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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1쪽 148 x 2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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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F. 화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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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홍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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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디앤루니스 리뷰
이 책은 유대교, 크리스트교, 이슬람교가 예루살렘이라는 성스러운 도시에서 겪어온 고대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장구한 역사를 한 권에 모은 역사서이다. 기원전부터 30세기 동안 40번이나 재건된 예루살렘의 역사는 언제나 '신의 이름'으로 행해진 이 도시에 대한 공격과 방어, 정복과 파괴의 역사이며, 수많은 예언자들, 성직자들, 순례자들, 왕들, 정복자들의 흥미진진한 모험담이기도 하다. 뛰어난 균형 감각과 설득력 있는 해석을 통해 예루살렘의 역사와 전통, 정치 상황을 보여주고 있다.
출판사 리뷰
출판사 서평 모든 시사의 배후에는 역사가 있다. 오늘날 팔레스타인 지역을 둘러싼 아랍인들과 이스라엘인들 간의 갈등보다 더 이 말이 잘 들어맞는 예는 없을 것이다. 1948년 이스라엘 국가 수립으로 시작된 중동전?쟁은 지금까지 총 4차례나 발발했으며, 1987년 시작되어 1993년 종결된 제1차 인티파다로 1,200명 이상이 사망했고, 지난 2000년 9월 28일 이스라엘 총리 샤론의 알 악사 사원 방문을 계기로 발발한 제2차 인티파다로 지금까지 1,000명 이상의 사상자가 나오고 있다. 그리고 이런 팔레스타인 문제의 핵심에는 바로 예루살렘이 ... 모든 시사의 배후에는 역사가 있다. 오늘날 팔레스타인 지역을 둘러싼 아랍인들과 이스라엘인들 간의 갈등보다 더 이 말이 잘 들어맞는 예는 없을 것이다. 1948년 이스라엘 국가 수립으로 시작된 중동전쟁은 지금까지 총 4차례나 발발했으며, 1987년 시작되어 1993년 종결된 제1차 인티파다로 1,200명 이상이 사망했고, 지난 2000년 9월 28일 이스라엘 총리 샤론의 알 악사 사원 방문을 계기로 발발한 제2차 인티파다로 지금까지 1,000명 이상의 사상자가 나오고 있다. 그리고 이런 팔레스타인 문제의 핵심에는 바로 예루살렘이 있다. 유태인들은 예루살렘이 지난 수천 년 동안 자신들의 정신적 고향으로 유태인들의 심장이자 영혼이기 때문에 양보는 물론 분리될 수도 없다고 주장하며, 팔레스타인인들은 예루살렘이 이슬람교의 제3의 성지로 지난 1500년 동안의 아랍인 역사가 고스란히 녹아 있는 곳으로 자신들 자치 정부의 수도는 그곳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똑같이 종교적·역사적인 이유를 들며 예루살렘이 그들 국가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왜 그들은 그렇게 '예루살렘'이라는 도시에 집착하는 것일까? 유태인과 팔레스타인인에게 그들의 수도는 왜 예루살렘이 아니면 안 되는 걸까? 오늘 그들의 분쟁 배후에는 바로 역사가 있다. 그리고 그 예루살렘의 역사를 국내 최초로 다룬 책이 바로 이 책 [예루살렘]이다. 예루살렘, 기원전부터 지금까지 30세기 동안 '신'의 이름으로 포위되고, 방어되고, 정복당하고, 파괴되었다 재건되는 일이 40차례나 되풀이된 도시. 이 도시는 유대교, 그리스도교, 이슬람교의 세 종교가 모두 자기 종교의 성지로 떠받들며 신성하게 여기는 곳이다. 이 책은 바로 이 세 종교가 각각 예루살렘과 인연을 맺기 시작하는 시점부터 시작해서 20세기 초반까지의 예루살렘 역사를 3부로 나누어 다루고 있으며, 마지막 4부에서는 영국이 팔레스타인 위임통치를 시작한 1917년부터 제3차 중동전쟁이 일어났던 1967년까지의 예루살렘 역사를 다루고 있다. 그리고 이 책에서 다루지 못한 1967년 이후 팔레스타인 지역에 대한 현대사는 한국외국어대학교 아랍어과 홍순남 교수의 논문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침공, 어떻게 볼 것인가?」와 역자가 쓴 「중동지역 약사」로 보완하였다. 유대교 입장에서 바라본 예루살렘史 유태인들은 예루살렘이 지난 3천 년 동안 그들의 정신적인 수도이며, 마음의 고향이었다고 말한다. 그들의 역사적 근거는 기원전 1천 년경 다윗이 통합 이스라엘 왕국의 수도를 예루살렘으로 정했던 때부터 시작된다. 다윗은 자신의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자기 민족의 신앙을 이용했는데, 그는 모세가 야훼로부터 받은 율법이 담긴 계약궤를 자신이 건설한 수도에 가져옴으로써 왕권의 정통성을 인정받고 아울러 강력한 중앙집권체제를 이룩하려 했다. 비록 그가 세운 나라는 두 세대만에 둘로 갈라졌지만 메시아에 의한 구원의 신화 속에 자신의 유산을 남겼으니 그의 계획은 성공했다고 볼 수 있다. 기원전 6세기 바빌로니아의 침략으로 인한 디아스포라(離散)이후 유태인들은 자신들의 메시아가 다윗의 왕가에서 나올 것이며, 그들의 신 야훼께서 다윗의 도시에 다시 그들의 나라를 세워주실 거라는 믿음을 지니게 되었기 때문이다. 바빌로니아를 무너뜨린 페르시아 왕 키루스의 귀환 허가로 유태인들은 다시 팔레스타인 땅에 그들의 사회를 재건하고 바빌로니아 침략 때 파괴된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축한다. 그러나 곧이어 그리스 왕조의 지배를 받게 된 유태인 사회는 그리스화된 소수의 귀족층 헬레나이저와 유대의 관습과 종교를 엄격히 지키는 다수의 하시딤으로 급격히 이분화되어 가면서 두 집단 사이의 반목도 깊어가게 된다. 그리스인들이 그들의 신에 대한 숭배를 강요하자 이에 분개한 유태인들은 하스몬 가문을 중심으로 반란을 일으키고 결국 성공, 약 100년에 걸친 하스몬 왕가의 치세를 맞아 정치적 자유와 함께 번영을 누린다. 하지만 곧 로마 제국의 침입으로 유태인들은 다시 정치적 자유를 잃고 만다. 로마 제국 초기의 통치는 로마가 임명한 유대왕 헤로데에 의해 이루어졌는데, 헤로데는 로마의 지배자들에게 충성하는 한편, 유태인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예루살렘의 제2성전을 확장 보수하는 등 내치에도 노력을 기울여 유대 땅은 비교적 평화로운 시기를 맞는다. 그러나 헤로데 사후 로마에서 파견된 행정관들의 직접 통치를 받으며, 로마와 유태인 간의 관계는 악화되어 66~70년의 유태인 대반란과 132~135년의 바르 코크바 반란이 일어나게 된다. 이때 66년에 일어난 대반란으로 예루살렘 성전은 로마 장군 티투스의 손에 파괴되었으며(공교롭게도 바빌로니아인들의 손에 첫번째 성전이 파괴된 날과 같은 날이었다), 바르 코크바 반란 이후에는 하드리아누스 황제가 예루살렘을 완전히 로마식 신도시로 재건설한다. 이후 유태인 사회의 지도자인 랍비들은 유태인들에게 반란을 꿈꾸지 말고 오로지 기도와 율법의 엄수로 야훼께서 다시 그들의 땅에 다윗 혈통의 왕국을 다시 세워주시길 기다려야 한다고 가르치며, 해외로 나가는 유태인들에게 팔레스타인 땅에서 살며 그 땅을 지켜야 한다고 설파한다. 로마 제국의 분할 이후 그리스도교화된 비잔틴 제국의 지배를 받으며 유태인들은 다시 한번 힘겨운 시기를 보내는데, 그리스도교와 유대교의 갈등도 이때 깊어지게 된다. 이후 우마이야조(옴미아드조) 무슬림의 지배를 받게 된 팔레스타인 땅의 유태인들은 인두세를 납부하며 비잔틴 제국 치하에서보다는 훨씬 종교적 자유를 누릴 수 있었으나 십자군 원정 때 다시 한번 큰 수난을 겪게 된다. 이후 쿠르드족의 전사 살라딘의 예루살렘 점령으로 다시 무슬림들의 치하에서 19세기까지 살게 된 유태인들은 수세기 동안 계속 조상들의 땅을 잊지 않고 신앙을 지켜나가며, 드디어 영국의 위임통치기를 맞게 된다. 그리스도교 입장에서 바라본 예루살렘史 갈릴리에서 선교활동을 하던 예수는 정치적 입지를 고려하지 않은 종교적 순수성으로 인해 로마 당국과 바리사이들에게 미움을 샀으며 결국 반란선동 혐의로 로마 당국에 체포되어 십자가형에 처해진다. 사도 바울로는 그리스도교를 서방세계로 전파하고, 비잔틴 제국의 황제 콘스탄티누스가 그리스도교를 공인하고 많은 그리스도교 건축물을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팔레스타인 땅에 세우자 예루살렘은 서방세계에서도 중요한 성지가 된다. 그러나 유대교는 예수를 하느님의 아들로 인정하지 않고, 유대교와 그리스도교의 갈등이 깊어가게 된다. 한편 그리스도교 내부에서는 예수의 신성을 둘러싼 격렬한 신학논쟁이 벌어져, 그리스도교의 여러 종파가 생겨나게 된다. 638년 칼리프 우마르가 예루살렘을 점령하고 뒤이어 무슬림들이 콘스탄티노플마저 위협하자 동방의 비잔틴 제국은 서방의 로마 교황에게 군사적 도움을 요청한다. 이에 교황이 십자군을 주창, 종교적 열정에 사로잡힌 각계각층의 십자군이 구성되어 예루살렘을 무슬림들로부터 해방시키기 위한 원정을 시작한다. 그러나 이들은 가는 곳마다 잔인한 행동을 하여 그리스인은 물론 유태인, 아르메니아인, 그루지야인 등 팔레스타인 지역에 사는 모든 본토인들의 원성을 사게 된다. 결국 예루살렘을 정복한 십자군은 예루살렘 왕국을 세우고 잠시 이 지역을 통치하기도 하나 결국 무슬림들에 의해 예루살렘에서 쫓겨나게 된다. 예루살렘을 무슬림들에게 빼앗긴 서방의 그리스도교인들은 다시 십자군을 창설하지만 이제 초기의 종교적 열정은 사라지고 오히려 콘스탄티노플의 그리스인들을 공격하는 등 각종 전리품을 챙기는 데 혈안이 된다. 이 과정에서 그리스정교와 라틴 교회는 갈등을 빚게 되고 서로 성
목차
서문/7
축복받은 예루살렘,저주받은 예루살렘
1부 유태인 역사에서 본 예루살렘의 의미
1.시온,다윗의 도시/43
2.파괴된 성전/83
3.시온으로의 귀환/131
2부 그리스도교인들의 분쟁과 축복으로 얼룩진 예?루살렘의 역사
4.예수의 발자취들/181
5.신의 뜻입니다!/219
6.그리스도의 무더은 누구 것인가?/262
3부 이슬람 역사에서 본 예루살렘의 거룩함
7.이슬람,예루살렘에서 이기다/293
8.전갈로 가득 찬 황금그릇/335
9.오스만의 무관심/366
4부 예루살렘의 미래,분할이냐 통합이냐
10.탄생과 배반-예루살렘을 향한 투쟁,1917~1967/393
보론/439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침공,어떻게 볼 것인가?
부록/465
중동지역 약사/왕계표/참고연표/참고문헌/찾아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