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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서리의 탄생

2018년 5월 7일 오늘의 책

모서리의 탄생

신주희 | 자음과모음 | 2018.02

분류 : 소설

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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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 선, 면과 같은 사람들이 부딪치고 깨질 때마다 솟아오르는 날카롭고 예리한 모서리들! 낯선 온도의 감각, 신주희 첫 소설집 세계에 대한 평면적 이해를 거부하고, 다양한 구성의 변화를 통해 이야기의 입체성을 중시해온 신주희의 첫 소설집 『모서리의 탄생』이 출간되었다. 2012년 『작가세계』 신인문학상을 수상한 「점심의 연애」는 “사고차량에서 의식을 찾아가는 필사적인 과정을 요가 자세로 환치한 솜씨뿐만 아니라 구성의 긴밀도와 문장의 안정성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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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서리를 품는다


“주체의 욕망은 타자의 욕망이다.”


프랑스 철학자 자크 라캉은 말했다. 우리 모두는 타자의 욕망을 욕망하는 존재라고.


법적으로 만 19세 이상이 되기 전, 그러니까 공식적으로 ‘어른’이라는 딱지가 붙기 전 나는 그랬다. 가끔은 학교에 가고 싶지 않았으나 부모님께 둘러댈 말이 없어서 번번이 실패했고, 대학에 가서 심화적으로 배우고 싶은 학문이 없었으나 “대학 안가!”라고 말 할 용기가 없어 대학 홈페이지를 뒤지며 지원할 학과를 찾고 또 찾았다.


다행히도 나는 착하고 순진한 학생이었고 부모님의, 선생님의, 사회의 기대에 충실히 따랐다.


그런 내가 상상했던 어른은 일종의 ‘돌파구’같은 것이었다. 대학에 가면 원하는 공부를 하고, 원 없이 술을 마시고, 눈물 없이는 들을 수 없는 사랑을 하며 주체적인 ‘어른’이 될 수 있으리라 믿었다. 그 믿음은 내가 불만족스러운 현실을 참아나가게 하는 원동력이었고, 폭발하고 싶은 내적 욕망을 달콤하게 꾹꾹 눌러주던 방패였다.

그러나 슬프게도 나의 ‘만 19세’는 별볼일 없었으며, 오랫동안 부모님의, 사회의 욕망이라고 생각했던 ‘대학’이라는 가치는 결국 나에게 너무 깊게 스며들어 한동안은 수능중독에 빠지기도 했다. 어른이 되어도 나의 삶은 주체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었고, 어른이 되었지만 여전히 덜 진화된 ‘어른이’ (어른이면서 아이인, 미성숙함이 공존하는 어른) 상태로 남았다.

그래, 어른아이가 되었다. 내가 생각했던 것처럼 눈부시게 멋진 어른으로 탈바꿈하지는 못했지만 그것의 삶을 그럴듯하게 흉내낼 수 있었다. 나름대로 어른이라는 딱지를 가지고 사회를 배우면서, 모든 것에 쿨하지는 못해도 쿨한 ‘척’할 수 있었고, 상처가 완벽하게 아물지는 않아도 그런 ‘척’할 수 있었다.


모서리라는 단어가 정확하지 않을까 싶다.


뾰족한 모서리, 그러나 언제나 깎이고 쓸리면서 무뎌질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존재.


모서리의 탄생이라는 제목을 가진 이 책에는 역시나 수많은 ‘욕망’들이 등장한다. 조선족 베이비시터를 의심하는 눈, 아들을 정상의 범주 안에 넣기 위해 성적인 욕망을 자극하는 아버지, 탈북자를 ‘우리’안에 넣지 않으려는 사회의 공기 등 이것들은 개인적인 욕망이기도 하고, 사회적인 욕망이기도 하다.


상처가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냐만은, 각자의 모서리를 품어가는 방식은 서로 다르기 마련이다. 어린 소녀는 부모 몰래 늙은 남성과 교제를 하는 방식으로 모서리를 품고, 북한과 중국 그리고 한국에서 불리는 이름이 모두 다른 탈북여성은 공중 벤치에 앉아 넋두리를 풀며 자신을 나타낸다. 모서리는 그러면서 탄생한다. 우리 각자가 나름의 방식으로 상처를 내면화할 때, ‘관계맺음’에서 무뎌질 준비가 되었다는 훈장처럼 주어진다. 그런 점에서 우리의 모서리는 더 이상 개인적인 것이 아닌 것이 된다. 치유되지 못한 개인의 상처가 사회와의 관계맺음을 통해 사회의 통증이 되듯, 개인의 ‘모서리’는 사회의 ‘모서리’가 된다. 10개의 단편소설로 이루어진 이 소설책은 각기 다른 이야기가 실려 있는 듯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우리 사회가 된다.


“점, 선, 면과 같은 사람들이 부딪치고 깨질 때마다 솟아오르는 날카롭고 예리한 모서리들.”


이 책을 쓴 신주희 작가는 작가의 말에 이런 말을 썼다. 우리가 점이고, 선이고, 면일 때 우리는 서로를 이해할 수 없을 것이라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점과, 선과, 면이, 어우러질 수 있는 것은 이 모든 것들의 교집합이 ‘벽’이 아니라 ‘모서리’로 나타나기 때문이라고.

다름을 인지하고 벽을 만드는 순간, 상처로부터 자유로워진다. 교류를 피함으로써 상처받지 않음을 택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들은, 벽이 될 수 없다. 좋든 싫든 사회에서 ‘어른이’ 상태로 남으면서, 그러니까 ‘모서리’가 되기를 기꺼이 택하면서 상처를 안고 살게 된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의 10개의 단편소설은 그런 ‘모서리’들의 안쓰러운 투쟁이다.


프랑스 정신분석학자 자크 라캉의 말처럼 우리의 욕망은 결국 타자의 욕망일 수밖에 없듯, 우리는 내가 의식하는 곳에도 존재하고 ,존재하지 않는 곳에서도 ‘의식’할 수밖에 없듯, 그렇게 우리 모두가 모서리가 된다.


아프지만, 벽이 아니라 모서리가 된다.


그리고, 기꺼이 모서리를 택한 우리 모두가 미성숙하지만, 완성의 존재로 거듭나는, 미생의 ‘어른이’이다.

 

오늘의 책을 리뷰한 '냥니'님은?
나와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을 좋아하고 그에 관해 글 쓰면서 행복을 느끼는 사람입니다. 하루의 대부분을 읽고 쓰면서 보내고 있으며 표현하고 소통하는 삶을 지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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