아 크게 우노라
1. 강제로 맺어진 을사보호 조약
2. 다섯 놈의 도적과 그보다 더한 도적 한 놈
3. 대한국인 안중근
4. 나라를 빼앗기고 어떻게 하늘을 볼꼬!
[제4장] 대한제국, 지구상에 없는 나라
1. 세계지도에 더 이상 대한제국은 없다
2. 나라 잃은 백성이 살아서 무엇 하랴!
3. 나라를 팔아 부귀영화를 누린 놈들
[제5장] 서쪽은 압록강, 동쪽은 토문강
1. 북방영토란 어디를 말하는 걸까?
2. 백두산정계비
3. 아! 북간도
4. 우리 땅을 일본이 청에 팔아넘겨?
5. 북방영토의 회복을 위하여
통한의 역사 연대기
참고문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