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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3쪽 148 x 2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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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리즈] 자유문고 동양학총서 [77]
출판사 리뷰
중국 오대(五代) 때 양(梁)나라의 혜교(慧皎)가 저술했다. 중국 대륙에 불교가 들어오면서 불가(佛家)의 오묘하고 불가사의한 행적들과 중국으로 전파되는 전도 과정에서의 수난과 고통, 수도 과정에서 보여주는 고승들의 행적 등을 적은 기록문이다.
“천둥소리가 산을 부술 정도로 요란하다 하더라도 귀머거리에게는 들리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그 천둥소리가 작은 것은 결코 아닙니다. 만약 그 도리(道理)가 어디에서나 통할 수 있는 것이라면 저 멀리 만 리 밖에서도 응할 것이요, 만약 도리가 막혀 있다면 간과 쓸개처럼 바로 붙어 있어도 초나라와 월나라처럼 멀어질 것입니다.” (본문 내용 중에서)
서문: 고승전(高僧傳)이란 어떤 책인가?
<고승전>은 중국 양(梁: 五代 때의 한 나라. 502∼557)나라 시대 혜교(慧皎)가 지은 저서이다.
이 <고승전>을 지을 당시의 중국사회는 혼란기였다.
춘추전국시대를 거치면서 주(周)나라의 왕도(王道)가 문란해지고 공자(孔子)가 세상을 떠난 뒤에 진(秦)나라에 의해 분서갱유(焚書坑儒)의 화액이 일어났다. 또 이때는 유학(儒學)이 쇠퇴의 길로 접어들어 한대(漢代)에는 황로(黃老)의 가르침이 존중되고, 진(晉)⦁위(魏)⦁양(梁)⦁수(隋) 등 5대(五代) 때에는 불교가 인심을 풍미(風靡)하게 되었다.
도덕과 인의(仁義)를 내세우는 자는 양주(楊朱)에 공명하지 않으면 묵적(墨翟)에 동조하고, 노자(老子)에 열중하지 않으면 불타(佛陀)에 도취되는 형편이었다. 천하가 이렇게 돌아가는 것을 개탄한 당(唐)나라의 문호(文豪) 한유(韓愈)는 ‘원도(原道)’를 저술하였는데, 그 논조는 지극히 심각하였다. 그러나 한유의 주장대로 문명에서 야만으로 사람의 마음을 타락시킬 뿐인 불교에, 당나라는 상하와 귀천을 가리지 않고 심취되어 있었다. 천자 자신이 불골(佛骨)을 향하여 엎드려 예배하는 형편에 이르자 한유는 더욱 견딜 수 없는 분노를 느꼈다. 그는 마침내 ‘논불골표(論佛骨表)’라는 글을 지어 직접 천자에게 올렸는데 그 논조는 격렬하고 비창감(悲愴感)마저 감돌았다.
그러면 한유가 이와 같이 초조해 했던 원인은 무엇일까.
본래부터 왕도(王道)의 길인 유도(儒道)가 쇠퇴하고, 이단사설(異端邪說)에 불과한 도교(道敎)와 불교가 만연하는 상태에서, 야만의 땅에서나 어울리는 불교의 가르침이 문명의 땅인 중화(中華)로 침입하여 천자 자신이 솔선수범하여 신봉하는 일에 그는 견딜 수 없는 모멸감을 느꼈을 것이다.
도교와 불교가 성행하고 유도가 쇠퇴하게 되는 사상적인 상황은, 당나라 시대에서도 후반인 한유가 관계에 진출한 시기에 갑자기 나타난 현실은 아니다.
한대(漢代)에 황로도가(黃老道家)의 가르침이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킨 뒤, 한(漢)나라 명제(明帝) 때 새로 전해 들어온 불교가 삼국시대(三國時代)와 양진(兩晉)시대에서 남북조시대를 거쳐 수당(隋唐)시대로 이어지면서 신자를 획득하게 된 반면, 유가(儒家)의 가르침은 쇠퇴일로를 걷게 된 것이다.
토착(土着) 전통의 가르침이 아닌 불교가 이향(異鄕)에서 신자의 수를 늘려간 데에는 그럴만한 까닭이 있었다.
당시의 기록에 의하면, 토착 사상으로는 생각할 수 없었던 인생의 도리를 밝힌 것이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기원전후(紀元前後)에 중국에 전래하기 시작하여 세월이 흐르기 약 8백 년, 그 흥륭성쇠의 과정을 거치는 전교(傳敎)와 홍법(弘法)의 길은 결코 평탄하지 않았다. 파란만장(波瀾萬丈)과 간난신고(艱難辛苦)의 연속이었고, 무수한 사람들의 피와 땀의 결정(結晶)이었다. 불타가 깨달은 진리와 그가 정한 계율, 그것들을 설명한 경(經) 율(律) 논(論) 삼장(三藏)이 불교의 핵심이지만, 그것을 중국어로 바르게 바꾸어 놓는 일 없이는 전교도 홍법도 있을 수 없었다. 풍속과 습관, 언어의 구조가 전연 다른 범어(梵語)를 한어(漢語)로 번역한다는 일이 쉽지 않았는데, 유명무명(有名無名)의 많은 승려들은 그 일을 무난히 해냈다. 그 밖의 여러 가지 방법으로 하는 전교와 홍법의 수레바퀴가 대지의 구석구석을 돌면서 세계를 덮었던 어두운 구름을 완전히 걷어치웠고, 진홍(眞紅)의 태양 광선이 대지의 구석구석까지 비추게 된 것이다.
혜교(慧皎)가 편찬한 <고승전(高僧傳)> 14권은, 서문인 권14를 제외한 권1에서 권13까지 역경(譯經).의해(義解).신이(神異).습선(習禪).명률(明律).망신(亡身).송경(誦經).흥복(興福).경사(經師).창도(唱導)의 10과를 세워 정전(正傳) 257인(人) 부전(附傳) 2백여 인의 고승의 전기(傳記)를 수록하였다.
이 편역서는 그 많은 인물을 다 수록할 수 없어서 공적이 지대한 32인의 고승만 선정하여 기술하였다. 그 과정은 일본의 강담사(講談社) 발행, 고승전(高僧傳)을 참조하였다.
후한 명제의 영평(永平) 10년(67)에서 양(梁)나라 무제(武帝) 천감(天監) 18년(519)에까지, 전후 453년간 몸과 마음을 바쳐 전교와 홍법에 힘쓴 승려들의 사적(事跡)을 기술했는데, 중국에 불교가 널리 전파된 전말과 경위를 남김없이 보여 준다.
그런데 혜교가 붓을 놓은 천감 18년(519)은, 한유가 위기감에 몰려 ‘원도(原道)’와 ‘논불골표(論佛骨表)’를 저술하지 않을 수 없었던 9세기 초와는 약 3백 년의 거리가 있다. 이 시점에서 이미 불교는 중국 사람들의 마음을 풍미하고 시대를 석권(席卷)하여 황제 스스로 보살계(菩薩戒)의 제자를 자처하는 데까지 이르렀다. 이러한 시대에 산 혜교는 <고승전> 서문에서 유(儒).도(道).불(佛) 삼교(三敎)를 비교하여 불교의 우수성을 설파하였다.
그러면 혜교는 어떤 인물인가.
당(唐)나라 때 도선(道宣)이 지은 <속고승전(續高僧傳)> 권6에 보이는 그의 전기에 의하면, 그는 어떤 씨족(氏族)의 출신인지 분명하지 않으나, 회계(會稽)의 상우현(上虞縣) 사람이다.
학문은 내전(內典: 佛書)과 외전(外典: 俗書)에 두루 통달하였고, 내전은 경(經)과 율(律)을 널리 닦았다. 가상사(嘉祥寺)에 살면서 봄과 여름에는 법(法)을 설(說)하였고, 가을과 겨울에는 저술에 힘썼다.
<열반의소(涅槃義疏)> 10권과 <범망경소(梵網經疏)>를 찬술하였고, <고승전> 14권을 저술하였는데 전(傳)이 완성되자 온 나라 안에 널리 퍼졌다.
문장이 간략하고 의미가 명료하여 사람들에게 존경받았다. 그 뒤 어디에서 어떻게 입적(入寂)했는지는 알 길이 없다고 하였다.
<고승전> 권14의 말미에 덧붙인 한 글에 혜교가 입적한 해를 명시한 문자가 보이며 <속고승전>의 기사를 보충해 주고 있으나, <속고승전>이 찬술된 뒤에 발견되어 <고승전> 말미에 덧붙인 것으로 보아, 어느 정도 신용할 수 있는지는 의심스럽다.
그것에 의하면 ‘양(梁)나라 말기인 승성(承聖) 2년(553)에 후경(後景)의 난을 피하여 분성(湓城)으로 왔다. 거기서 얼마 동안 강설(講說)하였으나 갑술년 2월에 세상을 떠났다. 향년 58세. 강주(江州)의 승정(僧正)인 혜공(慧恭)이 여산(廬山) 선각사(禪閣寺)에 장사 지냈는데, 용광사(龍光寺)의 승과(僧果)가 함께 난을 피해 왔다가 목격한 것을 여기 적어 둔다.’고 하였다.
갑술년이 서기 554년이고, 58세에 입적했다면 그의 탄생은 남제(南齊)의 명제(明帝) 건무(建武) 4년(497)이 된다. 혜교의 일생은 남조(南朝) 굴지(屈指)의 불교 왕조인 양(梁)나라의 흥륭과 멸망의 전 과정과 거의 일치한다.
불교를 독신하던 무제(武帝)가 이끈 양왕조(梁王朝) 치하에서 불교의 교단이나 출가자(出家者)들은 무제의 두터운 보호를 받았다. 그러한 상황에서 승려의 한 사람으로서, 상하 모두에게 존경받은 혜교에 의해 이루어진 <고승전>은 음으로 양으로 시대의 영향을 많이 받았으니, 그 흔적은 도처에서 보인다.
고승전(高僧傳)이란 어떤 책인가/3
제1장 역경전(譯經傳)/13
역경의 다섯 가지 모양/15
불가사의한 역경성승(譯經聖僧)의 숙명/18 ― 안청전(安淸傳)
사람들을 감동시킨 불멸의 사리(舍利)/27 ― 강승회전(康僧會傳)
이 몸을 불태우더라도 내 혀는 타지 않는다/39 ― 구마라습전(鳩摩羅什傳)
사방으로부터 정(靜)을 즐기는 자가 이르다/59 ― 불타발타라전(佛馱跋陀羅傳)
‘열반경(涅槃經)’을 중국어[漢語]로 번역한 스님/68 ― 담무참전(曇無讖傳)
위에는 나는 새 없고, 아래는 달리는 짐승 없다/76 ― 법현전(法顯傳)
제2장 의해전(義解傳)/83
진실한 가르침을 직접 받을 수 있는가/85
진리를 이을 이는 이 사람뿐이다/88 ― 지둔전(支遁傳)
금세(今世)는 즐겁다. 그러나 내세(來世)는 어찌할 것인가/96 ― 축승도전(竺僧度傳)
고해(苦海)를 건널 수 있겠습니까/103 ― 석도안전(釋道安傳)
30여 년 동안 그림자가 산을 벗어나지 않았다/115 ― 석혜원전(釋慧遠傳)
겨우 돌아갈 곳을 찾았다/133 ― 석승조전(釋僧肇傳)
선근(善根) 없는 자도 다 성불(成佛)한다/145 ― 축도생전(竺道生傳)
제3장 신이전(神異傳)/151
내 위에 누가 또 있으랴/153
도술로써 징험을 보였다/156 ― 축불도징전(竺佛圖澄傳)
불가사의한 주력(呪力)이 중병(重病)을 고쳤다/165 ― 배도전(杯度傳)
제4장 습선전(習禪傳)/175
선(禪)의 또 다른 세계/177
돌로 사다리를 만들고 바위에 올라 좌선하다/180 ― 축담유전(竺曇猷傳)
악세(惡世)에 태어나 중생을 구원하련다/186 ― 석현고전(釋玄高傳)
제5장 명률전(明律傳)/197
계율(戒律)을 깊이 닦은 분들/199
이 사람이야말로 후세의 우바리(優波離)이다/201 ― 석승업전(釋僧業傳)
배움은 내외를 겸하고 율행(律行)도 부족함이 없었다/204 ― 석승거전(釋僧거傳)
장수도, 높은 지위도 내가 바라는 바 아니다 ― 석지칭전(釋智稱傳)
제6장 망신전(亡身傳)/213
이 한 몸을 바쳐서/215
범이 나를 먹는다면 재앙은 반드시 소멸되리라/218 ― 석담칭전(釋曇稱傳)
내 살을 먹으면 아직 며칠은 더 견디리라/220 ― 석법진전(釋法進傳)
나의 신명(身命)이 무엇이 아까우랴/223 ― 석혜익전(釋慧益傳)
제7장 송경전(誦經傳)/227
행복을 초래한 힘의 원천/229
저에게 90일 동안 만 법을 설(說)하여 주십시오/231 ― 석담수전(釋曇邃傳)
하늘의 동자가 시중 들다/233 ― 석홍명전(釋弘明傳)
도림(道琳)이 와 살면서 요괴(妖怪)가 없어졌다/236 ― 석도림전(釋道琳傳)
제8장 흥복전(興福傳)/239
삼라만상은 곧 부처의 활동/241
예배와 참회(懺悔)를 으뜸으로 삼다/244 ― 석혜달전(釋慧達傳)
불가사의(不可思議)한 영상(靈像)/249 ― 석법열전(釋法悅傳)
제9장 경사전(經師傳)/257
대중을 사로잡는 독경 소리/259
슬픈 듯 아름다운 가락은 신의 경지에 이르렀다/261 ― 백법교전(帛法橋傳)
전무후무한 독경의 제일인자/263 ― 석담천전(釋曇遷傳)
범음(梵音)이 한번 울리면 길 가던 사람이 걸음을 멈춘다/265 ― 석담빙전(釋曇憑傳)
제10장 창도전(唱導傳)/267
신앙심을 불러일으키는 설법(說法)/269
효무제를 불도(佛道)로 인도한 응변무궁(應變無窮)한 변설/ ― 석담종전(釋曇宗傳)
모든 중생의 앞날을 정확히 맞추었다/275 ― 석법원전(釋法願傳)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