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9월 7일 오늘의 책
고레에다 히로카즈 | 비채 | 2018.08
분류 :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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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훔친 것은, 함께한 시간이었다. 소설로 만나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가족미학 도쿄 도심에서 살짝 벗어난 동북쪽 동네, 고층맨션으로 둘러싸인 오래된 단층 목조주택. 여기 ‘어느 가족’이 살고 있다. 옆자리 파친코 구슬을 천연덕스럽게 훔치는 할머니, 할머니 연금을 축내며 좀도둑질을 일삼는 아버지, 세탁공장에서 손님 옷 주머니를 뒤지는 어머니, 가슴을 흔들며 연애를 파는 어머니의 이복동생, 아버지에게 진지하게 좀도둑질을 배우는 ...
콘텐츠 생산(글, 사진, 음악, 영상 등)과 관련하여 『드론 사진 강의』 저자 박승근 교수님의 강연을 들은 적이 있다. “잔인하지만 인간의 아픔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이 성공할 콘텐츠이다.” 교수님이 해 준 말씀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말이다. 아픔을 보여주고 예술이라 포장하는 것만큼 잔인한 일은 없다. 강연 당시 예술가는 잔인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했는데,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참 잔인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다. 다른 말로 하면 그만큼 몰입할 수 있는 글을 썼다는 것이다. “사연 없는 사람이 어디 있는가?” 그것을 통해 감정을 자극하고 이해를 끌어낸다면 그것은 좋은 콘텐츠이다.
감정을 우선시한 행동은 부도덕한 결과를 가져올까?
처음 등장하는 5살 유리, 주리, 린이라 불리는 여자아이는 ‘달리’(『달려라, 달리!』)와 같은 역할을 한다. 둘은 삭막한 일상에 찌든 사람들에게 각성할 기회를 준다. 두 책을 읽으며 문학에서 분위기 전환에 가장 쉬운 방식은 새로운 캐릭터의 추가라고 느꼈다. 인간이 다른 존재에 감정을 몰입하여 변하는 과정을 담은 문학이 자꾸 나오는 이유는 인간은 그런 존재가 아니기 때문일까? 이미 구성된 사회에서 우리는 억지로 윤리를 지키고 있는가?
성공하는 문학 작품은 도덕적 잣대를 가지고 잘 놀 줄 알아야 한다. 소설에서는 좀도둑질을 ‘일’로 표현한다. 법과 감정의 사이에서 줄타기를 잘할수록 독자는 몰입한다. 그리고 이해의 폭을 넓힐 기회를 제공하면 그 작품은 크게 성공한 작품이라 칭해진다. 인간은 도덕적 강요를 스스로 꼬집는 것을 발전으로 생각한다. 항상 옳은 것은 없다. 꼬집는 행위가 올바르다고 착각하며 그를 지속할 뿐이다.
소설은 윤리 문제를 사회 내에서 가장 작은 집단의 단위인 가족으로 풀어낸다. 그들은 일반적으로 이루어진 가족이 아니다. 그러면서 강조하는 것은 ‘그들은 선택받은 것이 아닌 선택으로 가족을 이루었다’는 것이다. 우리는 태어날 때 이름을 받는다,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이들은 자신의 선택으로 이루어졌다. 어른들과 달리 어린 ‘쇼타’와 린은 ‘1+1=2’처럼 즉각적으로 이런 가족 관계를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러한 전개는 우리의 상식과 같기에 더욱 몰입도를 높여주고, 문제의식을 강화한다. 어른들은 한 번 가족을 이루고 좌절을 경험했지만, 아이들은 가족을 제대로 이룬 적이 없는 것도 새로운 가족에 즉시 적응을 못하는 원인으로 생각된다.
가족 구성원 중 아빠 역할을 하는 오사무와 엄마 역할을 하는 노부요는 상반되는 태도를 보인다. 오사무는 쇼타에게 아빠라 말해 달라고 부탁한다. 그러나 노부요는 쇼타나 린에게 이를 드러내기보단 묵묵히 사랑을 준다. 소설은 일반적인 상식을 절묘하게 이용하여 우리의 감정이입을 유도한다. 노부요의 태도가 진짜 아이들을 배려하는 것이라 느껴진다. 꾸준히 오사무를 철부지, 노부요를 더 어른스러운(사회화가 잘 된) 인물로 그린 것도 캐릭터 구축에 주요했다.
3장 ‘수영복’에서 5살 여자아이는 ‘린’이라는 이름을 새로 갖게 되며, 가족 구성원이 된다. 4장 ‘마술’에서는 바닷가에 놀러 가서 일반 가족들이 누리는 행복을 그대로 누린다. 그리고 갈등이 절정에 치닫는 5장 ‘구슬’이 이어진다. 4장이 일반적인 관점에서 매우 행복했기에 5장의 좌절은 더 크게 다가온다. 5장에서는 가족 관계가 뒤틀린다. 그 시작은 할머니 하쓰에의 죽음이다. 하쓰에의 죽음에 슬퍼하던 나머지 가족들은 현실적 문제에 부딪힌다. 법적으로 그들 관계는 남이기에 남은 가족은 하쓰에를 묻고 잊으려 한다. 그러나 그들의 생계를 유지했던 그녀의 연금을 찾으러 나선다.
위선적인 상황 속에 쇼타가 병원에 실려 가며 하쓰에의 죽음으로 생긴 작은 틈은 완전히 갈라지기 시작한다. 쇼타가 병원에 실려 가고, 오사무가 실수로 주소를 말하게 되면서 경찰들이 그들의 보금자리를 급습한다. 완전히 아물지 않은 각자의 상처는 이 사건으로 다시 벌어진다. 노부요와 경찰 미야베의 대화는 사랑과 윤리의 충돌을 그대로 보여준다. 대화 속에서 노부요는 어린 쇼타와 린에게 사랑을 주었지만, 일반적인 가족의 형태가 아니었기에 새로운 가족을 지속하기 어려움을 느끼며 슬퍼한다. 그녀는 점차 함께하겠다는 생각을 내려놓는다.
5장 마지막에는 경찰에게 모든 사실을 털어놓은 인물인 아키가 다시 그들의 ‘있을 곳’, 보금자리로 돌아온 장면이 그려진다. 그 장면을 통해 그들이 스스로를 가족으로 받아들일 물리적 시간이 더 주어졌다면, 그들은 누구보다 행복한 가족이 되었을 것이라는 아쉬움을 우리에게 남겼다. 5장 이후 뿔뿔이 흩어진 그들은 6장 눈사람에서 시간이 흐른 후 다시 만난다. 모든 죄를 자신이 받기로 결심하고 수감된 노부요는 오사무에게 쇼타를 데려오라고 부탁한다.
“맞아…… 알잖아. 우리는 안돼, 이 아이한테는.”(246쪽)
노부요는 쇼타에게 진짜 부모를 찾아가라고 말한다. 그녀가 마지막으로 말하는 “안녕……”은 작별의 의미를 담고 있었다. 인사를 마친 오사무와 쇼타는 오래간만에 하루를 함께 보낸다. 쇼타는 경찰이 찾아왔을 당시 진짜 자신을 내버려 두고 달아나려 했는지 물어본다. 그때 오사무는 담담하게 이를 인정하고 쇼타에게 진심으로 미안해한다.
“아빠……아저씨로 돌아갈게.”(252쪽)
“……아빠…….”
쇼타는 입속으로, 처음으로 그렇게 불러보았다.
버스를 뒤쫓던 오사무는 멈춰 서서 눈물을 흘리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아이처럼 엉엉 소리 내어 울었다. 자신이 잃어버린 것의 거대함을 깨닫고 목 놓아 울었다. 오사무는 이제 어디에도 갈 곳이 없었다. 누구도 그를 기다리고 있지 않았다.(256쪽)
쇼타와 오사무, 노부요의 이야기가 진행된 후 마지막 이야기는 어린 소녀에게 돌아갔다. 이야기의 시작이었던 5살 어린 소녀는 마지막을 담담하게 그려냈다.
조개껍데기가 잔뜩 든 ‘보물’병을 옆에 둔 채 발치에 흩어진 구슬을 하나씩 주워 모았다.
“한 놈, 두식이, 석 삼, 너구리…….”(256-257쪽)
소녀는 함께 한 추억을 ‘보물’로 간직하고 있었다. 그리고 오사무에게 배운 방법으로 수를 세고 있었다. 아빠, 엄마라는 표현이 처음 등장했을 때 해당 호칭으로 부름을 통해 소설이 끝나겠다는 예상을 누구나 했을 것이다. 그러나 절정을 지나 결말 부분에서 그 내용을 풀어가는 서사 방식이 매우 놀라웠다. 인물의 성격을 끝까지 유지하여 계속 몰입할 수 있도록 만들었고, 그가 전하고자 하는 가족애를 윤리적 경계에서 절묘하게 풀어냈다. 이 소설이 가치가 있는 것은 일반적 방식으로 화목하게 이야기를 끝내기보다 마지막까지 인간의 아픔을 담담하게 그려내려고 노력했기 때문이다. 좀도둑 가족에게 그들이 함께 한 시간은 추억이자 ‘보물’이었다.
오늘의 책을 리뷰한 'nijeskiing'님은?
이번 책처럼 제가 직접 경험하지 못한 사회를 책이란 매개를 통해 어렴풋이 깨닫고 배우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제 글 또한 읽으신 분들과 사회에 좋은 영향을 주길 바라며 글을 씁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