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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윙 - 민음의 시 151

2014년 1월 8일 오늘의 책

스윙 - 민음의 시 151

여태천 | 민음사 | 2008.12

분류 : 시/에세이/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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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말의 최소화로 여백을 창조하는 시, 의미의 증식이 아니라 의미를 붕괴함으로써 인생의 공허를 드러내는 시. 여태천의 시는 무기교의 기교요, ‘여백의 조각술’이다. ―최승호(시인) 말들의 공허함이 시의 주제인 ‘의미 없음’과 어우러지며 진공 상태를 만들어 낸다. 삶의 의미 없음을 미학적으로 표현해 낸 상징들인 이 언어들이 짜임새 있게 엮이어 독특한 아우라를 형성하고 있다. ―문혜원(문학평론가, 아주대 국문과 교수) 역전 홈런이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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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백한 슬픔

 

종종 삶이라는 게 선명해질 때가 있다.

 

아무리 발버둥 하며 자맥질을 해봐도 돌아보면 늘 그 자리에서 맴돌았을 뿐. 백석이 그랬듯 손깍지 베개를 하고 구르기도 하며 내 슬픔이며 어리석음으로 얼룩진 삶을 소처럼 연신 새김질할 때 내 삶의 궤적은 나와는 무관하게 이미 정해진 것이고 나보다 크고 높은 것이 있어서 나로선 어찌할 수 없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때가 있다. 결국 나는 앙금이 되어 가라앉지 못하고 부유하는 것이 아닌가, 이렇게 떠다니도록 그려진 삶의 궤적을 좇아가는 게 아닌가, 승패와 관계 없는 몇 게임을 그저 치르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렇듯이 삶은 선명한 것이 아닌가.

 

머리 위로 우기(雨期)의 바람이 불었다.
물은 오랫동안 컵 안에 무겁게 담겨 있었고
승패와 관계없는 몇 개의 게임이
남아 있었다.

 

애인으로부터 버림받은 사람처럼
불펜에서 노닥거리거나
구경 나온 다른 그녀를 위해
우리는 희생번트를 댔다.

 

스파이크, 스타킹, 발목……

비어 있는 스탠드를 보며
우리는 전력 질주하지 않았고
홈으로 돌아오는 걸 잊었다. ('더블헤더' 중에서)

 

여태천이 포착한 삶도 다르지 않다.

 

그에게 매일은 "쓰레기봉투처럼 자꾸만 쌓이는 요일들"이며, 그래서 이 아침은 어제와 다를 바 없이 패배가 선명한 "고전적인 아침"이다. 어느덧 나는 서른 후반의 중년이 되었으나 그 중년이란 과연 시인의 말대로 "나아질 게 없는 우리의 중년/ 우리는 조금씩 정상인을 닮아 가"는 거겠지.

 

반복되는 일상의 스냅 사진, 이 지루하도록 뻔한 삶의 관성에서 잠깐의 유예된 시간을 나는, 그리고 그대는 힘겹게 살아가고 있다.

 

그것은 슬픈 일이다.

 

나는 생명을 다해 꽃을 피우려 했으나, 내가 피운 꽃은 본질적으로 꽃인가, 하는 물음표를 대했을 때 자신이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그저 저무는 강변을 보듯 그렇게 무심히 응시하는 것 뿐이리라.

 

노란 약물을 척추에 꽂고
빨간 꽃을 피웠는데
동백이라고 부를 수 없다.
꾹꾹 눌러쓰고 싶었던 말은
흔적이 없다.

 

(…)

 

길고 오래 지속되는 밤과 낮들은
그렇게 또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중독' 중에서)

 

삶은 그렇게 또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스윙은 "역전 홈런"이 아니라 "마이볼"에 의해 아웃 카운트로 기록될 "플라이 아웃", "국자 들고 우아하게 스윙"해 봤자, 우리의 스윙은 예고된 패배의 수순을 영리하게 밟는다.

 

그러나

 

이 시집의 마지막은 "이미 끝난 게임/ 9회 초 마지막 공격에서 터지는 장외 홈런."으로 끝나는데, 시인은 과연 희망의 단서를 포착했기 때문일까.

 

그렇지 않다.

 

장외 홈런이 터져도, 우리가 전력을 다해서 베이스를 돌고 또 돌아도, 그것은 이미 끝난 게임. 삶은 완벽한 구도로 우리를 지배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력을 다해 질주할 수밖에 없는 것이 룰이고 규칙이라면 어쩌란 말인가. 그러므로 삶은 더욱 슬픈 것이다. 지는 태양을 잡을 수 없듯, 새벽빛이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을 고이 담아 둘 수 없듯. 다만 조용히 응시하고 바라볼 뿐이다.

 

마감 뉴스

 

오늘 밤 내가 사는 이곳은 조용하다.

 

막 피어난 꽃, 향기가 날 듯 말 듯

 

바람은 불어

 

그 바람에 가는 비 조금 오고.

 

내가 사는 작은 동네에

 

아주 조금 비가 와서

 

버스는 제때 오지 않아

 

버스를 타지 않으리라고

 

굳게 마음먹는 그런 밤이다.

 

사실은 저 혼자 떨어져 내린 명자꽃 때문이다.

 

먼저 간 마음 같은 이름 때문이다.

 

사실은 아무 일도 없다는

 

오늘의 마감 뉴스 때문이다.

 

어처구니없는 사실에

 

먼 타지에 마음을 부려 버린 남자처럼

 

오늘 밤은 조용하다.

 

다른 것을 생각할 수 없어

 

저물지 말았으면 하는 밤이다.

 

 

오늘의 책을 리뷰한 ‘가림토’님은?
가림토(加臨土) 또는 가림다(加臨多) : 상징적 장치. 음모설의 신봉자. 배후와 모략 있음과 없음. 가림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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